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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 조현경 상임지휘자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지휘자와 교육자 사이,
“합창은 마음을 전하는 음악”

 


합창은 관객에게 말하듯, 관객과 대화하듯 노래하는 장르다. 무대 위 하모니에 공감할 때면 누구든 감동에 젖지 않을 수 없다. 선율과 함께 노랫말을 가만히 음미하다 보면 텍스트에 이끌려 더욱 빠져들게 된다. 두말할 나위 없이 합창은 마음을 전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음악이다.



지난 4월 17일 인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창단했다. 교향악단, 합창단, 무용단, 극단에 이은 인천시의 다섯 번째 시립예술단이다. 벚꽃 잎이 하늘하늘 흩날리는 봄, 인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 초대 상임지휘자 조현경 씨를 만났다. 

“초대 상임지휘자를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굉장히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어요. 인천은 합창이 살아 숨 쉬는 도시임에도 그동안 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없어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있었어요. 제가 지휘자로 올 수 있게 돼서 기쁘고 또 아이들을 만난 지금은 더더욱 감동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합창은 소통,
음악으로 어루만지는 것

조현경 상임지휘자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음대에 입학하자 교회 안팎에서 지휘해 달라는 요청이 몰렸다. 작곡과에 다니는 학생일 뿐이었는데도 그랬다. 지휘를 잘 알지 못하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무대에 선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작곡과는 기대만큼 즐겁지 않았다. 현대로 오면서 이전에 있던 음악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작업이 많아진 것 같았다. 학년이 높아지자 고민도 늘었다. 새로운 멜로디를 만드는 일, 실험적인 음악이 주는 한계와 영향 등을 생각하면서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은 무엇일까, 자주 사유에 잠겼다. 

클래식이 교회 음악, 즉 종교에서 시작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기에 합창도 익숙했다. 지휘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으니 합창 음악을 깊이 있게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국대 학부 졸업 후 동대학원 합창 지휘 석사 과정에 입학했는데 너무 잘 맞았다. 작곡은 창작물이 ‘다른 연주자를 통해’ 표현되는 반면 지휘는 무대에서 ‘스스로 자신만의 연주를’ 펼칠 수 있었다. 그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감정을 나누는 일이.

“물론 멋진 현대 음악도 많지만, 소리 없이 얼마간 시간을 흘려보낸 뒤 ‘음악’이라고 명명하거나 피아노를 부수는 행위를 ‘음악’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걸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고, 역사로 기록되는 것도 있겠지만 대중이 이해하기엔 쉽지 않죠. 감동을 나누기에 괴리감이 너무 심한 거예요. 소수가 좋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과 나눌 때의 기쁨이 훨씬 크거든요.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을 치유하고 어루만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합창이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녀의 합창 지휘 경력은 20년이 넘는다. 2000년대 초반 한국소년소녀합창연합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소년소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더욱 높아졌고 이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뜻을 세웠다. 크고 작은 민간 합창단에서 연주자로 경험을 쌓다가 2017년 부평구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로 위촉됐다. 수많은 수상 경력을 자랑하며 4년 임기를 마친 뒤 의정부시립소년소녀합창단, 노원구립청소년합창단, 인천청소년합창단, 인천YWCA합창단 등에서 연주를 맡았다. 

의정부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노원구립청소년합창단 등에서 더 지휘봉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가슴 한편, 고향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인천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울림이 있었다. 인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합격 소식을 전한 뒤 맡고 있던 합창단의 마지막 연습 시간, 아이들이 그녀를 안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덕분에 행복했어요.” 
“합창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는 걸 선생님을 통해 알았어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저의 인생 중에 선생님과 같이 한 시간은 정말 잊지 못할 거예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상임지휘자 면접을 준비하며 지난 5년간의 연주 자료를 보는데 코로나 기간이 제법 포함됐음에도 50회 이상 무대에 섰다는 걸 알고 놀랐다. 이끌었던 단체 중에는 코로나 시기에 출범한 인천청소년합창단도 있었다. “제가 인복이 많은지 아이들이 계속 모이더라고요.”(웃음)


소년소녀 합창,
예술로 통하는 첫 번째 관문

인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은 초등학교 3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 오십여 명의 단원이 있다. 창단 기념 연주회를 시작으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초청 공연, 뮌헨소년합창단과 호흡하는 파이널 무대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7월 중순에 상반기 정기 공연을 열고, 연이어 한국소년소녀여름합창음악캠프와 전국시립소년소녀합창제 등에 참가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악기를 배워 퀄리티 높이 무대에 오르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합창은 자신이 가진 목소리를 옆에 있는 아이와 조화롭게 화합하는 거거든요. 다른 음악에 비해서 빨리 무대에 설 수 있어요. 예술로 통하는 첫 번째 관문인 셈이죠. 
아이들의 성장 기회를 열어준다는 면에서 소년소녀합창단은 교육과 예술이 합쳐진 영역이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지휘자 겸 교육자라고 할 수 있고요. 외국의 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는 정년까지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아이들을 성장, 발전시키는 교육적인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100세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국영수’가 아닌 ‘예체능’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더 길 수밖에 없다. 나이를 먹은 뒤 새로운 취미를 갖는 건 쉽지 않다. 어릴 때 다채로운 경험을 하면 그 추억과 기억으로 훗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취미를 찾고, 즐길 수 있다.


나의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에너지를 내가

조현경 상임지휘자는 연구하는 사람이다. 몇 년 전 상명대 공연예술경영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합창이 가진 순수성 외에 다른 것들을 추가해 컬래버 무대를 만드는 방법 등을 공부하고 있다. 그밖에 지휘를 잘하려면 뭐가 중요할까.

“에너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에너지가 있어야 아이들을 끌어안고 눈덩이처럼 굴려 갈 수 있거든요.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많이 주려고 노력하죠. 반대로 저는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얻어요. 아이들하고 있으면 너무 즐거워요. 저는 무서운 선생님이기도 하고 재미있는 선생님이기도 해요. 연습할 때 집중해서 하고 놀 때는 또 열심히 놀고요. 아이들은 다 알아요. 자기가 얼마나 사랑받는지.”

그녀는 꿈이 있다. 인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그 아이들 진짜 잘하더라, 그 학생들 정말 잘한다며? 같은 반응이 나오는 합창단을 만들고 싶다. 이보다 절실한 바람은 무대에 오른 아이들이 무척 행복해 보이더라, 매우 환하더라, 라는 피드백을 듣는 것이다. 초인류도시 인천에 걸맞은 합창단, 도시와 나라 너머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글로벌한 합창단, 아이들을 도약하게 하고 웃음을 나누는 합창단을 만드는 것, 공연하는 사람도,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도 모두 만끽할 수 있는 무대를 펼치는 것이 그녀의 가만하고 야심찬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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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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