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주는 마음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알아주는 마음보다. 나 여기 있어, 라는 눈빛을 내보이면 ‘작은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떠들었다. 경비실에서, 택시에서, 바닷가에서, 그리고 트위터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출판사에 넘길 원고를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소설 곳곳에 내가 있었다.
등 뒤의 손닿지 않는 곳을 떠올리며 외로워하는 혜수 씨도(「팔로우」), 단 하루만 쓰고 말 이름을 짓는 소년 비도(「비 인터뷰」), 폭력적인 사내를 참아내고 술집에서 나오자마자 구토하는 앤도(「존과 앤」) 모두 나였다. 나는 헤드폰 쓴 사람들을 향해 호루라기를 불었고(「헤드폰」), 입주민을 찌르고 아파트 꼭대기로 올라갔으며(「가까운 그리고 시끄러운」), 술 냄새를 들키지 않으려고 자주 향수를 뿌렸다(「기억전쟁」).
이성애자인 술희를 그리워하면서 1인용 숙소로 들어가는 나(「완벽한 날들」), 이른 봄, 눈밭에 주저앉아 꺼억꺼억 울음을 쏟는 나(「눈꽃엔딩」), 불현듯 홀림의 감정에 사로잡혔다고 고백하는 나(「인턴」), 그들은 정말 나였을까?
나뿐이었을까?
빈 종이에 ‘다른 글’을 채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모 대학 소식지 편집장으로 일했고, 모 예술회관 계간지 문학방 초대석 코너를 맡았었다. 인터넷 신문사에 잠깐 근무한 적 있고, 그만 둔 뒤에도 객원기자로 지냈으니 ‘인터뷰’라는 걸 질리게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청년기획자, 독립영화감독, 통신노동자, 시민단체활동가 등등을 만날 때마다 주목받는 자에게서 엿볼 수 있는 개별적 존재감에 탄복했는데, 한편으로 내 작품세계를 꾸리지 못하고 있다는 데 마음이 쓰렸다. 그리고 지난세밑, 느닷없이 팽 토라진 연인처럼 나는 인터뷰어로 나서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들을 불러들여 완성한 소설을 엮으려니 각별한 선물을 얻어든 기분이다.
*
언젠가는 되리라고 믿었으면서도 첫 소설집을 묶지 못할까봐 조마조마해 했다. 지난해에도 그랬지만 올해는 더 심했고 여름에 나는 거의 추락할 지경이었다. 발표작을 추려 출판사에 보내 출간 가능성을 타진해보라는 주변의 충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뒤, 소설을 썼다. 한 번만 더, 이번 여름까지만 해보고. 실패하겠지. 잘 안 되겠지. 그럴 거야. 하지만.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날마다 문장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작가의 말을 쓰고 있다.
웬일인지 잘못한 일들만 떠오른다. 사랑하지 못했던 일들만.
인류는 이야기로 정보를 교환했다. “아래쪽은 위험하니까 가지 마.”, “물소리를 따라 가면 먹이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이야기를 전하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은 생존과 직결돼 있었다. 이야기를 궁리했던 우리는 살아남았다.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심훈문학상 심사위원, 발문을 써준 정홍수 평론가와 아시아 편집부에 감사드린다. 제대로 인사하지 못해 두고두고 마음 쓰였던 엄마, 여동생들, 제부와 두 조카에게도 사랑을 보낸다. 내가 존경하는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2019년 가을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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