제5회 수상작_我想你!(정지영)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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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想你!

 

정지영

 

你能理解我嗎

여자는 고개만 갸웃거리고 대답이 없었다. 이해한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아니면 아예 못 알아들은 건지 도무지 판별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가판대 맞은편에 선 주영의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시간 끌 여유가 없었다. 늘 그렇듯 중심가의 야시장은 현지인 반, 관광객 반으로 바글거렸다. 주영의 뒤로는 사람들이 빼곡히 줄 서 있었다. 중국어와 한국어와 영어가 두서없이 섞여 정신이 없었다. 주영은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말했다. , , 언더 스탠, ?

마침 빨간 두건을 쓴 남자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치즈감자를 여자의 앞에 무성의하게 내려놓았다. 여자는 주영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그 위에 타성적인 손길로 파마산 치즈가루와 파슬리를 뿌렸다.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영은 애가 탔다. 입고 온 티셔츠는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아니, 중국어도 못 알아듣고 영어도 못 알아듣나? 지난번에 분명히 중국어 했던 것 같은데……. 발만 동동 굴렀다.

여자가 셰셰, 하며 주영에게 치즈감자를 건넸다. 주영은 김이 폴폴 나는 치즈감자를 받아들었다. , 감사, 셰셰. 감사는 한데…… 망했네. 하우 머치……. 주영이 지폐 몇 장을 펼쳐보이자 여자가 한 장을 쏙 뽑아갔다. 뒷목에서부터 몸이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 남은 돈을 주섬주섬 지갑에 넣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 가격을 가늠해보며 몸을 돌리는데, 여자가 주영을 불렀다. 불렀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게, 에이, 그랬다. 그리곤 가게 귀퉁이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를 가리켰다.

주영은 쭈뼛거리며 거기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다음 손님이 밀려들었다. 가게는 좁고 시끄러웠다. 여자와 남자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주영은 방해가 되지 않도록 더욱 몸을 움츠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들, 바글거리는 기름소리와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 향신료 냄새, 간간이 들리는 한국어, 주영을 향한 의아한 눈빛들, 여자의 분주하지만 권태로운 뒷모습. 낯선 것들로만 가득 찬 곳. 주영은 안 맞는 퍼즐조각처럼 그 속에 끼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자는 주영이 잘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가끔 뒤를 돌아봤다. 주영은 포장된 치즈감자를 얌전히 무릎에 얹고, 깊은 새벽,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질 때까지 여자를 기다렸다.

가게가 파할 때쯤, 여자는 빨간 두건 남자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가게 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덩그러니 남겨진 주영은 혼란스러웠다. 쓰레기봉투를 묶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주영에게 꾸벅 고갯짓을 했고, 주영도 머쓱하게 고개를 숙였다. 곧 여자가 손에 맥주 두 병을 들고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그는 성큼성큼 주영에게 다가오더니, 한 병을 내밀었다. 주영은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여자는 유니폼을 갈아입지도 않고 가게를 나섰다. 주영은 남자에게 셰셰, 인사하고 허둥지둥 그를 따랐다.

불과 몇 시간 전의 번화한 거리가 꿈처럼 느껴질 만큼, 가게들이 문을 닫은 야시장은 황량했다. 아스팔트 바닥에 바퀴벌레 몇 마리가 밟혀죽어 있었다. 주영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티내지 않으려 애썼다. 여자는 개의치 않고 앞서 걸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일단 따라 나오긴 나왔는데, 어디로 가는 거지.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내가 찾아온 주제에 이런 생각 하는 것도 웃기지만, 나 팔려가는 거 아니야. 돌아가야 하나. 숙소까지 걸어서는 못 갈 텐데. 여기도 택시비 할증 붙나……. 주영의 손바닥에 맥주병의 물기가 흥건하게 묻어났다.

둘은 야시장을 벗어나, 적막한 거리를 대화 없이 걸었다. 간간이 지나가는 오토바이 모터소리가 전부였다. 습기와 땀 때문에 팔이 찐득거렸다. 별안간 여자가 멈춰 섰다. 그리고 주영을 빤히 돌아봤다. 덩달아 걸음을 멈춘 주영은, 여자의 시선에 맞춰 자신의 양 뺨이 실시간으로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여자는 주영보다 키가 한 뼘 정도 커서 주영은 그를 올려다봐야 했다. 여자는 다시 고개를 갸웃, 하더니 길가 돌담에 맥주병을 비스듬히 갖다 댔다. 여자가 병뚜껑을 돌담에 끄트머리에 걸치고 팍, 손목을 꺾자 병뚜껑이 날아갔다. , 졸라 멋있네……. 주영도 그를 흉내내봤지만 쉽지 않았다. 여자가 하하하 웃었다. 그러고는 주영에게 자신이 딴 맥주병을 건네더니, 주영이 들고 있던 맥주병을 똑같은 방식으로 팍, 개봉했다. 여자는 맥주병 주둥이를 주영 쪽으로 기울였다.

……치얼스?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주영도 긴장이 조금 풀려 마주 웃었다. 유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했다. 주영은 오래 목말랐던 사람처럼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둘은 그 돌담에 걸터앉았다. 주영이 주섬주섬 치즈감자를 꺼내 여자에게 이쑤시개 하나를 내밀었다. 이걸 만들어 파는 게 일인 사람이라 사양할 줄 알았는데, 여자는 눅눅한 치즈감자를 한 조각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이쑤시개를 바닥에 툭 버렸다. 주영이 여자를 돌아보자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주영은 치즈감자를 질겅질겅 씹으며 생각했다. 식어도 맛있네. 근데 이제 어떡하냐.

문득 쪽지가 생각났다. 친하지도 않은 동기에게 전화까지 걸어가며 준비해온, 서툰 중국어 발음이 빼곡하게 적힌 쪽지. 주영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쪽지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까 가게에서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어디 흘렸지. 그거 하나 쥐고 왔는데. 주영은 허탈해졌다. 번역기로 돌린 말 같은 거 하기 싫어서 최대한 현지인들이 쓰는 말로, 열심히 쓰고 읽고 연습해왔는데. 여자는 다시 주영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주영도 여자와 눈을 맞췄다. 그의 서슴없는 시선이 버거웠다. 과하네, 눈빛이…… 미치겠네. 첫눈에 반했다고 하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최악의 플러팅이겠지? 주영은 한숨을 푹 쉬고는,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거, 무례하지만 별 수 없이, 한국어로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딱 두 달 전에 여길 왔는데요, 친구들이랑 우르르 여행 왔었는데, 그쪽이 일하는 가게에서 치즈감자를 사게 됐거든요, 그날은 그쪽이 조리대 뒤편에서 뭔가 열심히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그쪽이 딱 고개를 든 순간, 기억도 못하시겠지만 우리가 눈이 마주쳤었어요, 그날 너무 더워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저는 그쪽을 보자마자, , 너무 구린 말이라서 뱉고 싶지 않은데 다른 표현이 없네,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어요, 그날도 진짜 더웠는데 왜 아직 더운 거지 여기는? 하여튼 그땐 아무 말도 못하고 침만 삼키다가 숙소로 갔고, 다음날 아침에 바로 한국 돌아갔는데, 두 달 동안 종종 그쪽 생각이 나더라고요, 근데 생각이 난다 해도 어쩌겠어요, 뭘 할 수 있겠어, 그냥 삼켰지, 그러다가 일주일 전에 우리 동네에 버거킹이 새로 생겼대서, 가서 치즈감자를 주문했거든요, 자리에 앉아서 그걸 딱 한 입 먹는 순간, 나는 여기로 다시 와야만했어요. ……이해할 수 있겠어요?

여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듣는 거야, 뭐야. 근데 이 사람 왜 여기서 내 얘기 들어주고 있는 거지? 사실은 주영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뭔지, 자신이 뭘 원하는 건지도 몰랐다. 버거킹에서 치즈감자를 입에 넣는 순간, 두 달 전의 강렬한 찰나가 머릿속을 후려쳤고, 주영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스케줄을 조정하고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얼굴을 봐야할 것 같아서 왔고, 치즈감자도 먹었고, 내가 왜 왔는지도 얘기했는데, 이제 어쩔 거야. 혹시 저 어때요? 그렇게 물어야 하나? 번역기로도 그런 게, 번역이 가능한가? , 아무튼 나 존나 별로다…….

둘 사이로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여자가 뻣뻣한 머리카락을 찬찬히 쓸어 넘겼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주영은 왠지 심통이 났다. 그래서 치즈감자의 플라스틱 용기를 툭툭 치며 말했다. 쪽지는 잃어버렸지만, 기억에 남은 문장은 하나 있었다. 꼭 하고 싶었던 말. 비행기에서 달달 외웠던 거.

因為這個我來到這裡

주영은 성조의 자도 모르는 자신의 말이 여자에게 얼마나 우습게 들릴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씩 웃었다. 그러더니 주영에게로 몸을 조금 기울이고, 느리게 속삭였다. 혼미한 새벽,

因為你我來到這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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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고 싶어.

2 이해할 수 있겠어요?

3 이것 때문에 여기 왔어요.

4 당신 때문에 여기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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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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