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 소설 읽기 #오, 뽀얀 뚱보 여인이여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따뜻한 풍경처럼 보이는 첫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상황은 급변한다.
소설의 첫 문단.

"남편이 운영하는 기숙 학원의 정원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는 딕비헌터 부인의 머릿속에는 살아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짧은 풀이 자란 잔디밭에는 자그마한 테리스 올 골드 초콜릿 상자 하나가 그녀가 앉은 덱 체어 밑에 눈에 띄지 않게 놓여 있었고, 무릎 위에는 그녀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역사소설가의 문고판 소설책 한 권이 8쪽이 보이도록 펼쳐져 있었다."

초콜릿은 눈에 안 띄게 두고, 책은 8페이지가 펼쳐져있다고까지 자세히 묘사하는 의도란.ㅎㅎㅎ

이 작품은 아주 보수적으로 학원을 운영하던 남편이 학생이 죽었는데도 나몰라라하는 이야기가 큰 사건인데 아내는 약간 무능력한 상태로 또 다른 공범이 된다. 딕비헌터 부인은 줄곧 '내 탓이오'를 남발하는데 여자이고, 애를 낳지 않았고, 주체적이지 않았고, 남자에게 의지했기 때문에 짐짓 오그라들어 있다. 그리고 그녀를 보는 타인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녀는 뜨개질을 했고 구근을 심었지만 결국 한 아이가 죽고 말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느긋한 성격 탓에 태평하게 지내면서 진실을 외면했기 때문에 두 가정부는 그녀를 증오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완전히 따로일 수 없듯, 그 경계와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결국 부부가 권력자인가?

대개 쉬운 소설은 작가가 의도가 금방 파악되거나, 명확하게 드러나는 편인데 윌리엄 트레버 소설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집을 처음 읽었을 때랑 재독하고 난 뒤의 느낌은 조금 다른데 한 번 더 읽고 난 다음 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윌리엄 트레버의 속을 모르겠다고. 자꾸 생각할 수밖에 없기에 점점 더 깊이 파고들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듯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