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날다책방 파견작가 이재은
반달과 나
나는 동물을 두려워한다. 크든 작든 마찬가지다. 집밖에서나 집안에서나 동물에게 애정을 표한 적이 없다. 먼저 다가가거나, 품에 안거나, 예쁘다든가 귀엽다고 말 걸어본 적도 없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시대. 셋, 혹은 넷이 모였다가 반려동물이 화제에 오르면 나는 가장 먼저 소외된다. 온통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있거나, 함께 한 경험이 있고, 더불어 생활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뿐이다. 나는 동물과의 동거는커녕 동거할 꿈도 꿔보지 않았다.
“한 번도?” 누군가 묻는다. 나를 변명할 시간이다. 똥 치우기 싫어서라는 이기적인 대답은 내키지 않는다. 나 하나 챙기기도 힘들다는 상투적 대꾸도 꺼려진다. “털뭉치가 싫어서……” 나쁜 여자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보는 것만 같다. 세상과 툭 떨어져 혼자 있는 것만 같다. 주인장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동물을 떠올리며 눈을 반짝이고, 기즈모, 뮨, 니체, 또롱이의 이름을 부르고, 지금 옆에 있는 것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오늘 처음 본 사이이면서, 그들은 기즈모와 뮨, 니체와 또롱이를 모두 만나기라도 한 듯 친근하게 습관과 성격을 공유한다. 다정한 호감을 표한다.
나비날다 책방은 고양이가 주인장이다. 청산별곡 님은 자주 반달에게 책방을 맡기고 자리를 비운다. ‘반달 쌤의 책약국’, ‘반달과 함께하는 묘책모임’ 같은 타이틀도 진지하게 지어졌다. 책방에는 고양이 관련 서적이 많고, 고양이 배지, 스탬프, 엽서, 쿠션, 에코백 등등도 소소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싱크대에는 고양이 컵과 고양이 수세미가, 책방 구석에는 고양이 빗자루와 고양이 물조리개가 있다. 화분에서는 쑥쑥 고양이풀이 자란다.
동네 고양이가 반달을 보러 책방에 오고, 방문객들도 책보다 반달에게 먼저 반한다. 반달을 보러 오는 단골손님도 꽤 있어서 책방은 한가할 틈이 없다. “반달, 사랑하는 내 반달”, “우리 반달 어디 갔어요?” 하지만 책방은 책이 있는 곳이고, 책을 사고파는 곳이지 반달과의 조우를 성사시키는 곳은 아니지 않는가. 파견작가로서 나는 대책을 세우기로 한다. 반달은 나중에, 책이 먼저!
책방은 책이다, 라는 모토로 책띠를 만들기로 했다. 나비날다 책방이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에 선정된 이후 청산별곡 님은 한 달에 한 번 ‘작가 네트워크 모임’을 열었다. 시인 이설야, 번역가 박광식, 문화평론가 웨스트우드, 그리고 소설가인 내가 매달 세 권의 책을 추천했다. 나는 색색의 종이에 멤버들의 추천사유를 수기로 적어 책허리에 묶어놓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정성 가득한 책띠에 놀라고, 그렇게 책에 홀리고, 책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자기도 모르게 책값을 결제하지 않을까. 납작한 책상 위에 놓인 추천책들이 눈에 띄지 않을까 봐 큼지막한 글씨로 제목도 썼다. 작가들이 추천한 이달의 책이에요. 짜잔! 사람 중심(?)의 책방을 만들기 위해 단편소설 함께읽기 모임도 열고, 삶을 담은 미니북 강좌도 진행했다. 책 읽는 사람들이 모여 더욱 포근하고 따듯한 책방을 만들고 있어요. 두둥!
꿈을 꿨다. 수십 개의 고양이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즈모, 뮨, 니체, 또롱이가 아니다. 그 눈은 오직 반달의 것이었다. 왼쪽 반달, 오른쪽 반달, 웃는 반달, 기다리는 반달, 봄의 반달, 밤의 반달……. 반달이 땡그란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내게 말했다. “너무 애쓰지 마. 인간들은 책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고.”
반달은 어디에나 있다. 책띠를 두른 책 위에, 강의용 노트북 자판 위에, 미니북 샘플 표지 위에. 톡톡, 볼록한 엉덩이를 친다. “반달, 잠깐만 비켜줄래?” 반달은 꿈쩍도 안 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분발해야 할까?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더 근사한 책을 추천해야지. 더 좋은 글을 써야지. 더 멋있는 작가가 돼야지. 냐아옹.
*
이재은
2015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비 인터뷰’가 당선돼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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