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짧은소설 프로젝트 당선작](1) 데자와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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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와

강승체


얼마 전에 신을 만났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우산이 없어 대충 손바닥으로 머리를 가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 우산을 씌워 주었다. 신이었다. 그 때까지 신이란 걸 믿어 본 적도 없었고, 딱히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남자는 뭐랄까, 누가 봐도 신이었다. 세상에는 단순한 감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들이 제법 있다. 부정할 마음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신의 모습이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는 일단 우산을 씌워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괘념치 마세요.”
신이 말했다.
“그렇지만 마침 우산이 필요했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보다는 선물을 하나 주려고 왔습니다.”
“선물이요?”
“네. 아주 특별한 능력을 드리고 싶어서요.”
나는 순간 기분이 들떴지만 최대한 침착해 보이려 마음을 가다듬었다.
“일단은 왜 저에게 그런 특혜를 주시려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나의 질문에 신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글쎄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재수가 좋은 거라고 생각해 주시면 안 될까요? 결국 세상일이란 게 다 그런 거죠. 아무리 건강해도 재수 없으면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는 거고, 특별한 사정이 없어도 재수가 좋으면 길을 가다 신을 마주칠 수도 있고. 뭐 비슷한 겁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싫으시면 굳이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아니요, 솔직히 뭔지 무척 궁금하군요.”
“꽤 멋져요. 손에 닿은 것을 무한정 복제해 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뭐든지요?”
“네. 돈이든, 사람이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거면 뭐든지요.”
“그것 참 솔깃하네요.”
“대신에 처음 손을 대는 물건이 중요합니다. 이 능력은 딱 한 가지에만 적용되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능력을 전해주고 난 다음, 당신이 처음 손을 대는 것이 당신의 평생 복제하게 될 대상이 될 겁니다.”
“아 예, 신중해야겠네요.”
“자 그럼 드리겠습니다.”
신은 그렇게 말하고 내 얼굴에 대고 입김을 후하고 불었다. 입 냄새가 조금 났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됐습니다. 멋진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을 추천하죠. 실수로 이상한 거라도 만져 버리면 안 되니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신은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우산이 바닥에 털썩 떨어져 버렸지만, 나는 줍지 않았다. 평생 우산이나 복제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손이 닿지 않도록, 신이 말해준 대로 주먹을 꽉 쥔 채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동생이 집에 있어서 큰 소리로 불러 문을 열게 했다. 나는 그날 식사도 거부한 채(수저를 만지면 안 되니까) 무엇을 만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잠도 잘 수 없었다. 분명 잠결에 이불을 만져버릴 테니.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고민을 해봤지만 역시 돈을 만져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이상의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돈만 많으면 필요한 것들은 얼마든지 살 수 있을 테니 가장 안전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찾아보니 우리 집에는 현금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모님은 원래 현금을 안 들고 다니시고, 동생이 만 원짜리 몇 장이 있었지만, 기왕 복제하려면 만 원짜리보다는 오만 원짜리가 나을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일단 아침이 밝은 후에도 학교는 가지 않으려 했는데, 아버지의 불호령을 듣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오만 원짜리를 빌릴 생각으로 학교로 향했다. 밤을 새운 터라, 머리도 어지럽고 해서 더욱 주의하며 걸었다. 

“너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냐?”
등굣길에 같은 반 친구인 이정우가 말했다.
“잠을 못 자서.”
내가 답했다.
“쉬엄쉬엄 해라. 그러다 대학 가기도 전에 쓰러진다.”
정우는 내가 공부를 하다 밤을 샌 것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그는 안쓰러운 표정을 하며 내 등을 도닥여 주었다.

학교에 도착하고 나서, 1교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막상 실행의 순간이 닥치니 무척 떨렸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2교시를 알리는 종이 칠 무렵에, 갑자기 매점에서 돌아온 이정우가 나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가 던진 것을 잡았다. 데자와였다.

“피로 회복에 데자와 만한 것이 없지. 일부러 따뜻한 거로 사왔으니 마셔.”
그는 친구의 건강을 염려해준다는 것에 스스로 뿌듯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2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학교를 뛰쳐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쿵쾅댔다. 어쩌자고 데자와 같은 것을 잡아버린 것일까. 이거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 어쩌면 철로 된 캔 같은 것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만가지 생각들을 되뇌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처음의 불안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아서, 나는 데자와 복제인간이 되어버렸다. 복제의 과정은 간단했다. 별 원리도 방법도 없이 그저 머릿속으로 데자와를 떠올리면 뿅-, 하고 데자와가 내 눈앞에 등장했다. 한 캔을 생각하면 한 캔이, 열 캔을 생각하면 열 캔이 나왔다. 인간 자판기가 된 기분이었다. 능력이 생기고 난 일주일간은 괴로웠지만, 지금은 반쯤 체념하기도 했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살고 있다. 쓸데없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 억울해서 매일 같이 데자와를 마시고 있는데, 처음 의도와는 달리 내 입맛에 잘 맞았다. 홍차의 향이 나면서도, 우유의 부드러움이 입안을 달달하게 만들어 주었다. 

능력을 가지게 된 지 육 개월 째 되면서부터는,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교에서 이미 데자와 소년으로 불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볼 때마다 나는 항상 데자와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평소에 귀엽다고 생각하던 여학생 한 명이, 왜 그렇게 데자와만 고집하는지 내게 물었다. 맛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답했다. 어차피 돈이 드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친구들이 안 보는 곳으로 가서 데자와 한 캔을 만들어낸 뒤, 자리로 돌아와 그녀에게 주었다. 그 아이는 한 입 마셔보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까르르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다음날 내친김에 서른 캔의 데자와를 만들어서 반 전체 아이들에게 돌렸다. 어 오늘 무슨 날이야? 갑자기 무슨 일? 친구들은 의문을 표했지만, 그래도 감사를 표하며 받아주었다. 나는 그 후로도 종종 데자와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었다. 친구들을 챙기는 모습이 먹혀들었는지, 내가 고3이 됐을 무렵, 나는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전교 회장 후보가 되어버렸고, 이미 ‘데자와 소년’이라는 특이한 캐릭터도 형성되어 있던 터라 어렵지 않게 나는 전교 회장이 되었다. 몇몇 아이들은 회장에 당선되었으니 전교에 데자와를 뿌릴 것이라고 수군댔다. 나는 그 다음 날, 전교생에게 데자와를 돌렸다. 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나를 따르는 팬들도 생겼다. 아버지가 데자와를 만드는 회사의 회장이다, 경기도에 넓은 부지의 데자와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등의 루머도 생겨났다. 가장 멋진 점은, 내가 가장 처음 데자와를 건넸던 소녀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그녀와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말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 역시 싫지 않았던 듯, 부끄러워하더니 결국 나와 사귀게 되었다. 바야흐로 데자와 공화국의 초대 왕과 왕비가 탄생한 것이다. 

그로부터 십오 년이 지나고, 나는 그 소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데자와가 이어준 인연이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결혼 후에도 종종 데자와를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근무하던 회사에서 뉴욕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지는 바람에 비행기가 두 시간 정도 연착이 되어버렸다. 빗방울 가득한 창밖으론 우비를 입은 공항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고생하는 그들에게 데자와를 권하고 싶었다. 이런 날은 따듯하게 데운 데자와 한 캔이 무척 힘이 된다. 그 때 누군가 옆에서 아는 척을 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신이었다. 

“능력은 어떠셨나요?”
신이 물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주 좋았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다행이군요.”
신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오랜만에 보는 성공작이라는 듯이.
“안타깝지만 슬슬 능력을 회수해가야겠습니다. 인간들의 질서를 해하지 않기 위해서 저도 어느 정도 유효기간을 두는 것이니 너무 서운해 마시길.”
“그렇군요.”
“물론 데자와나 만들어내는 것이 무슨 큰 해가 되겠냐만은,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내가 이 능력을 어떻게 쓰면 문제가 될지 생각해보았다. 신은 내 표정만 보고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가령 어마어마한 수의 데자와 같은 것을 생각해버린다거나 할 수도 있잖아요?”
“그게 큰 문제가 되나요?”
“되죠. 예를 들어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 수만큼의 데자와를 만들어내면, 지구가 펑하고 터져 버릴 테니까요.”
그 정도까지 생각해보지는 못했지만 과연 듣고 보니 그럴 것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 전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었던 능력이었다. 나는 어쩌면 데자와를 과소평가 했던 것일까.

신은 내 능력을 회수한 뒤, 처음 만났던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져버렸다. 손바닥을 펴고 데자와를 떠올려 보았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폭우로 인해 이륙이 지연된 것을 사과하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빗줄기가 많이 약해져 있었고, 이마저도 비행기가 성층권에 진입하면 말끔해질 터였다. 승객들은 하나 같이 축 늘어져서 이륙을 기다렸고, 기내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했다.

……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승무원이 나를 깨우고 있었다. 손님, 음료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뭘로 드릴까요? 나는 승무원의 말에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데자와는 없나요, 하고 물었다. 승무원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는지 다시 물었다. 데자와요. 홍차의 향이 나면서도, 우유의 부드러움이 입안을 달달하게 만들어 주는 음료수. 승무원은 당황스런 눈빛으로 나에게 다른 음료를 권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받지 않고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이런 날은 데자와 한 캔이 무척 힘이 되는데. 공항에서 그 생각을 했을 때, 바로 마시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뉴욕까지는 아직 열세 시간이 남아있었다.

-끝-

* 수상자 열 명의 작품이 모두 실린 <제3회 아코디언북 짧은소설 프로젝트> 수상작품집은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dimfgogo@gmail.com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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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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