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싫다는 새파란 거짓말-3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 인천공항에서

동생이 법인카드를 줬었다. 마티나 라운지 1회 무료 이용 가능. 지난해말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때 00:50 비행기라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00:15 비행기ㅜㅜ 그때 검색했을 때 10시까지 운영한다고 나왔고 이번엔 가능성이(?) 있어서 수속 하자마자 부랴부랴 찾아갔는데 9시까지 한다? 올해부터 바뀌었나... 라운지 갈 생각에 엄마가 부쳐준 버섯전도 제대로 안 먹고 나왔는데 오호 통재라ㅜㅜ 게이트 앞에 앉아서 괜히(?) 비상식품으로 챙겨왔던 초콜릿 먹고 사탕 먹고 ㅋㅋ


*** 인천공항에서

왓챠플레이에 다운 받아온 ‘프란시스 하’를 봤다. 명성(?)은 들었었는데 보진 못했지. 지난달에 ‘결혼이야기’보고 영화는 연출이구나! 세상에 이런 영화가 다 있다니! 하고 감탄했는데 ‘프란시스 하’ 때의 입소문이 노아 바움백이라는 감독에서 비롯됐다는 걸 절절히 실감했다.

‘그게 뭐...? 우주에서 UFO가 날아온 것도 아니고 그리스로마시대가 부활한 것도 아니잖아? 부부가 이혼하는 이야기라니 빤하지. 스물일곱의 여자가 자신을 알아가는 이야기는 흔하지.’

야, 안 봤으면 말을 말자. ‘이런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능력, 그런 사람이 바로 예술가지.


*** 비행기에서

이륙할 때, 내가 딛고 서 있던 땅과 거리가 생길 때, 내가 높아질 때, 내 나라를 잠시 잊을 때, 나는 왜 돈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 돈을 쓸 때마다 전전긍긍.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행복해지고 싶은가. 불행이 싫은가. 행복이나 불행이 아니라면 무엇을 좇으면서, 누구와 더불어 살 것인가.


*** 비행기에서

Wi-Fly. 기내에서 이메일도 체크할 수 있고 전화도 받을 수 있고 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 “구름 위에서 보내는 강의계획서가 잘 도착하길 바랍니다.”(?) 바빠서 더욱 신나는 세상. 예전에 ‘비행기만 타면 유독 글이 잘 써지는 작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일부러 뉴욕-도쿄행 왕복 항공권을 끊어서 공항이랑 비행기에서 몰아쳐 글을 완성하곤 한다는 거다. 오고가는 비행 시간이 확실하니 마감에 대한 압박도 있을 테고 항공권 구입 비용은 뽑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을 텐데 그런 밀어붙임이 자기 스타일이라는 거지. 작가든 사업가든,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능력만 된다면 어디서든 못할 게 없는 세상이다.

나는 타자마자 영화 ‘말모이’ 보고(한국영화 3편 있었는데-기생충, 엑시트, 말모이-그것만 안 본 거라), 기내식 먹고, 자고, 기내식 먹고, 한 시간쯤 책 읽었다. <긴 이별에 관한 짧은 편지>


*** 비행기에서

기내식은 한국 시간으로 새벽 2시쯤 나왔는데 연어볶음밥과 파스타. (난 볶음밥 택) 전자로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내 앞에서 파스타 똑 떨어졌다고. 그거 고른 사람이 많았나 봄. 근데 연어볶음밥 맛없었다. 연어 넣긴 넣었니? 모닝빵. 버터. 치즈. 참크래커 같이 나왔다. 6시간 정도 공백 후 다시 카트가 다가오더니 “아침 식사 하시겠습니까?” 메뉴는 생선 밥 하나. 먹어야죠. 환승 대기 시간도 기니까요. 크로와상. 딸기잼. 딸기요플레 같이 나왔고 이번에도 음료는 커피.


*** 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현재 이 비행기에 탄 사람이 몇 명인지” 묻는 사람도 있네.
“이코노미는 400석 정도고요, 비즈니스가 70석, 퍼스트가 2석... 기장 승무원 포함해서 500명 미만으로 탄 것 같네요.”


*** 아부다비공항에서

떠나기 전 아는 언니가 보낸 메시지. “재미있는 거 많이 보고 많이 즐기고 와~ 근데 넌 어째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일을 하러 가는 거 같은 기분이 들지? ㅋㅋ 여튼... 즐여행~~”

일하러 가는 느낌, 뭘까?
듣고 보니... 나 숙제하는 기분으로 여행하고 있는 건가? 인생의 숙제.

그러고 보니... 블로그에는 “다시 여행길에 오르시는군요:) 잘 다녀오세요, 홀가분하게~” 이런 답글이 달렸었다. “또 여행 가세요?”가 아닌 “다시 여행길에 오르시는군요”라는 멘트가 낫 놓고 기역(ㄱ)으로만 읽던 사람이 니은(ㄴ)을 깨친 것처럼 신선했다.

그래, 난 또 가는 게 아니라 다시 가는 거야. 알면서 또 가는 게 아니라 몰라서 다시 가는 거라고.


*** 환승지에서

이륙 4시간 전에 인천공항 도착했고, 10시간 비행기 탔고, 아부다비에서 3시간 반 기다렸다가 다시 4시간 타야 이스탄불 도착한다.

20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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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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