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고양이
박상호
언젠가부터 고양이들이 개 사료를 뜯어놓기 시작했다. 선반 위에 올려놔도, 다른 포대를 덧씌워놔도 소용이 없었다. 그것들은 용의주도하게 접근하여 반드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갔다. 터진 사료포대를 몇 번이나 바꿔야 했다. 그 행위를 반복하면서 나는 결국 고양이들에게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통조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작전은 먹혀들었다. 배가 부른 녀석들은 더 이상 사료를 건들지 않았다. 몰래 숨어 녀석들이 통조림을 먹는 장면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총 세 마리. 두 마리는 점박이무늬였고 하나는 고등어무늬였다. 아직 성묘가 되지 않은, 깡마른 몸매의 아기 고양이들이었다.
―뭣하러 저것들 밥을 챙겨주는 거냐.
언젠가 빈 통조림통을 보며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다. 아버지는 짐승을 좋아하지 않는다. 뒷마당에 개를 기르는 것도 며칠이나 설득을 해야 했다. 그런 아버지의 눈에 내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안 그러면 저것들이 개 사료를 뜯어놓는단 말이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는 요즘 고양이들 보는 재미에 살고 있었다. 먹이를 준지 두 달쯤 흘렀을 때, 점박이 고양이 하나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미 녀석들 사이에서 나는 해코지를 하지 않는 생명체 정도로 인식되어 있어서, 만지지는 못해도 얼마쯤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직접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내 발목에 얼굴을 비벼대는 녀석을 어떻게 상대해줘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 개처럼 생각하고 손가락으로 목덜미를 긁어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가르릉, 가르릉, 목을 울렸다.
어느 틈엔가 경계가 완전히 사라졌다. 슬그머니 다가가 등을 긁어주어도 녀석들은 더 이상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어서 빨리 만져달라는 듯 앞길을 가로막고 벌러덩 누워버리는 녀석도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사람의 손을 타서 내가 손짓을 하면 무릎에 다소곳이 올라와 낮잠을 자기도 했다.
녀석들에게 처음 선물을 받은 것은 마늘수확이 한창이던 5월 말이었다.
아침에 밥을 주러 나가보니 마당에 죽은 쥐가 한 마리 놓여 있었다. 고양이들이 파먹다 남긴 것이 아니라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이었다.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마당구석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녀석은 장독대 사이에 몸을 숨긴 채 가만히 내 반응을 관찰하고 있었다.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마치 처음 개발한 음식을 내놓는 요리사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비로소 상황이 이해되었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고양이가 이따금씩 쥐나 새를 물어오는 것은 인간에게 사냥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의사표현이라는 것이다. 선물을 받았을 때는 녀석들이 우쭐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행동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는 녀석에게 잘 보이도록 몸의 방향을 틀고, 맛있어 죽겠다는 듯이 냠냠 쩝쩝 쥐를 먹는 척해주었다.
내 연기가 퍽 마음에 든 모양인지 다음 날엔 두더지가 놓여있었다. 녀석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장독대에 몸을 숨기고 내 반응을 살폈다. 도대체 두더지는 어디서 잡아온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먹는 시늉을 해주었다. 그것이 실수였다. 다음 날,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날, 마당에는 사체가 놓여있었다. 사체는 쥐일 때도 있고 참새일 때도 있었다. 난감했다. 마음은 기특했지만 계속 먹는 척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체처리를 하기도 번거로웠다.
나는 고양이 선물을 무시해보기로 했다. 붉은빛의 유혈목이 사체를 선물 받은 날의 일이었다. 내가 별 관심을 주지 않고 지나가자 녀석은 당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고개만 빠끔히 내밀어 나와 뱀의 사체를 번갈아보더니 느릿한 움직임으로 장독대 사이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지고 온 뱀의 사체를 물고 마당 뒤편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어지간히 낙담한 기색이었다. 그 다음부터 고양이는 더 이상 사체를 물고오지 않았다.
이른 장마가 시작되었다.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몇몇 지역에서 침수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고양이들을 보일러실로 대피시켰다. 평소에는 문을 잠가두지만 고양이가 오고가고 할 수 있도록 문을 살짝 열어두었다. 안 쓰는 여름 이불을 깔아두었더니 녀석들은 그 위에서 다닥다닥 몸을 붙이고 잠을 잤다.
장마가 끝나자 곧바로 후덥지근해졌다. 눅눅한 공기가 팔에 들러붙고, 마당에서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아침에 밖에 나가보니 현관 앞에 무언가 놓여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아주 작은 물체였다. 처음에는 돼지껍데기인 줄 알았다. 푸르스름하게 변색이 되긴 했지만 저런 비슷한 색상의 물체를 나는 돼지껍데기 밖에 본 적이 없었다. 간혹 국밥을 먹을 때 보이는 털 달린 살코기 부분이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또 시작이구나, 하는 마음에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아버지가 보기 전에 얼른 치워야 했다. 그것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돼지가 검은 털이 있나……?”
그러고 보니 생긴 모양이 꼭 사람의 속눈썹과 닮았다. 정확히 말하면 속눈썹이 붙은 눈꺼풀의 살덩이 부분. 여자의 속눈썹처럼 검은 털은 살짝 굴곡진 형태로 길쭉하게 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쓰레기봉투에 던진 다음, 개밥을 주러 뒷마당으로 향했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는 그것이 돼지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양이는 또 무언갈 물어왔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대충 봤다면 삶은 고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사람의 것이라고 확신했다. 고깃덩이에 손톱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집게손가락 부분인 것 같았다. 오랫동안 물에 담가놓은 것처럼 살이 팅팅 불어있고 여기저기 살점이 뜯겨져 나가 있었다. 사선으로 부러진 손톱에는 붉은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는데, 오래되어서인지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다.
당혹스럽긴 했지만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았다. 실제 사람의 손가락이라기 보단 어딘가 모형물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장독대 사이에 얼굴을 내놓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어서 빨리 먹어달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사람의 손가락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사 그것이 연기라고 할지라도.
녀석들은 매일매일 사람의 살덩이를 현관 앞에 물어다 놓았다. 하루는 귓불이었고 하루는 젖꼭지가 붙어 있는 가슴부위였다.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남아 있는 두피부위를 물어다 놓은 적도 있었다. 그쯤 되자 가슴 속에 스멀스멀 공포심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모형쯤으로 생각되었지만 점차 그 형태가 사람의 것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이 우리 집과 가까운 산에 묻혀 있던 사체일 거라고 추측했다. 폭우로 인해 지반이 약해지면서 땅 속에 있던 사체가 떠올랐을 것이다. 고양이들은 그것을 물고 오는 것이다. 요즘 들어 녀석들의 활동반경이 넓어졌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혀로 추측되는 갈색덩어리가 현관 앞에 놓여 있던 날, 나는 아버지에게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사람?”
“네. 분명 사람의 것이었어요. 손톱도 있고, 머리카락도 봤어요. 속눈썹이 달린 부위도 있었고요.”
“짐승의 것이겠지.”
아버지는 작업복 셔츠에 팔을 집어넣으며 대수롭잖은 듯 말했다.
“소눈깔을 보면 꼭 사람 눈깔처럼 생기지 않았냐. 어디 정육점에서 물어온 거겠지.”
“아니에요. 분명 사람이었다니까요. 저기, 사실은 조금 꺼림칙해서 전부 모아뒀거든요.”
“무엇을? 고깃덩어리들을?”
아버지는 그것을 고깃덩어리라고 불렀다.
“……예. 혹시 뭔가 단서라도 될까 싶어서.”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개 갖다 먹여라.”
“아버지, 살인사건이라니까요. 산에 묻어뒀던 게 드러난 거라고요.”
“글쎄, 일없다니까 그러네. 그런 것 발견했다고 신고하면? 어디 돈이라도 준다냐? 안 그래도 바쁜데 그딴 일로 정신 사납게 만들지 마라. 그리고―.”
아버지는 신발 끈을 묶던 손을 딱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당에 있는 고양이들, 내일까지 안 쫓아내면 삽으로 싹 다 찍어버릴 테니 알아서 해라.”
아버지의 눈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 눈빛을 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나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고양이를 빗자루로 위협해 쫓아버렸다. 갑자기 바뀐 내 태도에 녀석들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빗자루를 휘둘렀다. 아버지의 눈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분명 녀석들을 죽일 것이다.
몇 번이나 위협을 반복하는 사이에 녀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당에 고깃덩이를 물어오는 일도 없어졌다. 보이다가 보이지 않게 되니 마음이 쓸쓸했다.
어느 날 개똥을 치우려 뒷마당에 갔더니 마당 한구석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곳은 어머니가 작은 텃밭을 가꾸던 땅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땅은 그저 안 쓰는 땅이 되어버렸다.
검고 칙칙한 흙이 평평하게 땅을 덮고 있었다. 그것이 이상했다. 마치 땅을 판 뒤에 새로 흙을 덮은 듯한, 몹시도 인위적인 모습이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흙을 펐다. 차갑고 축축한 감촉이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검은 흙더미 사이로 기다란 무언가가 보였다. 여덟 가닥에서 아홉 가닥정도 되는 여자의 머리카락이었다. 왜 이런 것이 흙속에 묻혀있는 걸까.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뒷마당과 이어져 있는 거실창문이 탁,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어떤 무서운 상상이 머릿속을 스멀스멀 잠식해왔다. 멀리서 고양이의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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