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치
김은성
분쇄기 아래로 논문들이 조각나 쏟아졌다. 어둑한 사무실 조명 아래 갈려버린 논문들로 산이 만들어졌다. 호기롭게 학계에 발을 들일 때의 열정부터 성공을 위해 샛별 같은 후배의 자료를 훔쳐 쓴 추악함까지 잿빛 종잇조각에 불가해졌다. 나의 무의미한 인생을 모두 담은 논문들이지만, 오늘이 지나면 필요하지 않았다. 말을 안 듣던 고물 트럭도 경주마처럼 호쾌하게 울며 단번에 시동이 걸렸다.
어느새 도로에는 어스름하게 황혼이 깔렸다. 지평선의 아스라한 끝자락에 물색 바다가 장식처럼 붙어있었다. 그 바다는 황혼 녘엔 어둑하고 스산해 보였다. 어김없이 험준한 도로 너머에서 짠 내 섞인 해풍이 불어왔다. 오늘 같은 날도 변두리 연구소 근처 도로는 해풍 말고는 찾아오는 이가 없다. 아버지의 장례식도 오늘처럼 매운 해풍에 눈가가 아렸다. 그날도 황혼 아래에 해풍만이 외롭게 내 곁을 맴돌았다.
영정 사진 속 아버지는 수년 만에 나를 바라보며 웃고 계셨다. 낚시꾼이었던 아버지는 본래도 신비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과묵했던 그는 어린 나와 함께 바다에 나가면 검은 하늘 속 별을 가리키며 늘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아들, 바닷속에는 저 별만큼이나 물고기가 많단다. 내가 낚싯대를 놓기 전까지 그 물고기들은 전부 잡아주마.”
아들내미에게 해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 따위지만, 별이 빼곡하게 담긴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사뭇 진지함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변두리 어촌에서 이룰 리가 만무한 꿈이었고 단지 생계형 낚시꾼인 그가 생계만을 위해 일한 건 아니라는 것 정도만 증명해 줬다. 그러나 내가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될 즘, 아버지는 급물살을 타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돌연변이로 발생한 거대 품종 어류가 화제였다. 뉴스와 신문에서 밤낮으로 그런 말을 떠들어대던 때, 평범한 낚시꾼이었던 아버지는 우연인지 운명인지 초대형 농어를 낚아 올려 벼락스타가 되었다. 마을 사람을 제외하곤 인적을 찾을 수 없던 마을은 도시에서 온 기자와 연구자들로 붐볐다. 그 중심에 선 아버지는 제2의 강태공으로 불렸다. 그는 한 손에는 기이하게 큰 물고기, 반대쪽 어깨에는 나를 올리고 세상의 조명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날 밤하늘을 수놓은 플래시 세례의 반짝임과 달리 아버지는 반짝하고 사라진 화젯거리 따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날 이후 미친 듯이 낚시에 몰두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야위어갔다. 밤하늘이 쏟아질 것처럼 별이 옹골차던 밤, 아버지는 집을 나가 농어를 잡았던 바다로 향했다. 그는 흐릿한 초점으로 별을 바라보던 뒷모습을 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온몸으로 조명을 받은 그의 끝에 남은 것은 향로 위 겨우 꽂혀있는 미약한 향불뿐이었다.
그는 조명과 함께 사라지면서 나의 뭔가를 비어있게 했다. 제 아비를 닮아 독하다는 핀잔도, 잘하고 있다는 격려도 오히려 아득히 느껴지는 공허함만 상기시켰다. 해풍이 불어올 때면 아버지 대신 별이 쏟아지듯 비췄던 조명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묵직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후배에게 걸려온 영상통화 화면에는 수조 속 개복치가 거대한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었다. 연구소에 모인 기자들은 웅성거리며 개복치의 자태에 감탄만 내뱉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아버지와 달리 살겠다는 염원 하에 산 것치곤 양은 냄비처럼 바짝 뜨겁다 말고 식은 실패한 어류 박사였다. 필연적으로 이 괴상한 물고기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녀석과의 첫 만남은 8년 전 후배의 수족관에서였다. 후배는 어류 박사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무지한 놈이었지만, 풍족한 집안 환경 탓인지 성격이 유순한 좋은 사람이었다. 돈이 많아서인지, 무모한 건지 서울 놈치곤 연구나 투자에 도전적이고 대범했다. 후배가 어렵게 구해온 개복치는 인공적인 조명 아래 수조에서 희푸른 몸을 반짝거리며 가만히 부유하고 있었다. 나는 개복치의 타원형 몸통 위아래에 달린 당장 날아오를 것 같은 거대한 지느러미에 압도되어 있었다. 관심을 보이자 후배는 관리가 힘들다며 혀를 내둘렀다.
“말도 마세요. 관리비용만 해도 엄청나요. 차지하는 공간도 크고요. 워낙에 예민한 계체라서 연구하다 죽어버릴 가능성도 다분하고, 보기야 좋은데 완전 애물단지가 따로 없어요.”
후배는 한참 떠들어댔지만, 개복치가 뿜어내는 황홀하고 기이한 분위기에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나도 모르게 입이 움직였다.
“나한테 연구를 맡겨. 비용은 어떻게든지 준비할게.”
선전 포고 같은 나의 부탁에 그의 미간이 서서히 구겨졌다.
“선배, 선배 열정이야 잘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실적으로 이건...”
나도 모르게 옷 덜미를 붙잡고 어떻게든 연구를 성공시킬 테니, 투자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개복치는 3억 개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알을 낳지만, 죄다 부화에 실패하고 툭하면 돌연사해버려 서너 마리 밖에 성어가 되지 못하는 기구한 존재였다. 그런 개복치의 인공 수정은 온 세상의 조명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역정을 내는 나의 눈동자를 유심히 바라보던 후배의 의미심장한 수락과 함께 성공 사례가 없는 개복치 인공 수정 연구가 시작되었다. 날 구원해 줄 개복치와 기구한 녀석의 계체를 구원할 나의 동반 비행 말이다.
후배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개복치를 어떻게 구했는지 이야기했다. 그날은 골방에서 연구만 하던 나 역시 기억할 정도로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영상 속에는 넘쳐 오른 수면 위로 피에 젖은 개복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육중한 덩치의 녀석도 집어삼킬 듯한 파도 앞에서는 겁에 질린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파도에 시달리며 부상을 안고 인근 앞바다에 흘러온 녀석은 쉽게 의문사하는 다른 개복치들과 달리 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수조 속 부유하던 개복치는 어느새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우주처럼 깊은 개복치의 눈동자가 손을 내밀어 나를 감싸 안는 것 같았다.
처음 마주한 그 날부터 한결같던 나만의 우주는 핸드폰 화면 속에서 불안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기자들 탓인지 개복치는 목줄이 풀린 투견처럼 사방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 탓인지, 평소와 다른 소음 탓인지 녀석은 쉬지 않고 몸부림쳤다. 후배는 불안감에 죽을지도 모르니 기자들의 돌려보내 자고 했지만, 최적의 산란기를 놓치면 다음은 없었다. 후배에게 걱정 말고 진정시키라며 소리를 내질렀지만, 이마에선 진득한 땀이 흘러내렸다. 언제나 가만히 내 곁을 지키던 녀석에게 볼 수 없던 낯선 모습이었다. 폭발할 듯 요동치는 자동차 엔진 소리를 뚫고 개복치가 수조에 머리를 박아 생긴 굉음이 울려 퍼졌다.
연구소 근처 언덕길은 차체가 흔들릴 정도로 험준했다. 바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속도를 줄일 순 없었다. 언덕 너머 연구소가 보이기 시작할 즘, 개복치는 겨우 몸을 멈추나 싶더니 입을 한두 번 끔벅이다 몸을 떨기 시작했다. 천천히 떨리기 시작한 개복치의 진동은 나의 심장 박동과 함께 멈출 줄을 몰랐다. 개복치가 예정보다 이르게 산란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불안하게 요동치는 개복치의 눈동자에 온 신경을 맞출 즘, 녀석이 수조를 박았을 때보다 더 큰 굉음이 소라고동처럼 귀를 뒤덮었다.
해풍보다 더 매운 연기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자동차는 낭떠러지를 막아놓은 방지벽을 박아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요동치던 심장 박동은 서서히 느려지고 피범벅이 된 무릎이 천천히 떨리고 있었다. 바퀴 옆에 쓰러지자 차에서 흐르는 시큼한 기름 냄새로 속이 울렁거렸다. 노을 아래 푸른 성전처럼 빛나는 연구소가 바로 앞에 있었다. 바닥을 기다 무릎에 난 상처에 파편이 박혀 진득한 피가 도로를 적셨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금이 간 핸드폰 화면 속 개복치는 진동을 멈추고 가만히 멈춰있었다.
짧은 정적이 흐르고 굳어있던 개복치의 하복부에서 거대한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은 무수한 갈래의 유성처럼 수조 바닥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축복처럼 쏟아지는 3억 개의 알을 보며 기자들은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지만, 한없이 반짝이는 알들은 모두 무정란이었다. 멍하니 어둑한 바닥을 메운 알들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새까만 바다에서 별을 바라보던 아버지와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언젠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부두에 나갔었다. 성공에 미쳐버리고 실패한 아버지를 말리는 일은 내겐 미루고 미루던 숙제나 마찬가지였다. 수년째 집에 들어오지 않던 그를 찾으면 울음을 터뜨려야 할지 욕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고요하게 숨죽인 바다 위에 부표처럼 떠 있는 그의 형체만 확인할 수 있었다. 겨우 서 있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의 장례에 딱 하나 놓인 허름한 국화와 닮아있었다. 본인만큼 나약해 보이는 낚싯대를 잡고 있던 아버지는 여전히 하늘을 메운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검은 형체를 가만히 바라만 보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수개월 간 해풍이 심하게 불었고 나는 아버지를 영정 사진으로만 마주하게 되었다. 파도가 높아져 시체도 겨우 수습이 되어 죽은 날짜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요란했던 그의 첫 발걸음과 달리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의 끝처럼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공허한 바다에서 보낸 그의 여생과 나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새까만 바다 위 고요 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말리지 않은 나와 어머니를 원망했을까. 어쩌면 지금의 나처럼 자신의 무능함을 혐오하고 괴로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바보처럼 온몸에 받았던 조명을 그리워하며 하늘 속 쏟아질 듯한 별을 쫓고 있었을까.
개복치의 죽은 알들의 황홀한 빛이 과분하게 나를 비춰주고 있었다. 어느새 귓가를 때리던 심장 소리도 요란한 자동차 경보음도 자취를 감췄다. 조명처럼 개복치의 몸을 뒤덮는 기자들의 셔터 소리도, 흥분한 후배의 목소리도 서서히 들리지 않았다. 눈이 시릴 정도로 반짝이는 알들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개복치는 마지막 숨을 내쉬듯 뻐끔거리더니 물에 젖은 종이비행기처럼 천천히 추락했다. 어느새 개복치는 첫 만남의 위엄을 잃어버리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물속을 나뒹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던 지느러미는 뭉툭하게 망가졌고 나를 압도했던 풍채가 잊힐 정도로 작아 보였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알 옆에 쓰러진 녀석의 초점 없는 눈동자는 잿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깨진 핸드폰 화면에 내 얼굴이 어렴풋이 비쳐 개복치와 겹쳐 보였다. 나와 개복치는 미약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지 못하고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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