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짧은소설 프로젝트 당선작](8) 멸치 어부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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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어부


김준희

멸치 어부에게는 늘 유화 냄새가 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기름 냄새였다. 텁텁하고 알싸한 냄새. 나는 멸치 어부의 냄새를 맡을 때마다 추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냄새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나와 사촌들은 그를 멸치 어부라고 불렀다. 막내 삼촌이 멸치 어부로 불리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어릴 적 우리들이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어김없이 멸치 어부 이야기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멸치 어부 이야기는 언제나 단순했다. 

멸치 어부가 꿈을 꿨는데,
배에 멸치가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끝없이 멸치를 세면서 나와 사촌들의 배를 간질이는 게 멸치 어부 이야기의 전부였다. 간지러워 죽겠다고 항복 아닌 항복을 해야만 멸치 이야기가 끝났다. 우린 별 내용 없는 그 이야기를 매번 재밌어했다. 
멸치 어부는 할머니와 살았다. 그들이 사는 곳은 흔히 말하는 달동네였다. 그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일 층을 넘지 못했다. 이상하리만큼 언덕이 높았고 가파른 오르막길에 집들이 세워져 있었다. 스무 살의 나는 촌스러운 그 동네를 뻔질나게 다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으나 멸치 어부의 그림이 보고 싶었다.  
멸치 어부의 방에는 유화가 가득했다. 유화 못지않게 신문지도 많았다. 신문지는 유화를 덮어두는 용도였다. 흑백 신문지를 들춰내면 회색 그림이 나타났다. 멸치 어부의 그림들은 전부 회색 바탕이었다. 회색도 흰색에 가까운 회색이 있고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이 있기 마련인데, 그의 회색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온전한 회색이었다. 회색 스펙트럼 한가운데에 놓인 듯한 그 회색이 나는 좋았다. 
멸치 어부의 그림은 풍경화가 많았다. 캔버스 안에는 도로와 집들이 그려져 있었다. 집들은 하나 같이 네모였고 지붕은 세모 아니면 사다리꼴이었다. 고만고만한 집들 사이에는 가로등이 서 있거나 나무가 놓여있었다. 입김이 나오는 겨울날에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춥고 흐린 날씨의 그림이었다. 
나는 멸치 어부의 그림을 보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귀찮다며 거절했지만 내가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알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 저녁, 멸치 어부의 미술 수업이 시작됐다. 내가 그에게 들은 수업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가장 먼저 소주를 마셔라.
멸치 어부의 방구석 한편에는 초록색 소주병들이 있었다. 그는 소주를 마시는 일이 미술 활동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소주를 마셔야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나. 그 순간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그는 유명한 예술가들은 모두 술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 예시로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를 했는데, 결론은 정신이 혼미할수록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장난해? 술 마셔서 취한 거랑 반 고흐랑 같아?”
“미친 척이라도 해보자는 거지.” 
 내 생각은 달랐다. 맑고 또렷한 정신 상태여야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첫 번째 가르침은 없던 것처럼 넘어갔다.

둘째, 왼손으로 그려라.
멸치 어부는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왼손의 느낌과 오른손의 느낌이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왼손이 그리고 싶은 것과 오른손이 그리고 싶은 게 다르다고 설명했다. 멸치 어부의 수업에는 논리가 없었다. 그가 시키는 대로 왼손으로 연필을 잡았다. 막상 그림을 그리려니 무엇을 그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고민 끝에 멸치 어부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로 했다. 방에 있는 그림 중 똑같이 그리기에 만만한 그림을 골랐다. 
멸치 어부의 그림들은 누구든지 따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달리 왼손은 더디게 움직였다. 왼손으로 이름을 쓴 적은 있어도 그림을 그린 경험은 없었다.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선이 비뚤어지기 일쑤였고 오히려 비스듬히 앉아 끄적이면 잘 그려졌다. 엉성한 그림이 완성됐다. 
“여기 있는 그림들 전부 왼손으로 그렸어?”
“아니.”
자기도 오른손으로 그려놓고 왜 나한테는 왼손으로 그리라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셋째, 냄새나는 기름을 사용해라.
멸치 어부는 유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기름이라고 했다. 린시드, 테레빈 등 유화에 사용되는 기름 종류를 설명했다. 그가 설명해준 기름들의 이름은 생소했어도 냄새는 익숙했다. 익숙함도 잠시 기름 냄새를 오래 맡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졌다.
“굳이 기름 사용해 가면서 유화를 그려야 하는 이유가 있나?”
“화가는 기름 냄새도 좀 풍길 줄 알아야 해.”
“내가 맡기엔 궁색한 냄새야.”
“냄새 안 나는 기름도 팔아. 비싸서 그렇지.”
“그거 뭐 얼마 차이 난다고. 그냥 냄새 안 나는 기름 쓰면 안 되나?”
“네가 잘 모르나 본데, 기름 냄새를 맡으면 그림이 더 잘 그려져. 유화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고.”
멸치 어부는 기름 냄새의 중요성을 알려주려고 했다. 그는 기름 냄새는 유화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포기할 수 없는 요소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멸치 어부가 의외로 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후에 알게 됐지만 기름 냄새야말로 멸치 어부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체면이었다. 

넷째, 진정한 색을 찾아라.
색깔 수업은 내가 가장 고대하던 시간이었다. 나는 그의 회색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었다. 회색 물감을 산 것인지, 검은색과 흰색을 섞어 만든 건지, 회색 물감에 다른 색을 섞었는지. 회색에 대한 멸치 어부의 설명은 간단명료했다.
“자 봐. 검은색이랑 흰색이랑 대충 이 정도 섞으면 회색이 나오잖아.”
“용량이나, 비율이나 뭐 그런 게 있을 거 아냐.”
“없어. 딱 보면 알아.”
“눈 대강으로 하면 매번 다른 색이 나오잖아.”
“먼저 머릿속으로 색을 떠올리고 그 색이 나올 때까지 물감을 섞어.”
멸치 어부는 아무렇지 않게 검은색과 흰색 물감을 나한테 내밀었다. 반신반의로 흰색을 짜고 그 옆에 검은색을 짰다. 색을 열심히 섞자 검은 회색이 나왔다. 흰색을 추가하자 검은색을 조금 더 넣어야 할 것 같은 회색이 나왔다. 왼손으로 그림 그리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능숙해졌지만 회색 만들기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멸치 어부의 수업을 들은 지 세 달 정도 지났을까. 방학이 끝나고 나는 대학교 2학년이 됐다. 연애, 아르바이트, 공부 등의 핑계가 생겼고 멸치 어부의 미술 수업을 슬슬 빠졌다. 수업 횟수가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수업이 끝났다.  
오랜만에 그 동네를 찾아갔을 땐 가족과 함께였다. 추석이었다. 멸치 어부의 방에 들어가 그가 그린 새로운 그림들을 구경했다. 멸치 어부는 명절에도 밖을 쏘다니다가 가족들이 저녁을 먹을 때쯤에서야 집으로 왔다.
할머니가 소리쳤다. 
“또 데모 갔다 오냐!”
멸치 어부는 달동네 주민 중에서도 젊은 편에 속했다. 그는 무리를 지어서, 할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데모를 했다. 달동네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한 일이었다. 가족들은 옆 동네에 있는 작은 빌라라도 들어가라고 했고, 멸치 어부는 화를 냈다.
아빠를 비롯한 형제들이 멸치 어부에게 말했다.
“청춘이야 아주.”
멸치 어부의 그림은 돈이 되지 않았다. 타인에겐 보잘것없는 그림이었다. 그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찍 죽어버렸다. 그래도 어쨌든 아직은 나보다 많이 살고 죽은 거지만, 그는 나의 대학 졸업식에 오지 못했다. 사촌 언니의 딸을 안아보지 못했다. 다 늙은 할머니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걸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었다며, 살아서도 죽어서도 불효자라고 했다. 멸치 어부에 대한 욕은 생사를 넘나들며 이어졌다.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멸치 어부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는 병약해 보였지만 건강했다. 누군가에게 살인을 당할 만큼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차라리 술 먹고 사고라도 당했다면 그의 잘못으로 인해 그가 죽었구나 싶었을 거다. 그러나 멸치 어부는 그런 게 아녔다. 심장마비였다. 평소처럼 밤이 왔고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을 뿐인데 그가 죽었다. 장례식 구석에 앉아 그가 그린 그림들을 떠올렸지만 결국엔 ‘멸치 어부의 그림은 누가 처리하지’였다. 
멸치 어부가 생전에 나와 약속한 말이 떠올랐다. 내가 시집갈 나이가 되면 선물로 그림을 하나 준다고 했다. 그림을 팔면, 집 한 채도 살 수 있는 부자가 될 거라면서. 멸치 어부는 선심 쓰듯 가족들에게도 그림을 주겠다고 했으나 가족들은 됐다고 했다.
관이 열리고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파랬다. 파랗다 못해 보라색이었다. 그의 죽은 얼굴을 보고 있자 판잣집에 쌓여있는 회색 그림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쩌면 그 그림들을 평생 잊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멸치 어부가 죽고 설이 왔다. 가족들은 거실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어른들 몰래 멸치 어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은 여전했다. 텁텁한 유화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그림들도 그대로 놓여있다. 할머니는 굳이 방을 치우지 않았다. 가족들도 할머니를 재촉하지 않았다. 
나는 그림을 하나 챙기고 싶었다. 방 안의 캔버스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회색 바탕에 조촐한 모양의 집들이 즐비한 그림들뿐이었다. 크기만 다를 뿐 모두 비슷했다. 한참을 둘러봤지만 끝내 그림을 고르지 못했다. 신문지 한 장을 집어 들어 책상 앞에 앉았다. 서랍에서 펜을 꺼내 책상 옆에 있던 그림을 신문지로 옮겼다. 캔버스를 바라보다가 신문지에 선을 긋고, 다시 그림을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뭐해 어서 왼손으로 그리지 않고?’
멸치 어부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제는 그의 새로운 그림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못 견디도록 슬펐다. 그의 유골을 안치하는 순간에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신문지 위로 떨어졌다.

-끝-

* 수상자 열 명의 작품이 모두 실린 <제3회 아코디언북 짧은소설 프로젝트> 수상작품집은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dimfgogo@gmail.com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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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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