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킹치킨
전새벽
물류회사에서 삼십 년을 근무했다나봐. 그리고 나가라니까 나왔지. 나와서 보니까 유일하게 남은 게 퇴직금으로 받은 종잣돈이더래. 김 씨는 그걸 리얼에스테이트밴쳐캐피털프렌들리컨설팅스타트업인가 뭔가를 한다는 고향 후배에게 믿고 맡겼고.
다음 얘기는 안 들어도 대충 알겠지? 맞아. 알고 보니 그런 회사는 없었고 후배는 마닐라인가 어디로 튀었다는 그런, 아주 흔한 얘기야.
김 씨는 대기업에 다니는 동생을 찾아가 빌었어. 한번만 도와달라고. 그리고 부인이 모아두었다는 비상금에도 좀 손을 댔지. 그리고 겨우 차린 게 치킨집이었대.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치킨도 배웠댔어. 직접 튀기고 서빙하고, 아무튼 열심히 해 볼 작정이었다지.
처음엔 장사가 좀 됐대. 근데 딱 세 달 지나니까 상황이 바뀌더래. 저녁 손님이 겨우 두세 테이블 밖에 안 왔다고 하더라고. 그때야 코로나도 없을 때의 얘기인데다 옆의 해산물 포차도 잘 되고 그 옆의 대패삼겹살 집도 잘 되니까 이거 뭐, 애초에 종목을 잘못 고른 것인가 싶더래.
그렇게 몇 개월을 버텼어. 그리고 여름이 왔어. 이 나라는 여름 내내 닭 잡아먹으라고 복날도 세 개나 만들어 둔 곳 아냐. 김 씨도 내심 기대를 했대. 닭 넣어주는 거래처도, 맥주 넣어주는 거래처도 모두들 이제 대목이니 잘 준비해서 바싹 당겨보라고 뽐뿌질을 한 것도 큰 몫을 했고.
그런데 그때부터 손님이 확 줄었네 글쎄? 그나마 있던 손님들이 자취를 감추고 배달도 전혀 안 들어오기 시작한 거야. 처음에는 휴가철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더래.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가게 앞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 않는 거야.
그렇게 보름이 가도록 아무 매상도 올리지 못했어. 김 씨는 속이 완전히 뒤집어 진 채로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어. 그때 맞은편 회사 건물에서 젊은 직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며 말하더래. 치맥 어때요? 와 좋다 좋다. 그 집 가자 그 집. 김 씨는 그 말을 듣고 서둘러 담배를 껐어. 이 골목에 치킨 집은 자기 집 밖에 없으니까, ‘그 집’이 자기 집일 거 아냐.
김 씨는 뛰어서 가게로 돌아갔어. 그리고 기름 온도를 올리고 테이블을 한 번 더 닦았지. 몇 명이었지? 일곱 명? 여덟 명? 속으로 인원수를 세면서 맥줏잔도 서둘러 꺼냈고. 그리고선 접시에 무를 덜고 있는데 이게 웬 걸, 방금 그 회사원 무리가 가게 앞을 그냥 지나쳐 가더라래.
“저, 저기!”
당황한 김 씨가 가게 밖으로 나가 외쳤어. 그러자 회사원 무리가 뒤를 돌아봤어. 김 씨는 최대한 이상해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물었지.
“치킨에 맥주 한 잔 잡숫고 가세요, 날도 더운데...”
그러자 회사원 무리는 잠시 저들끼리 웅성대더니 누가 대표로 대답을 하더래.
“저희는 가는 데가 있는데.”
그리고선 뒤돌아 신난다는 듯 떠들면서 사라지는데, 김 씨는 그 뒤가 잘 기억이 안 난대. 알지? 진짜 야마가 돌면 기억이 잘 안 나는 거.
평생 회사만 다녔던 평범한 아저씨가 갑자기 어떻게 폭탄을 만들 수 있었느냐는 질문 같은 건 하지마. 니트로글리세린으로 폭탄 만드는 법 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거잖아. 게다가 자영업자라면 업종에 상관없이 누구나 니트로글리세린 정도는 갖고 있는 법이고.
김 씨는 가게에 있던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해 폭탄을 만들었어. 그리고 스키 마스크를 하나 뒤집어쓰고 근처 회사 건물로 들어갔지. 빈 건물의 한 귀퉁이를 날려 울분을 풀 셈이었나봐.
근데 김 씨가 놓친 게 하나 있었어. 하필 김 씨가 들어간 회사가 광고대행사였대. 들어는 봤지? 한번 들어가면 죽어야 나올 수 있다는 그 무시무시한 광고대행사 말이야.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사무실은 붐볐어. 김 씨도 적잖이 놀랐지. 근데 그 시간에 누가 복면을 사무실에 쓰고 들어왔으니 그걸 본 직원들도 얼마나 놀랐겠어. 당연히 김 씨를 보자마자 냅다 비명을 질렀지. 그러자 김 씨는 자기도 모르게 준비하지 않았던 대사를 외치고 말았는대. “모두 엎드려!”라고.
회사원들은 김 씨가 들고 있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꽤 위험해 보인다는 걸 느꼈고 그래서 너나할 거 없이 황급히 몸을 바닥에 뉘였는데 공교롭게 그 중에 ‘전국 문자 빨리 보내기 대회’ 우승자가 한 사람 있었대. 그 사람 손이 글쎄 얼마나 재빠른지, 엉거주춤 바닥에 엎드리는 와중에 한 손으로 이런 톡을 써서 날렸다지.
부장님, 지난 몇 달간 심신을 돌볼 겨를 없이 큰 프로젝트에 매여 계시다가 방금 전, 무려 백 일 만에 겨우 퇴근하셨음을 알면서도 이렇게 또 카톡을 보내게 되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사무실에 긴급한 일이 생겨 연락을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옵고 방금 전인 23시 54분, 회사 건물 8층에 폭탄으로 보이는 물체를 든 괴한이 침입해 직원들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괴한은 아직 요구사항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야근중인 직원들을 전원 인질로 삼을 셈인 것 같아 저를 포함한 누구도 지금 현시간부로는 외부와 교신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부장님께서는 사안의 긴박함을 이해하여 주시고, 즉시 112에 신고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P.S. 테러 신고에 대한 보상은 법제처 홈페이지 ‘테러 신고 등에 대한 포상금 지급 운영규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허, 형은 뻥 같은 거 치는 사람 아니야. 진짜 저렇게 보냈다니까? 니들이 문자 빨리 보내기 대회 우승자들을 못 봐서 그래. 나중에 폰 찾으면 한번 봐 바. 그래, 기가 막힌다니까.
아무튼 그래서 일대에 경찰이 떴어. 일대는 곧 아수라장이 됐지. 그 아수라장 속에서 김 씨는 외쳤대. 장사가 안 돼도 너무 안 돼서 미칠 것 같다고. 그러자 경찰이 그러더래. 일단 투항하라고. 모두가 안전한 상태에서 차분히 얘기하자고.
김 씨는 손에 폭탄을 든 채 오열했어. 그러다가 마구 소리를 지르며 화내다가, 다시 울다가, 그 짓을 한참이나 반복했다지 아마? 경찰은 확성기로 자꾸 소리를 지르고, 맞은편 건물 옥상에는 스나이퍼들이 쫙 깔리고… 긴장감이 장난도 아닌, 그런 상황이었대.
경찰은 자꾸 같은 말만 반복했대. 김 씨도 짜증이 나서 똑 같은 말을 반복했대. 장사가 왜 이렇게 안 되냐고, 이게 말이 되냐고.
그때였대. 인질 중 젊은 여자 하나가 “저기…”하며 손을 치켜든 게.
“뭐야!”
김 씨는 여자를 노려보며 그렇게 외쳤어. 그러자 여자는 지금부터 발표를 하려는 초등학생처럼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렇게 얘기했대.
“저, 사장님네 치킨, 맛이 없어서 안 가는 건데…”
김정훈 씨는 그 말에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었대. 그런데 다른 인질들도 하나둘 파도타기 하듯 일어나면서 이런 말들을 꺼내더라니까.
“맥주가 차갑지가 않던데요.”
“무를 더 달라고 했는데 물을 주셨어요.”
“테이블이 끈적거렸어요.”
“저는 기본과자를 못 받았어요.”
자신들이 김 씨의 가게에 가지 않는 건 이유가 있어서라는 얘기였어. 김 씨는 인질들이 말을 마칠 때마다 표정을 더욱 일그러뜨리더니, ‘사장님이 지저분하게 생겨서’라는 말을 듣고 난 뒤에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던지 휘청하며 그만, 폭탄을 놓치고 말았대. 폭탄은 쿵! 하면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지.
그 다음은 알겠지? 뭐? 다 죽었냐고? 야, 이건 내가 김 씨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라고 했어 안 했어. 직접 들었다는 건 그 양반이 죽지 않고 살아서 감옥에 왔다는 얘기 아냐.
그래 맞아. 폭탄은 터지지 않았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 왜 그랬는지는 몰라. 김 씨의 폭탄제조가 어설펐던 거겠지 뭐. 아무튼 김 씨는 체포되었고, 경찰들도 철수했어. 인질들은 어떻게 됐냐고? 아 글쎄 그 양반들은 참고인으로 조사 받을 사람 한 사람만 경찰서로 딸려 보내고, 나머지는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하더래. 말했잖아, 거기가 광고대행사였다고.
그렇게 해서 김 씨가 이곳에 오게 된 거야. 김 씨는 생활도 잘했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었지. 가끔 특식으로 치킨이 나오면 좀 곤란한 표정을 보이긴 했지만 말야.
그러다가 우리 방에 그 사람이 들어온 거야. 맞아, 한국 치킨계의 전설, 박옥규 회장 말이야. 박옥규의 옥규치킨 나도 참 많이 먹었는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그렇게 돈 많은 양반이 뭐가 아쉬워서 회삿돈을 슈킹해 가지고...
아무튼 그때 우리 방이 참 화제였어. 한 명은 거물급 경제사범, 한 명은 건물 하나와 수십 명의 목숨을 통째로 날려버리려고 했던 무시무시한 테러리스트, 한 명은 뭇 서민들을 보호하고 탐관오리와 싸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몇 번의 절도를 저질렀던 구로동 홍길동 나… 그런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으니, 사람들은 저마다 저 방에 있으면 숨소리만 한 번 잘못 내도 살이 떨리고 털이 떨리겠다며 호들갑을 떨었지.
박 회장은 감빵생활의 지루함을 견디질 못했어. 물어보니까 자기는 원래 일을 하든 골프를 치든 슈킹을 하든, 뭔가를 항상 열정적으로 해야 직성이 풀린대. 그가 그러다가 김 씨 얘길 듣게 된 거야. 그리고 박 회장은 이 지루한 감옥 생활 중에 공들여 할 만한 일을 겨우 하나 찾게 됐어. 그건 김 씨에게 치킨을 가르치는 일이었지.
박 회장은 김 씨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기 시작했어. 어떤 기름을 써야 하고, 기름은 몇 도로 끓여야 하는지, 튀김옷은 무엇무엇을 준비해 몇 그램씩 섞어 만드는지, 닭은 무슨 타이밍에 넣는지, 기름망은 무슨 각도에서 무슨 힘으로 몇 번 터는 건지… 그러면서 항상 말끝마다 이런 말을 했어.
“하이고마… 야야 김 씨야. 니가 내 사십 년 치킨 노하우 여기서 전부 슈킹해 간다이?”
그래도 박옥규는 즐거워 보였어. 뭔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거 자체가 좋았나 봐. 비록 말년에 꼬였지만 박옥규는 원래는 순수한 인간이었던 것 같아. 그 양반이 품은 치킨에 대한 열정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기를 몇 년, 마침내 김 씨의 출소일이 다가왔어. 김 씨는 박 회장에게 큰절을 하고 나갔지. 그리고 치킨집 대박 내서 지금 잘 나간대. 유튜브에도 많이 나오고. 나랑도 가끔 통화해. 한 번 오겠다는 걸 내가 자꾸 말려. 장사에 집중하시라고. 딴짓 하다 또 장사 말아먹고 어설픈 인질극 하지 말라고…
이 얘기를 왜 했냐고? 아까 형이 본의 아니게 니들 얘기를 엿들어서 그래. 여기서 나가면 맘 잡고 장사나 하자는 얘기. 좋아. 장사 좋지. 근데 장사는 노하우 없으면 안 돼. 그리고 장사는 특이한 거 말고, 남들 좋아하는 걸로 승부를 봐야 돼. 한국은 치킨 아니면 떡볶이야. 그중에서도 으뜸은 치킨이고.
그 치킨업계가 지금 큰 변화를 겪고 있어. 도시마다 갑자기 등장한 신흥강자들 때문에 그래. 그 강자들은 사장끼리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프랜차이즈도 아닌데, 한번 먹으면 정신을 잃을 만큼 맛있고, 대표메뉴의 이름이 하나같이 슈킹치킨이라지. 그게 다 누구 작품이겠어?
박옥규 회장은 슈킹했던 돈이 워낙 커서 김 씨가 나가고도 몇 년을 여기서 더 살았어. 그래서 제자도 많이 키워냈지. 지금 치킨업계에 긴장 서린 바람을 불어오는 건 모두 그 제자들이야. 근데 박옥규는 이제 없어. 출소해서 골프만 치러 다녀. 이제 그 양반한테 직접 뭔가를 배우는 건 불가능해.
그래서 일러주는 거야. 형이 박 회장의 강의를 전부 들었잖아. 형한테 배우면 나가서 치킨의 전설이 될 수 있어. 물론 맨입으로 해줄 수는 없지만. 뭐, 대단한 금액을 요구하는 건 아냐. 일단 각자 모아둔 액수부터 얘기를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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