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짧은소설 프로젝트 당선작](6) 인면창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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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면창 

인구완


  상원사의 양우스님에게는 큰 우환이 하나 있었다. 며칠 전 왼쪽 팔꿈치에 생긴 부스럼이 바로 그것이었다. 
  부스럼은 점점 커지더니 어느 순간 굵은 밤톨만 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스럼은 말도 하였다. 좌중에서 번번이 고함을 내지르는 통에 양우스님은 곤혹스러웠다. 
  견디다 못한 스님은 스승인 곡암선사를 찾아갔다. 곡암선사는 제자의 환부를 보더니 대번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척신이 들어앉아 있구먼. 전세의 원혼이 찾아온 게야. 그러니 불평하지 말고 다 내 것이라 여기어 잘 달래서 보내게.”

  그날 이후, 더욱 기고만장해진 부스럼은 한시도 쉼 없이 양우스님을 괴롭혔다. 끼니때가 되면 부스럼은 말했다.
  “양우아, 배가 고파서 참을 수가 없다. 내게도 음식 공양을 좀 해 다오.”
  그러나 스님이 음식을 가져오면 부스럼은 버럭 소리쳤다.
  “이런 개차반은 네놈이나 먹어라!”
  양우스님은 하는 수 없이 다른 음식을 가져왔다. 그러면 부스럼은 또다시 말했다.
  “그런 것 말고 단 음식이 먹고 싶구나. 속히 가서 가져오너라.”
  스님이 시키는대로 하면 부스럼은 또 변덕을 부렸다.
  “단맛보다는 신맛이 더 당기는구나. 묵은지라도 꺼내 오너라.”
  결국, 양우스님은 부스럼의 비위를 맞추느라 끼니를 거르고 말았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양우스님은 선방에서 여신도와 좌선을 하고 있었다. 한창 삼매에 이르렀을 때 별안간 부스럼이 여신도를 향해 냅다 욕을 퍼부었다. 
  쌍스럽기 그지없는 욕지거리는 누가 들어도 영락없는 양우스님의 목소리였다. 양우스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른 것이 틀림없었다.
  여신도는 기가 차서 넋 나간 표정으로 스님을 쳐다보았다. 양우스님이 변명하였지만 헛수고였다. 
  그 일이 알려지자 양우스님은 뭇 중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치부를 실토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날 밤 곡암선사가 양우스님을 넌지시 불렀다. 스승과 마주 앉은 양우스님은 소매를 걷어 환부를 드러내며 말했다.
  “스승님, 소승이 우둔하여 전세의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청컨대 사리를 소상히 밝혀주시어 인과에 허덕이는 소승을 도와주소서.”
  그러자 곡암선사가 대답했다.
  “그것은 인면창이라 불리는 원귀니라. 너는 전생이 고관대작이었던바 계집종과 동침하고는 본처에게 탄로 날세라 종살이하던 아이의 입을 영원히 막아버리었지. 지금에 이르러 그 원혼이 몸에 이른 것인즉 노암사의 연못에 가서 씻어내야만 나을 수 있으리라.”
  이튿날이 되자 양우스님은 곧장 노암사로 길을 떠났다. 노암사는 백 리 밖 먼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을 걸어가던 도중 부스럼이 스님에게 말했다.
  “양우야, 어찌 나를 떼어내려 하느뇨. 나를 연모하여 사랑을 속삭일 때는 언제고 헌신짝 버리듯 또 내치려 하는구나. 내 기필코 당한 만큼 갚아 주겠으니 어디 가볼 테면 한번 가 보아라.”
  양우스님은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원망의 대상이 된 것이 몹시 슬펐다. 그렇지만 전생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스님은 그저 묵묵히 걸어갈 뿐이었다.

  원평 고개에 이르러 스님은 잠시 쉬어가고자 주막에 들렀다. 객줏집을 겸한 주막이라 그런지 봉놋방도 갖추어져 있었다. 
  양우스님은 행장을 내려놓고 장국밥 한 그릇에 허한 속을 달랬다. 스님이 몇 술이나 떴을까, 잠자코 있던 부스럼이 별안간 크게 소리쳤다.
  “이 녀석들, 두고 보아라! 머지않아 이씨가 멸하고 정도령이 계룡산을 도읍으로 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울 테니!”
  양우스님은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팔꿈치를 부여잡으며 장삼 자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곱지 않은 눈초리로 스님을 흘겨보았다. 어수선한 시국에 필시 스님이 역모를 꾀한다고 여기는 것이 틀림없었다.
  살벌한 분위기에 양우스님은 수저를 내려놓고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느닷없이 순검들이 들이닥쳤다. 순검들은 스님을 모반죄로 체포하여 포도청으로 끌고 갔다. 

  포도대장 앞에 꿇어 앉힌 양우스님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포도대장은 쉽사리 믿지 않았다. 포도대장이 말했다.
  “이것 봐! 자네가 역심을 품고 지껄인 말을 들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그런데도 계속 발뺌할 테야? 정녕 곤장에 대갈 바가지로 곤욕을 치러봐야 술술 내뱉을 작정인가? 여봐라!”
  포도대장이 계하에 늘어선 부하들을 불렀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못된 중놈이 바른 소리를 내뱉을 때까지 흠씬 두들겨주어라!”
  졸지에 곤장 쉰 대를 맞게 될 처지에 놓인 양우스님은 울며불며 하소연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염마졸처럼 생긴 옥졸이 도리매를 부여잡고 스님의 볼기를 내리치려는 찰나, 좌중에서 돌연 웬 노인이 걸어 나오며 큰 소리로 포도대장을 꾸짖었다.
  “당장 태형을 멈추도록 하시게! 저분이 누구인 줄 알고 이런 돼먹지 못한 곤욕을 치르게 하는가! 모반에 가담한 인물이 아님을 내가 장담하노니 왼쪽 팔꿈치에 자리 잡은 창병이 바로 그 증좌일세.”
  양우스님의 팔꿈치에서 부스럼을 확인한 포도대장은 하릴없이 입맛을 다시며 스님을 놓아주었다. 
  후에 양우스님은 자신을 변호하였던 면분이 없는 그 노인이 바로 관음보살의 화신임을 깨달았다.

  스님은 계속 노암사로 발길을 재촉했다. 고개 여럿을 지나 등판길에 다다르자 양우스님은 품앗이를 마치고 귀가하던 아낙을 만났다. 
  아낙은 안색이 어두운 것이 필시 우환을 안고 있는 모양새였다. 스님의 자비심은 여인네를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대하지 않았다. 
  합장하며 내막을 묻는 양우스님에게 아낙은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아들 녀석이 오랜 병고로 인하여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혈육이라고는 오직 녀석뿐이거늘 하루에도 수차례 까무러쳤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하니 어미 된 처지에서 참으로 억장이 무너질 노릇입니다.”
  양우스님은 아낙의 집으로 찾아갔다. 
  아이는 제 어머니의 말대로 병세가 위중해 보였다. 이 불우한 민가를 위해 스님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독경뿐이었다. 
  양우스님은 아이의 머리맡에 앉아 지성껏 다라니를 외웠다. 온몸이 땀과 기름으로 뒤범벅되는 줄도 모른 채 스님은 쾌차를 바라는 일념으로 주송하였다. 
  아낙은 양우스님의 정성에 몹시 감동하여 궁핍한 세간에도 스님의 요깃거리와 잠자리를 남부럽지 않게 마련하였다.

  밤이 깊어 양우스님은 침소에 몸을 뉘었다. 스님은 곧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바로 그때, 종일 잠자코 있던 부스럼이 또 무슨 꿍꿍이속인지 양우스님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크게 소리쳤다.
  “쇠찌끼를 냉수에 섞어 마시게 하라! 그리하면 씻은 듯이 나으리라!”
  그 소리에 아낙은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고 날이 밝자마자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손에 넣은 쇠찌기를 바로 냉수에 섞어 아들의 입속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어린 병자는 어미의 바람과는 달리 심한 발작을 일으키며 객혈하더니 이내 맥없이 죽어버렸다. 
  급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에 아낙은 몹시 경황하여 대성통곡하였다. 이 사달을 양우스님의 탓으로 여기어 분개한 나머지 아낙은 스님을 관아에 고발하였다. 
  그리하여 양우스님은 영문도 모른 채 옥사에 갇히고 말았다.

  그날 밤, 옥사쟁이가 잠시 한눈판 틈을 타 한 노옹이 스님 앞에 나타났다. 
  창살을 사이에 두고 양우스님을 부른 그 사람은 놀랍게도 전날 포도청에서 위기를 모면하게 도와준 바로 그 노인이었다. 
  스님은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관음보살이시여, 소승 억울하나이다. 부디 고초에서 벗어날 방도를 일러주시기 바라옵나이다.”
  그러자 노옹이 대답했다.
  “대장부여, 일어나라. 내 어찌 일의 진면모를 모르겠는가. 험한 난국에 그대가 참으로 고생이 많음이로다. 이제 내가 돌아가거든 옥졸을 통하여 죽은 아이에게 생지황 즙을 먹이라 전하라. 그리하면 그대의 혐의도 풀리고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니라.”
  양우스님은 관음보살의 가르침대로 행하였다. 갱생한 아이는 병마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으니 아낙은 진실로 참회하며 고마워했다.

  옥사에서 풀려난 양우스님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다. 불경을 외며 걸어가던 도중 부스럼이 스님에게 말했다.
  “양우야, 내가 졌다. 관음의 보우를 받는 너를 무슨 수로 이기겠느냐. 맺힌 한을 내려놓고 네게서 떠나겠으니 이제 그만 상원사로 돌아가도록 하여라.”
  부스럼의 말에 양우스님은 소매를 걷어 팔꿈치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정말 창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원귀가 떠나갔으니 더는 노암사로 갈 이유가 없어졌다. 그렇지만 스님은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노암사로 가는 것이 꼭 영가천도를 위해서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 길을 나설 당시만 해도 양우스님은 오로지 그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난국을 헤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수도의 과정이라고 스님은 여기었다.
  척신이 물러간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양우스님의 마음이 그와 같이 바뀌었기 때문에 스님은 노암사의 연못에 멀쩡한 팔을 담글지언정 결코 행보를 멈출 수가 없었다.

  죽성골에 다다르자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마저 내리시기 시작했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에 양우스님은 민가를 기웃거리며 신세 질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우중에서 웬 여인이 스님의 손을 덥석 부여잡으며 제집으로 가기를 간청했다. 여인은 말했다.
  “스님, 얼른 저의 집으로 가시지요. 옷이 다 젖기 전에 어서요!”
  그리하여 양우스님은 부녀자의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밤이 깊어 소등하고 잠을 청하는데 별안간 창호지 문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양우스님이 놀라 바라보니 여인이 망측한 옷차림새로 방 안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스님에게 달려들었다. 양우스님은 부녀자를 밀쳐내며 크게 경을 쳤다.
  “이것이 대체 무슨 짓이오! 불가에 귀의한 몸을 상대로 어찌 이런 해괴한 짓을 벌이려 하는 것이오! 인두겁을 쓴 금수가 아니라면 예서 썩 나가시오!”

  아무 실속도 없이 면박을 당한 여인은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제 옷을 제 손으로 찢고 제 머리카락을 스스로 헝클어뜨렸다. 
  여인은 외마디 비명을 내질러 온 집안 식구를 한곳에 모이게 하였다. 그러고는 중인소시에 양우스님을 가리키며 스님이 자신을 겁간하려 했다고 떠들어댔다.
  양우스님이 아무리 결백을 주장하여도 여인의 집안 식구들은 조금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부녀자의 지아비 되는 인사가 스님을 패대기치며 고래고래 욕을 퍼부었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몹쓸 중놈 같으니!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짐승도 거두어주면 마땅히 보은하거늘 하물며 사람의 낯짝으로 여염집 마누라를 겁탈하려 해? 그것도 머리 깎은 중놈이!”
  그는 밤새도록 양우스님을 구타하여 마당은 스님의 유혈로 낭자해졌다.

  이튿날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양우스님은 다시 발길을 재촉하였다. 그런데 전날 부스럼이 났던 자리가 급작스레 아파지더니 급기야 인면창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양우야, 너의 꼴을 좀 보아라. 가련하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구나. 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고집을 피우더니 잘코사니로다. 아주 쌤통이로세.”
  양우스님은 그제야 민가에서 당한 일이 원귀의 소행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인면창의 꾐에 보기 좋게 당한 것은 분명 자탄할 일이었지만, 하루속히 노암사로 가야 할 명분이 전처럼 뚜렷해진 것 또한 자명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나자 양우스님은 마침내 노암사에 다다랐다. 주지와 대면하여 합장한 뒤 찾아온 이유를 소상히 밝히자 주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노암사에는 연못이 없사오이다. 대신 못 연(淵) 자를 써서 연원전이라 불리는 불전이 있다오. 지금 한창 중수 중인데 마침 장정들이 부족하여 일손이 달리던 판국이었으니 힘을 좀 보태주시겠소?”
  노암사 주지의 청에 양우스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스님은 뙤약볕 아래 팔을 걷어붙이고 연신 석재를 나르며 군소리 한 번 없이 일손을 보탰다. 
  그러던 중 별안간 양우스님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들이닥쳤다. 
  용마루에 올라 지붕을 보수하던 한 승려가 실수로 그만 커다란 석재를 아래로 떨어뜨렸는데, 공교롭게도 그 아래에 양우스님이 서 있었던 것이었다.

  석재가 떨어지는 것을 알아차린 양우스님은 본능적으로 팔꿈치를 끌어안으며 허리를 숙였다. 
  그 바람에 스님은 급소를 크게 다쳐 의식을 잃고 말았지만, 팔꿈치의 부스럼만은 털끝만큼도 해를 입지 않았다. 
  혼절한 중에 인면창이 전생의 육신을 입고 양우스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혼령은 원망과 노기가 걷혀 편안한 낯빛으로 스님에게 말했다.
  “양우아, 남아있던 업장을 방금 몸으로 다 닦아냈으니 더는 네게 미련이 없음이로다. 이제야말로 맺힌 원을 풀고 진정 영계로 가노니 부디 수행에 정진하여 성불토록 하시게.”

  양우스님은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며 두 눈을 번쩍 떴다. 
  뭇 중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가운데 스님은 팔꿈치의 매끄러운 살결을 어루만지며 방긋이 웃음 지었다.

-끝-


* 수상자 열 명의 작품이 모두 실린 <제3회 아코디언북 짧은소설 프로젝트> 수상작품집은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dimfgogo@gmail.com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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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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