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평소에 에세이를 즐겨 보지 않는데(언제부턴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소설가라도 에세이를 구매할 땐 몇 번이고 망설이게 된다. 당장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까? 이러면서.ㅎ) 이 책은 이틀 만에 후루룩 읽었다.(서울 가는 시외버스에서 반 읽고, 다음 날 집에서 반 읽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읽지 못한 이유:음주로 말미암은 기절?)
왜 재미있었나 하고 생각해보니 나와 다른 세대의 삶과 고민을 정갈한 문체에, 잘 완성된 종이책으로 읽는 기쁨이 컸던 것 같다. 1992년생 여자 두 사람. 이들의 우정도 부럽고 모험도 부럽고 열정도 부럽고 글쓰기도 부럽고. 8개의 챕터로 나뉘어 지은, 윤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순서도 마음에 들었다. 나 같았음 여성, 밥벌이 같은 얘기부터 하려고 했을 텐데 여행으로 시작해 취미로 이어가다니... 불확실한 공포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힘이 느껴졌달까. 제목은 조금 딱딱하고 우울한 인상. 심지어 부제는 매우 심각하지만('경상도의 딸들은 왜 진보가 되었나'ㅠㅠ) 글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경쾌하고 환하고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며 따듯한... 그런 면에서 제목이 아쉽다고 해야 하나? 책은 '속이 꽉 찬 말랑이'. 만지면 연하고 부드럽지만 결코 만만하진 않아서 금세 내가 쥔 것이 건강하고 명랑한 알맹이라는 걸 깨닫고 슬며시 웃게 되는...(써줘서 고마워요!)
안지은, 전윤채 두 사람은 스무 살, 대학 1학년 때 만나 12년째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는 사귀는 사이냐는 질문을 듣기도 하고, 자취방에서 함께 살기도 하고, 함께 여행도 많이 다녀오고, 같은 기관에 근무한 적도 있다고. 둘 다 진지하게 시를 썼고...
서로를 잘 알고, 아무리 친해도 '꿈, 일상, 연애' 같은 소재에서 벗어나 '여성, 세대, 정치, 문화' 등에 대해 솔직하고 깊이 있게 대화하긴 힘들 텐데, 그걸 글로 쓰는 일은 더 어려웠을 텐데, 두 사람,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우정'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직도 아름다운 기억이 별로 없는 기분이다. 가족만큼, 연인만큼 내밀함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와 나도 비혼 이야기를, 소설 이야기를, 인생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몇 번 시도하고, 제안하기도 했으나... 실력은 없고 노력은 부족하고 운은 없었다. 내게도 그런 욕심이 있었기에 이들의 기록이 더욱 귀하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잘 읽었습니다!!
1. 여행 : 불투명한 현재 속에서도 서로의 체온을 나누다
윤채의 이야기
지은의 이야기
2. 취미 : 나를 구원하는 건 나야! 얼굴 피자, 인생 피자!!
지은의 이야기
윤채의 이야기
3. 연애와 결혼 : 기울어진 시소를 거부할 권리
윤채의 이야기
지은의 이야기
4. 고향 : 고향은 타향 같고 타향도 먼 우주 같은 우리들
지은의 이야기
윤채의 이야기
5. 여성 :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반기를 들자
윤채의 이야기
지은의 이야기
6. 부모님 세대 : 가족, 어쩌면 나의 가장 친밀한 가해자
지은의 이야기
윤채의 이야기
7. 주거 : 서울을 유랑하는 히치하이커
윤채의 이야기
지은의 이야기
8. 밥벌이 : 글 쓰는 게 꿈인 너, 밥은 먹고 다니냐?
지은의 이야기
윤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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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표류하고 있습니다
안지은·전윤채가 쓴 『우리는 표류하고 있습니다』가 걷는사람 에세이 27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경상도의 딸들은 왜 진보가 되었나’라는 부제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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