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짧은소설 프로젝트 당선작](2) F층의 영혼들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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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층의 영혼들

고가람


404호

  404호 :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 사람들도 우리 아파트 사람이 아닌데?

 낯선 차에서 낯선 사람들이 내렸다. 흰색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살그머니 아파트를 빠져 나갔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다. 어제도 세 번, 그제는 두 번, 그 전날은 네 번. 근처에 있는 유료주차장은 덕분에 장사가 안 된다. 우리 경비는 알고도 모른 척 해주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모르는 건지. 쯧쯧쯧.
 말이 나온 김에 우리 경비는 왜 이렇게 점점 식사시간이 길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식사 중’이라고 붙여놓고 30분이면 갔다 오더니 이제는 거의 두 시간을 안 보인다. 이 양반은 소화까지 다 시키고 오나. 그러니 우리 아파트가 자동차에 스티커도 없는 외부인들의 먹잇감이 되지.
 그 차 밑으로 사자가 숨어들었다. 물론 동물의 왕 사자를 말하는 건 아니다. 매력적인 꼬리를 가진 고양이를 말한다. ‘사자’라는 이름은 내가 마음대로 지어줬다. 내 친구니까.
 엄지와 검지를 말아 힘껏 휘슬을 불었다. 아무도 반응이 없었지만 사자만큼은 나를 쳐다봐준다. 역시 먹을 걸 주는 사람은 기억하나보다. 나를 알아봐주는 사자를 위해 상을 줘야겠다. 사료를 들고 내려가 잽싸게 구석진 곳에 숨겨둔 그릇에 한가득 부어주었다.
 참 잘 먹는다. 어느새 친구들인 게와 토끼도 합류해서 나눠먹는다. (물론 얘네도 고양이들이다.) 보통의 고양이들과는 달리 싸우지도 않고 사이좋게 먹는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조금씩 더 부어줬다. 고마운지 마치 사람처럼 고개를 숙여 나에게 인사해준다.
 그 모습을 쪼그려 앉아서 보는데, 저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들어도 경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재빨리 나무 뒤로 숨었다.

 경비: (손으로 고양이들을 쫓아내며) 아, 도대체 누가 자꾸 이 녀석들한테 먹이를 주는 거야? 그렇게 도둑고양이들한테 밥 주지 말라고 써 붙여 놨는데. 이러다 우리 아파트가 고양이 천국이 되겠어. 고양이 천국이.
 
 경비 당신이나 좀 잘 하지 그래. 이러다 우리 아파트가 외부인 천국이 되겠어. 외부인 천국이. 고마우신 경비 덕에 내 친구들이 떠나갔다. 하는 수 없이 다시 F층으로 돌아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403호

 빛이 싫다. 하루 종일 밤이었으면 좋겠다. 밤에는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어둠이 좋다.
밖이 싫다. 밖에는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나밖에 없는 집이 좋다.
 옆집 사람은 더 싫다. 자꾸 오지랖을 떤다. 친해질 생각도 없으면서 가식적으로 말을 걸고 별것도 아닌 것에 반응한다. 그 꼴이 너무 싫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싫어졌는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또 그런 인간이 설쳐대는 꼴이 너무 싫다.
 정말 밖이 싫었지만 그래도 살기는 살아야 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갔다. 옆집 인간은 하는 일도 없나보다. 그 인간은 아침부터 복도에 나와 있다.

 그 인간 : (웃는 얼굴로)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저녁에도 밖에 나와 있다.

 그 인간 : (웃는 얼굴로)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셨나요?

 궁금하지도 않은 걸 억지로 물어보는 게 참 싫었다. 보통은 무시하면 몇 번 말을 걸다가 말던데 그 인간은 무시당하면서도 매일같이 말을 걸어댔다. 정말 지긋지긋한 인간이었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안 그래도 밖이 싫던 차에 나대는 인간까지 있으니 나가기가 더더욱 싫어졌다. 그래서 때려치웠다. 좋은 차, 맛있는 음식, 큰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벌었던 건 아니니까. 그냥 살려고 돈을 벌었던 거니까.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으로 남은 인생을 살기로 했다. 먹여 살릴 가족도 없으니 충분할 거라 생각하고 과감히 때려치웠다.
 사방으로 커튼을 쳐 빛을 차단했다. 그리고 가만히 누워 있다가 중간 중간 한 숟갈씩 밥을 먹으며 지냈다. 그러다 그것마저 귀찮아졌다. 먹을 게 떨어지면 사람을 만나야만 했다. 그래서 배고픔을 참고 잠을 청했다.
 한동안 그 인간 얼굴을 안 보니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오지랖 넓은 그 인간이 또 날 귀찮게 한다. 노크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울린다.

 그 인간 : 안녕하세요! 저 옆집 사람인데요.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당연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인간의 다음 대사를 듣고 나서 나는 문을 열 수 밖에 없었다.

 그 인간 : 제 말이 들리신다면 당신도 저처럼 이미 돌아가신 거예요.

405호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항상 모자랐다. 낮에 다니는 작은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으로는 저축할 돈이 없었다.
 밤에는 대리를 뛰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새벽에 뛰는 거라 나름 쏠쏠했다. 물론 내 건강과 잠을 깎아서 버는 돈이었다. 그래도 통장에 찍히는 0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계속 일을 했다. 몇 년을 쉬지 않고 일했더니 드디어 입에 풀칠은 하고 살만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형님한테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405호 : 아, 형님이 어쩐 일이세요? 그 동안 통 연락도 없으시더니.
 XX : 그렇게 말하니까 섭하네. 내가 바빠서 자넬 못 챙겼지 속으론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데.
 405호 : 아, 죄송해요. 그나저나 무슨 일 있으신가요?
 XX : 내가 이번에 사실은 큰돈을 챙길 기가 막힌 정보를 알게 되었는데. (목소리를 낮추며) 이거 특별히 자네한테만 알려주는 거니까 절대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지 말어. 알겠지?

 그 형님, 아니 그 XX의 전화를 받지 않았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나한테 왜 그렇게 좋은 정보를 흘려주는지 의심을 했어야 했다. 그 XX는 내 약점을 너무나 잘 파고들었다. ‘큰돈’, 그 두 글자가 나의 판단능력을 뺏어가 버렸다. 그렇게 뭔가에 홀린 듯 나는 나의 청춘을 그 사기꾼에게 몽땅 갖다 바쳤다. 그 XX가 잠적해 버리고, 모든 것이 끝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붙잡고 있던 삶의 의지를 놓아버렸다. 
 방문을 닫고 테이프로 창문 틈을 막은 뒤 수면제를 털어 넣고, 잠이 들 때쯤 번개탄을 피웠다. 서서히 몸이 굳고 몽롱해지는 걸 느꼈다.
 정확히 얼마 만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살아있는 건가? 어쨌든 우리 집에 노크를 해댈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404호 : 안녕하세요! 저 옆집 사람인데요.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405호 : 네, 무슨 일이시죠?
 404호 : 제 말이 들리신다면 당신도 저처럼 이미 돌아가신 거예요.

사자

 드디어 저 분께 정체를 밝힐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밥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는 404호 분께 우리가 온 이유를 설명하기로 하였다.

 사자 : 전 사실 고양이가 아닙니다. 당신이 제게 지어준 이름처럼 전 돌아가신 당신을 모시러 온 사자입니다.
 404호 : 아니, 무슨 고양이가 말을 하지?
 사자 : 저는 진짜 저승사자가 맞습니다. 제 옆에 있는 두 친구도 각자 모셔갈 분들이 있어서 여기로 온 겁니다.
 404호 : 와, 꿈치고는 생생하네.
 사자 : 안 믿으시는 것 같으니까 실험을 하나 해보죠. 저 앞에 당신이 싫어하는 경비가 보이죠? 그 사람한테 말을 걸어 보세요.
 404호 : (불러도 반응이 없자) 에이, 어차피 저 인간은 제 말 따위는 듣지도 않아요. 그건 제가 죽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해요.
 사자 : 그럼 저 사람 머리를 힘껏 때려 보세요.
 404호 : (힘껏 때려도 반응이 없자) 어, 진짜네? 길길이 날뛰어야 하는데. 저 진짜 죽은 건가요?
 사자 : 이제 좀 믿으시는군요. 당신은 4층 난간에서 밖을 쳐다보다 떨어져 돌아가셨습니다.
 404호 : 정말인가요? 그래서 전 어떻게 되었죠?
 사자 : 당신을 저 경비가 발견해서 경찰에 신고했고, 가족과 지인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당신은 무연고 시체로 분류되어 화장되었습니다.
 404호 : 그랬군요. 뭐, 그럴 줄 알았어요. (한숨을 쉬고) 괜찮아요. 재미도 없는 여기보다 저승이 저한테 차라리 나을 거예요. 그럼 지금 저승에 가는 건가요?
 사자 : 아닙니다. 당신의 죽음을 슬퍼해 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저승에 가는데 아직 당신의 죽음을 슬퍼해 줄 분을 찾지 못해 제가 당신을 모셔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 : 저도 403호에서 아사로 돌아가신 분을 데려가기 위해 왔는데 그 분도 슬퍼해 줄 사람이 없어서 모셔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토끼 : 저도 405호에서 질식사하신 분을 모셔가기 위해 왔는데 그 분의 사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404호 : 아, 진짜 두 분도 돌아가셨나요? 어쩐지 요즘 통 복도에 있어도 두 분 모습이 안 보이더라니……. 정말 안타깝고 슬프네요.
 사자 : (한 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정말 슬프신 거 맞죠?

 한참을 생각하던 404호 분은 좋은 생각이 있다며 우리를 4층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두 분을 불러내어 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404호 분이 설명을 하는 동안 우리는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가끔 저승으로 가기를 거부하며 끝까지 저항하는 영혼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분의 의지는 강했다. 그 분들의 마지막 소원은 그저 편히 저승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것마저도 못하게 아무도 슬퍼해주지 않는 이 상황이 사자인 내가 봐도 안타까웠다. 물론 밥을 잘 챙겨주셔서 그런 생각이 든 건 아니었다.
 404호 분의 설명이 끝나자 세 분은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 분들은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마지막엔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는 얘기가 끝났다는 듯 우리를 쳐다보았다.

 사자 : 무슨 결론이 나오셨나요?
 404호 :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들어주었습니다. 어떻게 살았고, 뭐가 불행했고, 왜 죽었는지에 대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403호 : 저는 오늘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사람들을 싫어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다만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제가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405호 : 저도 제 주변에 이렇게 좋은 분들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작전은 저승으로 가기 위해 각자의 인생을 듣고 슬픈 척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각자의 삶을 죽은 뒤에야 토닥여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고 슬픕니다.
 사자 :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야 비로소 세 분을 데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거짓으로 슬퍼하는 척만 했다면 여러분은 평생 이 F층에서 숨어 지내야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했던 건 관심과 진심, 이 두 가지였습니다. 자, 이제 저희를 따라 오십시오.

 마음이 가벼워진 F층의 세 영혼은 저승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뼈가 보이는 두 구의 시신은 여전히 방 안에 누워있지만…….

-끝-

* 수상자 열 명의 작품이 모두 실린 <제3회 아코디언북 짧은소설 프로젝트> 수상작품집은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dimfgogo@gmail.com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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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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