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짧은소설 공모전 당선작) 납치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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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김원태



  킁킁, 독특하면서도 무서운 냄새가 폐부를 찔렀다.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인데 기억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기분 나쁘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냄새였다. 그 덕에 억지로 눈을 뜰 수 있었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머리도 어지럽다.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다.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졸음이 온다. 내가 어느새 잠이 들었지? 이상하다... 기억이 없다. [욱씬] 귀 뒤가 아프다. 손을 대보니 붕대가 만져졌다. 고통 때문에 잠이 조금씩 달아났다.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켜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처음 보는 곳이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어둠뿐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방이라니 혼잣말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켜 천장을 바라보았다. 서 있는 상태인데도 꽤 나 높았다. 주변은 장애물 하나 없이 넓은 무(無)의 공간이었다. 여기는 대체 뭐 하는 곳인가 의문이 들었다. 평소라면 의문과 함께 호기심이 앞섰겠지만, 이 진저리나는 냄새 때문인지 아니면 아픔 때문인지 몸속의 피가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문득 내가 왜 이런 곳에 와있지 싶어 천천히 기억을 되새겼다. 
  분명 나는... 오랜만에 산뜻한 햇볕을 맞으며 집 주변 골목길을 산책하고 있었다. 바람도 적당하고 기분도 좋아져서 천천히 걷고 있던 와중 맛있는 냄새가 났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자주 지나가던 가게 앞이었다. 그리고... 가게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욱씬] 고통이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아픔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지고 정신이 없어졌다. 심호흡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 뭐 하는 곳인지 알기 위해서는 탐색이 필요하다. 일어나서 걸음을 옮기니 몸이 비틀거린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균형을 잡기가 힘들다. 그래도 발걸음을 앞으로 향해 걸으려 하는 순간, 바닥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큰 소리가 났다. ‘쿵 쿵 쿵 쿵’ 소리가 나는 것은 분명한데 정확히 어느 쪽인지 방향을 알 수가 없다. 저런 소리가 난다는 것은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나는 목소리를 내서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거기 누구 있나요? 살려주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크게 목소리를 냈으나 답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사이에도 꾸준히 쿵쿵대는 소리가 반복됐다. 몇 번을 더 소리쳐 봤지만, 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생물체가 없는 듯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 도대체 왜 나를 납치했을까? 무엇을 얻겠다고. 이럴수록 내 목표는 확고부동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탈출한다. 하고야 말겠다. 더러운 뒷골목에서도 여태 살아남았다. 이런 곳에서 도망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몸은 무거웠지만, 목표를 확고히 정했으니 쉬지 않았다. 아니 쉴 수 없었다. 소리는 꾸준히 들려오지만 정작 위치를 잡는 건 어려웠다. 귀가 아파서인지 어딘가 모르게 웅웅 울리며 뚜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내가 감금되어 있던 장소는 생각보다 넓어 보였다. 앞을 바라봐도 끝을 알 수 없었고 걷다 보니 갈림길이 계속 나왔다. 어둠은 두렵지 않았으나 묘한 냄새는 이 공간을 지배하는 듯 없어지지 않아서 신경을 거슬리고 있었다. 갇힌 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배가 고픈 것으로 봐서 시간이 꽤 지난듯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야 여기를 나갈 수 있을까. 배고픔 때문인지 자꾸 오한이 들고 몸이 굳었다. 허기에 굶주린 상태로 과연.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없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번민에 휩싸여 걸음을 반복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을 지나갔을까, 허기에 지쳐 점점 생각이 없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목이 너무 말라 갔다. 입안이 바짝 타들어 가는 고통에 밥보다도 물 생각이 더욱 간절해 가고 있었다. 속에선 대상 없는 분노가 솟아오르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있었다. 그 감정은 후회와 반복하였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누구에게 해코지 한번 한 적이 없는데, 아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한 번쯤은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살기 위해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랬을 뿐이다. 생각을 반복하며 걷던 중 눈앞에 물을 발견했다. 물을 발견한 순간 정신을 놓아버렸다. 함정이고 나발이고 정신을 차려보니 입에 물을 퍼 넣고 있었다. 그러고 다시 기억이 끊겼다.
  경련을 일으키며 정신 차렸다. 오랜만의 물이라 아무 생각도 못 하고 마셨던 게 원인일 것이다. 물 안에 약을 탄 듯하다. 순간 귀 쪽의 고통에 손으로 만져보니 반대쪽에도 붕대가 감겨있었다. 아마도 수면제 탄 물을 마시고 잠든 사이 반대쪽 귀에도 무슨 짓을 한 것 같았다. 수면제의 후유증인지 고통보다는 몽롱한 기분이 더욱 심했다. 몸을 가눌 수조차 없어서 그대로 누워 있었다가 대충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난 기필코 여기서 나갈 것이며 나를 납치하고 감금한 누군가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 힘만으로 버틴다. 버틸 수 있다. 끝이 없는 길인 듯, 한 걸음 두 걸음 걸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명백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여기가 어디야? 살려주세요!!! 꺄아아아악!!!!! 엄마! 엄마 어딨어????
여러 소리가 혼합해서 들렸으나 잠들기 전보다 더욱 울림이 심해졌다. 명확성도 떨어져 간혹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자그마한 희망이 생겼다면 나만 여기에 잡혀 온 게 아니라는 거다. 누군가를 특정하지 않고 나도 대답을 했다.
  내 목소리 들려요? 대답 좀 해주세요.
그러나 대답은 없고 같은 소리가 반복되었다. 정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걸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이 드는 방향을 잡고 걷다 보니 소리가 점점 복잡해졌다. 앞을 향해 가면 갈수록 천둥소리와 비명, 유리가 깨지는 소리, 칼 가는 소리, 스윽 스윽 천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 그 속에서도 뚜렷하게 들리는 살려달라는 목소리에 몸이 점점 굳어갔다. 내가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절망감이 몸을 휘감았다. 등줄기가 오싹해지며 몸이 움츠러들었다. 어쩌면 평생 여기를 못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차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헤매고 다녀야 할까.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누가 좀 살려주세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다시 외친다. 살려주세요.

  “냐아아앙...”

고양이 청각 실험 보고서


학과 : 생물공학과
학번 : 200612101
이름 : 남주혜
조 : 5조


1. 실험목적
본 실험은 고양이 청각실험으로 실험체의 귀를 멀게 하여 다양한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응하는 모습을 관찰한다. 고양이의 뛰어난 청각이 뇌까지 전달되는 과정을 테스트한다. 본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로봇 No R-3에게 대입하고자 한다.

중략
4. 실험방법
1. 고양이를 수면 마취 한다.
2. 두개골을 절단하여 왼쪽 귀 안쪽에 독극물 0.5mL를 주입한다.
3. 다양한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응하는 모습을 관찰한다.
4. 하루 경과 후 두 번째 수면 마취를 진행한다.
6. 오른쪽 귀 안쪽에 독극물을 처음과 같이 0.5mL 주입한다.
7. 녹음되어 있는 고양이 소리를 다 방향에서 틀어 양쪽 귀의 청력을 잃은 경우를 관찰한다.
중략
6. 고찰
  실험체 No. 5 좌, 우 청각실험을 종료하겠습니다. 첫 번째 실험인 무의미한 진동 소리에 반응하여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특정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두 번째 실험인 동족의 소리에는 좀 더 크게 반응하여 같이 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방향을 잡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체가 필요할 듯 보여 실험체 No. 6에서 동일 실험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이상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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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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