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의 생존전략
키치잭
아침의 버스는 언제나 빠르게 달렸다. 이제 막 하루가 시작됐을 뿐인데 버스 기사들은 하나 같이 화가 난 듯 가속 페달을 밟았다. 과속방지턱 탓에 먹은 것도 없는 속이 울렁거린다.
서울에 집을 구하지 못해서 그 근처 여기저기로 이사를 한 통에 신도시의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도보로는 다니기 힘들 정도로 떨어져 있는 아파트들과 어딘지 모르게 강박증을 연상시킬 정도로 오와 열을 맞춰 지어진 상업 빌라들. 어디를 가나 다 비슷해 보이는 계획도시들은 길을 잃기에 딱 좋았고, 아직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아 땅이 다져지지 않은 빈 부지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초록 식물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여름이라 한껏 무성해져 키를 훌쩍 넘어버린 풀들은 매번 공공근로 노동자들이 잘라내도 1주일이면 회복됐다. 어쩌면 진정한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이 아닐까. 천지창조에서도 인간과 동물보다 먼저 창조된 것은 식물이었다. 바닥에 깔린 보도블록 틈새로 무성하게 자라난 초록들이 빠르게 창밖을 지나간다. 인간들과 달리 저들은 한 줌의 흙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멀미가 날 정도로 과속과 감속을 반복하는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초록 덩굴로 만들어진 구름 같은 잠자리에 몸을 누이는 상상을 한다. 축축하고 서늘하지만 분명 아늑하겠지. 숲의 평안을 떠올리고 싶지만, 한여름 아침 해가 낮고 눈부시게 버스 창가를 강하게 내리쬐는 탓에 눈을 감아 봐도 빛이 계속 어른거렸다. 처박듯 머리를 창가에 기대자 버스 진동이 느껴진다. 웅- 하고 머리가 울리니 오히려 복잡한 머릿속이 비워진다. 단순해져야 한다. 가게로 밀려올 카페인 좀비들 속에서 오늘도 살아남으려면.
감았던 눈을 뜨니 어느새 내릴 곳이어서 급히 벨을 눌렀다. 버스 기사는 급정거를 시도하고,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잡이를 잡는다. 뒷문이 열리자 버스도 멀미한 것처럼 나를 토해냈다. 버스밖엔 이미 나보다 먼저 나온 사람들이 줄을 지어 각자 일할 곳을 찾아가는 중이다.
기업들이 창사 이래로 한 일이라곤 어떻게 사람들을 탈탈 쥐어짤 것인가에 대한 대대적인 실험뿐 이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애써 무시하듯 좀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근로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회사에 충성하지 못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별종 취급하기. 그런 대접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여유라고는 반 푼어치도 없었고, 그들은 착취당하는 뇌를 위해 언제나 카페인이 필요하다. 카페인 좀비. 나는 그들을 몰래 그런 이름으로 불렀다. 이곳 골목엔 하나 건너로 카페들이 즐비했고, 바닥엔 언제나 다 마시고 아무 데나 버려둔 일회용 컵들이 뒹굴고 있다. 모두 좀비들이 빚어낸 풍경이다.
나는 출근 중인 좀비들의 행렬 사이에 슬쩍 숨어들어 그들과 함께 걷는다. 공연히 눈길을 끌지 않도록 나도 그들처럼 터벅터벅, 의지 없이 어딘가로 끌려가는 듯한 발걸음을 흉내 낸다. 얼마 안 가서 가게 앞에 도착하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살짝 열을 이탈해서 재빨리 가게 문을 열었다. 나의 출근은 그들이 눈치채기 전에 빠르게 이루어져야 했다. 문을 열자마자 성난 좀비들이 가게로 들어와 제멋대로 커피를 주문하기 시작하면 내 아침은 엉망이 될 테니까. 적어도 커피머신이 온도에 도달할 때까지만 이라도 아무도 들어오지 마라, 속으로 간절하게 빌며 문을 열자 밤새 갇혀있던 기계들의 열기가 얼굴에 끼친다. 나는 제일 먼저 커피머신의 전원을 올렸다. 그제야 가방을 내려두고 서둘러 앞치마를 두르는데, 키오스크의 감정 없는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주문해주세요.]
내가 인기척을 채 느낄 새도 없었다. 후, 첩보작전 하듯 가게 오픈을 한 보람도 없이 커피머신을 켜자마자 손님이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오픈시간 10분 전이다. 오늘도 일찍 왔네. 매번 개시를 맡아주는 저 손님의 별명을 나는 좀비 넘버원이라고 붙였다. 어서 머신의 온도가 올라가야 할 텐데. 초조함에 손가락으로 카운터를 톡톡 두들겼다.
[주문하실 메뉴를 선택해 주세요]
좀비 넘버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키오스크의 화면을 터치한다. 키오스크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좀비인지 인간인지 아무 관심도 없고, 그들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길 원하지 않는 듯 보여서 언젠가부터 나는 넘버원에게 인사를 생략하게 되었다.
[카드를 넣어주세요]
기계가 큰 소리로 삽입을 요구하고 손님은 지갑에서 꺼낸 옷을 벗은 알몸의 카드를 기계의 카드 투입구에 밀어 넣는다. ‘삐빅’ 하는 기계음과 함께 결제가 일어나고 내 옆의 작은 영수증 기계는 종이를 길게 토해낸다. 그야말로 자본주의적 번식행위의 풍경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1’ 좀비 넘버원의 주문이다. 이 손님이 다른 음료를 주문하는 것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이 모든 결제 과정은 3초 안에 이루어진다. 3초. 3초가 중요했다. 그 안에 결제가 안 되면 손님들은 카드를 빼버리고 결제가 안 된다며 짜증을 내니까. 0.5초만 더 카드를 그 상태로 두면 될 일을 사람들은 잠깐의 ‘똑딱’을 기다리는 법을 도무지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굴었고, 가끔은 그 똑딱 사이에 동면상태에 있던 좀비들이 피 냄새를 맡은 피라냐처럼 폭력적인 성향을 내비치곤 한다. 아마존에 생고기를 넣으면 몇 초 만에 없어지는지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고깃덩이가 바로 다름 아닌 나라면?
그래서 기업들은 키오스크를 수다쟁이 여성으로 만든다. 화면에서 나오는 각종 터치음이나 결제 소리, 상냥한 인사말과 높은 톤, 동작 음들은 키오스크를 조종하는 시간과 결제가 이루어지는 그 3초를 잘게 쪼개,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도록 한다. 한마디로 좀비의 인내심을 자극하지 않도록 만들어진 기술의 집약체인 것이다.
“머신 온도가 올라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머신의 온도가 올라가는 동안, 혹시라도 긴 침묵이 기다림에 인색할지도 모를 카페인 좀비 넘버원을 자극할까 봐 내뱉은 첫마디였다.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내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숨 막히는 몇 초가 흐르고 드디어 머신은 커피를 제대로 추출할 수 있는 93도에 도달했다. 나는 새로 들여온 커피머신의 추출 버튼을 눌렀다. 보이지 않는 기계 내부에서 ‘드르르륵’하며 원두 갈리는 소리가 났다.
에스프레소가 추출되기 시작하자 작은 가게 안은 온통 고소한 커피 향으로 가득 찬다. 고작 18g에 불과한 씨앗 볶음이 뜨거운 물을 만나는 것뿐이지만 코코아, 시나몬, 아몬드, 그을린 나무의 향 등 달콤하고 복합적인 아로마가 폭발한다. 향. 향이야말로 생존 때문에 긴장한 존재를 잠깐이나마 마비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아닐까. 나는 슬쩍 좀비 넘버원의 눈치를 본다. 이때만큼은 그도 느긋하게 자세를 잡으며 향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넘버원의 시선을 잠깐 잡아두는 데 성공한 나는 에스프레소가 다 떨어지는 20초 남짓한 시간 동안 컵에 얼음과 물을 담고 빨대와 슬리브를 준비한다.
한 달에 한 번 점검차 가게를 들르던 점장은 이 오토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이면서 바리스타 하나를 잘랐다. 자기가 자를 사람을 고른 게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해고를 당한 것은 은근히 점장과 부딪힘이 잦던 선배 바리스타였다. 점장은 전혀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이게 네 연봉보다 비싼 기계야’. 사실이었다. 다만 나는 종이에 베인 듯한 따가움을 느꼈을 뿐이다.
이윽고 에스프레소 추출이 끝나고, 오토 에스프레소 머신 안에서는 커피케이크(커피를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를 비우는 소리가 났다. 원두를 갈고, 탬핑(갈은 커피원두를 추출을 위해 다지는 것)을 하고, 갈린 원두를 기계에 넣은 뒤 커피를 추출하고, 커피케이크를 제거하는 모든 과정이 다 나의 일이었지만 이젠 기계가 그 과정의 거의 90%를 담당한다. 아마 나도 곧 잘리겠지. 그래도 기계 관리며 청소를 해야 할 사람 하나 정도는 그래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오전 근무자인 나와 오후 근무자 둘 중 누가 남게 될까? 근무시간이 단축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가진 바리스타 1급 자격증은 이제 오래된 버스 토큰 같이 실체는 있지만, 용도는 상실한 물건이 됐다.
추출된 에스프레소를 테이크아웃 컵에 떠놓은 얼음물 위로 붓자, 순식간에 컵 안의 투명한 물은 검게 변한다. 내가 하루에도 백 번을 넘게 하는 동작이지만, 바리스타로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커피 나왔습니다.“
내가 내민 커피를 들고 좀비 넘버원은 가게에 들어온 지 1분도 안 돼서 밖으로 나가 다시 좀비들의 행렬에 합류한다. ‘안녕하세요, 주문해주세요’ 어느새 들어온 두 번째 좀비 손님이 키오스크를 누른다.
‘쯧, 요즘 주문은 다 기계로 하는구만.’ 사람들은 찡그리며 기계에 투덜거리면서도 기계들이 제공하는 무한한 노동력과 침묵에 길들여진다. 기계들은 순종적이고 비 일탈적이다. 그들은 소위 ‘배은망덕한’ 인간들처럼 업주들에게 최저임금이나 주휴수당을 운운하지 않는다. 임금 인상을 위한 파업을 하지도 않고 손님의 비위에 거슬릴 ‘태도’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기계는 이미 인간을 이겼다. 인간들은 이제 기계들에 얼마만큼의 지능을 허락해 줄 것인가의 문제만 남겨놓고 있을 뿐이었다. 기계에 없는 것은 딱 한 가지, ‘자유의지’ 뿐이다. 스위치를 켤 것인가, 끌 것인가의 문제.
손발이 안 맞는 동료보다 기계가 더 편한 파트너라는 걸 나도 인정해야 했다. 이 녀석은 지각도 않고 브레이크타임도 아닌데 담배를 피우러 가겠다며 밖으로 나갔다가 3, 4분씩 늦게 돌아오지도 않겠지. 기계는 결코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으로 인간을 지배하려 들거나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인간 옆에서 숨을 쉬는 존재가 될 뿐이다. 사실은 숨을 쉬지도 않고 숨이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인간처럼 숨을 쉬는 척하며 어깨를 오르락내리락하면, 우리의 뇌는 어느샌가 그들을 살아있는 존재로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해치는 것을 우리 스스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기계가 없는 세상을 꿈꿀 수 없도록. 스위치를 끄지 못하도록. 지배를 당하는지도 모르게 이미 그들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귀하신 몸이야. 나는 행주를 들어 누군가에겐 나보다 더 가치 있을 오토 에스프레소 머신의 몸체를 깨끗이 닦아 주었다.
왠지 적막하다 했더니, 문을 열자마자 들어온 손님 때문에 음악 트는 일을 잊었다. 이 매장의 좋은 점을 꼽아보자면 당연한 것을 생색내듯 챙겨주는 주휴수당과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라 손님의 체류 시간이 짧다는 것. 매장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바리스타라면 혹할 만한 조건들이라고 생각과 참 보잘것없는 것들을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몸과 머리를 때린다.
최소한의 인테리어만 한 카페답게 스피커도 최소한으로 달아두어 음악엔 입체감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2평 남짓한 가게에 비싼 앰프를 둘 이유가 뭐 있겠는가. 그거야말로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아니겠어, 이런 가게에 월드 챔피언 바리스타가 와서 일하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지. 그러고 보면 이 가게는 모든 것이 최저로 맞춰져 있는 셈이었다. 최저가격의 커피, 최저가격의 부재료들, 최저로 달아둔 스피커와 최저임금을 받는 나.
- 報酬は入社後並行線で
(보수는 입사 후에 오를 생각이 없고)
東京は愛せど何も無い
(도쿄는 사랑해도 아무 것도 없어)
음악을 틀자 경쾌한 멜로디언 소리가 매력적인 도입부가 지나고, 독특한 비음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최근 내가 좋아하던 일본 음악가가 다시 한국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풀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엄청난 일본 우익으로 전범기를 앨범 타이틀에 거는 사람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가끔 죄책감이 느껴졌지만, TV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돈도 나보다 훨씬 잘 버는데 일본 우익이 뭐 대수야. 언제 다시 서비스가 막힐지 모르니 이참에 좋아하는 음악들은 모두 파일로 소장해야겠다. 지구 밖에선 보이지도 않을 이 작은 가게에 흐르는 그녀의 노래. 그리고 내가 있다. 만약 누군가 ‘어 이 노래 링고상이네요.’ 라고 말하며 아는 체를 한다면 나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처럼 앞치마를 집어던지고 그와 나를 막고 있는 카운터를 기어 넘어가 그에게 강렬한 키스를 퍼부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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