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태연 인터뷰_환하고 따듯한 사람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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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올더웨이>2021<달려라, 아비>에 이어 인천 지역 문화예술기관이 공동으로 제작한 두 번째 작품이다. 인천문화예술회관과 서구문화회관, 부평아트센터, 남동소래아트홀 등 4개 기관과 극단 십년후가 협업한 <올더웨이>에 출연 중인 배우 진태연을 만났다.

 

작품 따라 인생이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

진태연 배우는 스무 살에 극단에 들어가 삼십 년 가까이 연극을 했다.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을 물었더니 하나같이 주옥같고, 많이 고민하고 참여한 탓에 모든 인물이 사랑스럽다고 한다. 우문현답. 질문을 바꿔, 지금 기억나는 제목이 있느냐고 했더니 바로 <삼신할머니와 일곱 아이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002년에 처음 무대에 올린 작품이에요. 극단 십년후가 처음 뮤지컬에 도전한 창작품이기도 하죠.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했는데 한겨울에도 건물 밖에 길게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작품 따라 인생이 흘러왔던 것 같아요. <결혼할까요>를 하고 결혼했고, <삼신할머니와 일곱 아이들>을 하면서 아이를 갖고 딸을 낳았거든요. 임신 8개월 때까지 무대에 섰죠. 출산 후 3개월 쉰 뒤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갔어요.”

 

극 중 삼신할머니의 기운이 현실에도 영향을 미친 걸까. <삼신할머니와 일곱 아이들>을 하는 동안 주변에 임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배우는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의 손을 일부러 잡아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틀림없이 좋은 소식이 들렸다. 극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연결돼있는 느낌이었다. 연극이 삶이고, 삶이 곧 연극이어서 그랬을까.

 

어느 날은 객석이 시끌시끌했다. 나중에야 그날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관객으로 왔다는 걸 알았다. 보지는 못하고 소리로만 극을 이해해야 하는 학생들이 정안인(正眼人) 선생님들에게 스토리를 묻고 그들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다소 어수선했던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 단체사진 촬영 요청에 로비로 나가서야 진 배우는 그 사실을 알게 됐고, 좀전의 재잘거림을 이해하게 됐다. 삼신할머니였던 그녀는 한복 차림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학생들은 손으로 더듬더듬 옷도 만져보고, 지팡이도 만져봤다. 그중 어떤 여자아이가 진 배우의 손을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삼신할머니, 나 눈 좀 보이게 해주세요.”

(처음 만나 허리 숙여 인사할 때부터 손 흔들며 헤어질 때까지 진 배우는 가식 없이 다정했는데, 상냥한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그때 나는 조금 울었다. 누구에게라도 소원을 빌고 싶었을 여학생의 간절함을 감히 추측하지 못함에도, 그럼에도 눈물이 났다.) *괄호 안의 텍스트는 한 포인트 작게 디자인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극단 십년후의 마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진태연은 극단 십년후창단 멤버다. 1994930일 십년후가 만들어졌고 그해 12, 스무 살 진태연은 극단 문을 노크한다.

 

중학생 때 시민회관에서 <아가씨와 건달들>을 봤어요.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는데, 뭐랄까, 심장이 밖으로 튀어 나갈 것 같은 느낌? 가슴이 너무 쿵쾅거렸어요. 멋있다, 나도 저런 거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고등학교 2학년 축제를 앞두고 그때까지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던 <아가씨와 건달들>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글 잘 쓰는 친구에게 대본을 맡기고, 교회에서 반주하는 친구에게 곡을 연주하게 하고, 뮤지컬 삽입곡은 저작권 문제로 부를 수 없다고 해서 당시 유행하던 가사를 개사해 새롭게 곡을 만들었어요. 양키시장에서 중절모도 사고, 에어로빅 강사였던 친구 언니를 불러 안무도 배우고, 반 친구들 동원해서 건달들 역할을 맡기고요. 운동장에 있는 구령대를 연결해서 무대로 썼는데 멀리까지 목소리가 들려야 하잖아요? 탐냈던 아들레이드역을 다른 친구에게 넘기고 제가 변사 역할을 했어요. 마이크 잡고 연기에 맞춰 내용을 설명했죠.”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CEO가 된 친구들은 진태연에게 말한다. 네 덕분에 연극이란 걸 해봐서 좋았다고. 열여덟, 꿈 같던 시절에 했던 걸 아직도 하고 있는 네가 항상 행복해 보여서 좋다고.

 

극단 십년후는 고교 동창이었던 최원영, 장진호가 창단했다. 스물아홉, 교직에 있던 최원영은 미국으로, 연영과를 다니던 장진호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둘은 십 년 후를 기약했다.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10년 후에 돌아와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자고. 서른아홉에 귀국한 그들은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다가 극단을 만들었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연극, 영어연극 등을 무대에 올렸다.

사랑하며 살겠습니다를 사회에 전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작했으나 1996년 장진호가 대학교수가 되며 해체 위기를 맞았다. 단원들은 대학으로 돌아가거나 대학로에 있는 극단으로 옮겼지만 진태연은 남기로 했다. 십년후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극단을 지키며 장진호가 연출했던 어린이 연극을 맡아서 했다. 좌충우돌했지만 부족하다고 자책하지 않고 성실히 해나갔다. 사랑하며 사는 마음이 가족과 마을에 물들기를, 사람과 사회에 번지기를 바랐다.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연극 <올더웨이>는 오랜만에 참여하는 십년후의 작품이다. 연안부두, 담배가게 아가씨, 님은 먼 곳에 등의 가요가 쏟아져나오는 뮤직드라마로 1950년대 인천항이 배경이다. 한 여성이 어떤 오해로 연인과 이별하고, 떠남과 돌아옴의 과정을 겪으며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는 사랑하는 남자 대수와 헤어져 외국에 갔다가 30년 후에 돌아온 50대 연숙 역을 맡았어요. 연숙뿐만 아니라 멀티 역을 맡아 잠깐씩 빈번하게 등장하죠. 최근 엄마 역할을 많이 했는데 연숙은 50대지만 올드미스여서 좋아요.(웃음)”

 

진태연은 올해 쉬지 않고 작품을 했다. <2022신춘문예 단막극전>, <돌아온다>, <변신>, <짐승의 시간> 등등. <올더웨이>가 끝나면 <성냥공장 아가씨>에도 새롭게 출연한다. 쉬는 날에는 딸과 데이트도 하고, 동료 배우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하는데 배우로서 자기 몫을 바쁘게 해내느라 최근에는 좀처럼 여가를 즐기지 못했다.

 

마흔다섯에 바꾼 이름, 진태연

 

배우를 만나기 전 인터넷에서 이름을 검색했더니 진태연과 이경미가 같이 뜬다. 어떤 사연인지 궁금했는데 개명한 건 아니고 활동명만 바꿨다고 한다.

 

예술인 중에 이경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아요. 맘마미아에 출연하신 이경미 선배님도 있고 영화감독 이경미도 있고요.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치면 2페이지, 3페이지에 가서야 제 소식이 나오더라고요. 너무 밀려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너무 흔한 이름이라는 생각도 들고. 2020년 초에 문득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명가가 지어준 이름 두 개를 부모님에게 보냈더니 두 분 다 진태연을 선택. 아버지의 해석이 주옥같다. “진짜로 태연하게 연기 잘할 것 같은 이름.” 십년후 창단 멤버이자 지금은 기획사에서 일하는 친구도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었고, 참 진, 아름다울 태, 펼칠 연, 한자 풀이도 참 좋았다.

 

배우로서의 제 꿈은 마지막까지 배우로 사는 거예요. 부와 명예보다 지치지 않고 일하길, 배우로서 행복하길, 무대에서든 스크린에서든 오롯이 배우로 남길 바라요. 작품할 때 어떤 마음으로 뭉치냐에 따라 결이 달라지거든요. 노래 잘하고 연기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팀워크가 좋은 작업이 가장 신나죠. 뭘 하든, 어디에 있든 배울 점을 발견하고 더불어 하는 것의 감사함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랑을 나누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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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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