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짧은소설 프로젝트 당선작](9) 좋은 사람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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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김완수

“초라한 개의 눈 같은 내 눈에는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나 보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스티브 매퀸

  나는 룸펜이다. 초라한 삶이지만, 나이 사십을 훌쩍 넘기다 보니 어느덧 룸펜 생활에 적응해 있다. 지금 비록 연로한 어머니에게 얹혀사는 신세여도 일말의 양심은 갖고 있다. 내가 무기력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기에. 삶이 핍진해진 뒤로 나는 본의 아니게 운둔자가 됐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흔히 사회 부적응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눈으로 본 기준 아닌가. 사람들은 내가 예민하고 괴팍하다고 하나 나는 그런 말 역시 개의치 않는다. 아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겐 더 이상 사회화할 능력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식수로 쓰는 지하수를 뜨기 위해 동네 뒷산을 매일 오르다시피 한다. 그것은 내가 나뭇짐을 꾸려 오듯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어쩌면 나는 산에서 고립된 삶을 훈련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산에서는 개들을 다른 짐승보다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개들은 어디서나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하지만 나는 개들을 보면 부끄럽고 무서웠다. 개들을 일부러 피해 다녔고, 개들과 마주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목덜미가 움츠러들었다. 빚쟁이를 보는 것 같았다. 

  노는 사람에게 평일과 주말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지만, 특히 오늘 같은 주말에 뒷산을 오를 땐 개들을 조심해야 했다. 개들이 언제 사람을 데리고 불쑥 나타나 나를 조롱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개들의 활보는 내가 마치 목줄에 매인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임무를 소홀히 할 순 없었다. 산을 오르는 것은 내가 존재감을 느끼는 일이기도 했다. 오늘도 숲길을 가는 동안 개들을 만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할 때, 내 앞에서 마주 오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았다. 아주머니의 품엔 작은 요크셔테리어가 안겨 있었다. 봄날인데도 나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진땀이 삐질삐질 났다. 어렵사리 발을 떼며 아주머니를 피해 가자 아주머니가 나를 흘깃 쳐다봤다. 개도 나를 보더니 이빨을 드러내며 짖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설 때, 아주머니가 개를 달랬다. 개가 멀어지고, 숲에서 혼자가 될 때서야 안심이 됐다. 그런데 그때 왼편의 편백숲에서 까치들이 요란하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곧 가까이에서 의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여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내 숲이 조용해졌다. 그때였다. 갑자기 숲에서 뭔가 누런 짐승이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내게 달려들었다. 고라니 같았다. 고라니가 내 다리를 물어뜯고는 숲으로 사라졌다.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고라니의 행방을 찾고 싶었으나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마취된 것처럼 정신도 서서히 무뎌져 갔다.

  나는 내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염려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보니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꿈을 꾼 기분이었다.
  “이제 정신이 드니? 에미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제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예요?”
  나는 지난 일이 어렴풋했다.
  “네 비명을 들은 등산객이 너를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렀다는데, 기억 안 나?”
  나는 병원에 아닌 집에 있는 게 궁금했다. 어머니가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
  “의사 말로는 들개에게 물린 것 같다는구나. 그래도 다행히 크게 물리진 않아 광견병 주사만 맞고 퇴원한 거야.”
  개에게 물렸다는 말을 들으니 내 자신이 더 초라했다. 나는 물린 상처를 보고 싶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를 말렸다.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몸을 누였다.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네가 개에게 물렸는지 모르겠다. 참 재수도 없지. 이젠 산에 가지 말고 집에만 있어.”
  어머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머니는 자식이 걱정돼 한 말이겠지만,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어머니 말이 족쇄처럼 느껴졌다. 
  “벌받은 거죠. 그 개가 사람을 알아봤나 봐요.”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니? 그냥 액땜했다 생각해. 너는 좋은 사람이니까 마음의 병이 나으면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 거야.”
  어머니가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어쩌다 만나는 사람에게서도 좋은 사람 같다는 말을 들었으나 나는 그게 공치사처럼 들렸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얼마나 상투적이고 무책임한 말인가.

  한 번은 내가 마지막 수의학회 학술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타지에 간 일이 있었다. 낯선 곳의 터미널에서 내려 세미나가 열리는 대학을 찾아가는데, 길에서 마주 오던 두 사람이 갑자기 내게 달려든 적 있었다. 젊은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은 내 앞을 가로막더니 좋은 사람 같다며 지난한 삶의 돌파구를 찾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특정 종교 단체의 뻔한 포교법이란 건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당시 내 삶은 지난한 게 사실이었다. 떠올리기 싫었지만, 나는 여자들 덕에 길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내 삶을 변화시킨 일을 새삼 반추할 수 있었다. 

  내가 수의대를 졸업하고 수의사 면허 시험에 합격해 동물병원 인턴으로 근무할 때였다. 야간 근무를 설 때면 응급실 못지않게 별의별 사고를 당한 동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어느 날은 젊은 여자와 함께 온 골든 리트리버가 유독 내 주의를 끌었다. 주인 말로는 개를 매일 산책시켰는데, 언제부턴가 성격이 예민해지더니 시름시름 앓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본 골든 리트리버는 주인 말대로 더 이상 성격 좋은 개가 아니었다. 낯선 환경에 경계심이 들었는지 개는 눈을 사납게 굴리며 한동안 산만하게 복도를 오갔다. 개는 이따금씩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한구석에 털썩 주저앉더니 나를 응시했다. 동물들이 밀려들어 정신없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개의 눈길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돌아서려 할 때, 개의 소리도 함께 들렸다. 
  “우리 아픔을 치료한다고? 웃기지 마! 우리는 당신들보다 훨씬 더 외롭고 고통스러워. 우리 마음이 아플 거라곤 왜 생각 못 하는 거지?”
  애니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게 닥치니 믿기지 않았다. 동물들을 하도 많이 봐서 내게 조현병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개는 내 바쁜 사정을 봐주듯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개는 다음 날에 죽고 말았다. 나는 개와의 교감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개의 소리가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얘기해 봤자 정신병자라는 소리를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개가 내게 한 말을 떨치려 했으나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개의 소리를 부정할수록 소리는 더 똑똑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동물 병원에 있으면 미칠 것 같았다. 우려는 현실이 돼 그날 이후 나는 심각한 공황 장애를 앓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개였는데, 개만 보면 두려움을 느꼈다. 코앞에 닥친 수의학회 학술 세미나만 참석한 뒤 수의사란 명함을 버리기로 했다. 그래야만 내가 살 것 같았다.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지만, 어머니는 결국 내 뜻을 꺾지 못했다.    

  “형배야! 왜 그래? 몸이 많이 안 좋니?”
  어머니는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나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어 불쾌했다. 그리고 얼굴이 화산처럼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어머니가 내 마음을 들여다본 듯이 이마를 만져 봤다.
  “아이고, 이마가 펄펄 끓네.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거 보니 아무래도 병원에 다시 가야하나 보다.”
  나는 어머니 말을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은 열려 있었어도 머리가 시키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벽시계를 쳐다보니 시간이 제법 흐른 듯했다. 아침이었다. 어머니는 밤새 자리를 지킨 듯싶었다.
  “간밤에 네가 엉뚱한 소리 해댄 거 기억 안 나? 누가 수의사 아니랄까 봐 잠꼬대도 개 소리같이 하고, 원.”
  “개 소리라니요?”
  “그걸 네가 모르면 누가 아누? 교회도 안 다니는 녀석이 꼭 방언같이 해대서 에미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나는 마치 한 마리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침 차려 주마.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당분간 푹 쉬어.”
  어머니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고는 방을 나갔다. 문득 들개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나는 한동안 병명도 모르고 앓아누웠다. 그리고 점점 개가 돼 갔다. 사람 말보단 텔레비전이나 동네에서 들리는 개 소리를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핼쑥해졌고, 말수가 줄어들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면 어머니는 깜짝깜짝 놀라 내 방으로 왔다. 내 의문의 소리가 잦아지자 처음엔 한숨과 눈물을 쉴 새 없이 짓던 어머니도 이젠 그러려니 하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 몰래 나를 위해 기도하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도는 약발이 없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목줄에 매인 것처럼 내 방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내 방은 휑한 개집이었고, 나는 한 마리 집개였다. 하루하루가 답답했다. 허기보단 갈증을 느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날부터 개가 두렵지 않았다. 심신은 매여 있었어도 개 소리만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다 개 소리가 끊기면 불안했다. 나는 뭔가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입하가 지났을 뿐인데, 더위가 느껴졌다. 방문을 열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추위를 잘 타 초여름에도 좀처럼 방문을 열지 않던 내가 방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하자 어머니가 의아하게 생각했다. 거실과 마당이 내다보이자 가슴이 트였다. 우리 집과 사이한 담 너머로 앞집 주차장에서 주인 남자가 세차하는 모습이 보였다. 곧 세차를 마친 남자가 차를 몰고 나갔다. 주차장이 텅 비었다. 고개를 돌리려는데,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주차장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꾀죄죄한 몸뚱이로 봐서는 집개가 아닌 듯싶었다. 순간 개와 눈이 마주쳤다. 개의 눈이 번뜩였다. 개가 우리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담 쪽으로 다가왔다. 이상하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심장이 벌떡벌떡 뛸 때, 개가 담 앞에 붙더니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개가 숨 가쁜 소리를 내며 우리 집을 훔쳐봤다. 그때 안방에서 거실로 나오던 어머니가 개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아유, 깜짝이야! 뭔 놈의 개가 꼭 사람처럼 남의 집을 훔쳐보네. 발정이 났나? 우리 집에 개도 없는데, 이상하네.”
  어머니가 개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가 “떽!” 하며 겁을 줬지만, 개는 꿈쩍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헛웃음만 지었다. 개가 곧 물러서더니 모습을 감췄다. 마음이 공허했다.

  개를 기다리느라 속만 끓이고 있는데, 어머니가 마침 장을 보러 집을 나섰다. 이젠 개를 편히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집 주차장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때 그 개가 나타났다. 개는 곧장 담 쪽으로 와 담 너머로 나를 바라봤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거실을 가로질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개가 낑낑거리며 내 모습을 지켜봤다. 버둥거리느라 기를 쓰던 개가 담을 풀쩍 뛰어넘어 우리 집 마당으로 내려섰다. 마당에서 개와 마주했다. 개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어때? 우리 기분을 좀 알겠어? 길들여진다는 건 불행한 일이야. 목이 쇠줄에 묶이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지. 내가 왜 사람 품을 뛰쳐나갔는지 이해하겠지? 당신들 틈바구니에선 도무지 자유를 누릴 수 없어.”
  개가 나무라듯 내게 말했다. 나는 뭐라고 반박할 수 없었다. 내가 대답할 거리를 찾을 때, 개가 내게 달려들더니 또 다리를 물었다. 그런데 아프지 않았다. 정신도 오히려 더 뚜렷했다. 나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날 것 같았다.

-끝-

              
* 수상자 열 명의 작품이 모두 실린 <제3회 아코디언북 짧은소설 프로젝트> 수상작품집은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책방'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dimfgogo@gmail.com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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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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