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싫다는 새파란 거짓말-4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 기내식을 먹다가

서울-아부다비 10시간 비행에 두 번의 식사. 너무 맛없었다. 버터, 커피로 입가심했달까.

아부다비-이스탄불 비행은 5시간이었는데 메뉴가 3종류나 됐고(치킨, 오믈렛, 파스타) 난 치킨 골랐는데 플라스틱케이스가 뜨끈뜨끈. 음식도 (조금 짰지만) 맛있었다. 레드와인 부탁했는데 좀전에(어제?) 먹은 화이트와인에 비하면 오! 서울-아부다비행 구간 와인은 별로였거든. 복도를 가운데 두고 한 줄에 6명씩 앉는 비행기였는데 만석 아니었고, 내 경우 가운데 자리 비어서 잘 때 편하게 양반다리 할 수 있었다. 내 옆 사람은 세 자리 차지하고 누워 자더라. 내가 선수칠걸ㅜㅜ 개부러웠음.



*** 숙소에서

여행사에 상품 가격을 책정한 뒤 항공료는 얼마, 가이드비는 얼마, 여행사 수익은 얼마, 투명하게 공개하는 건 말도 안 되겠지?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걸 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내가 바가지를 쓴 건 아닌지, 허튼 데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예민하게 굴거든.

예전에 문학 관련 프로젝트를 하는데 문화재단에서 나오는 진행비 외에 참여자들에게 5만원인가 얼마를 걷기로 했다. 참여자들은 모두 내게 사진책만들기 수업을 들었던 분들이었고 아는 얼굴. 그때 한 분이 “우리에게 받은 5만원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알고 싶다”고 했고 나는 조금 놀랐다. 당시 그분은 퇴직 교사였고 연금을 받았고 나는 적어도 그분이 돈에 쪼들리진 않는다는 걸 알았다. 당연한 궁금증일 수 있는데 그런건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어떤 일을 가치있게 여겨서 돈을 쓰고, 어떤 대가를 받는지를 꼼꼼히 따지는 건 부의 유무와 상관없지 않을까. 굳이 이해해보자면 앎의 자세일까.

이번 여행 상품이 합당한 가격인지 아닌지(?)를 떠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었는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ㅠㅠ 여행사 통해서 간다는 ‘비싼 배낭여행’이 바로 이거였구나. 나 진짜 아무 생각없이 여행온 듯. ‘다 떠먹여주는 패키지’ 싫어했으니 이게 맞을 수도.

예전에 배낭여행 한두 번 한 것도 아닌데 인도 아닌 다른 나라는 처음이라 어색하다. 룸메이트는 이틀 전에 이집트 여행 마치고 터키+그리스20일에 합류했는데 “패키지 싫어서 배낭여행 상품으로만 다녀요” 하더라. 지난겨울엔 오지투어 프로그램으로 남미 갔다 왔다고.


*** 책을 읽다가

이북으로 김혜리 기자가 쓴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를 읽다가 ‘한공주’를 다룬 챕터에서 크게 숨을 골랐다. 거기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숨, 발소리, 바람소리, 심지어 철 긁는 소음까지도 “괜찮다, 괜찮다” 하는 위안으로 들려와 외로움도 슬픔도 두려움도 잠시 잊을 수 있다고. 노래가 종교 같은 거냐고 친구가 되묻자 공주는 정확하고자 애쓰며 대답한다. “힘은 되는데 현실에 나타나진 않아.”

공주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은 눈 앞의 모든 것이 순간 음표로 변한다고 말한다. 힘은 되는데 현실에 나타나지 않는 노래 대신 현실에서 쓸모있는 수영을 배우기로 했다고 김혜리 기자는 서술하고 있다. 개봉 당시 ‘한공주’를 봤지만 충격적인 강간 장면만 어렴풋할 뿐 한공주라는 인물의 성격에 대해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공주에게 노래가 있었다면 내겐 소설이 있는 걸까? 붙잡을 힘을 주는 것? 그러나 현실에서는 좀처럼 힘이 되지 못하는 것? 습작도 길었고 이제 등단 6년차이고 첫 책도 냈는데 왜 난 아직도 습작생처럼 굴까. 왜 여전히 소설이 의미를, 그게 내게 뭔지를 고민할까.


*** 이스탄불 공항에서

착륙 후 문 밖을 나서는데 ‘very windy’ 승무원이 반복한다. 바람이 휙. 머리카락이 단번에 오른쪽으로 쏠리면서 머리통도 움찔. 휘청.

이스탄불의 첫인상. ‘땅과 하늘, 비행기뿐이로구나.’ 휑했다.

에어버스를 타고 공항까지 가는 거리도 길었다. 공항도 널찍하고 한적. 아부다비가 아기자기하고 북적거렸던 거였어.

카트 쓰려고 했더니 1유로 넣으라네? 우리나라 마트처럼 반납할 때 다시 돌려주나? 아니겠지? 영화 터미널에서 톰행크스가 그 돈 모아 햄버거 사먹었던 거 생각났다.



*** 시내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50분쯤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가 2차선 일방통행로 들어서자 길이 꽉 막혔는데 1차선과 2차선을 가르는 라인에 서서 손에 뭔가 들고 선 상인들이 보인다. 처음엔 생수 파는 사람과 셀카봉 선정하는 사람. 좀 더 가니 초콜바 손에 든 남자. 여기까진 그럭저럭 납득했는데 목욕탕에서 필요할 법한 파란색수건을 펼쳐들고 유혹하는 상인도 있네. 이 맥락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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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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