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 소설, <숲속의 늙은 아이들>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팬케이크 독서 모임의 올해 첫 책이었다.
우리는 네 명인데, 한 명은 요즘 집안 사정 때문에 독서에 시간을 못 내고 있어, 모임에 나오기는 하나, 토론에는 적극 참여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앞 부분 몇 편을 본 게 전부라고 했다.(단행본에는 15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워낙 말이 많은 분이 아니고, 다른 셋이 너무 격렬하게 토론하는 바람에 그 분 소감을 듣지 못한 게 이제와 아쉽다.
나는 그날 격노를 감춘 우울을 경험했는데 나는 전체적으로 이 소설집이 꽤 괜찮았다고 느낀 반면 그렇지 못한 다른 두 명의 목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왜 좋았는지를 어필하는 내 언어와 표정은 "네가 판타지를 잘 몰라서 그래."로 일축된 듯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 3부는 더없이 훌륭한 반면 2부는 성의없이 쓴 것 같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는데 그 2부에 판타지 요소가 강한 소설들이 모여 있었다. 아무튼 2부를 재미없게 읽는 두 명의 멤버는 마거릿 애트우드가 그동안 판타지 장르에 수도 없이 나왔던 소재를 깊이도 없이 갖다 썼다고 했다. 남다름도 없고 재치도 없고 진지한 사유도 없이 소재주의에 머물러 있다고.
나는 사실 1부 3부보다 2부가 좋았다. 이 작가가 이런 걸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고 그 다채로움에 감탄했고, 지난달에 읽었던 <스톤 매트리스>와도 가닿는 부분이 많아서 마거릿 애트우드를 좀 더 알게 된 느낌이었다. 자기만의 고유한 문체를 유지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맘놓고 펼쳐내는 자신감이 부러웠고, 이 맛 저 맛, 이 색 저 색, 이 향기 저 향기 음미하고 보고 느끼는 시간이 즐거웠다. 지난달에 <스톤 매트리스> 할 때는 반응이 이렇지 않았다. 두 작품은 모두 작가의 최신작으로 우리나라에 2023년, 2024년에 번역 출판됐다. 소설을 읽어보면 알지만 작가가 여기 실린 작품을 쓴 시기도 코로나 시기 포함, 그리고 전후로 추정된다. 그리고 두 책 모두 단편집이다. 발표 시기에 차이가 있거나 분량상의 문제로 스타일이 달라졌다면 모를까,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우리 멤버들은 <숲속의 늙은 아이들>이(특히 2부가) 형편없다고 강조했다. 나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은 것도 아닌데,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다는 반박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씩씩거리면 안 돼, 서운해하면 안 돼, 마음을 다잡으며, 내 성정이 못났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면 일단 저들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한다고 노력하며 앉아 있었다. 
워낙 친한 사람들이고, 소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멤버들이라 그들의 의견도 모두 수긍할 만한 것이었으나...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뭔가 쿵쾅거리는 게 있었고, 그 울림은 전혀 말랑하거나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었다. 일찍 헤어져 책상에 앉은 나는 멤버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폭풍 메시지를 남겼는데 아래는 그중 하나다.

*
나는 집에 오면서, 이 책의 다양성, 다채로움을 어디다 말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서 네이버 창에 책 제목을 쳐다봤는데 블로거들이 올린 글이 7-8개 나오는 거야. 내가 웬일로 하나하나 다 클릭해봤어. 자세히 쓴 사람은 없고 보통 느낌만 적었더라구. 전체적인 인상이 어땠다, 이 정도. 내 생각에 공통적인 의견은 자기가 애트우드 팬이라 다른 소설 다 읽었는데 이 책은 좀 정신없었다... 였던 것 같아. 이 책에는 단편이 15개나 실려있잖아.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는다면 모를까 한번에 읽기에는 그 세계가 결코 작거나 좁지 않지. 만약 일주일에 2-3편씩 읽고 얘기했다면 우리의 느낌은 또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
나는 이 작가가 '작가로서' 정말 많은 걸 건드리고 있고, 그 에너지와 용기, 능력에 감탄했거든. 또 하나. 이 소설에 실린 작품은 대부분 우리가 아는 단편 분량보다 짧은 소설이잖아. 초단편, 플래시픽션, 손바닥 소설 등으로 부르는. 물론 오 헨리나 안톤 체홉처럼 완결성을 잘 갖춘 작품을 쓰는 작가들도 있지만 짧은 소설의 장점은 전체가 아닌 부분이거든. 그러니까 방이 아니라 경첩 같은, 문턱 같은, 모서리 같은 걸 수도 있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영혼 들어가는 제목의 달팽이 나왔던 소설에서도, 달팽이를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끊임없이 비교가 나오잖아. 달팽이의 세계에는 필요없는 게 인간에게는 너무 많다는 식의 문장들) 말하려고 했지 않나 싶어. 마지막 문장 껍데기가 굉장한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흐름, 플롯이 좋았어. 대단하진 않아도 일상의 삶을 보여주려고 한 점이.
우리가 너무 완결한, 완벽한 소설을 바랐던 것 아닌가 싶고...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짧은 소설을 싫어하나 봐. 단편도 그래서 안 읽는 사람들이 있잖아. 장편이 소설답다고. 내가 왜 짧은 소설을 좋아하나 생각해보면 나는 맛있는 김치찌개를 계속 먹는 것보다 맛이 좀 없어도 이것저것 먹어보는 독서를 즐기는 성격이라 그런 것 아닌가. 원래도 집중력이 약했지만 나이 들면서 더욱, 그리고 잡생각이 많아지고 걱정 근심 불안이 늘면서, 책 한 권을 집중해서 읽는 게 힘들더라구.
그럼에도 <트러스트> 같은 건 장편인데도 문장이 단편보다 더 압축적이고 어려워서 붙잡고 읽었던 기억. 어이없.ㅋㅋㅋ 다음 달엔 장편 읽기로 했으니 이 기회에 긴 호흡에 다시 도전해봐야지. 아, 제발트랑 한강 작품들도 강의 덕분에 다시 보게 될 테니 그래도 조금은 공부가 되지 않을까. 또 그런 생각도 들었어.
아아니, 내가 쓴 것도 아니고 애트우드 소설을 나만큼 즐겁게 읽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서운해할 일인가... 그냥 그런 거지. 이럴 때도 있는 거 아냐? 근데 아까 카페에서 이상하게 섭섭하더라구. 내가 이해력이 달리나, 내가 sf나 판타지를 몰라서 챕터 2를 재미있게 본 거라고 비난하는 것 같고, 심지어 내가 이래서 소설을 못 쓰나 하는 생각까지..미친 ㅋㅋㅋ
<도덕적 혼란>이라고 민음사에서 2020년에 나온 책이 있는데 이 작품에도 티그와 넬이 나온대. 연작 소설이 실린 작품이라고 하더라구. 일단 이거랑 <시녀이야기> 사려고.ㅎㅎㅎ  

*하지만 이 글에서조차도 나는 내 나쁜 감정을 좀 죽이고 순화해서(?) 말하려고, 좋은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적어보는 <숲속의 늙은 아이들> 이모저모.

1부 티그와 넬
나이 든 화자가 지난날을 회상하는 글이 많다. 응겁처치법, 인물을 강조한 소설, 시 다시 쓰기의 특징을 갖고 있다. 평균 별 세 개.

2부 나의 사악한 어머니(평균 별 네 개)
나의 사악한 어머니-엄마 캐릭터 좋았다. 엄마-나-내 딸로 넘어오는 흐름과 마지막에 사춘기 딸이 틱틱거리다가 할머니가 '마녀'였다는 거짓말(진심이 담긴)에 혹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망자 인터뷰-조지오웰과의 대화. 짧은소설로 선보이기에 적당한 분량과 형식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복수의 여신> 맨 앞에 실린 마거릿 애트우드 작품과 비슷. 문어가 화자로 등장한다.
역겨운 이-나이 든 두 여자의 우정을 '역겨운 이를 가진 (만들어낸) 남자'를 통해서 보여주는데 소재가 매력적이진 않으나 결말이 좋다. 나이 든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지점.
조개껍데기사(死)-실제 인물을 소재로 했다.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아수라장-상상력이 상상 초월.
윤회 또는 영혼의 여행-달팽이가 사람 몸에 들어가는 이야기인데 '인생의 고달픔''인간의 애환' 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라 흥미로웠다. 
비행-심포지엄-늙은 페미니스트들의 자조적 시선이 담긴 작품으로 세 여자가 주인공이고 또 한 명의 친구가 숨은 인물로 등장한다. 세 여자의 캐릭터가 명확하고 그들이 한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너무 잘 그려서 정말 너무 잘 쓰는 거 아닌가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보통 세 명, 혹은 네 명이 같은 시공간에서 이야기하는 거 쓰기 어려움)

3부 넬과 티그(3부에서는 과부들, 숲속의 늙은 아이들이 좋았다. 평균 별 세 개)
먼지투성이 점심 식사-티그의 아버지(넬의 시아버지)에 대한 기록. 전쟁과 시.
과부들-남편이 죽은 이후 아들에게 쓴 편지
나무 상자-죽은 남편이 남긴 것(여기에도 시가 나온다)
숲속의 늙은 아이들-남편이 없는 늙은 자매 이야기

반려자가 죽은 뒤의 감정, 생활, 남은 이들과의 관계 등을 다룬 작품이 많다. 티그와 넬은 <도덕적 혼란>에도 등장하는 이름.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을 이제 두 권 읽었는데 앞으로 꾸준히 읽어볼 생각이다. 나는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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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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