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배다리 마을로 가는 교실
소설가인 나와 시 쓰는 이설야가 뭉쳐 콜라보 강좌를 기획했다.
15차시의 긴 여정이었고
지난 목요일 드디어 낭독회 발표!!
지금 -류태숙
하교시간인가 보다. 초등학교 아이들 몇 명이 우르르 달려간다.
옆에 있던 젊은 엄마가
조~은 때다.
‘그렇지. 지금이 좋은 때지. 쟤들은 그걸 몰라. 젊은 엄마도.
지금
지금이 좋은 때라는 건
열 살도 사십 살도 칠십 살도 똑같아.
다만
지금은 지금이 좋은 줄을 모르지.
그러다가 까마득히 먼 날이 오면
가만히 웃지.
정임(윤이) 너 만구 삼촌하고 친하지? 삼촌한테 안 가니? 가자가자.
미영 그래
정임(윤이) 만구 삼촌, 꼭 <테리우스>같지 않니?
미영 그런 것도 같고……
그해 여름은 푸르렀다. 윤이와 나는 삼촌이 들일을 나가는 먼 밭까지도 매일 매일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소나기가 내렸다. 우리는 하우스에서 비를 긋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삼촌이 말했다.
동효(삼촌) 나는 비 갠 후의 하늘과 산과 들의 푸름이 참 좋아
우리는 커다란 짐자전거를 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윤이가 자전거에 태워달라고 삼촌에게 떼를 썼다. 자전거에 두 사람이 올라타 삼촌이 페달을 밟는 순간, 윤이가 삼촌의 허릴 꽉 끌어안았다. 그때 그들이 탄 자전거가 이제 막 낱알이 차기 시작한 볏논으로 빠져 버렸다. 진흙투성이가 된 채로 두 사람이 웃었다. 나도 배꼽이 빠져라 따라 웃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슬퍼지기 시작했다.
1970년 11월 10일 화요일 맑음. 소유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다. 가장 자유로운 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이다. 사람은 한 순간에는 한 가지 일밖에 할 수 없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부정했었다. 그녀와의 사랑과 앞으로 가야할 대입의 길을 함께 가려 했다. 나에게는 안 되는 일이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강동효
나무 사이로 달이 웃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달빛
기꺼이 다가와
볼을 비빈다
그리움 담은
미소
가슴 저린 설렘
새로 생겨나는 별
맞잡은 손
밤바람을 데워
깊어 가는 연정
풀 섶 벌레들 속삭임
별들의 대화
둘은
은하를 건넌다
첫사랑
별이 빛나는 밤에
달개비에게. 오늘 수업 중 바람이 온통 교실을 휩싸고, 은사시나무 잎이 물결치고,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다가 왜 그리 서러운지 눈물을 질금거릴 뻔했다. 그래, 아마도 가을은 서러운 계절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빈 들판에 서고 싶다는 생각, 너풀대는 머리를 흩날리며 애기처럼 맘껏 소리치고 달려 보고 싶다는 생각, 서른의 손금을 지나고서도 이토록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살다니. 얘야. 부끄러워하지 말거라. 너 자신을 아끼고 얼마든지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게다. 너는 철저한 네 주인이 될 수 있음을 기쁨으로 가슴에 새겨 둘 것이다. 날개를 펴고 네가 원하는 공간을 향해 출발을 시도하거라. 하늘은 넓고 맑을 것이다. 날다가 쉬고 싶으면 어느 때고 날개를 접고 그늘진 나뭇가지에 몸을 내리거라. 급히 사는 것보다 천천히 사는 삶이 훨씬 값진 의미를 지닐 수도 있으니까. 바람은 몹시 불고. 늙은친구 -
성에
심혜정
바다를 큰 소리 내어 울지 못하게 하는
그 차고 흰덩어리가
바다 위를 떠다니며 고집스럽게 붙어있다
밀어내도 너른 가슴 한 가운데
부유하며 제 계절을 생각하라고
짓누른다
바다는 찬 바람도
텅 빈 모래사장도
돌아보지 못하고
소리 죽여 흔들린다
갈매기 바람 맞으며
앉을 곳 없는 바다 위
서성댄다
제 계절을 생각하라는 그 말이
바다 안에 가득하다
부엌 작은 창으로도 바람은 들어오고
박정임
나무들이 수선스러웠지
계곡에서 물고기를 몰듯 골목 입구부터
아침의 안개와 어느 집 빨래 냄새까지
내 앞에 풀어 놓고
혼자 버려두지 않겠다는 듯
마치 강아지를 부르는 주인처럼
작은 창으로 하늘은 보이지 않지
갈 곳을 잃은 내 장기들도
바람에 이끌려 눈길을 주고
어쩌면
작은 창으로 나는
한 발 내딛을 수도 있을 거야
넓은 품으로 받아 주었으면 해
미로 속에 갇히지 않도록
깜박이는 불빛을 세워줬으면……
끈적이는 나태에 속아 주저앉지 않도록
항상 이름을 불러 줘
오랜 장마 끝에 해를 만난 풀처럼
내가 요즘 시 수업을 듣잖아. 난 나한테 소녀 감성이 있는지 몰랐어. 예전에는 내가 하는 일에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워크숍만 쫒아다녔지 나를 위한 수업을 들은 적이 없거든. 내가 왜 그렇게 마음의 여유없이 앞만 보고 달렸나 싶어. 아마도 그건 아빠에 대한 미움이었던 것 같아. 딸도 잘 살 수 있고 성공해서 부모에게 잘 해드릴 수 있다는 증명을 해 보이고 싶었던 거 말야. 내가 살아가는 동력이 아빠의 미움이었다니 씁쓸하네. 그런데 아빠가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을 때 나는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었어. 아빠 살아생전 큰딸이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말야.
내 일생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적이 아빠가 암 투병하셨을 때였어. 일중독에 퇴근도 안 하고 집에 있으면 불안하니까 주말에도 당시 운영하던 미술학원에 나가 있어야 마음이 편했을 정도였으니까. 너무 바빠서 아빠를 잘 찾아뵙지도 못하고 결국 아빠는 큰딸이 일더미에 깔려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기억하며 돌아가셨지. 병실에 계셨을 때 유일하게 딱 한번 아빠의 손을 잡아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이 유일한 화해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일찍 아빠와 화해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럼 나의 전력 질주가 좀 더 빨리 멈췄을 텐데.
금색을 진즉 사용했더라면 아빠와의 오래된 그날 저녁이 더 빨리 소환 됐으려나? 아빠를 생각하고 싶을 때는 금색을 써야겠어. 혹시 알아? 아빠와의 추억이 소환되는 마법이라도 걸릴지. 베틀 준비해. 추억의 실오라기를 모아 손수건이라도 짜야겠다.
영웅이 되고 싶어
이선복
세 아이는
비릿한 물냄새 나는 우물에
머리를 넣고
물속에 비친 서로의 얼굴에
돌을 던져 괴물을 만들고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메아리 속으로 빠져든다
사내아이는
우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여자아이 둘은
들은 척도 안 한다
사내아이는 우물로 들어 간다
여자아이 둘은 사내아이의 팔을
하나씩 잡고
목 놓아 운다
살려 주세요
번쩍
아이는 들어 올려지고
파란하늘 아래 우물은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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