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는 내게 말을 걸지 않고
기이한 풍경만 보여주고 있다.
나는 단번에 수동적인 여행자가 되었고
누구에게도 다정하게 말 붙이지 않은 채
눈에 보이는 것에 시선을 뺏기고 있다.
그러니까
황갈색 돌산의 옆구리를 깎아 만든 꼬불꼬불한 길이라든지,
산 뒤에서 슬며시 나타나는 맑고 따가운 햇살,
비유가 사족이 되는 선명한 파란 하늘,
양떼가 뀌어놓은 방귀 같고, 집 밖을 떠도는 찬란한 솜뭉치 같은 구름을
보고 또 보면서
감탄에 빠져 있다.
생산적인 삶을 살아야한다는 강박은 여행지에서도 여전해서
나는 거의 말이 없다.
들어주는 일과 질문의 답변에는 성실하지만
감동받은 기색이라든가
흥분한 음색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처음에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어쨌든 관계는 중요하니까.
여행 5일차쯤 됐나...
편한 누군가와 마주앉아 소주를 마시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외로움에 떨면서 눈치 보지 않기로 했다.
그날 오후 창문 없는 방에 혼자 앉아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깠고
바자르에서 돌아온 룸메언니의 놀란 눈초리와 "술 정말 좋아하나보네요"란 멘트에
"네" 짧게 대답하고 말았다. 홀짝홀짝.
경험이 많지 않으므로
여행자들의 각국 방문 소회에 낄 수가 없어
입 다물고 먼 곳을 응시하면서
"돈 많고 시간 많고 추억 많은 사람은 좋겠네" 삐딱한 마음을 먹다가
숙 언니 사연에 뒤통수 한 대 맞았다.
착한 사람의 슬픈 눈빛과 마주쳤다.
교사(수)들의 여행 천국.
여행사의 여행상품 트렌드도 시시각각 변하고
특히 이제는 배낭보다 캐리어라는 말에 서운함 가득.
여행도 끼리끼리 한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절절히 깨달았다.
고산증세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고작 맥주 한 잔 마시고 취하거나
이름을 자꾸 까먹거나
먹은 것도 없이 퉁퉁 붓거나
머리가 깨질 듯 아프거나
눈알이 빠개질 것 같고
손발이 저릿저릿,
음악 듣다가 갑자기 울기도 하고
안압이 높아져 눈이 자꾸 감겨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다이아막스를 삼켰고
산소통의 가스를 흡입했다.
빨리 걷거나 고개 숙이는 일 자제.
원래도 잘 웃지 않지만 근육이 완전히 굳어 버렸다.
차로 올라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갯길,
티베트 불교 사원 곰파,
푸른 호수와 압도적인 황녹색 산.
뙤약볕을 견디고
소나기를 보내고
바람골을 피하고 있다.
울렁거림을 참고
오해를 이해하고
사연 없는 눈물을 닦고 있다.
이 글을 쓴다고
전기가 끊긴 판공호수 앞 어두운 텐트에서
계속 핸드폰 액정을 보고 있으니
눈이 뻑뻑하다.
밤새 눈 뜨지 말아야겠다.
*
술자리 끝. 방으로 귀환. 제법 여행다웠던(?) 시끌벅적 술판의 첫밤이자 마지막 밤. 갖고 있던 소주와 안주를 모두 풀었다.
여행 멤버들의 첫인상과 좋고싫음이 오고가고 분위기에 편승해 슬쩍 슬쩍 웃고 떠들고.
내가 아는 정보를, 딱히 비밀은 아니지만 타인에게 떠벌리듯 말하지 않는 신의(그의 직업이랄까 위치랄까... 그가 오해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본인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으므로)... 기특하다, 이재은.ㅋㅋ
웃긴 이야기 하나.
라다크 수도 '레' 도착하자마자 통신 두절. 의지할 데는 오직 숙소 와이파이. 그러나 그마저 쉽지 않고 연속 닷새, 오지를 떠돌다 드디어 속세에 발디딘 어느 날!!
나를 걱정하는 누군가는 영화 스파이더맨의 그 촐싹이(?)처럼 매일 대답 없는 안부를 묻지 않았을까? 자기의 일상을 매일 조금씩 전해주며 나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와이파이 켜면 카톡이 주르륵 와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런 유치한 귀여움이나 집착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ㅋㅋㅋ
경계less 친구들이 짱! 촐싹이처럼은 아니지만 까톡까톡까톡.❤ 한국 오면 먹고 싶은 거 사주겠다기에 벌써 술 약속을 잡았다. 캬
이틀 남은 인도 일정 너무 아쉬워말고 낙지볶음 먹으러 한국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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