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강승체
어두운 밤길의 드라이브. 이것은 정말 무섭다. 잠시 잊고 있다가도,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길을 운전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금세 으스스해지고 만다. 나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런 밤길을 운전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를 켜니, 기상 캐스터가 내가 있는 지역에 곧 비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밤이지만 먹구름이 하늘을 덮자 세상은 더욱 깜깜해졌다. 마치 까마귀 백 마리를 삶아놓은 가마솥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다. 한 줄기 희망이던 헤드라이트의 불빛마저 빗줄기에 거의 묻혀버렸다. 여러모로 암울한 상태였다.
그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는 귀신 한 마리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아주 전통적인,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 귀신이었다. 소복은 빗물에 젖어 조금 야할 정도로 살결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발이 없는 것인지 손가락 세 마디 정도 허공에 뜬 채로 내 차를 향해 스르륵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종교는 없지만 귀신은 있다고 믿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그 순간 너무나 소름이 끼쳤던 나는, 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속도를 높여 그녀를 치고 말았다. 일말의 여유도 없이 쿵 하고 아주 제대로 들이받았다. 처녀 귀신은 내 범퍼에 부딪히는 순간 붕-하고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못해도 오 미터 정도는 날아가서 땅으로 처박혔다.
‘가지가지 하는구만 정말로.’
나는 귀신을 친 것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태연하게 툴툴거리며 차를 멈춰 세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내빼버리고 싶었지만, 정말 만에 하나라도 방금 사고를 낸 것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곤란해진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차에서 내려 핸드폰 플래시를 킨 채로 귀신에게 다가갔다. 안타깝지만 그녀는 틀림없이 죽어있었다. 그래도 고무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관찰한 끝에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명백한 귀신이라는 것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그녀는 정말로 발이 없었다. 허공에 뜬 채로 스르륵 다가오는 것은 역시 귀신이 아니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나는 입장이 조금 난처해졌다. 비록 귀신이지만 나는 이 처녀를 차로 치어버렸고, 그녀는 나로 인해 죽어버린 것이다.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한 나로서는, 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나는 해마다 자동차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고,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가 요청했을 때 언제든 달려올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귀신을 치었다고 하면 장난 전화로 오해할 여지가 있어 나는 우선 사고가 났다고만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 한 대가 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말끔히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 직원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우산을 펼치고 나에게로 다가왔다.
“선생님께서 전화하셨죠?”
그가 물었다.
“네. 그런데 먼저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보이려 노력하며 말했다.
“어떤 것 말씀이시죠?”
“제가 사고를 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고라니라도 치셨습니까?”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남자를 귀신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그는 이런 일은 몇 번이고 겪어봤다는 듯, 능숙하게 몸을 숙이고 피해자의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나는 셜록 홈즈를 돕는 조수 왓슨과 같은 모습으로 우산을 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뒤, 그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말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나는 다행이라는 단어만 듣고도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선생님께서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네요……. 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피해자는 누가 봐도 길을 지나던 귀신이지요?”
“네.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그러면 우선 귀신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시라고요.”
그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어깨를 한 번 도닥이며 말했다.
“기본적으로 귀신이란 놈들은 일단 한 번 죽은 사람들 아니겠어요? 즉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을 또다시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아주 그럴싸한 논리였다.
“그러니까, 이미 죽은 사람이라 제가 죽였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구석이 있다는 거군요.”
“네. 사실상 길바닥의 쓰레기 더미를 친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거죠.”
“쓰레기 더미요?”
“네.”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되는 겁니까?”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그냥 뭔가 찜찜해서요……. 차에 치이기 전까지 이 귀신은 분명 저에게로 다가오고 있었거든요. 쓰레기 더미는 그냥 길에 널브러져 있을 뿐이고, 움직이진 않잖아요.”
“그래서 제가 선택의 문제라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그는 검지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저 귀신을 어찌 됐건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이미 죽어있던 존재로 볼 것인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애초에 죽은 존재라고 여긴다면, 일은 매우 간단해집니다.”
“어떻게?”
“그야 쉽죠. 선생님께서는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시고 이곳을 뜨시면 되겠습니다.”
“그건 역시 뭔가 미안한데……. 만약 그 반대의 경우 라면요?”
“그러면 이제 따져볼 것들을 따져봐야죠.”
“예를 들면 어떤 것들 말이죠?”
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피해자가 차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럼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건 아닌가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직원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정확한 답변이 되지 않습니다.”
“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는 식의 대답은 조금 곤란하거든요.”
“그럼 맞습니다. 맞아요. 그렇지만 제가 사고를 낸 것은 너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즉, 다분히 고의성을 가지고 피해자를 차로 치었다는 뜻이지요?”
“누구라도 한밤중에 귀신을 보면 그렇게 할 겁니다.”
나는 어쩐지 죄인이 된 것 같은 분위기에 기분이 조금 언짢아졌고,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단호히 말했다.
“그런 말은 안타깝게도 법정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금의 참작 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 감옥살이를 피할 순 없겠죠.”
“아니 귀신을 쳤다고 감옥까지 간다고요?”
“아까 피해자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렇게 되면 이제 법의 모든 시선은 상대에게 고의적으로 상해를 입힌 선생님의 행위 자체로 집중되게 되는 겁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이런 무서운 밤길은 처음부터 나서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걸까.
“그런데 아까 쓰레기 더미를 말씀하셨던가요?”
먼저 입을 뗀 것은 나였다.
*
어두운 밤길의 드라이브. 몇 번을 말하지만, 이것은 정말 무섭다. 도중에 귀신을 보고 난 후라면, 더더욱 무서워진다. 어찌 됐든, 나는 방금 귀신을 죽여 버리고 말았다(다분히 고의성을 가지고). 물론 아무리 귀신이라고 해도, 그녀를 쓰레기 더미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녀도 한때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무언가 기구한 사연으로 인해 이승을 떠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어떻게 보면 나는 그녀를 성불시켜 준 셈이다. 이제 그만 하늘나라로 올라가 편히 쉬라고. 그런 식으로 생각이 들자 나는 어쩐지 조금 뿌듯해졌다. 그런데 그때 헤드라이트 불빛에 무언가가 비쳤고, 자세히 보니 아까의 처녀 귀신이 보란 듯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그녀의 소복은 여전히 젖어있었고, 아직도 발이 없었으며, 아까보다는 다소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스르륵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 결국 귀신 이야기라는 것은 늘 이런 식이다. 정말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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