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를 프라하에서 보냄❤️
2022.12.25. 일요일
6:00 기상
7:10 아침식사 자율
샐러드. 커피. 삶은 달걀 등.
역시 프라하. 외국인 바글바글 속에서 식사. 관광객 많이 온 듯.
8:30 출발
프라하성 1시간 투어
차 타고 다시 이동
쇼핑센터 방문(유산균. 불가리아 산 락토플로, 밀크시슬 두 개는 살만함) -> 잠시 흔들렸으나... 안 샀다
볼타바 강에 걸쳐진 오랜 역사를 간직한 낭만의 다리 <카를교>
1400년경 제작되었으며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천문시계탑>
1365년부터 지금까지프라하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상징물 <틴 성당>
체코의 건국자 성 바츨라프의 동상이 있는 <바츨라프 광장>
화약탑, 구시청사 광장,
프라하의 베니스라 불리우는 캄파섬에 있는 1980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의 표현으로 낙서를 하던 ✔존 레논 벽
프라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페트르진 언덕, ✔페르트진 전망대 타워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작업실이던 22번지의 푸른색 집을 볼 수 있는 ✔황금소로
프라하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시장으로 장신구, 과일, 전통음식 등 살 수 있는 ✔하벨시장
바츨라프 광장 정면에 있는 박물관으로 세계 10대 박물관의 하나로 꼽히는 ✔국립박물관
체코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작가인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 있는 ✔무하미술관 (25일이라 안 열릴 가능성 높음. 무하의 활동 무대는 미국. 모든 이들이 예술을 저렴한 가격으로 접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 성냥갑 디자인. 싼 광고)
<카를교>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중앙 유럽에선 독일의 레겐스부르크의 석조 다리 다음으로 오래됐다. 프라하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 카를 4세의 명으로 오토가 1357년 만들기 시작해 피터 파를레에 이어져 1402년 완공되었다. 카를교 이전에는 12세기에 만들어진 유디틴 다리가 있었으나 1342년 홍수로 파괴되자 다시 건설. 대부분의 석재들은 건설 초기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보수 과정에서 교체되었다. 처음엔 돌다리, 프라하 다리로 불리다가 1870년에 카를 4세의 이름을 따 카를교라고 지어졌다.
길이는 515.8m, 폭은 9.5
다리에 30개 석상이 있고, 양 끝의 타워는 1683년부터 1928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카를교 석상 일부는 복제품으로 원본은 국립박물관.
<천문학 시계Astronomical Clock>
1410년 시계 장인인 미쿨라시(1350~1419)가 만들고, 프라하 대학의 학장으로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인 얀 신델(1375~1456)이 디자인했다. 15세기 당시 유럽인들은 천동설을 믿어 지구를 중심으로 달과 태양 행성들이 도는 형태다.
-천문학 시계 보는 방법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뿐 아니라 날짜, 요일, 해가 뜨고 지는 시간, 농사의 시기를 알려주고, 12궁도와 태양계의 행성 관계까지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천문학 시계의 밑바탕을 보면 중심에 푸른 지구가 있고 아래쪽에 검은 원형과 그 외곽에 황토색, 위쪽에 푸른 그러데이션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1)밤(검은색) 2)해가 떠오르거나 지는 때(황토색) 3)낮(푸른색이 진할수록 한낮)을 표현한 것이다. 색깔 판에 쓰인 글자는 라틴어로 Aurora(여명), Ortus(동쪽), Occasus(서쪽), Crepusculum(일몰)을 뜻한다. 그 위에 3개의 바늘이 돌아가고 있는데, 바늘의 중심축 위치를 살펴보면 그 위치가 바로 프라하다. 3개의 바늘 끝에는 각각 태양, 달, 별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각각 태양의 시간, 달의 시간, 그리고 황도대를 나타낸다. 3개의 바늘과 함께 돌고 있는 원형 판은 4)별자리를 뜻한다. 원형의 둘레 중 가장자리는 황금빛으로 1~24까지 아라비아 숫자가, 그 바로 안쪽에는 로마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아라비아 숫자는 5)보헤미아의 시간을, 로마자는 6)중부 유럽의 시간을 뜻한다. 더 안쪽에 작게 검은색으로 쓰여 있는 1~12까지의 숫자는 7)일출~일몰시까지의 낮 시간을 나타낸다.
<종 치는 세리머니의 의미>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매시간 정각이 되면 시계 오른쪽에 있는 해골이 종을 치면서 죽음을 상징하는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세리머니를 시작한다. 해골은 죽음을 상징한다.
종은 시간에 따라 울리는 횟수가 다르다. 오후 1시면 13시, 13번 울린다.
해골이 지금이 '죽음을 맞을 시간'이라 고개를 끄덕이면 주변의 인간들은 아니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상단의 두 개 창문이 열리고 예수님의 12제자가 차례로 나타났다 들어간다.
왼쪽 창으로는 소 야고보('방망이'를 손에 든), 안드레아(X형태 십자가), 유다(노), 토마스(창), 요한(컵), 바르나바(해골) 순
오른쪽 창으로는 베드로(열쇠), 마태(도끼), 필립보(십자가), 바울(검과 책), 시몬(톱), 바돌로매(깃털) 순으로 나타난다.
이때 해골 옆의 터키인 연주자(쾌락)가 음악을 연주하고, 천문학 시계 왼쪽의 거울을 보는 남자(허영)와 돈주머니를 든 남자(탐욕) 인형이 함께 움직인다. 종소리가 끝나고 닭이 울며 탑의 꼭대기에서 중세 시대 옷을 입은 사람이 나와 나팔을 불면 이벤트가 끝난다.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면 돈도 허영도 쾌락도 모두 소용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라하 성>
9세기에 요새 목적으로 지어져 카를 4세부터 역대 보헤미아의 왕이 살았던 곳으로 1918년부터는 대통령이 거주하며 직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초대 대통령인 니콜로 파카시 때인 1921년부터 일반인들에 의해 개방됐다.
<구시청사>
1338년 마을 의회를 지은 것을 시작으로 이후에 여러 고딕 영식의 건물이 덧붙여져 하나가 된 형태다. 1381년에는 카를교를 세운 피터 파를레가 예배당을 만들었고, 1410년에 천문학 시계가 설치되었으며, 1458년에는 이르지 즈 포뎨브라트가 보헤미아의 왕으로 선출된 중세 시대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건축물이다. 현재 구시청사는 관광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다.
입장료를 내면 피터 파를레가 지은 예배당(이곳에서 시계탑 종이 울릴 때 나타나는 예수님의 12제자들 인형을 볼 수 있다)과 이르지 즈 포뎨브라트의 흉상이 있는 이르코바 홀, 그리고 의회 홀에는 이르지 즈 포뎨브라트가 보헤미아 왕으로 선출되는 장면이, 반대편 벽에는 콘스탄틴 회의장에 간 얀 후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벽화를 볼 수 있다. 천장에는 체코 왕가의 문장이, 한쪽 벽면에는 리부쉬 공주가 프라하의 번영을 예언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구시가지 광장>
11세기부터 개발되어 광장과 시장으로 프라하 시민의 삶의 중심이 된 장소다.
화이트 마운틴의 전쟁 후에는 반란에 참여한 27명의 사람들이 1621년 6월 21일 광장에서 처형되고 일부 시체는 본보기로 틴 성당 첨탑에 매달기도 했다.
1945년 5월 7일, 나치의 폭격으로 구시가지 광장은 쑥대밭이 된다. 천문학 시계와 예배당이 크게 파괴되었고, 뒤편은 완전히 파괴되어 오늘날 공원(여러 먹거리를 파는)부지가 됐다. 광장 한쪽에는 부패한 가톨릭을 비판하며 종교개혁을 주장하다 화형당한 얀 후스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광장 주변으로 성 니콜라스 교회, 로코코 양식의 킨스키 궁전(현재 국립미술관), 14세기에 지어져 15~19세기에 리모델링된 석종의 집(현재 시립미술관), 틴 성모 교회, 그리고 17번지에는 아인슈타인이 살던 집이 있다.
광장에는 14도 25117" 자오선 표시가 되어 있으니 찾아보도록 하자.
<틴 성모 교회>
고딕 양식의 틴 성모 교회는 주변 건물들로 둘러싸인 독특한 형태로 1450년에 만들어졌다. 쌍둥이 첨탑은 80m 높이이며 1365년 착공해 15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이다. 오른쪽 탑이 좀더 높은데 높은 탑을 '아담' 낮은 탑을 '이브'라고 부른다.
17세기 예수회가 틴 성모 교회를 인수하면서 얀 후스 종교개혁파의 거점으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예수회는 1626년 황금 성배를 녹여 틴 성모 교회 정면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부조를 새겼다.
성당 내부에서는 카렐 슈크레타가 그린 제단의 그림, 1673년에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 덴만크의 천문학자인 티코 브라헤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유대인 지구>
유대인들이 유럽 땅에 정착한 건 10세기경이다. 유대인들은 유럽 전역의 크고 작은 마을에 모여 살기 시작했는데 16세기경부터 집권층이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분리하면서 유대인 게토가 만들어졌다. 게토는 소수인종이나 민족, 종교집단이 거주하는 도시 안의 일정 구역을 뜻한다.
중세 시대에는 유대인 게토가 일반적이었으며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당연한 것이었다.
프라하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인 유대인 게토가 있다. 집, 시나고그, 공동묘지 등.
-프라하 장식 미술 박물관 옆에 구 유대인 공동묘지, 의식의 홀, 시나고그 등이 있음.
시나고그(유대교의 공적인 기도ㆍ예배의 장소(회당)를 가리키는 말. 유대인 회당. 그리스어로 <집회>를 의미하는 시나고게에서 유래)
4개의 시나고그가 있으며 핀카소바 시나고그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으로 사용. 2차 세계대전 기간 학살당한 체코 내 유대인 8만여 명 이름이 건물 내부 멱면에 새겨져있다.
유대인 공동묘지에는 10만명의 유대인이 묻혀 있다. 비석의 숫자가 12,000개뿐이지만 한 개 비석 아래 8명이 포개어 묻힌 것. 한정된 공간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공동묘지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은 1439년에 세워진 랍비 아비그도르 카라다.
의식의 홀:영안실로도 사용함. 1911~1912년에 지음.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회장으로 사용.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카프카의 연인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흥미롭다.
박물관 입구에는 다비드 체르니(1967~) '오줌 누는 사람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다비드 체르니. 프라하 태생. 세계적인 조각가로 인정.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기념해서 만든 팔굽혀펴기를 하는 빨간 이층 버스를 선보임.
<존 레논 벽>
캄파 섬에 있음.
존 레논은 1980년 12월 8일 뉴욕에서 과격 팬인 마크 채프먼의 총에 암살당했다. 존 레논의 죽음을 기리는 프라하 시민들이 캄파 섬 근처의 벽면에 존 레논의 그래피티와 가사들을 써놓은 것이 존 레논 벽의 시작이다.
시에서는 이 벽을 칠하기도 했는데 다음 날이면 다시 그래피티와 추모 글이 쓰여있곤 했다고.
지금은 평화를 기리는 세계인들의 글과 그림이 가득하다.
<국립 박물관> ->전쟁 때 많이 약탈당해서 별 게 많지는 않다고...
체코에서 가장 큰 국립박물관으로 구관, 신관으로 나뉜다.
구관은 선사시대, 고고학, 민족학, 문화인류학, 광물학, 동물학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구관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1, 1996)에서 파티가 열리는 대사관으로 나오기도 했다.
신관은 구관을 바라보고 왼쪽에 있는데 과거 라디오 자유유럽 방송 건물로 2009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됐다.
신관에는 보헤미안 시대의 유물과 의복이 전시돼 있고, 체코가 슬로바키아와 분리 독립된 시기의 체코 현대사를 소개하고 있다. 다른 서유럽 박물관에 비해 볼거리가 많은 건 아니다.
<바츨라프 광장>
1348년 카를 4세가 신시가지를 조성하면서 만든 광장이다. 원래는 말 시장이었다.
광장이라기보다 길이 750미터, 폭 60미터의 큰 대로다. 국립박물관 앞의 성 바츨라프907~935의 동상에서 시작해 경사 길로 구시청사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이어진다. 성 바츨라프는 체코를 지키는 수호성인으로 말을 타고 구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1912년에 세워졌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선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고,
1948년에는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언되고,
1968년 알렉산더 두부체크가 이끌었던 '프라하의 봄'과 1989년 체코민주화혁명, 바츨라프 하벨의 벨벳 혁명의 현장이기도 하다.
<성 바츨라프>
10세기 보헤미아의 군주로 바츨라프 1세가 재위 중 동생에게 살해당한 뒤 성인으로 추대되어 불리는 이름이다. 바츨라프 1세는 보헤미아에 기독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지정했다. 국난의 시기가 오면 성 바츨라프가 중부 보헤미아의 블라니크산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 기사들을 깨워 적을 무찌른다는 전설이 있다.
블라니크는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6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무하 박물관>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감
알퐁스 무하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장소.
100여장이 넘는 그림, 사진, 목탄, 파스텔, 석판화를 비롯해 개인용품도 전시.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티켓을 구입할 경우 50%할인 가격으로 구입 가능하다.
알퐁스 무하 1860~1939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적인 화가.
체코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하던 중 1894년 최고의 여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 계약을 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지스몬다>는 열렬한 사랑을 받고 스타가 된다.
포스터뿐 아니라 잡지,책표지,주얼리,가구까지.
무하는 1910년 체코로 돌아와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담은 20장의 서사시를 완성,
1931년에는 프라하 성의 성 비투스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를 디자인했다. 체코 중앙우체국 내부에도 그림이 있다.
9:00 프라하 성 도착
검문이 있다고 함.
10:20 프라하 엔틱카 타러 갈 사람 가고
남은 사람들은 하멜시장에서 쇼핑
11:50 점심
립&맥주
12:50 카를교까지 걸어갔다가
13:15부터 17:10까지 자유시간
존 레논 벽화, 카프카박물관 OK(체코에 오고, 또 프라하에 오고, 카프카 박물관에 온 게 너무 좋아서 기념품 점에서 비싼 거 막 삼(응?)ㅎㅎㅎ)
떠나기 전에 <프라하-작가들이 사랑한 도시>라는 책을 읽었다. 프라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모은 것이다.
알로이스 이라세크는 구시가 광장에 있는 천문시계를 소재로 <구시가지 시계의 전설> 을 썼다. 초반에 천문시계를 소개한다. 시간은 물론 태양이 지구를 어떻게 도는지, 어떤 궁도에 와 있는지, 태양이 뜨고 지는 시각과 태양의 위치까지 알려준다고.
시계탑 앞에는 사시사철 사람들이 몰려들어 경이로운 얼굴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발명품에 찬사를 보낸다. 시계를 만든 사람은 하수뉴. 프라하 사람들은 생각과 영혼을 가진 듯, 엄청난 가치를 지닌 시계를 만든 하수뉴 명인을 존경하고 그를 보면 예를 다해 인사한다. 정치인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들도 천문시계를 귀하게 여기지만 한편으로 하수뉴 명인이 큰 돈을 받고 외국인에게 비슷한 시계를 만들어줄지 모른다고 여긴다. 어느 날 시장과 시의원들이 모여 뭔가를 작당한다. 그들은 프라하의 천문시계가 유일무이하길 바란다. 정치인들의 사주를 받은 악당은 한밤중 하수뉴 명인의 작업장에 찾아가 그의 눈을 파내고 도망친다. 두 눈이 붕대로 감긴 채 쓰러져 있던 명인은 다음 날에야 도제들에게 발견된다. 시민들은 당장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 흥분하지만 어쩐 일인지 명인은 무기력에 빠져 하루하루 작업장 구석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점점 노쇠해갔고 초라해졌다. 이제 누구도 그가 대단한 시계를 만든 명인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하수뉴는 천문시계를 개선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전갈을 보내지만 그의 대답에 응답하는 사람은 없다.
어느 밤 하수뉴는 시계탑에 올라 앙상한 손가락으로 시계를 조작한다. 마지막 손길 이후 열두 사도는 시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수탉도 울지 않는다. 황도 12궁도 365일간 하루 한 칸씩 움직이는 톱니바퀴도 돌지 않는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명인은 얼마 후 목숨을 잃는다. 작동이 멈춘 시계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더이상 사람들이 시계를 우러러보지 않고, 고귀한 대접을 받아 마땅했던 도시의 보물은 골동품으로 전락한다. 뭇 사람들의 이기적인 상상력과 고약한 욕심 때문에 프라하의 상징은 사라지고, 도시는 고귀한 생명과 빛을 잃는다.
그래서, 그 소설 때문에 천문시계탑 전망대에 올라가 보고 싶었으나 줄이 너무 길어서 못 갔다. 너무 아쉬웠음.ㅜㅜ 다녀오신 분이 사진 공유해주심.
이탈리안 식당에서 맥주 2잔(흑맥주, 맥주) 2시간 개겼다. 편안하고 너무 좋았음. 술을 얻어먹기까지...^^
17:20 저녁 한식당. 어제와 동일
김치찌개. 파전
오늘도 밥 뚜껑 안 열었음. 맥주 마셔서 배불러.
18:30 버스 탑승. 호텔로
18:45 도착
욕조에 물 받아서 반신욕 함
욕조 있는 방
큰 책상
여행 와서 텔레비전 처음 켜봄. 금방 끔.
HTL - Hotel Rezidence Emmy// Add: K Zelené louce 2a, 148 00 Praha-Kunratice // Tel: +420 246 020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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