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봄, 단편읽기모임 1,2차시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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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 이번 계절은 '사건' 중심으로 읽는다.

3월은 의미화.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에서 '의미화' 관련 부분을 찾아 공부하고,

총 4개의 단편을 읽었다.​ 그 중 2개 작품에 대한 말말말.



A.M. 홈스 '조니를 찾아서'


장:유괴범이 남자, 아버지의 역할을 했다. 조니에게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송:톰 소여의 모험이 생각났다. 그 작품은 자발적인 여행이었지만 조니를 찾아서는 다르다. 미국의 동력이 사라진 시기에 타의에 의해 연장하고 싶었던 꿈이 있었던 것 아닐까. 소년기의 모험처럼 신나고 용기있는(?) 미국의 개척정신이 지배했던 때. 스스로 안 되니 외부에서 힘을 빌어온다. 조니든 톰 소여든 미국의 원형질을 찾는 데 대한 알레고리가 담긴 것 같다. 소설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쓰인 것 같다.


천:사회에서 원하는 나의 모습을 경험하고 싶은 심리가 담겼다. 인물의 집안 내력을 볼 필요가 있는데, 장애집안의 전형이다. 엄마가 자식을 등한시하고 동생은 지진아고 아빠는 부재하고. 조니(에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는 일반 아이와 달리 조금 성숙한 상태였을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조니에 투영했을지도 모른다.


장:소설 속 등장배경은 가난한 환경이다. 농구장에서 각자 자기 공을 들고 농구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편 갈라서 게임하는 모습이 없다. 소년의 유괴는 하나의 사건이다. 이후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쐐기를 박고 있다. 아버지, 혹은 롤 모델의 필요성을 유괴범이 대신하고 있다. 이는 영웅은 여행을 갔다와야 한다는 영웅서사와도 닿아 있다. 마지막 부분에 "똑같은 길을 걷는데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 미국의 80년대는 레이건의 보수파가 지배. 자발적 힘을 잃어가는 시기다.(이 소설집은 1990년에 발표됐다) 주식 붐으로 고성장시대가 됐지만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졌다. 부의 열매가 국민에게 고루 돌아가기보다 기업이나 고소득자만 배불리는 꼴이 되었다. 소득이 정체됐고 소수만 잉여수익을 올렸다. 

* 톰 소여의 모험은 1876년에 발표됐다. 자연, 탐험,악인의 구분이 명확하다. 반면 조니를 찾아서는 유괴라는 사건을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난 형태로 그리고, 유괴범 또한 친구 같기도 악인 같기도 한 인물로 모호하게 처리한다. 19세기와 20세기 소설의 차이.

 

송:랜디는 조니에게 제품을 가지면 다른 것도 갖고 싶고, 그러다 제품을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제품이 사라지면 자신도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끼지. 제품이 있었다 없어지면 자신도 사라진 것 같아져버려."라고. 이는 tv를 보면 바보가 된다는 소비비판 담론과 연결할 수 있다. 80년대 상황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있다. 70년대에 베트남전쟁에서 지고 리더십 파괴, 경제성장의 한계, 아메리칸 드림이 약화되는 시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시대사회적 맥락은 확실한 재검토 필요)


이:독자 입장에서 분노를 느꼈다. 유괴를 교묘하고 야비하게 치장했다. 낚시를 못하면 때려서 가르치면 될 텐데 그러지 않고 말이나 침묵으로 치사하고 화려하게 포장한다. 소년을 놀이터에 놓고 간 것은 그를 다시 내버려진 채로 나눈 것이다. 아이는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작가의 어릴 적 정서가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포장과 치장에 감춰진 이중적인 모습이 느껴졌다. 또, 이들은 흑인이 아닌 백인이 분명하다. 흑인들은 낚시를 안 한다. 그리고 각자 공을 갖고 놀지도 않는다. 흑인과 에스키모는 취미로, 혹은 재미로 낚시 하는 생활과 거리가 멀다. 원하는 게 있으면 총을 쏘거나 창으로 찔러 얻는다. 


-아이가 뚸쳐나가는 결말은 희망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아빠와 유괴범은 동일인물인지도 모른다. 

-성장소설;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엄마와 레이앤을 돌봐야 하는 남자

-엄마는 왜 등장하지 않을까? 에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소설에 에롤은 없고 조니만 있으니 엄마는 없는 존재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반면 동생은 정상인과 다른 사람으로 나온다. 마지막에 동생 레이앤이 오빠를 부르는 장면에서 에롤이 에러처럼 들렸다는 언급에 주목해야 한다.

-일상의 불안과 여행의 변화(고작 3일밖에 안 됐는데도)


윤이형 '쿤의 여행'


이: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 끝없이 지루했다. 2-3줄이면 될 걸 이렇게 길게 쓸 이유가 있을까. 내 돈 주고 이런 책은 사지 않는다. 집중이 안 됐다.


장:젊은작가상 수상작만 아니었으면 안 읽었다. 쿤과 나를 분리하는 것은 서양의 방식이다. 천국/지옥, 천사/악마의 이분법적 시각. 내 속에 모든 신이 있는데 그걸 분리하는 걸 수긍하기 힘들었다. 소설적 완성도를 갖추지 못한 것 같다. 구성도 너무 엉성하다. 쿤을 떼어내고 자기 삶을 산다는 건데 사실은 딸을 위해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김: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생각났다. 과학혁명의 구조였나? 순간에 깨지는 혁명이 패러다임을 바꾼다.


천:사건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보여지는 이미지와 내면의 나를 잘 표현했다. 남편이 쿤을 갖고 있으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두 작품 모두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소설가는 치사한 인간이다.


김:106쪽은 내 얘기 같아서 찔렸다. "솔직히 댁 같은 사람들, 좀 짜증나. 제 나이대로 못 살고 쿤 같은 것에나 붙어다니고. 받을 혜택은 다 받았는데 속에 든 건 없고, 나이들어 여기저기 젊은 애들 있는 데다 집적거리며 친한 척하고. 모를 것 같아? 당신들은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한 삼십 분 얘기 듣고는, 칼럼에 다 쓰든지 방송 나가서 얘기하잖아. 이십대가 지금껏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건지, 그런 게 그렇게 재밌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여긴 왜 왔어? 뭘 하려고?"


천:85쪽에 밑줄을 그었다. 교사는 어떤 이미지여야 한다는 강요가 느껴지고 그게 나에게는 쿤이다. "병원으로 오기 위해 집을 나설 때부터 쿤은 거세게 저항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 팔다리를 휘젓고 제 머리를 쥐어뜯고, 몸을 좌우로 뒤흔들며 손에 잡히는 것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집어던졌다. 보다 못한 남편이 노끈을 가져와 우리를 꽁꽁 묶었다."


김:113쪽 아버지가 죽어가는 부분에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진짜 공감한다. "나는 그를 옆으로 눕게 했다. 내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그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제대로 가눠지지 않는 그의 여린 목을 두 손으로 감쌌다. 자신의 쿤에 눌려 숨을 헐떡이는 조그만 그를. 나는 이제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쿤을 보낸 내가 어른이 되겠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또다른 쿤들을 계속 찾아다녔듯, 그 역시 무언가를 견딜 수 없어 끝없이 쿤을 찾아다니는 불완전한 어린애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불교에서 참나를 발견하는 게 참선인데 에고가 뒤덮고 있어서 참나로 곧장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한다. 내 속에 에고, 참나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나를 구분하려면 못된 에고가 있어야 한다. 이건 따로 떼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송:소설에 '내가 자랄 모습', '그가 자랄 모습'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회적 역할을 강요받고,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을 말하고 있다. 쿤이 떨어져나간 후의 15세 정도의 주인공은 자아가 형성되고 질풍노도를 겪는 시기이다. 사회적 기대, 가면을 떼니 어린 모습일 수밖에 없다. 

Q:쿤은 그림자와 어떻게 다른가. 

->타인과의 관계성이 다르다. 쿤은 그림자보다 관계에 더 많이 기대고 있다.

->그림자는 한몸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쿤은 '떼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긍정성/부정성, 따듯함/차가움처럼 이분법으로 사고하게 된다. 떼어내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목숨과 연결되는 것은 그림자와 확연히 다르다.



이:태어났으니 살면 된다. 생물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어렵다. 답답하다.


장:내가 튼튼해야 관계성에 빠지지 않게 된다. 생물적인 나와 나를 살게하는 나는 다르다.


천:나를 살게하는 나, 내게는 그게 여행이다. 일탈,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다. 우리는 만들어진 이미지에 갇혀 있다. 여기서는 이렇게 하고 저기서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게 크다. 여행에서는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게 좋다.


송:-로서의 역할, -로서를 권하는 사회인 것 같다. 이념을 권하고, 유고, 삼강오륜, 산업역군, 성실한 근로자, 개근하는 학생을 권한다.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국민교육헌장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런 것에 너무 짓눌려 있는 것 같다.


-쿤은 밀란 쿤데라의 쿤일지도 모른다. 소설에 밀란 쿤데라가 두 번이나 나온다. 그의 책 정체성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거나 소설 쓰는 당시에 그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왜 쿤의 '여행'이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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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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