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짧은소설 프로젝트 당선작](5) 그날 팍은 불꽃을 보지 못했다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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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팍은 불꽃을 보지 못했다

김수인


그날은 2015년 7월 4일 토요일이자 독립기념일이었다. 독립기념일은 1776년 7월 4일 미국이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당연히 나는 그때 태어나지 않았고-심지어 미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1776년을 직접 겪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239년 전에 일어난 일을 아직까지 기념한다. 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구에게도 이런 얘기를 꺼내본 적은 없다. 
아빠는 뉴포트에 사는 엄마를 만나러 갔다. 엄마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뉴포트 센터 안에 있는 주얼리숍에서 사람들의 귀를 뚫어주는 일을 했다. 그래서 바쁘다고 했다. 나를 보러 패스path를 타고 뉴욕까지 오기에는 그곳에서 할 일이 아주 많다고. 그래도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페이스 타임을 했다. 엄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라울, 오 마이 러블리 썬”이라고 내가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두 손으로 휴대폰 액정을 어루만졌다. 그러니 직접 보러 오지 않는다고 해서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원래 할 말이 있는 쪽이 가는 게 맞다. 그래서 바쁜 엄마 대신 아빠가 뉴포트에 가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엄마를 만나러 갈 때 아빠가 나를 데려가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그렇다고 아빠를 조르거나 하진 않는다. 나는 그래도 될 때와 되지 않을 때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어떤 법칙이라기보다는 9년하고도 10개월을 사는 동안 길러낸 직감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빠는 어김없이 아래층에 사는 팍에게 나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팍은 3개월 전 이사 온 한국인이었다. 사실 아빠는 처음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팍을 경계했다. 콕 집어 클레어가 살았던 방에 들어가고 싶다고 아빠의 페이스북으로 직접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주 뒤 팍은 그저 채광이 좋은 방을 원했고 마침 클레어의 방에 있던 창문이 제일 컸기에 그 방을 선택했던 것뿐이라고, 아빠는 자신의 오해를 바로잡았다. 
팍은 영어를 잘 못했지만,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팍이 짧은 영어로 나에게 질문을 하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었다. 대화가 길어지면 수첩에 간단한 문장이나 단어를 써서 보여줬다. 기본적으로 팍은 나에게 괜히 말을 걸거나 귀찮게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 다음으로 팍과 함께 있는 게 편했다. 
그날 팍이 브루클린으로 불꽃을 보러 갈 예정이었으므로 나는 싫든 좋든 팍을 따라가야만 하는 처지였다. 쾌쾌한 냄새가 밴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았고, 나는 그들이 내 몸에 닿을 때마다 끙끙 소리를 냈다. 남색과 흰색이 교차된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은 팍은 내 등 뒤에 서서 사람들과 나를 분리해주는 보호막 역할을 했다. 허리춤을 매만지며 슬픈 표정을 짓기도 했다. 팍은 본래 표정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슬픈 표정을 지으면 정말 슬퍼 보였다. 
오후 6시 3분, 우리는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에 도착했다. 뉴욕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 것만 같았다. 나는 당장이라도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팍은 눈치 없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마지못해 팍의 새끼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대체 그깟 불꽃이 뭐라고.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불꽃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심지어 239년 후에도 터지고 있을 텐데. 
여기저기서 익스 큐즈 미, 쏘리, 익스큐즈 미, 쏘리가 돌림노래처럼 들려왔다. 그러자 갑자기 팍이 조금 미워졌고, 자를 때가 다 된 손톱의 날을 세워 팍의 새끼손가락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그러나 팍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다만 아까보다 빠른 걸음으로 인파를 뚫고 지나갔다. 팍의 걸음이 너무 빠른 탓에 나는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던 팍의 새끼손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고, 끙끙 소리를 내며 팔과 다리를 공중에서 휘적거렸다. 팍은 곧장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에게 괜찮으냐고 묻는 팍을 향해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팍은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내 마음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팍은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에서 2마일 떨어진 멕시칸 레스토랑에 나를 데려갔다. 통나무로 된 실내에는 빈 테이블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는 것보다 불꽃이 터지는 걸 배경 삼아 여유롭게 밥을 먹는 게 낫다고 판단해 모인 사람들일 것이었다. 애초에 이곳에 오는 게 자신의 목적이었다고, 팍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한 번도 멕시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고 굳이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메뉴판에서 가장 무난해 보이는 치즈 버거를 골랐다. 팍도 나와 같은 걸 먹겠다고 했다. 카운터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던 멕시코 남자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팍은 주문을 받고 떠나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남자를 바라보는 팍의 얼굴은 더 이상 슬퍼 보이지 않았다. 
“라울, 저기 좀 봐. 저 남자가 그녀의 엉덩이를 만졌어.”
내가 오른손 검지를 이용해 원목 테이블 위에 일정한 속도로 탁탁, 소리를 내며 튕기고 있을 때, 팍이 고개를 돌린 채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팍의 시선을 따라갔다. 주방 앞에서 우리의 주문을 받은 남자가 동양계 웨이트리스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웨이트리스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으로 남자를 밀어냈지만, 남자는 주방에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여자의 엉덩이를 놓지 않았다. 저 남자가 은희를 죽였어. 저 남자가 은희를 죽였어. 히 킬드 은희, 히 킬드 은희, 히 킬드……주문이라도 외듯 한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는 팍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은희가 누구인지, 저 남자가 정말 은희라는 사람을 죽였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고개를 끄덕일 수도 가로저을 수도 없었다.
치즈 버거가 나온 건 오후 7시 24분이었다. 나는 일단 빵과 속 재료를 분류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접시에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빵과 감자튀김을 전부 팍에게 건네줬다. 양상추 4장, 얇게 슬라이스 된 토마토 2장, 체더치즈 1장, 고기 패티 1장을 접시 위에 펼쳐놓고 포크와 나이프로 자르기 시작했다. 팍은 앞에 놓인 치즈 버거를 쳐다보다가 허리춤을 한 번 매만졌다. 그러곤 토마토케첩에 푹 찍은 감자튀김 3개를 한꺼번에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아니 치아가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거의 씹지 않고 삼켜버렸다. 팍은 순식간에 감자튀김을 먹어치웠고, 이내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라울, 욕심을 부려선 안 돼. 언제나 한 번에 하나씩.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빠가 자주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맨해튼과 퀸즈에서 렌트업을 아빠는 나를 특수학교에 보내기 위해-뉴욕에서 특수학교에 다니려면 매년 5만 달러에 육박하는 거금이 필요하다-밤낮없이 집들을 돌봤고, 얼마 전에는 우드사이드와 써니사이드에 게스트하우스를 각각 하나씩 더 지었다. 아빠는 자신의 신념과 달리 점점 더 욕심쟁이가 되어갔다. 동시에 뉴욕을 떠나 방글라데시로 돌아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사실 나는 뉴욕이든 방글라데시든 상관없었다. 예전처럼 엄마와 아빠와 내가 함께 살 수만 있다면. 물론, 그 이야기는 좀 더 나중에 꺼낼 작정이다. 지금은 특수학교에 다니는 일이 우선이었다. 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 언제나 한 번에 하나씩. 
팍이 화장실에 간 사이 양상추와 토마토와 체더치즈와 고기 패티를 각각 16조각, 8조각, 4조각, 9조각으로 분류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양상추, 체더치즈, 토마토, 고기 패티 순으로 한 조각씩 꼭꼭 씹어 먹었다. 접시 위 음식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도 팍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팍이 없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제야 팍을 찾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 팍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멕시코 남자의 머리통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총은 스미스 앤 웨슨 38구경이었다. 그건 내가 장난감 통에 숨겨놓은 아빠의 총이기도 했다. 팍이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자 남자가 두 손을 위로 번쩍 든 채로 팍에게 사정했다. 그러지 말라고. 제발,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네가 은희, 아니 클레어를 죽였지?”
“클레어? 오, 맙소사. 나는 클레어를 죽이지 않았어. 당신, 클레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걸 설마 모르고 있는 거야? 그녀는 총으로 머리를 쏴서…”
팍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모르는 언어로 소리를 질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과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그건 목소리라기보다는 절규나 발악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결코 좋은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팍이 남자를 죽일 수도 있겠다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일이다. 내가 아빠의 총을 숨겨놓은 것도 더 이상 아빠가 나쁜 일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천천히 팍에게 다가갔다. 아까 공원에서 팍의 새끼손가락을 붙잡았던 것처럼 팍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팍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팍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나는 그저 팍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 것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럴 땐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팍은 별안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그저께 TV에 나왔던, 텍사스에 사는 아홉 살 케빈처럼 엉엉 울었다. 남자는 뒷걸음질 치며 재빨리 복도를 빠져나갔다. 팍은 어깨를 들썩이며 손에 쥔 총을 내려다봤다. 안 돼. 그러면 안 돼. 나는 끙끙 소리를 내며 좀 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팍을 향해 다시 한 번 손을 뻗었다. 그러나 내 손이 팍, 아니 현우에게 가닿기도 전에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그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밖에서는 이제 막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끝-

* 수상자 열 명의 작품이 모두 실린 <제3회 아코디언북 짧은소설 프로젝트> 수상작품집은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dimfgogo@gmail.com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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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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