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급제기담
김성우
어떤 일들은 과정을 모두 거친 후에야 그 의미를 드러낸다. 나에게는 20대 후반에 겪은 일들이 그랬다. 그때 나는 세상의 일부가 되고자 했다.
내가 총무로 있던 낡은 독서실은 시설에 비해 장사가 되는 곳이었다. 가끔 들를 때마다 날 붙들고 재산 자랑을 하던 나이든 건물주가 오래된 건물 꼭대기에 욕심 없이 하는 일이라 다른 곳에 비해 쌌고, 노인네 고집 덕에 청결하게 관리된 내부는 철지난 고즈넉함이 있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남자 화장실의 변기뿐이었는데, 이상하게 주인은 그 변기와 총무 월급에만 매우 인색했다.
그 날도 난 고장 난 변기를 뚫고 있었다. 몇 번씩 반복되는 그 일을 하다보면 굳이 말을 안 섞어도 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을 접하게 되는데, 걔 중 몇과는 점심을 같이 먹을 정도로 친해지게 된다. 세상 끝에 제 발로 와놓고도 어떻게든 거기서 탈출을 하고파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모순들이 모인 곳이라 대충 자기 짜증만 통제해도, 담배 한 대면 금방 유대감이 쌓이고 통성명을 하게 되니까. 대기업을 다니다 행정 고시를 준비하던 ‘형님’을 중심으로 비슷한 또래에 9급 공시생 ‘박’과 ‘채’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무리를 이뤘는데, 모두 내가 똥 한 번씩 치워준 치들로 끼니때마다 내 근무지인 총무실에 모여 같이 밥을 먹었고, 각자 칸막이에 막혀있던 공백을 수다로 채우곤 했다. 어쨌든 그날도 박 대신 변기 물을 내려준 나는 고무장갑을 낀 김에 재떨이마저 치우려 흡연실로 쓰이던 계단참까지 나아갔다가 거기서 ‘형님’이 어떤 여성과 통성명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채’의 소개로 이 독서실에 왔다는 그녀는 나이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고 7급을 준비한다고 했다. 흰 피부에 웃을 때 눈매가 가늘게 예쁜 모양을 만드는 것이 이런 곳 아니면 꽤 인기를 끌 타입이었다. 내 뒤로 수고했다며 담배 한 대를 물려주러온 박이 그녀를 보고 아는 척을 하자 분위기는 금방 불이 붙었다. 아직 각자 시험이 두 달 이상 남아 있던 터였다.
내가 그날의 대화를 기억하는 것은 혹여 냄새가 남았을까 계속 킁킁대느라 경쟁에서 밀려난 나를 제외한 세 명의 수컷들이 그녀에게 알랑대던 게 눈꼴 시려서만은 절대로 아니다. 물론 ‘형님’의 은근한 학벌자랑과 ‘채’의 신세한탄, ‘박’의 이기적인 성격 등을 뻔히 아는 나로서는 평소와는 다른 그네들이 거슬렀지만, 정작 내 기억에 남은 것은 그녀의 학창시절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첫 만남에서 감자탕 집까지 이어진 긴 수다에서 나온 많은 말 중 하나다. 그녀는 그때도 이 독서실에 등록한 적이 있노라 말했다.
오래전, 그녀가 다니던 여학교에서 갑자기 아이들이 사라지는 일들이 연달아 발생했는데, 각 건이 연관이 없고, 기간도 겹치질 않아 금방 잊혀져갔지만, 그녀만은 그 일을 여태 간직하고 있었다. 사라진 학생들 모두 독서실에서 본 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던 소영이었다. 소영은 당시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어하던 그녀에게 유일한 안식처였고, 까칠한 그녀를 매일 독서실로 이끌던 착하디착한 애였다.
둘은 비밀이 없는 사이였다. 그 고백을 듣기 전까지는.
“자꾸 토끼가 나타나..”
그녀는 기억했다. 소영에게는 꽤 오랫동안 키우던 애완 토끼가 있었는데, 얼마 전 갑자기 빳빳하게 굳은 채 발견돼 친구가 울먹였던 걸. 그래서?
문제는 그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몇 달 전 갑자기 사라진 아이가 없어지기 직전, 독서실에서 중학교 동창인 소영을 만나 똑같은 말을 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 애도 토끼를 보았는데, 그게 자꾸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화장실로 인도하더란다.
“독서실에서?”
“그 애만 사라진 것이 아니야. 우리학교에서 사라진 아이들 다.. 여기 있었어.”
소녀들은 한참 그 괴담을 나누었다. 소영은 상상이 부푼 것인지, 진짜 있던 일인지 구별 못하겠다는 듯 들떠 말을 이었다. 토끼를 따라가면 왠지 바라는 게 이루어질 것 같았다고.
“절대 따라가지 마.”
놀랍게도 소영이 역시 얼마 뒤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시기에 놓인 그녀지만 어린 시절 친구의 실종은 큰 상실이었다. 그녀는 친구의 은밀한 소원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소영은 연예인, 특히 배우가 되고파 했다. 부모 몰래 연극영화과에 지원할 계획도 같이 세워보고 했을 정도로. 그러다 몇 년 전, 그녀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남자들의 눈요깃감으로 소비되는 사진 속 반라의 모델에게서 옛 친구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 후 그녀는 몇 달간 집착적으로 그 모델을 찾아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상하게도 대학시절 내내 따라붙던 공허에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 보았건만..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멍청한 남자들은 결국 혼자서 같은 장소로 돌아온 그녀의 미묘한 감정을 읽어내지 못했다. 곧 잘 될 거라는 응원이나 합격만하면 바뀔 자신의 처지, 아니면 자신도 토끼를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농담 등으로 술잔을 비웠다. 그녀는 남자들의 관심을 즐길 줄 알았다. 그녀의 눈웃음에 남자들은 점점 더 유쾌해져 갔다. 어쩌면 그들이 맞았을지 모른다. 그녀는 얼마 전 자기 엄마한테 들은 말로 친구 이야기를 끝냈는데, 알아보니 소영이네 아버지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이 망하면서 그 가족이 야반도주했더라는 식이었다. 그쯤 되니 그녀 말이 진심인지, 술자리를 위한 양념이었는지 헷갈렸다. 소녀들은 왜 그런 이상한 이야기에 자기불안을 내던질까? 그때 박이 심각하게 말했다. 자기 역시 토끼를 본적이 있다고.
그 토끼는 불을 빌려달라고 했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진한 화장. 독서실 건물 1층에 입점한 핸드폰 판매점에서 홍보를 위해 고용한 그 나레이터 모델은 단발머리에, 토끼귀가 달린 머리띠를 쓰고 독서실 계단참에서 담배를 물고 있었다. 마침 1층 화장실에 배수문제가 생기자 건물주가 임시로 독서실 화장실을 개방했고, 그래서 거기까지 올라온 것이다.
먼저 말을 건건 그 나레이터 모델이었다. 박은 개업 집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음에 짜증이 나있는 상태였다.
“예전에 우리 본 적 있죠?”
“예? 누구시더라?”
“초등학교 동창이랑 닮았는데, 혹시 이름이?”
박은 잠시 망설이다 불을 붙여주고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뒤 열람실로 들어가 버렸다. 토끼 귀라니.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그 여자 다시 보고 싶네. 고친 티는 많이 났지만, 진짜 연예인처럼 예뻤는데.”
“그럼 소원으로 빌어. 토끼를 봤잖아? 혹시 알아?”
“소원? 하하.. 알았어. 다시 그 나레이터 모델을 만나게 해주시고, 알고 보니 초등학교 동창이 맞게 해주시고, 아니 아예 첫사랑으로 해주소서.”
거기 모여 있던 모두는 박의 어처구니없는 바람에 웃음을 터뜨렸다. 나만 빼고. 나는 다시 총무실로 돌아가 봐야 했다. 어차피 카드로 입출입이 관리되는데다, 주인도 여행 중이었지만, 그래. 누군가 새로 등록하러 올지 모르고, 문단속 정돈 제때 해주는 게 내 역할이 맞으니까. 여럿의 눈총에 내가 일어서자 그들은 자리를 옮겼다.
혼자 독서실로 올라오면서 나는 사라져 버린 친구에 대해 그녀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계속 되뇌었다. 사실 나는 그녀를 위로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내가 그녀를 향한 본능을 숨기질 못 하는 다른 남자들과 얼마나 다른지 알려주고 싶었다. 기실 그들과 나 사이에 큰 차이는 없었다. 어두운 열람실에 들어가 그들이 그대로 켜놓고 간 불들을 하나씩 소등하면서, 난 나도 토끼를 만나고 싶다고 중얼댔다. 소원으론 더 이상 남자화장실 변기가 막히지 않게 해달라고 빌 것이다. 그럼 난 어디로 사라지지?
자취방에 돌아와 언제나 그렇듯 tv를 틀어 빈 방을 메꾼 뒤, 난 화면이 쏘아내는 불빛에 잠이 들면서 거듭된 실패와 고립에 지쳐버린 나를 향해 속삭였다. 누구의 배설도 치워줄 의무가 없는 세계로 가라고. 그럼 그녀도 널 좋아할 거라고. tv에선 하필 이젠 지루할 정도로 많이 방영되었던 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곧 주인공 네오는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는 명령을 따른 뒤 빨간약과 파란약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얼른 매트릭스에서 벗어나시라고. 메시아여.
그 독서실에서 제일 먼저 사라진 건 그녀였다. 그녀는 독서실에 나온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아 원하던 7급 시험에 합격했다. 그 다음으로 ‘채’가 사라졌다. 그를 포함한 우리들 모두는 또다시 시험에 실패했다. 합격자발표가 있고 한참 지나, 무슨 영문인지 채와 다퉈 독서실을 옮겼던 박에게서 한잔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땐 ‘형님’도 공부하러 나오지 않던 시기였다.
“채가 죽었어.”
자살이었다. 거창하게 우정이랄 것까진 없었지만, 어쨌든 고향을 떠나 혼자 고학하던 내게 온기를 주던 이인데다 자꾸 내 처지가 이입이 되어 마음이 매우 안 좋았다. 결국 박도 나도 장례도 모르고 지나갈 만큼 먼 사이였다지만. 그녀는 장례식에는 갔을까? 그녀는 연락이 안 된지 꽤 된다고 한다.
“형님은?”
“그게.. 내가 9급 합격자 명단을 봤는데, 그 형 이름이 있더라고. 흔치 않은 이름이잖아?”
고시낭인 생활에 지쳤겠지. 일단 어디든 들어가야 할 상황이기도 했고. 지금 누가 누굴 위로 하나? 박은 계속 술잔을 넘겼다. 우리는 취하기 위해 시답잖은 세상사와 떠난 사람들 얘기를 거듭했다.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진 박이 말했다.
“나 그 여자 봤다.”
“누구요? 7급?”
“아니. 토끼 귀”
시험이 끝나고 머리 식히러 갔던 바닷가에서 박은 정말로 그 나레이터 모델을 다시 만났다. 토끼 귀 대신 머리를 길렀는데, 담배를 끊어선지 표정이 달라 보였다고.
“그녀 이름이 뭔지 알아? 소영이야. 기막힌 우연이지?”
놀라운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그와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둘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녀에겐 이미 고급 호텔을 잡아준 애인이 있었다.
“진짜로 소원이 이뤄질 줄 알았다면 좀 더 좋은 걸 빌어볼 걸 그랬어. 로또 당첨 같은 거.”
독서실 문 닫을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난 뒤였다. 모두 빠져나간 그곳은 총무실을 제외하고 전부 어둠에 잠겨있었다.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한 나는 총무실 의자에 몸을 내던졌다. 책상 위에는 메모지가 하나 놓여있었다. 아마 새로 등록을 하러온 누군가가 맞는 이가 없자 남겨둔 것이겠지. 누가 여기 자리를 구하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내 돈 버는 일도 아닌데? 어차피 이곳은 많은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곳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탈출하거나, 실패하거나. 괴담을 쫓던 애들은 행복했다. 이제 이곳에 토끼가 나타날 확률은 없으니까. 들어오면서 로또 몇 장 산다는 걸 깜박했군. 눈을 감기 전 슬쩍 본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 하하. 하하하.. 내게도 기회가?
그리고 토끼가 나타났다.
새하얀 털을 두른 사람 팔뚝 정도 크기의 꽤 귀여운 녀석이었다. 나는 위액이 목으로 넘어오는 것을 느끼며 거듭 그 토끼를 살폈다. 토끼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박의 목소리였다.
“구토를 하려거든 화장실로 가지 그래?”
“안 돼. 거긴 자주 막혀.”
“고집은.. 날 따라와.”
“난..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어.”
“쉽고도 어려운 일이네.”
나는 토끼를 따라갔다. 소녀들의 말이 맞았다. 놈은 나를 화장실로 인도했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뭐?”
“영화 안 봤어? 네가 볼일을 보고 이 파란 화장지로 닦으면, 다시 저 사무실에서 독서실 총무로 깨어나는 거야. 그리고 이 빨간색 휴지를 사용하면.. 그럼 엄청 멋진 일이 벌어지지.”
머리가 어지럽다. 선택을 해야 한다. 탈출 아니면 실패니까.
“오케이 알았어. 근데.. 꼭 싸야 돼?”
“물론”
난 억지로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빨간 휴지를 골라 뒤처리를 한 뒤, 질끈 물을 내렸다. 아! 그 순간 내 몸이 물과 함께 저 바닥을 향해 쭉 빨린 후 긴 터널을 통과했다. 토끼를 만나니 이렇게 한방에! 믿으라. 나는 자본으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매트릭스에서 유일한 희망이자 구원인 로또 볼링공으로 다시 태어났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구르고 있다. 숫자를 몸에 새긴 채로. 어느 날 사라진 당신 친구들처럼. 이것은 괴담이 아니다. 어떤 구원에 관한 기록이다.
-끝-
* 수상자 열 명의 작품이 모두 실린 <제3회 아코디언북 짧은소설 프로젝트> 수상작품집은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dimfgogo@gmail.com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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