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짧은소설 프로젝트 당선작](7) 소년의 밤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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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밤

소수아

               
  달과 맞닿은 동네는 이미 얼어붙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점거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소년이 평소와 같이 뒷문으로 빙 돌아가는 하굣길.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시위대를 흘겨보며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판자충끼리 놀고 있네. 소년은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팻말을 들고 서 있는 무리 속, 자신의 부모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온 소년의 부모는 뒤늦게 집안을 정돈하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온 소년을 보며 그들은 학교는 잘 다녀왔는지, 집에 별 일은 없었는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별 일 없지, 뭐. 소년은 짧게 대답을 할 뿐 별다른 말을 붙이지 않았다. 부모는 소년을 둔 채로 저들끼리 앉아 대화를 이었다. 엊그제 불이 나서 비닐하우스를 통째로 날렸대. 겨울이라 그런가, 우리도 조심해야겠어……. 소년은 포개진 채 군데군데가 누렇게 변색된 팻말을 발끝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이부자리를 펴고 있는 부모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사 가면 안 돼? 
  미간을 찌푸리며 되묻는 부모 앞에서, 소년의 심장 박동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판자촌에 사는 학생들의 길은 학교 뒷문에 있는 돌림길밖에 없었다. 재개발 소식이 나온 뒤부터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로 돌아가는 것은 일상이었다. 행여 빠른 길로 가야할 땐 판자촌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누군가가 볼까 고개를 땅에 박은 채 뛰었다. 고급 아파트나 주택 단지가 대부분인 학군에서 이곳은 유일하게 비틀린 치부였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그것을 철회하라는 시위는 격해지기 시작했다. 구청에서 소유권을 인정해주지 않자 제 집을 지키기 위해 나선 사람들은, 어느새 남의 땅을 무단 점거한 몰염치한 벌레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판자촌을 포기하자는 의견을 말한 무리도 있었지만, 소년의 부모를 포함한 대다수의 주민들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결국 몇 달째 계속되는 시위에 주변 동네에서 많은 신고가 접수됐고, 지역 내에서 판자촌은 ‘찍혀’ 완벽히 골칫덩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소년은 자신의 마을이 질 낮은 농담으로 취급받는 것도,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자신을 알아보는 학생이 있을까 조마조마한 것에도 진력이 나있었다. 어디든 좋으니 이곳만 벗어나면 좋겠다, 생각했다. 소년의 말을 끝으로 부모는 그를 앉혔다. 앞에 있는 넓적한 대리석 식탁은 제대로 된 부엌조차 없는 소년의 집에 어울리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주워온 것이 확실했다. 언젠가 조별과제 때문에 같은 반 아이의 집에 갔을 때 봤던 것과 비슷했다. 고층 아파트 분리수거장에는 멀쩡한 것들이 자주 버려졌고, 소년의 부모는 그곳에서 다리 멀쩡한 가구들을 주워오곤 했으니까. 소년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부모는 수치심에 몇 분 안 되는 거리를 돌아서 오는 소년을 타일렀다. 이사는 무슨 이사를 가. 소년은 고개를 숙인 채 그들의 발끝을 흘겨보았다. 이깟 허름한 집이 뭐라고 이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판자촌의 내리막길을 오가면서 짊어진 모욕은 오롯이 나만의 고생이었을까. 부모는 그에게 들어가 자라는 말을 남기곤 거실의 불을 껐다. 방 안으로 들어온 소년은 한참 동안 말없이 책상에 걸터앉아있었다. 단 한 줄기의 빛도 방문 사이로 들어오지 않았다. 
  알람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열린 현관문. 잠금 장치가 철컹이는 소리에 소년은 눈을 찌푸리며 이불을 걷어냈다.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 거실을 확인하는 순간, 문틈 사이로 들이닥친 찬바람이 소년의 두 눈과 맛문했다. 불? 웬일이야, 다른 건 괜찮데? 문 너머에 울린 사람들의 목소리는 듣기 흉하게 갈라져 있었다. 두꺼비집이라도 내려 간 건가. 소년은 점멸된 등에 시선을 맞추다 교복을 챙겼다. 조끼 위에 낡은 점퍼 하나를 걸친 후,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현관문 앞에 선 소년의 부모는 무어라 중얼대며 문 밖에 사람과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그쪽 식구들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야, 좁은 집에서 꾹 참고 이 동네에서 몇 년을 버텼는데…… 소년은 책가방을 걸치고 현관문에 서 있는 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가슴 아래로 탄 냄새가 훅 끼쳐왔다. 부모가 저를 향해 무어라 외치는 것을 뒤로하고, 소년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소방차 서너 대가 골목 틈에서 몸을 부빈 채 정차되어 있었다. 
  누가 불을 낸 것 같아. 
  세상에, 누가? 집주인은 봤대? 
  웅성거리는 무리가 여럿 뭉쳐있는 모양새였다. 불이 나 뼈대조차 없어진 판자지붕. 검은 재가 소년의 그림자 앞에 뿌려졌다. 타다 남은 조각들이, 찬 공기와 계속 부딪히고 있었다.

                                           *

  시위대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지나가는 사람들의 비난 역시 거칠어졌으며, 개발 철회에 대해서 묵묵부답인 구청 덕에 판자촌 안에선 시위를 두고 의견이 급격하게 갈리기 시작했다. 시위대에 계속 반대해 왔던 일부 사람들은 이제 푼돈이라도 받고 나가는 것이 옳지 않겠냐며 팻말을 내려놓으라 말했지만, 소년의 부모를 비롯한 몇몇의 판자촌 주민들은 계속 싸워나갈 것을 고집했다. 결국 주민들끼리 고성을 터뜨리고 지친 얼굴로 각자의 집에 돌아간 후에야 험악하던 분위기는 잠잠해졌다. 팻말에 청색 테이프를 말없이 두르는 두 인영에 간헐적인 숨소리가 뱉어졌다. 
  시위를 그만 둬? 그깟 돈 받겠다고, 그깟 돈이 뭐라고. 
  소년은 ‘그깟 돈’발음을 천천히 곱씹었다. 그깟, 돈. 돈 때문에 무시당하잖아. 돈 때문에 힘들게 살잖아 지금. 자신의 집에선 돈은 쉽게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야, 니 판자충이지.
  일순간 소년의 어깨가 바르작대다 멈췄다. 오고 가며 얼굴만 마주치던 같은 반 아이였다. 소년의 이름표를 툭툭 치는 모습이 곱지 않았다. 아닌데. 뭐가 아니야, 니 어제 달동네 돌아가는 거 다 봤는데. 아이가 비죽이며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그 단어들이 귀에 부딪힐 때마다 소년의 등줄기는 시큰해졌다. 언제 본 거지, 어떻게 안거야? 아이는 소년의 책상을 거칠게 두들겼다. 여태까지 잘 숨기고 다녔다, 거렁뱅이가. 교실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린 욕설에 아이의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며 소년을 에워쌌다. 같은 색의 교복들 안에서 소년을 향한 무차별적인 폭언이 쏟아졌다. 시위로 인해 불거진 민원, 고층 아파트 단지 앞에 세워진 시위 금지 경고문, 학교를 오가면서 수백 번은 넘게 들은 욕지거리까지. 이 순간에도 시위를 하고 있을 부모의 모습이 소년의 눈앞에 짧게 맺혀졌다. 이사 가면 안 돼? 얼마 전 힘들게 말했던 그 한마디가 소년의 가슴께를 힘껏 짓눌러왔다. 
  판자충, 니 동네사람들 존나 나대더라. 집값 떨어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물 흐리지 말고 꺼져. 
  소년은 두 눈을 부릅뜨며 아이들을 노려봤다. 소년과 체격이 비슷한 몸인데도, 오늘따라 유난히 그들의 몸집은 커보였다. 우리가 뭘 어쨌다고 이래. 소년은 목 끝까지 차오른 텁지근함을 조용히 곱씹었다. 소년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봤다.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 그들을 바라보는 급우들의 시선 속에는 자신과 같이 ‘판자충’이라 불리는 눈들도 섞여있었다. 달동네 오르막에서 자주 마주쳤던 얼굴들. 아이들이 욕지거리를 쏟아 부을 때도, 부모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소년을 향해 주먹을 휘두를 때도 그들은 무표정하게 소년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웃기네. 너같이 벌레 같은 놈 다굴 당하는 건 도울 생각도 안하는가보다, 야.
  판자촌에 산다는 것. 그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 용의는 충분했다. 판자충(蟲). 부촌 단지가 대부분인 이곳을 좀먹고 사는 구더기 떼, 슬레이트 지붕들. 이곳의 유일한 오점인 판자촌 사람에 대한 취급은 벌레, 딱 그랬다. 아이들은 ‘눈치껏 잘 기어 다녀’ 말을 남긴 후, 교실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의 말소리가 점차 멀어져 들리지 않을 때쯤, 소년은 비틀대며 먼지투성이가 된 몸을 털었다.
  ‘벌레 같은 놈.’
  소년은 황급히 제 짐을 가방 안으로 쓸어 담았다. 학교 밖으로, 판자촌으로 가는 길목으로. 비포장도로처럼 험한 샛길을 헐떡이며 달렸다. 퇴근 시간보다 빨리, 사람들보다 빨리. 벌레처럼 숨어. 기어 다녀. 미친 듯이 뛰어.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모른 채 소년은 뜀박질을 계속했다. 무릎이 쓸리고, 양말 사이로 뾰족한 모래알이 파고들어도, 좀처럼 그의 다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년의 시야는 불투명하게 번져있었다.

  식탁 위에 비친 소년의 눈가는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담임으로부터 무단 조퇴를 했다는 연락을 받은 부모는 시위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에게 화를 쏟았다. 소년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한 마디의 변명 없이 자리를 지켰다. 뭐라 말 좀 해보라는 부모의 호통에 소년은 겨우 입을 뗐다. 이사 가자, 제발. 학교 애들이 나 여기 사는 거 알았단 말이야. 
  애들이 알아서 뭐?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아무 말 없이 조퇴한 거야? 
  이사가. 그냥 돈 받고 빨리 이사가……. 소년의 머리가 식탁으로 곤두박질 쳤다. 둔탁한 굉음이 연속으로 울린 후 소년의 아버지가 열 오른 손바닥을 허공에서 내렸다. 네가 할 소리냐? 없는 형편에 학교 보내 줬더니 학교는 빠지고, 새벽부터 밤늦게 고생하는 부모 앞에서 헛소리나 주절대고. 벌레만도 못한 놈. 내가 널 그렇게 키웠어? 아버지의 팔을 붙잡으며 소년의 어머니가 소리쳤다. 그만해, 동네 창피하게 큰 소리 내지마. 아버지는 소년을 향해 계속해서 손을 휘둘렀다. 어느새 주먹으로 바뀐 아버지의 손을 저지하는 어머니를 두고, 소년은 굳은 몸을 방으로 이끌었다.    
  너 이놈 자식, 너 이리 안 와?
  방문이 잠긴 후에도 한참 동안 거실은 시끄러웠다. 소년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눅진함을 삼키며 창문을 열었다. 사방에 가득한 판잣집이, 그보다 좀 더 앞에 화려하게 세워진 부촌 단지가 시리도록 눈부셨다. 할 수만 있다면 판자촌 동네를 전부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소년을 쳐다보던 눈빛과 욕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소년은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렸다. 오래 전부터 새벽에 맞춰놨던 알람 위젯이 핸드폰 화면 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교복 안을 관통하는 새벽바람에 그는 이를 부딪치며 길을 나섰다. 건너편 초고층 단지의 그늘 아래 어둠이 거둬지지 않은 달동네의 숨소리는 고요했다. 깜깜한 시야에 핸드폰을 집어든 소년의 등 뒤로 라이터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조심스레 뒤를 돌아본 소년의 눈에, 검은 실루엣 사이로 나온 불빛이 비쳤다. 거기서 뭐하세요? 소년을 보자마자 당황한 듯, 실루엣은 판자지붕 위로 라이터를 던지고 그대로 뜀박질을 했다. 판자촌의 초점 위로 소년의 얼굴이 짧게 맺혔다. 멈춰요! 소년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는 형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왜 이렇게 빠른 거야? 이사이로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참으며 소년은 가파른 계단 밑으로 몸을 던졌다. 자신보다 익숙한 몸짓으로 좁은 길을 빠져나가는 인영을 쫓으며, 소년은 자신의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경찰서? 아님 소방서? 마구잡이로 눌러지는 화면을 뒤로하고 그는 손을 휘저었다. 핸드폰 뒷면에 플래시 라이트가 켜지면서 소년의 앞에서 달리는 형체의 뒷모습이 간헐적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모자를 눌러쓴 채 허름한 조끼를 입은 남자. 그 남자와 좁혀지지 않던 두 거리는, 이후로도 한참을 달린 후에야 겨우 골목 속에서 맞물릴 수 있었다. 소년은 폐부 깊숙이 찌르는 냉기를 거칠게 토해내며 남자의 모자를 벗겨냈다. 남자의 옷깃을 쥔 손이 우악스럽게 비틀렸다. 어느새 새벽빛이 골목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긴급 전화버튼을 누르며 소년은 말을 이었다. 허튼 생각하지 마요. 소년에 의해 남자의 몸이 천천히 돌려졌다.
  
  아.
  부모만큼 시위대에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소년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남자를 바라보았다. 푸른빛이 일렁이는 슬레이트 지붕 위, 아침을 알리는 유백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끝-

*수상자 열 명의 작품이 모두 실린 <제3회 아코디언북 짧은소설 프로젝트> 수상작품집은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dimfgogo@gmail.com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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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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