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문학 읽기 두 번째 시간.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이유리의 <빨간 열매>와 2017년에 발표된 한강 소설 <작별>을 함께 읽었다.
빨간 열매는 호불호가 갈렸는데 不好쪽이 더 많았다. 이유는 문장.
의뭉떠는 듯한 말투가 불쾌한데다,
비문도 많고 무엇보다 첫 문장부터 오류가 있어서 신뢰가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재미있어 한 이 중 "웹툰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한 분이 계셨는데 그러고 보니 음...
소설을 선택한 사람은 나니까 내가 신나게 편을 들다가(?) 누군가 툭 끼어들어 다시 '불호쪽'으로 휘말려가고, 휘말려가고...
판타지를 중심장르로 한 건 명확하죠. 하부 장르를 로맨스로 보느냐 가족드라마로 보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말이 달라질 것 같아요. 저는 로맨스보다는 가족드라마로 봤고, 그렇다면 반려식물 이슈,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노인돌봄의 인식 전환 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문과 냉소가 아쉽지만 어쨌든 첫 문단에서 독자를 사로잡는 데다 시공간의 빠른 이동(당황+황당+응?)에 놀라 저도 모르게 끌려가게 되는 매력이 있어요. 긴 문장을 사슬 엮듯 걸고 돌아가는 리듬이 있고, 아버지의 엉뚱한 요구를 부정했다가 긍정하면서 돌아가는 감정의 바퀴가 재치있게 다가옵니다. 식물이 된 부모(돌봄을 해야 하는)를 유모차 끌듯 앞으로 밀고 가는 자식들이 야광별이 붙은 천장 아래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웃프고요.
이런 작품이 신춘문예 당선이라니 말이 되느냐, 백이 있는 거냐, 재미있게 보긴 했으나 타인에게 추천할 것 같진 않다, 깊이가 없다는 말을 들었고...
-색깔이 말랑하고 촉촉하다는 건 뭘까요?
-그게 문제입니다!!
-전 뭔가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좋았는데요...
-그럼 작은따옴표를 했어야지요, 친구들하고 카페에서 주고받는 말 같은 걸 떡하니 소설에 써도 되는 걸까요.
기록의 문제. 우리가 10년 후에도 이 작품을 읽을 수 있을까요? 그냥 심심풀이로 하는 이야기와 기록되는 이야기는 무엇이 다를까요? 재미도 좋고 가벼움도 좋고 구어도 좋지만 소설이 소설일 수 있는 문법과 언어는 있는 것 아닙니까? 전 이소설에 반대합니다.
(끄덕끄덕)
*
한강의 <작별>로 넘어가자 이 분위기 뭐야, 호호호 모두 好. 엄청난 아름다움을 목도한 뒤 자기 고백하지 않고 못 배기겠다는 듯 저마다의 언어로 "참 좋았어요." "저도요." "저도..."
우리는 계속 부분 부분을 짚고 되뇌이며 진정성과 파토스를 언급하였고, 쉬이(어쩌면 죽을 때까지) 닿지 못할 경지를 보여준 작가에게 거듭 감사인사를 했다. 어떤 분이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언급하셨고(자립할 수 없을 정도로 늙거나 병에 걸렸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는지, 노화와 죽음을 요양원에서 맞는 요즈음의 현실과, 삶의 마지막이 되는 시기를(시절을) 온전히 자신 혹은 가족과 함께 할 수는 없는지 등등) 선생님의 고민과 실천의 말씀을 듣다가 윌리엄 트레버 소설이 생각났다.
'탄생을 지켜보다'라는 작품은 현대문학에서 나온 <윌리엄 트레버> 단편선에 실려 있는데 첫인상은 충격적이고 당황스럽지만 곱씹을수록 함의가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같이 이야기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오늘 스캔해서 보냈다.
그리고 메시지로 남은 말들.
-트렌드란 것
-네
-이쁘게 쓰는 소설
-아
-깊이 파고 들지 않고, 딱 거기까지만
-없지 않아 있죠.
-진짜 소설 뭔가 싶어요. 대체 이번 생은...
-난 얌전한 것보단 울퉁불퉁한걸 좋아하는 편인데
-진정성이 주는 울림은 문장이나 꾸밈 이런거 다 넘어서는
-매 작품마다 진정성 내보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듯요
-한강 이번에 다시 읽으며 또 눈물방울, 가끔 그런 소설 만나면 너무나 행복한거
-왜 그럴까 생각해봐도 내 안에 그런 내가 있는걸 어쩔
-위로받고 싶은 마음, 너는 혼자가 아니야, 봐 세상에 너랑 비슷한 사람 또 있자나
-예전에 최OO 샘 수업 들을 때 무슨 소설을 합평 받는데 샘이 내게 “파토스가 없다”고 했던 게 가끔 생각 나요.
그 말이 여전히 맞는 것 같아요. 읽는 일에도, 쓰는 일에도 깊음과 슬픔이 없음... 그래서 슬픔.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가 읽기의 가장 큰 혜택(?)임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 없을 듯요
-열정이 있자나요, -난 소설밖에 없다는 자의식도
-오롯이 소설을 사랑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면서 아무나 가질수 있는 스텐스 아닙미다!
-작별 읽으면서 숨 막히는 기분.. 이게 한 번에 쭉 된 게 아니라 하루에 몇 줄씩...조금씩... 그렇게 완성된 게 너무 눈에 보이고, 아이디어나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에..근데 그 마음이 너무나 밑바닥이고 아프고 깊은 거라.. 와, 읽는 데도 힘든데 쓰는 이는 오죽했겠나, 어쩌면 난 겉핥기 식으로 쭉쭉 읽고 무슨 말을 하지? 하는 독서방식에 길들여진 건 아닌가.. 표면으로 사는 느낌이 너무 강해요. 돈돈 하면서. 근데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리 기질은 안 변하죠
-번역은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다. 이기면 뭔가가 잘못된 싸움이다. 아무리 잘하더라도 기껏해야 "졌지만 잘 싸웠다"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더 패치> 번역가)->문학하는 사람의 자기와의 싸움도. 그러니 열심히
-그러니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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