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풀
김경훈
둘째 딸이 제가 앉았던 자리를 떨며 일어섰다. 그리고 손수건을 하나 꺼내어 그 자리를 훔쳐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자리에 티끌이라도 묻혀 보려는 건지. 냄새마저 뚝뚝 떨어져 내릴 나이라는 것을 내게 일깨워주려는 건가. 딸의 대수롭지 않은 태도는 흐린 내 눈에 불꽃을 불어넣기도 했다. 고약한 생각만이 마른 몸에서 바짝바짝 타올랐다.
“아버지, 저 이만 가볼게요.”
“으음.”
나는 둘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려다 그만두었다. 방안을 무겁게 짓누르던 침묵을 깨는 건, 이번에도 역시 딸의 몫이었다. 늙은 몸으로 딸에게 해주는 건 고작 신음처럼 흘리는 숨소리가 전부다. 제 어미가 살아있었다면 ‘벌써 가려고? 토마토가 잘 익었는데 몇 개 따 줄게, 갖고 가.’라며 다정하게 몇 마디라도 더 섞으며 딸을 붙들었겠지만, 나는 그럴 줄도 모른다. 알아도 모른다고 할 테다. 상기된 볼을 씰룩이며, 베란다에 줄줄이 심겨 있는 토마토 쪽으로 시선을 얼른 돌렸다.
“뭐 필요하신 거 있음 전화하시고요. 또 저번처럼 모르는 사람을 통해 알게 하지는 마세요. 네? 자식들 입장도 좀 생각하시라고요.”
가끔 장기나 몇 판 두어줬던 405호 박 씨가 둘째에게 전화했던 모양이다. 오지랖만 쓸데없이 넓어선. 다음번에 얼마나 내 앞에서 생색을 낼지 안 봐도 삼천리다.
“크흠.”
“불편하신 데는 더 없죠? 그리고 담배 좀 그만 태우시고요. 토마토에 담뱃재 묻은 거 보셨어요?”
느닷없는 딸의 채근에 나는 발끈하고 말았다.
“네 멋대로 심어놓고선, 아비한테 이래라 저래라냐! 일 봤으면 어서 가거라.”
“아휴… 아버지.”
둘째는 싱크대로 가더니 수도꼭지를 틀어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을 적셨다. 몇 번을 쥐어짜더니 빨래건조대에 널어놓았다. 녀석은 괜히 누구에게든 미안할 때면 빨래를 하곤 했다. 어려서부터 손 부끄럼을 유난히 타던 아이다. 그리하면 둘째의 마음이 조금 가벼우려나 싶어 가만히 두곤 했었다.
“마르려면 한참 걸릴 텐데.”
“방 안이 좀 건조해요. 다 마르면 살짝 물에 적셔서 널어놓으세요. 아셨죠, 아버지? 금요일 아니 토요일에 다시 올 거니깐. 그때 챙겨갈게요.”
“오늘, 수요일이다.”
나는 둘째에게 단단히 확인해주었다.
“오기 전에 전화 꼭 해라. 나, 집에 없을 수 있다.”
“네. 먼저 전화할게요.”
“됐다. 가.”
둘째는 내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슨 필름 카메라 조리개를 여닫는 것처럼, 그저 검은 눈동자를 몇 번 깜박였다. 그 하는 꼴이 흡사 영정사진이라도 찍어두는 것 같아서 심히 불쾌했다.
“어서, 가래도!”
“핸드폰 손에 꼭 붙들고 있으세요.”
“여기 있다, 됐지?”
나는 호주머니에서 그 검고 납작한 물건을 꺼내 보였다. 관짝 같은 그 물건, 부르르 진동이 오면 앞서 간 마누라가 관뚜껑 열고 뛰쳐나오는 것만 같은 그 흉물스러운 느낌은 덤이다. 담배 생각이 차올라서 호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넣고 안을 뒤졌다. 먼지가 몇 덩어리 뭉쳐 있는 게 만져진다. 쓸모도 없는 것들끼리 잘도 뭉쳐 다닌단 말이지.
“아버지. 또.”
“거… 참! 어서 가보래도!”
나는 둘째를 앞질러 가 현관 등을 켰다. 둘째는 나를 보고선 입을 달싹였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가는 목을 반대로 돌려서는 신발을 찾아 신었다. 누런 흙먼지가 곱게 펴 발라 있는 단화. 제 어미를 닮아 유난스럽게 깔끔한 녀석이 답지 않게 칠칠찮다. 못마땅한 내 표정이 깊은 주름에서 슬그머니 비켜났는가 보다. 둘째는 눈치도 빨라 내 생각을 읽어내곤 받아칠 준비부터 했다.
“요 앞 1층 화단에서요. 아버지. 오는 길에 봤는데, 한 번 내려가 보실래요? 우스운 게 하나 있어요.”
“일없다. 너나 많이 우스워해라.”
“아이, 아버지.”
둘째를 따라 내려간 화단에는 별 우스울 것도 없었다. 둘째가 가리키는 꼴을 보고선, 나는 그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살 려 두 세 요.’
“저게 무어냐?”
둘째는 생글생글 웃었다.
“아버지… 살려 두라잖아요.”
원, 누구더러 뭘 살려두라는 건지. 삐뚤빼뚤한 글자가 쓰인 쪼끄만 푯말 하나가 화단 가운데에 떡하니 박혀 있었다. 얼렁뚱땅 만든 울타리 하며, 근처에 사는 뭇 노인네나 해둠 직한 솜씨다. 사각으로 둘러친 중앙에는 대자로 뻗은 풀 한 포기가 눈에 띄었다. 너무 작고 연약해서 정체를 알 수 없다. 게다가 거의 말라서 죽어가는 상태라 뭘 어쩌겠나 싶다. 갑자기 둘째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갔다. 한참 있다가 물조리개를 들고나왔다.
“아버지 이것 좀…요….”
둘째는 물을 어지간히도 담아 왔다. 내가 빼앗듯이 그걸 받아들고선 그 ‘살려두세요’ 앞으로 다가갔다. 누워 있는 녀석 주변으로 조심스럽게 물을 조렸다. 물 조절하느라 손목이 욱신거렸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게 더 고역이었다.
“아버지, 이제부턴 제가 해볼게요.”
둘째의 말이 눈물이 핑 돌도록 고마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 네 차례다.”
못 이기는 척 절반이 좀 넘게 차오른 물조리개를 둘째에게 건넸다. 둘째가 그리로 돌아서는 걸 확인하고서야 손목을 주무를 수 있었다. 딸애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푯말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그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고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만 줘도 되겠다. 물조리개 이리 내.”
“물이 한참이나 남았는데요.”
“나도 안다.”
홱 하고 낚아채듯이 물조리개를 돌려받아서는 콘크리트 경계석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째를 졸랐다.
“발 올려놓아. 어서.”
둘째는 하얀 대리석에 한 발을 살포시 올려놓고선 요리조리 움직여가며 신발에 묻은 흙을 씻어냈다. 한쪽 발이 다 끝난 후에는 다른 쪽 발도 올려놓았다. 남은 물은 아슬아슬하게 제 소명을 마쳤다.
“아버지, 마치 새 신발 같죠?”
“철딱서니 없는 소리 같으니.”
애가 아직 없으니 애처럼 구는 것도 무리는 아니려나.
“우리 아버지 지금 쑥스럽구나?”
“어서 가거라. 장 서방 기다리겠다. 갈 때 약국 들러서 거 뭐냐…….”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지만 주책맞게 군 것 같아 괜스레 얼굴이 달아올랐다.
“말씀 않으셔도 그럴 작정이었어요.”
“올해만큼은 넘기지 말아야지. 암!”
“…….”
딸의 표정이 이상하다. 내 말을 듣고선 죽은 제 어미가 떠올랐던 게다. 그렇게도 손주 타령해대더니 그리 쉽게 가려고 그랬던가. 내 충고도 듣지 않고 촐싹대다가 조바심에 걸려 넘어질 줄 내 진작 알았지. 에그, 망할 여편네.
“아버지.”
둘째의 등을 몇 번 내리 쓸었다. 있을 리 없는 먼지도 몇 올, 홅아내는 시늉도 했다.
“그러게 진작 갔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말을 덧붙였다.
“…집에 도착하면 전화하고.”
둘째는 내 눈을 바라보며 영정사진 몇 장을 더 찍어댔다. 아무렇지도 않은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 정말 어디 불편하신 데 있는 건 아니죠?”
이래서 평소답지 않게 딸에게 다정하게 굴면 무턱대고 의심부터 받는 게 늙은 아비들이다.
“오랜만에 물장난도 해서 기분 좀 내보는 건데, 왜? 안 되냐?”
“아녜요. 아버지.”
그렇게 딸이 제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워보려다 말고 무심히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토마토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얀 놈들! 저희끼리만 아주 주렁주렁하다. 덩치만 컸지 아직 새파란 놈부터 쪼끄마한 놈이 벌써 뭘 알았는지 새빨개진 것도 제법 달렸다. 익어가는 건지 썩어가는 건지 헷갈리도록 누런 놈도 눈에 들어왔다. 호주머니 속의 먼지 몇 개를 모아 뭉쳐보다가 도로 손을 뺐다. 빨래건조대로 가서 둘째가 두고 간 손수건을 만져보았다. 날씨가 건조해서인지 금세 말랐다. 발을 끌고 다니며 리모컨을 찾았다. 안방 문지방을 넘다가 내 오른발에 탁 하고 걸려들었다. 텔레비전을 켜보았다가 정치 얘기가 나와서 전원 버튼을 한 번 더 눌러버렸다. 둘째가 앉아 있던 자리로 가서 손으로 매만져 봤다. 온기는 사라지고 서늘했다. 손끝이 가려웠다. 다섯 갈래로 뻗친 손바닥을 단숨에 거둬들였다.
또, 베란다로 나갔다. 고개를 좀 빼내 1층 화단을 내려다봤다. 누운 풀 한 포기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물이 흥건하게 젖은 땅, 둘째와 내가 물을 주었던 녀석이다. 틀림없는 그 녀석이다. 살려두면 저 녀석이 과연 살아나기는 할까? 더 자세히 보려고 눈을 끔벅거리는데 오른편 다리가 저릿하다. 마치 전기 들린 것처럼. 손을 내려서 주무르려는데 딱딱한 게 잡혔다. 핸드폰이다. 핸드폰이 달달거렸다. 화면에는 ‘둘째’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통화버튼을 딸이 일러준 대로 밀어젖혔다.
“응, 둘째냐. 집에는 잘 도착했고?”
“…….”
“왜 대답이 없어? 무슨 일 있냐? 무슨 일 있는 게로구나. 무슨 일이냐?”
“…아버지.”
“오냐. 말하거라.”
“저요…, 임신이래요.”
“허이구.”
알아들을 수 있는 딸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핸드폰에 붙은 손이 부르르 저렸다. 그 저림은 내 뜻과는 무관했다. 떠나는 아내 손을 잡았을 때 느껴본 그 저릿함이었다. 단, 한 번뿐이어도 잊을 수 없는 게 있기는 있다. 무릎이 풀썩 꺾였다. 우악스럽던 어깨는 실타래처럼 스르륵 풀려간다. 덥지도 않은데 웬 땀이 흘러내렸다. 등짝이 흥건했다. 다 된 몸에 물이나 실컷 뿌려주려나 싶다. 고개도 한쪽으로 픽 돌아갔다. 돌아간 쪽엔 토마토가 보였다. 언젠가 내 손에 붙들린 아내 얼굴처럼 저리도 붉은 게. 저 동그란 게.
-끝-
* 수상자 열 명의 작품이 모두 실린 <제3회 아코디언북 짧은소설 프로젝트> 수상작품집은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dimfgogo@gmail.com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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