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
김이상희
개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난간 위에 올린 손을 내린다.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아래서부터 솟친 찬바람에 살갗이 따갑다. 14층에서 내려다본 아래는 고요하다. 주차장에서 개 한 마리가 나를 올려다보는 것만 빼면. 작은 푸들이다. 흔치 않은 검정색의. 나는 다시 난간을 붙잡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조금만 더 넘어가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개와 시선이 닿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냥 떨어지면 돼. 도대체 개가 무슨 상관이냐고.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 난간에서 내려온다. 개는 한 번도 짖은 적이 없다. 주인이 누굴까. 유기견인가. 지금 이름 모를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는 개는 아닐까.
오늘도 실패하고 만다. 나의 죽음은 끊임없이 유예되었다. 내가 찾는 것은 가족들의 보살핌도, 친구의 위로도 아니다. 그것은 저 난간 너머에 있다.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가 부딪쳐 두개골이 깨지고 목이 꺾이며 온몸이 살랑거리는 벚꽃 잎마냥 흐트러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 개, 저 검은 푸들이 거슬린다. 나는 30분 정도 낮잠을 잔다. 깬다. 난간으로 다가선다. 여전히 개는 날 올려다본 채 앉아있다. 나는 창을 닫는다. 암막 커튼으로 창을 모두 가린다. 불을 끈다. 적당량의 햇빛과 뒤섞인 어둠에 나를 방치한다. 책상으로 다가간다. 또박또박, 크게 적은 글자들이 금방이라도 뱀처럼 꿈틀거리며 내 목을 죄어올 것만 같다. 미안해요, 사랑해요, 따위의 감성적인 말들은 유서에 어울리지 않는다. 시답잖은 감성으로 나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생각, 없다. 그런데…… 저 개는 대체 뭘까. 베란다 난간 위로 고개를 든다. 스핑크스처럼 앞발을 내밀고 미동도 않은 채 앉아있는 검정색 푸들. 문득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애인은 자살방지 도우미였다. 서울시가 처음 추진한 정책으로, 경쟁률도 높았는데 애인이 느닷없이 합격해버렸다. 도우미들은 각 다리에 배치되어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을 막고 정기적으로 자살방지 문구를 새로 쓰는 게 일이었다. 나는 그의 직업이 탐탁찮았다. 그러다 사람이라도 죽으면? 심약한 그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말렸지만 애인은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얼마나 뜻깊고 의미 있는 일이야. 자살도 막고 돈도 벌고.
사람 목숨 갖고 돈 버는 게 뭐 그리 의미 있느냐고 대꾸하려 했지만 말았다. 그는 당장 돈이 필요했으므로. 내가 국내 최대 규모의 한 소설 공모전에서 우승한 덕에 1억을 벌었지만, 금방 동이 났다. 차를 사고 집을 옮기니 거의 한 푼도 남지 않았다.
해가 중천이지만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썼다 다시 내린다. 문득 지금 죽고 싶다는, 죽을 수 있다는 희망에 사로잡힌다. 나는 침대를 박차고 나와 베란다로 뛰어갔다. 난간을 잡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그 순간이었다. 작고 검은 형체가 꾸물거리며 내 시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엉덩이를 깔고 앉아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소리를 지른다. 민원이 들어올 정도로 목청껏 소릴 지른다. 그리고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낸다. 왈왈! 멍멍! 꺽꺽! 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대로 굳어버린 듯하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다. 입구 문이 열린다. 인사를 건네는 경비를 지나친다. 나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개를 찾는다. 보이지 않는다. 나는 몸을 돌려 경비에게 묻는다. 여기 있던 강아지 어디 갔어요? 경비는 강아지요? 강아지 잃어버리셨어요? 하고 되묻는다. 제 건 아닌데, 하여튼 강아지요. 여기 있던 강아지.
우리 단지엔 떠돌이 개 같은 거 없어요.
경비가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고양이는 많지만.
아까부터 저기 앉아있었는데…… 진짜 못 보셨어요?
제가 거짓말을 왜 합니까.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 할 때만 나타나는 검은 강아지를 머릿속으로 불러낸다. 그러나 오지 않는다.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다 고개를 돌린다. 에쿠스 차량 아래에 뭔가가 꿈틀거린다. 차량 가까이 다가선다. 그 개다. 개는 집에서 내려다본 것보다 조금 컸다. 강아지라 해야 할지, 개라 해야 할지, 그 중간인지 나는 헤맨다. 상가 내의 편의점으로 가 간식을 사 온다. 개는 먹지 않는다. 경비는 혀를 차며 누가 강아지를 버린 것 같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염색에 성대수술에 중성화수술까지 한 모양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개는 조금씩 움직여 차량 밑에서 나온다. 간식을 먹는 대신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끌리듯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14층에서 멈춘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그때서야 그 강아지가 뒤쫓아 왔음을 깨닫는다. 아니, 깨달았다고 하기보단 이미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했다. 나는 손을 내민다. 강아지는 냄새를 맡다 뒤로 물러난다. 혀로 핥지도 않는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애인은 동물을 좋아했다. 어떤 동물이든 상관없었다. 타고나길 동물 친화적으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마포대교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러 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다고. 강아지는? 내가 물었다. 보호소 가서 안락사당하거나 새 주인 만나겠지. 그는 말해주었다. 언젠가 일어났던 일을. 저 멀리서부터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오는 여자를 봤다고 했다. 강아지는 산책이 좋아 헥헥 대며 움직이기 바빴다. 문구를 갈아 끼우던 자신도 그 광경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강아지 목줄이 여자의 손에서 흘러내린다. 여자는 난간 위로 발을 올린다. 강아지는 뜀을 멈춘 채 난간 위로 올라가는, 그리고 떨어지는 주인을 바라본다. 강아지가 짖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꼬리를 바짝 세우고 흔들거리며 주인을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비트는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죄책감과 절망에 가로막힌 숨구멍 하나 없는 빈 상자에 갇힌 느낌이라고 했다.
나쁜 사람이야.
애인은 말했더랬다.
강아지가 무슨 죄야.
나는 소파에 앉는다. 개는 내 옆자리로 뛰어 올라온다. 접힌 귀가 팔랑거린다. 누가 서툰 솜씨로 자른 모양인지 털이 삐죽삐죽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개에게 묻는다. 어디서 왔느냐고. 누가 널 버렸느냐고. 개는 말이 없다. 다시 보니 개는 다리를 절뚝인다.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다. 마치 로봇 같다. 말도 못하고, 교미도 못하고, 다리는 절고.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아버지라 불리고 어머니라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면 이 강아지는 당장 보호소로 이동되어 며칠 후 안락사당했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동성애자인 아들이 목이 쉬도록 퀴어 인권을 위해 소리치고 말을 하는 동안,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을 때 그들은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내가 데리러 오리라 믿는 ‘여자’ 며느리를 기다린다는 말을 주위에 흩뿌리면서. 비퀴어들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나는 사료와 집을 주문한다. 모레쯤 오리라고 짐작한다. 나는 개, 강아지, 둘 중 뭐라 불러도 상관없지만 섞어가며 쓸 거지만, 강아지에게 다시 손을 내민다. 개는 손등에 난 아토피 상처를 핥는다. 간지러워서 웃는다. 흰자위를 내보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갈색의 눈동자는 나를 담고 있다. 말 좀 해봐. 정적에 금이 간다. 말 못 하나? 강아지는? 나는 나오는 대로 말을 뱉는다. 내가 가르쳐줄게. 아, 그 전에. 나는 턱을 괸다. 이름을 지어야지.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강아지를 ‘로보’라고 부르기로 한다. 시튼 동물기에 나오는 유명한 늑대 맞다. 로보.
로보야.
내가 말을 가르쳐줄게.
애인은 ‘죽는 게 얼마나 힘든데. 한 번 죽어보든가.’ 하는 문구 너머로 사라졌다. 그가 쓴 문구는 아니었다. 자살방지 도우미가 자살했다는 사실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유언장엔 내게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이 전부였다. 가족과 의절한 지 사흘만이었다. 63빌딩이 보이고 한강시민공원이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뛰어내렸다. 근무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산업재해로 인정해줄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가족들은 누가 볼세라 재빨리 장례를 치르고 발인을 했다. 그들은 그를 납골당 구석 자리에 숨겨두었다. 사진도, 가족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내가 없는 그곳에서 그는 더 외로움을 탈 것이었다. 언젠가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났다. 그는 애인이 조만간 강아지 한 마리를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올 거라고 했었다고. 어떤 강아지인지는 몰랐다. 새 식구를 들여 제2의 삶을 시작하려던 ‘청춘’이 마포대교에서 투신한 ‘이유’는 사람들에 의해 수없이 정의되었다.
그들은 내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발인이 언제인지, 빈소는 어디인지. 그저 어떻게 어디서 죽었는지만 알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예약된 시간에 발송된 유언장 겸 메시지. 이 정도. 로보는 자주 허공에 대고 짖었다. 그러니까, 탁한 한숨만 내뱉었다. 나는 그런 로보를 부른다. 로보는 말을 곧잘 듣는다. 내 앞에 앉는다. 나는 말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아, 하고 크게 입을 벌려 아아, 소릴 낸다. 하지만 로보는 멀뚱멀뚱 나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똑같이 해봐. 아, 늘이고 늘여서, 아, 아. 로보가 입을 벌린다. 그러나 아주 작은 하품 같은 소리만 나온다. 아무리 가르쳐도 말을 할 순 없을 것이다. 왜냐면 로보는 동물이니까. 성대수술까지 받은 동물이니까. 잔인한 사람들.
나는 로보를 커다란 가방 안에 집어넣는다. 지하철을 탄다. 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기하듯 끊임없이 이리로 저리로 눈동자를 굴렸다. 50대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몇 살이냐고 묻는다. 나는 로보가 몇 살인지 모른다. 7살이라고 대답한다. 왠지 모르게 그쯤 된 듯싶었다. 7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 그러고 보니, 애인이 살아있다면 다음 주 월요일이 사귄 지 7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매 주년을 챙기지 않았다. 누가 어, 내일이 5주년이네, 어, 6주년이네, 저번 주 토요일이 5주년이었네, 말하고 넘어갔다. 비싼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돈이 없어서였다. 그때 애인은 주말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했다. 나는 간간이 들어오는 원고료로 생활비를 보탰다. 그저 함께 숨 쉬는 것에 우리는 만족했다. 이런저런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니까 좋지 않아? 그러나 나는 마음 한구석에 다른 커플들처럼, 비퀴어 커플들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이룰 일은 이제 없다.
나는 마포대교를 걷는다. 로보는 꼬리를 다리 사이로 내린 채, 천천히 움직였다. 강바람은 살벌하고 강물은 꼼지락거리며 다가오는 봄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나는 다리 난간에 적힌 자살방지 문구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간다. 이중에 애인이 쓴 말도 있을 것이다. 애인은 지독히도 글을 못 썼다. 글쓰기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그러면 왜 문창과 다니는 사람이랑 사귀느냐고 했더니 글을 읽는 건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물론 그가 1년 동안 읽는 책은 손에 꼽힌다.
그리고 네 소설은 재밌잖아.
로보가 걸음을 멈춘다. ‘세상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라는 문구 앞에서. 로보는 ‘짖기’ 시작한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다. 나는 들을 수 있다. 나는 로보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문구 너머를 건너다보았다. 강이 보랏빛으로 반짝거렸다. 애인은 어디쯤에서 발견되었을까. 키우려 했던 강아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어쩌면 그 강아지가 로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너무 영화 같은 일이다. 근데 그런 영화 같은 일, 안 벌어진다고 누가 장담이나 할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난간 위로 올라간다. 로보의 목줄을 놓는다. 웃는다. 웃으면서, 로보 너 참 귀엽다, 중얼거린다. 난간에서 내려온다. 로보의 얼굴을 쓰다듬고 코에 뽀뽀를 하고 꾸리꾸리한 냄새를 실컷 맡는다. 나는 로보를 안고 난간 위로 올라섰다. 화려한 야경이 수놓아진 저 먼 곳의 서울을 바라다본다.
우리, 죽는 거, 하루만 미루자.
로보가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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