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에서
검은색 히잡을 쓴 여자가 카메라를 들고 다가오고, 옆에 양복 입은 남자가 서 있다.
-사진 찍어줄 수 있나요?
-그럼요.
(카메라를 받아서 그들을 마주보고 서려는데 여자는 멀어지고 남자가 나와 룸메 사이로 끼여드는 게 아닌가. 남자는 우리(외국사람)와 사진 찍고 싶었던 것. 여자가 셔터를 누른 뒤 내가 여자를 향해 “너도 같이 찍어” 하는 몸짓을 보였는데 “나는 됐어” 하고 그들은 떠났다...)
*** 숙소에서
“버릴 옷만 가져왔어요. 배낭도 두 개 가져와서 하나 버렸고... 신발도 버릴 거 가져왔는데 벌써 물이 새서 새로 사야 사나 고민이네요. 여행 마치면 싹 다 버리고 가볍게 들어갈 거예요!”(룸메)
*** 숙소에서
둘째 날 저녁, 일행이 준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한다. 종일 돌아다니며 군것질(?)을 많이 한 탓인지 레스토랑 가서 식사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어제는 한국라면 먹었으니 오늘은 터키 컵라면 맛보려고 했는데 일행 중 한 분이 짐 줄인다고 라면 주신다기에 감사히 받았다.
마침 내게 쿠커가 있었고 룸메도 한국라면 오케이, 길잡이까지 우리 방에 모였다. 처음에 2개 넣어 끓이다가 하나 더 끓이고 누룽지까지 넣어서 먹었네. 엄마가 볶아준 김치 하나 풀었더니 한국 떠난 지 세 달 가까이된 길잡이와 집 떠난 지 보름이 넘은 룸메(이집트 15일 여행 후 우리보다 이틀 먼저 이스탄불에 도착)는 남김 없이 싹 비웠다.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던 룸메가 “오늘 김치는 그냥 김치가 아니었어요. 저에겐 최고의 가치를 가진 음식이었습니다” 라고 하더라.^^
김치가 안 땡겨서가 아니라 그들 먹으라고 나는 손도 안 댔고 대신(?) 소주 한 팩 비웠다. 각자 좋아하는 걸 공략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김치 5봉지 더 있어요. 찬찬히 같이 먹읍시다.
-열흘쯤 지나면 김치 엄청 땡기실 텐데.(‘우리에게
풀어도 괜찮으시겠어요?’)
-여행 10일 차면 열흘 후 집에 갈 수 있다는 얘기니까 참았다가 집에 가서 먹으면 되죠(우리 20일 일정으로 여행 중^^)
-오!!!
*** 버스에서
오전 7시 10분. 사고를 목격했다. 내가 탄 공항버스도, 도로를 가로지르던 여자도 가고자 하는 길에서 멈추지 않았다. 버스는 정해진 길을 가고 있었고(일반도로가 아닌 트램이 다니는 2차선이었기 때문에 매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는 길을 건너는 중이었는데 버스와 부딪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발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에는... 헉. 나는 그걸 맨 앞자리에서 다 봤다.
버스는 급하게 멈췄고, 충격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룸메는 통로로 팍, 하고 쓰러졌다. 그녀는 나처럼 앞을 주시하고 있지 않았고 내가 건낸 핸드폰을 보고 있었기에. 그때는 다친 여자 신경쓰느라 룸메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버스를 갈아타고 공항 가는 길에 물어보니 멍들었을 게 틀림없다고, 의자 턱에 다리를 부딪쳤다고 한다.
왜, 여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을까. 버스가 설 거라고 생각했을까. 취해 있었던 걸까.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을까. 해 뜨기 전이었고, 주변이 어수선하지도 않았다. 수시로 트램이 지나가는 곳이었고 사람들은 차가 오지 않으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아무때나 건너가는 것 같았다. 특히 아침과 밤에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그 길이, 순식간에 사람이 다칠 수도 있는 길로 변했다. 일어서서 여자를 봤다. 뭐랄까, 진짜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친 사람이 누워있을 때의 그 자세로(팔이 위아래로 접혀 있고 무릎이 꺾인 채로) 눈을 감고 있더라.
그러니까 왜, 발을 멈추지 않았을까. 왜 앞으로 계속 나아갔을까. 너무 가까웠는데. ‘멈춰! 서야 해. 그대로 오다가는 이 버스와 부딪칠지도 몰라’ 아슬아슬했는데, 정말이지 그 순간 팍.ㅜㅜ
왜, 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는다.
왜 그랬을까.
*** 카파도키아에서
단편소설이 수도라면 장편은 다른 도시라는 생각을, 카이세이 공항에서 숙소 가는 버스 안에서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눈발이 흩날렸고 주변은 온통 하얬다. 눈과 하늘과 비행기뿐.
수도는(그러니까 이스탄불은) 온갖 종류의 탈것, 상점, 기념물, 사람 들이 빽빽하게 모여있다. 그냥 모여있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것을 보여주고 과장하면서
자신만만하게 서 있다. 밀집! 거리의 여운보다 압축!
카파도키아 거리는 달랐다. 이런 곳도 있구나... 시간을 보내고, 공간을 이동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 테면 괴레메 야외 박물관이라든지 스머프 마을이라든지... 거길 가려면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 펼쳐 놓은 장편 같다는 생각. 문장마다 단어마다 임팩트를 주는 게 아니라 핵심 사건을 붙잡고 여유있게 풀어내는 쪽에 가깝달까.
단편과 장편, 한 작가의 다른 스타일을 보는 것처럼 어제오늘의 터키(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는 흥미로웠다.
*** 버스에서
카이세리 공항에서 숙소 가는 셔틀 봉고버스 안. 창밖으로 온통 구릉처럼 낮은 산뿐이다. 온통 눈. 온통 흰색. 사이사이로 보이는 진흙색 풀과 흙은 생명의 증명.
낯선 것을 본다. 발견한다. 억지로 찾아내는 게 아니라 보이는 대로 감탄한다. 낯선 걸 본다는 건 즐거운 일일까. 그래서 호기심 많은 이들은 새롭고 낯선 것에 끌려 여행을 하는 걸까.
버스는 따뜻하고 사람들은 졸고 있다.
20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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