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짧은소설 공모전 당선작) 수철 씨의 명함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수철 씨의 명함 

김바다


수철 씨가 조심스레 손바닥을 폈다. 펴는 순간 알았다. 거기에 그건 없다. 언젠가부터 보이기 시작한 그 날벌레.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소리도 없지만 눈알에 붙은 듯 지독하게 따라다니는 그 벌레. 역시 이번에도 잡히지 않았다. 
욱신거리도록 세게 쳐서 시뻘게진 손바닥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벌레는 거기에서 평화로이 떠돌고 있었다. 몇 달째 반복되는 좌절감에 수철 씨는 이를 악물고 간신히 비명처럼 터져 나오려는 괴성을 억눌렀다. 가슴에 쌓인 화가 갈 곳을 찾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벌레가 생긴 걸까? 그리고 떠올랐다. 이 벌레를 처음 본 것은 옆집 여자의 화분에서였다. 수철 씨는 여전히 화끈거리는 손바닥을 있지도 않은 벌레를 죽일 듯한 기세로 단단히 말아쥐었다. 그 여자가 원인이었다. 수철 씨의 벌레 가득한 눈이 빛났다. 

*

통! 하는 작은 소리가 귀에 와 꽂혔다. 누워서 티브이를 보던 수철 씨는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숨도 멈춘 채 그 자세 그대로 앉아 가만히 현관 밖 공간에 신경을 집중했다. 지나가는 차 소리, 오토바이 소리, 인근 공사장 소리에 묻힌 사람의 소리를 걸려내려면 눈알조차 조심조심 굴려야 했다. 발걸음이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무언가를 꺼내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옆집 여자가 무언가 이상한 짓을 하진 않는 게 분명했다. 문소리라도 났다면 뛰쳐나갈 기세였던 수철 씨는 긴장을 풀고 숨을 폭 내쉬었다. 
화분에서 벌레가 나오는 것 같으니 신경 좀 써 달라고 했다. 웃는 얼굴로 죄송하다며 조심한다 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관리실에 사정도 하고 항의도 해봤지만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당해보란 듯 벌레의 수만 늘었다. 
그 생각을 하자 가슴이 빨리 뛰었다. 혹시라도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 수철 씨는 현관으로 향했다. 분명 무언가 작은 소리가 들리긴 했다. 신발 하나 먼지 하나 없는 현관 바닥에 네모나고 하얀 조각 하나가 앉아 있었다. 쫓기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습관처럼 손을 휘저어 벌레를 쫓으며 수철 씨는 그 조각을 들어 눈 가까이 댔다. 
“존엄사 지원센터.”
파리한 일곱 글자 아래에 전화번호 열한 개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명함의 전화번호를 누른 것은 그로부터 오 분 후였다. 세수하러 들어가서 마주 본 거울 속 자신의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는 그 날벌레 떼를 다시 한 번 보는 순간, 명함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별 시답잖은 사기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랬는데, 그 명함은 이상하게도 그의 주머니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수철 씨는 숨을 몰아쉬며 락스를 담은 물뿌리개를 가져와 바닥과 벽과 천장에 뿌렸다. 아무리 뿌려도 수가 줄지 않았지만, 그래도 뿌렸다.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 욕실의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명함 속 숫자를 눌렀다. 설마 전화가 될까, 무슨 대출업체나 렌털 업체 같은 데 아닐까 하는 의심은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그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벌레가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었지만 그가 필요한 도움을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단 하나의 문장만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다. 
옆집 여자를 치워주세요. 
“명함 보고 전화했는데….”
“그러시군요. 자세한 상담을 위해 한 번 뵈었으면 하는데, 언제가 괜찮으신가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는데….”
“네, 상황이 급박하신가 보네요. 그럼 오늘 바로 뵐까요? 편하신 지역과 시간을 말씀해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회사 근처 공터에서라면 그럭저럭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전하니 상대는 흔쾌히 그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얹은 뒤 분무된 락스 냄새로 꽉 찬 욕실을 정리하고 다시 가스레인지 앞에 돌아와 끓고 있는 설익은 라면을 걷어 먹었다. 먹자마자 바로 냄비와 수저 한 벌을 씻어 정리한 뒤 그가 움직인 모든 흔적을 마른 행주로 깨끗이 훔쳐냈다. 그가 정리한 싱크대 위는 어제 설치된 견본주택처럼 깔끔했다. 

겨울 초입인 직장 근처 공터에는 벤치 몇 개만이 처량하게 앉아 있었다. 수철 씨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플라스틱 용기며 박스 파지, 삼각 김밥 비닐을 노려보다 하나둘 주섬주섬 주워 챙기기 시작했다. 
“황수철 씨?”
“에….”
쪼그려 앉아 쓰레기를 모으다 말고 고개를 들어 보니 말끔한 검정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하나 보였다. 
“뵙기로 했던 사람입니다.”
수철 씨는 모아둔 쓰레기를 놓고 손을 바지춤에 닦았지만, 상대는 수철 씨와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았다. 수철 씨는 민망해진 손을 낡아서 더 얇아진 가을 점퍼 주머니에 밀어넣고 원래 자리에 앉았다. 
둘 사이로 성마른 초겨울 바람이 휘돌아 수철 씨가 애써 모아둔 쓰레기를 흩었다. 
“저….”
“네.”
“그러니까….”
“네.”
상담을 해주겠다고 시간을 내라더니 남자는 자판기처럼 “네.”라는 대답만 툭툭 던질 뿐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시간이 아까워 그냥 가고 싶다가도 눈 앞의 날벌레가 그를 내리눌렀다. 
“어떤 걸 해줄 수 있는 겁니까?”
수철 씨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지요?”
“그쪽에서 먼저 명함을 넣었잖…아요.”
부글부글 속이 끓어 버럭 소리를 냈다가 수철 씨는 제 목소리에 제가 놀라 말꼬리를 흐렸다. 
“네. 필요하신 상황인 것 같아서요.”
집에서는 늘 바깥 기척에 신경 쓰느라 조심조심 굴러가던 수철 씨의 지친 눈알이 빙글 크게 한 바퀴 구르며 요동쳤다. 이미 상황을 알고 있는 걸까? 
“옆집 여자에 대해서 안단 말입니까?”
돌연 수철 씨의 말투가 공손해졌다. 구원의 빛이 한 줄기 드리워진 것 같았다. 
“네.”
수철 씨의 말에 잠시 멈칫 했던 남자는 고개를 얕게 끄덕이며 무언가를 적었다.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를 않고 날벌레가 따라다녀요. 그 여자가 온 뒤부터 보이기 시작했는데, 잡아도 잡히지가 않아서 더 답답합니다. 한 마리만이라도 잡아서 터져 죽는 꼴을 볼 수 있다면 이렇게 분하진 않을 거예요. 조심 좀 해달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갈수록 점점 더 수가 많아지기만 하고 말이죠. 도와주세요.”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그 여자를… 아니, 그 여자가….”
수철 씨는 말꼬리와 함께 자신의 진심을 다시 꿀꺽 삼켰다. 혹시라도 입 밖에 내면 경찰서에라도 끌려가게 될 것 같았다. 사실 터트려버리고 싶은 건 벌레가 아니었다. 
“죽었으면 하시나요?”
그의 말에 수철 씨는 다시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그 맛이 너무 달고 상쾌했다. 그랬다. 정말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자신이 죽이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대신, 아니면 그 여자 스스로.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잘 알겠습니다.”
수철 씨의 표정에서 대답을 읽었는지 남자가 따뜻하게 눈까지 접어가며 안심하라는 듯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본인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남자는 까만 가죽 가방에서 서류철 하나와 볼펜을 꺼내어 들었다. 
“저요?”
“네.”
문득 막막해졌다. 뭐라도 하나 꺼내고 싶은데 마른 우물처럼 바닥도 없이 시커멓기만 할 뿐 아무것도 없었다. 숨을 쉬면 마른 곰팡내만 흘러나왔다. 눈만 끔뻑거리고 있자니 남자가 먼저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올해로….”
수철 씨는 선뜻 자신의 나이가 생각나지 않았다. 
“주민번호 앞자리가 어떻게 되시죠?”
“주민번호가… 701….”
“부양가족은요?”
“없습니다.”
“직장은요?”
“근처 물류센터를 다니고 있습니다.”
“정규직, 계약직, 파견직 중 어떤 것인가요?”
“파견직입니다.”
“급여는 어떻게 되시죠? 100만 원 미만, 100만 원 이상, 150만 원 이상, 200만 원 이상.”
“150만 원 이상입니다.”
“연락하는 친구나 친지는 있습니까?”
“없습니다.”
“병력은요?”
“몇 달 전에 일하다 허리를 다친 것 말고는 딱히 없습니다. 작년에 직장 건강 검진을 했는데, 혈압이 좀 있다고. 그런데 이게 무슨 소용입니까?”
“지원 대상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니 성실하게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아파트가 자가 소유이신데, 대출이 얼마 정도인지요?”
“한 절반 정도 됩니다.”
“그 외에 재산은 없으십니까?”
“하, 참. 아파트 한 채 마련한 거 감당하느라 뼈골이 빠질 지경인데 무슨 재산이요!”
마치 지독한 모욕이라도 당한 듯 수철 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상대는 시끄럽지도 않은지 눈살조차 찌푸리지 않고 관찰하고만 있었다. 그 눈이 어찌나 무감정하고 싸늘한지 추위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까의 상냥하던 웃음과 비교되어 수철 씨는 한층 더 몸을 움츠렸다. 
“직장 건강 검진 기록을 열람해도 좋다는 서류입니다. 사인해주십시오.”
그러거나 말거나 상대는 손이 베일 정도로 빳빳한 종이 한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 읽어보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글자가 작고 빽빽했다. 게다가 출근 시간도 임박했다. 수철 씨가 눈을 잔뜩 찌푸려가며 이름을 쓰고 있자 남자는 “지장도 찍어주시겠습니까?”하고는 말라붙은 피처럼 끈적하고 검붉은 인주를 꺼내놓았다. 
“감사합니다.”
수철 씨의 지장이 생생하게 찍힌 서류를 챙겨가며 남자가 인사했다. 
“네. 가능한 한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드렸던 명함 돌려주시겠습니까? 비품이라.”
주머니에서 처음과 똑같이 새것처럼 하얗고 베일 듯 날카로운 명함을 조심스레 꺼냈다. 생전 가져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는 빳빳하고 두꺼운 명함이었다. 돌려주기 아쉬운 마음에 가만히 들여다보던 수철 씨는 결국 소리 없는 압박에 밀려 내주었다.
“다시 연락드려야 할 일은 없겠죠?”
“네.”
명함을 넘겨받자 남자는 다시 예의 그림 같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철 씨는 뭔가 불안한 듯 눈알을 바삐 굴리며 머뭇거리다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부탁합니다.’를 반복하다 사라졌다. 
수철 씨가 사라진 후 검은 옷의 남자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들고 정체모를 사이트에 접속해 무언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요청인 란에는 아파트 관리 사무소, 지원 가능과 불가능 란에는 가능, 부양가족 란에는 없음으로, 지원 후 처리 비용 회수 가능성에는 높음으로 기록했다. 장례 란에는 무연고, 사후자산 국가 귀속 가능이라고 코멘트를 달았다. 지원 개시 시점을 묻는 란에 이르러서 남자는 잠시 멈췄다. 아무리 못 해도 3년은 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비스 개시 시기 란에 있는 “일 개월, 삼 개월 , 육 개월, 일 년, 삼 년”을 지나쳐 “그 외”의 공란에 오 년이라고, 코멘트 란에는 “유순하고 폭력성이 낮으므로 관계 기관 개입으로 민원 조절 가능. 삼 년 이상 경제 활동 가능함.”이라고 기입한 뒤 한 번 더 전체를 검토하고는 최종본을 저장했다. 그리고 물 흐르듯 다음 사례자의 서류로 넘어갔다. 세상에는 죽여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끝-

반응형

이미지 맵

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문화예술교육/십분발휘짧은소설 공모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