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을 견뎌왔다. 코로나19로 매주 긴장했다. 폐강할까? 휴강할까? 일찍 종강해 버릴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고, 무사히 마무리했다. 두어 해 전에도 12차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참여자들이 돈을 내지 않았다. 생활문화공간 달이네가 인천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됐고 배다리마을 프로그램 중 한 꼭지를 내게 맡긴 것이다. 참여자는 무료, 나는 강사비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동아리지원사업으로 단편읽기와 소설창작 수업을 했다. 공간비 조로 3만원을 받았으므로 무료나 다름없었다. 뭐가 됐든 강의를 허술하게 한 적은 없었다. 내 공부와 앎, 즐거움을 참여자들과 나눌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다.
내 힘으로 강의를 개설하고 책임져야 하는 올해는 책임감이 남달랐다. 여느 지역에 비하면, 어디어디에 비하면 30만원의 수강료가 결코 과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겼지만, 적당하니 아니니 하는 기준은 누구도 명확하게 말할 수 없었다. 도서관에서 하는 무료 소설 강좌도 많다고 들었으므로 돈 내고 올 사람이 있을지 걱정됐다. 개강 때 6명이 모였고, 6주 후 3명이 늘었다. 읽기와 쓰기를 6차시씩 나눠 진행한 까닭이었다. 지난해, 지지난해 함께 했던 분이 과반수였지만 올해 처음 참여한 분도 귀했다.
이번 봄강좌 읽기 큐레이션 테마는 '시점과 화자'였다. 국내외 단편과 장편의 일부를 읽었다. 겨울에 다와다 요코를 발견했으므로 그 작가의 책도 적극 활용했다. 앨리스 먼로는 사랑하니까 한 번 더, 애드거 앨런 포는 다 아는 작가지만 깊이 읽기 위해서 한 번 더, 레이먼드 카버 소설도 한 편, 올카 토카르축이 2019년에 노벨문학상을 탄 건 아셔도 그분의 이 소설은 모르실 걸요? 하면서 그 작가의 장르적 중편 소개... 쓰기는 매 차시 2명 혹은 3명의 작품을 함께 봤다. 두 시간에 세 개의 작품을 말하는 건 쉽지 않았다. 수강생이 저마다 한 마디씩 의견을 밝혔으므로 내가 이야기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9시를 넘겨서 끝날 때가 많았는데 덕분에 모두 두 편씩 자기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다.
오늘 나는 문학(소설)의 자리이자 역할에 대해 말했다. 가치와 의미에 대해, 기쁨과 슬픔에 대해 언급했다. 서로의 아픔을 전하고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하는 시도는 좋았지만 위로와 공감이 가벼워서는 안 된다고, 그걸 잊지 말고 깊이 있는 사유로 이끌어나가자고 당부했다.
“소설 쓰는 일은, 전에 없던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은, 그러므로 자기 세계를 만드는 일은 어렵고 지난합니다. 정확하게 써야 한다는 것은 강박이 아니라 기본입니다. 소설에는 아름다움은 있을 수 있어도 멋부림은 허용되지 않아요.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막연히 이해되는 문장도 있을 수 없죠. 한 단어가 문장이 되고 앞 문장이 뒷 문장이 '필연적으로' 연결되고 그 안에 숨은 의미를 담으면서 문단을, 페이지를, 이야기 전체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부단한 연습이 필요한 일이에요. 열렬히 칭찬받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것'을 창조하는 기쁨을 문학만큼 잘 느낄 수 있는 예술은 없어요. 글은 타인과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끝없는 자극과 감동을 주니까요. “
“고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쓰고 버리는 것도 괜찮습니다.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마음을 먼저 돌아보세요. 초조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어떤 틀에 맞추고 싶은 것은 아닌지, 내가 아닌 내 모습으로 잘 보이고 싶은 내면의 욕망은 없는지, 감추고 싶은 걸 교묘하게 속이고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닌지. 우연이라는 이름은 최선일까. 우연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인물은 어떤 우연과 필연 속에 놓여 있을까요. '달'은 그냥 달일까요. 달빛을 내뿜는 그 달, 표면에 분화구가 있는 그 달, 지구 주위를 도는 그 달뿐일까요. 문학에서의 은유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앞선 작가의 유명작 <달과 6펜스>에서 달이 함유하고 있는 달의 의미를요.”
여름 강좌를 8차시로 개강한다고 알렸고 다섯 명이 모여서 이 정도면 시작할 수 있겠다 했는데 오후에 한 명이 취소했다. 바로 환불해주고 폐강을 고민했다. 내 글 쓰면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동생한테 연락해서 100만원을 빌렸다. 지난달에 선금으로 받은 수강료를 카드값으로 써버렸기에 돌려줄 돈이 필요했다. 괜찮아. 봄 강좌 연 데 감사하자. 여름 강좌는 욕심이었을 수 있어. 그래, 돌려줄 작정이었다. 그런데 어라? 7시에 마지막 수업하러 갔더니 어떤 분이 “저 여름 강좌 신청할 건데요.” 아직 돈만 안 냈을 뿐 수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목요일만 기다려요” 라고 말했던 그분. 오늘 뒤풀이를 했고 그분이 술값 내셨다. 도예 배우고 돌아오겠다는 분, 입시 끝내고 돌아오겠다는 분에게 여기서 기다릴테니 꼭 오셔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어떻게든 수업을 지켜야 한다.
집에 오면서 내가 이걸 해도 되나, 해도 되는 사람인가 부끄러움이 사무쳤다. 수강생들의 지식과 안목과 배려를 강사인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달에 홀린 광대에서 쇤베르크와 난쏘공을 언급하는 정보와 사유의 고리와 타당한 맥락이라니! 나는 고작해야 문장만 뜯어본 것 아닌가. 자세만 지적한 것 아닌가. 선생으로 앉아 있지만 아 그래요? 몰랐어요, 라는 말을 더 자주했던 지난날이 스스슥 떠오르고... 현직 국어 선생님 앞에서 은유를 말할 때의 떨림, 현직 학예사에게 동주와 몽규를 처음 듣는 것처럼 듣고 있을 때의 한심함...(왜 정확하게 말을 못하니, 영화를 보고도 왜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니...) 난쏘공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태백산맥 1권이 야했는지 어땠는지 말을 얹지 못하는 나... 뭐냐고.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흩어지고 쓰러진 말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손잡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수고하셨어요.
이렇게 답장했지.
선생님이 함께 해 주셔서 뿌듯하게 저희 수업을 자랑할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너무 멀리 가지 마시고 꼭 다시 오세요.🤗
쓰겠다.
또 쓰겠다.

'소설,글쓰기강의 > 소설, 에세이,자서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여름강좌] 환상문학 읽기(1) (0) | 2020.06.12 |
---|---|
책락 독서모임-이해할 차례이다 (0) | 2020.06.01 |
[인천] 글(소설)쓰기 (8,9,10) (0) | 2020.05.22 |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