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문화저널>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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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잡았지?’는 과일을 잡았냐고 묻는 게 아니다. ‘조짐이 보인다’는 누굴 조진다는 게 아니다. ‘사생대회’는 죽고 사는 대회가 아니고, ‘유선상으로 연락 바람’은 유선상 씨에게 연락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본래 의미는 다들 아시리라 믿는다. 문해력 논란은 2024년 한국 사회의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다. 문해는 문자로 된 기록을 읽고 거기에 담긴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문해한 정도를 문해력(文解力)이라고 한다.
문해력 파장의 대표 사례는 많이 들어보셨을 터. 모 웹툰 작가가 사인회 관련 안내문을 올렸다. “심심한 사과를 전합니다.” 잇달아 댓글이 달렸다. 지루한 사과 왜 함? 재미없는 사과 따위 하지 말라고! ‘심심한’은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정의 외에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의미도 있다.
어느 개그 유튜브가 사이트에 공고를 올렸다. “모집 인원 0명.” 줄줄이 댓글이 붙었다. 0명 뽑는데 공지 왜 올림? 장난하냐? ‘0명’은 한 자릿수 인원을 모집한다는 뜻이다. 월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토일월, 사흘간 연휴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항의 댓글이 올라왔다. 4일이 아니라 3일 아님? 3일을 왜 사흘이라고 씀? 사흘을 4일로 오해하거나 숫자로 표기하면 될 걸 굳이 그런 단어를 써야 하느냐는 불만이었다. ‘사흘’은 3일의 순우리말 표현이다.
‘금일(今日:오늘)’을 금요일로, ‘중식(中食:점심)’을 중국 음식으로, ‘십분(十分:충분히)’을 10분으로, ‘고지식(융통성이 없다는 순우리말)’을 높은(高:높을 고) 지식으로, ‘가제(假題:임시 제목)’를 갑각류로 착각한다는 사례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처방된 투약설명서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보험 규정을 해석하지 못하는 등 생활에서 불편을 겪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의 문해력 실태를 다룬 방송이 있었지만 비단 학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성인이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발표한 ‘제3차 성인문해능력조사’(2021)에 따르면, 일상에 필요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수준1’(초등1,2학년)은 4.5%,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계산 등은 가능하지만 활용이 미흡한 ‘수준2’(초등3~6학년)은 4.2%다. 전체 성인의 8.7%가 한국어의 뜻과 맥락을 제대로 짚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통의 불협화음이다.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컬처쇼크>에는 ‘균일’의 세계에 사는 부녀가 나온다. 아버지는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더더욱 예민해져서 “똑같은 빌딩, 똑같은 광경, 똑같은 음식. ‘균일’은 이제 질렸어!”라고 소리 지른다. 반면 ‘나’는 나란한 치아처럼 동일한 광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따라 옛 도시인 ‘컬처쇼크’에 온 아이는 한밤중 몰래 호텔에서 나왔다가 화려한 옷을 입은 노파를 만난다. 놀란 아이는 ‘균일어’로 말하는데 표현되는 건 “아-----! 아-----” 뿐이다. 노파가 인상을 쓰자 아이는 애니메이션에서 본 멸망한 옛 도시의 언어를 가까스로 생각해 낸다. 균일에서 왔다고 말하자 노파는 가엾은 표정으로 아이를 본다. 그러곤 자기가 먹던 음식을 내미는데 아이는 맛이 뭔지 모른다고, 맛이란 건 어쩐지 기분 나쁘다고 대답한다. ‘균일’에서 먹는 음식은 맛도 냄새도 없기 때문이다. 노인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문화를 모르는구나. 불쌍한 녀석이로군.”
문화는 사회에서 습득되는 행동이나 생활에서 얻어지는 물질적, 정신적 소득이다. 여기에는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등이 포함된다. 특정 지역에서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비슷한 문화를 향유하고 소통하기 마련이다. 그 첫 단추가 ‘언어’가 아닐까. 균일의 세계에서 온 아이가 “아-----! 아-----”를 언어로 인식하는 건 오감을 표현할 기회도, 감정을 드러낼 기회도 없어서였다. 그 세계에서는 똑같은 얼굴, 똑같은 말씨, 똑같은 교육을 당연하게 여겼다. 다름을 읽어낼 수 없는 사회에서는 소통이 무의미하다.
격변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다양성의 인정이 필요불가결하다. 사회가 다방면으로 변화하고 확장됨에 따라 문해력의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텍스트를 넘어 영상, 춤, 음악, 키오스크까지 다수의 콘텐츠를 접하고 표현하는 능력까지 문해력의 범주에 속한다. 사회, 문화뿐 아니라 심리 영역에서도 읽고 이해하는 힘은 중요하다. 지금은 ‘금일과 중식, 십분’이지만 앞으로 어떤 단어가 ‘불협화음의 불씨’로 떠오를지 모른다.
문해력 저하 원인에 관한 일각의 분석은 이렇다. 독서 부족, 스마트폰 과다 사용, 유튜브 및 숏폼 중독, 한자 공부 경시의 폐해 등등.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짧고 자극적인 단어에 도취 돼 있고, 점점 자기표현 기회를 잃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책 읽기다. 책은 처음, 중간, 끝이 있고 발단부터 결말까지의 모든 과정이 들어있다. 흐름을 파악하며 한 세계를 만나기에 더없이 적당한 매체다. 세상에 대한 넓은 시야와 비판적 사고를 기르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기에 독서만큼 효율적인 건 없다. 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하며 자신의 관점을 돌아보고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닐 것이다. 실천이 어렵다면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해보는 건 어떨까. 많이 읽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양보다는 질. 여기서 멈춤이 아닌 한 걸음 더. 깊이 있는 독서와 함께 하는 독서가 불통을 소통으로, 불협화음을 고운 화음으로 만드는 정도(正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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