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우비처럼 맑고 느닷없고, 신기한-시인 임희진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인천문화예술회관 소식지 <아트인천> 봄호
그녀가 일하는 공간에서 만났는데 매우 푸르고 안락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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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를 읽고 쓴다. 2018년에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했고, 『삼각뿔 속의 잠』으로 제12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림책 『달과 토끼』 등이 있다.

“동시는 여우비처럼 맑은데 느닷없고, 짧고, 신기해요. 동시를 좋아하게 되면 누구든 붙들고 알려주고 싶고, 외우고 싶고, 노래로 부르고 싶어요. 자꾸 말하고 싶은 게 동시의 매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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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뭔가를 쓰고 싶었단다. 소설도 써보고, 시도 써보고, 동화도 써봤단다. 동시를 많이 읽으면 동화에서의 리듬감이나 정서 표현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2017년 봄, 처음으로 동시를 배우러 갔다. 선생님의 낭독.

늘 / 강아지를 만지고 / 손을 씻었다 // 내일부터는 / 손을 씻고 / 강아지를 만져야지 

네발나비가 나풀나풀 날아와 바위에 앉았어 / 접었던 날개를 펴자 / 반짝! / 바위가 눈을 뜨지 뭐니 // 바위는 이때 나비가 본 모든 것을 본 거야 / 그렇게 딱 한 번 본 것을 / 오래 맛보느라 / 바위는 오늘도 눈을 감고 있는 거지

“와, 이게 뭐예요? 세상에! 선생님, 이런 건 누가 쓰나요?”
그녀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기교가 없는 듯하나 마음에 남고, 상상으로 판타지 세계가 펼쳐진 순간. 함민복의 「반성」과 이안의 「외눈바위」를 만난 날 임희진의 세상은 달라졌다.
“눈앞이 환해지면서 진달래 군락이 펼쳐졌어요. 저도 나비가 본 모든 것을 본 거예요. 동시가 이런 거구나 놀랐어요. 완전히 빠져들었죠.”

열심히 배웠고 열심히 지우고 썼다. 그해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렸고, 큰아이를 떠올리며 창작한 「숭어」가 한국일보에 당선됐다.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아이였어요. 대여섯 살 아이들은 보통 공룡도 좋아하고 자동차도 좋아하는데 우리 애는 운동도 안 해, 음악도 싫고 노래도 싫대요. 뭘 좋아하지? 좋아하는 게 생기기는 할까? 미술관에도 데려가고 박물관에도 데리고 다녔어요. 어느 날 곤충을 보는데 눈빛이 달라지더라고요. 한참 거미를 들여다보더니 몇 날 며칠 거미를 그려요. 그 순간을 ‘팔딱 뛰는 숭어’에 빗대 시를 썼어요.” 

*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학원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쳤다. 난독증임상지도사로 난독증이 있는 학생과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최근에는 문해력 강의도 하고 있다. 애드밸 출판사에서 기획자 겸 편집자로 책 만드는 일도 한다. 그리고 지난해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석사 과정에 등록했다.

“대학원에 간 건 오래 쓰고 싶어서예요. 문학에 대한 기반이 얕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동문학만 배우는 게 아니지만 생각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돼요. 시야가 넓어야 오래 쓸 수 있잖아요. 다양한 자극이 저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갈 때가 많아요. 
일도 하고, 글도 쓰고, 아직 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있어서 시간에 쫓기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해서 늘 설레요. 문학 이론이나 철학을 접하는 과정에서 낯설게 접속되는 게 있더라고요.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가 탄생하기도 하고요. 한 번도 산문적인 동시를 쓴 적이 없는데 그런 것도 나오고 말하기 방법, 이야기하는 방법도 달라지는 듯했어요.
아동문학을 평론하는 원종찬 선생님도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지난 학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셨는데 뜻깊은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동시는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이다. 더불어 인간의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문학 장르다. “공감이 잘 되는 동시가 좋은 동시”라고 그녀는 말한다. 

“동시는 아이들만 보는 게 아니에요. 생각이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으면 어른도 즐길 수 있죠. 하지만 아이들을 소외시키면 안 돼요. 그러면 어린이 문학이 될 수 없으니까요. 동시 쓰는 사람들은 쉼 없이 줄타기를 해요. 쓰는 사람, 즉 나 자신은 어른이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툭 튀어나올 때가 있죠. 그 정도나 깊이가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여야 해요. 그렇지 않고 어려워지면 어린이가 배제될 수 있거든요. 그걸 놓치면 안 돼요.”

*

임희진은 지난해 『삼각뿔 속의 잠』으로 제1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예민한 아이’를 새롭게 부각했다는 점에서 신뢰를 얻었다. 심사위원들은 예민함이 일상의 세계를 세밀히 들여다보는 긍정적인 ‘촉수’로 거듭난다면서 “예민에 관한 물음이 ‘존재의 구성’에 대한 깊은 질문으로 이어져 범상치 않은 사유로까지 우리를 안내한다”고 호평했다.

“큰아이를 생각하면서 「숭어」를 썼다고 했잖아요. 예민한 아이에 대한 시는 작은아이를 관찰하면서 만든 게 많아요. 표제작 「삼각뿔 속의 잠」에서도 표현했지만 둘째가 예민하고 특히 잠에 민감한 편이에요. 자기 전에 이불도 반듯하게 깔아야 하고, 문도 꼭꼭 다 닫아야 하고, 서랍장도 잘 끼워져 있어야 하고, 커튼도 단정하게 쳐야 하고요. 작은 소리에도 깨고, 그러면 다시 한번 뭔가 불안한 게 없나 살펴본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녀가 염두에 둔 건 정체성, 나를 찾는 일이었지만 심사위원들이 그녀의 시에서 예민한 아이의 특별함을 발견했고 이후 출판사가 예민한 아이를 부각한 시집을 펴내자고 제안했다.

“예민함이 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면이 없지 않은데 그걸 소심하고 자기 표현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아닌, 더 많이 생각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아이로 봐주셔서 기분 좋았죠.”

동시집 한 권 없는데 내가 시인일까? 내가 쓰는 게 좋은 동시가 맞을까? 앞으로 어떤 관문을 통과해야 할까? 책을 낸 뒤 이런 걱정과 초조는 확실히 줄었다. 당장은 욕심이 크지 않고 놀이하듯 편안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창작을 이어가고 싶다.

「예민한 아이」

내 눈은 고성능 카메라야
미세한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아

내 귀는 고성능 음성 증폭기야
아주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려

내 신경은 고성능 안테나라서
사람들 기분을 살피느라 늘 곤두서 있어

고성능 기계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
금세 방전되고
가끔은 아무 버튼도 안 먹힌다니까

초록 불빛이 깜빡깜빡
방전되기 직전이야

충전하려고 콘센트를 찾고 있어
구석구석 다니다가
결국, 못 찾으면
완전 방전

미안, 나 먼저 갈게
집에 가서 충전해야겠어
난 예민한 아이니까

*

동시를 쓰면서 많이 다정해졌단다. 동시 쓰는 분들이 대체로 다정해서, 자꾸 다정함을 입으면 그게 좋아지고, 다정한 행동을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타인을 다정히 대하는 게 민망하다고 여긴 적도 있고, 살면서 차갑다는 평을 들은 적도 있는데 요즘은 말투나 표정도 바뀌었다고 하고, 아무튼 사람들이 보기에 ‘꽤 다정한 사람’이 됐다.
동시의 영향일까. 아니면 그녀가 애정을 갖고 참여하는 동시 모임 사람들의 영향?

“둘 다 있는 것 같아요. 동시하는 분들 중 대부분이 초등교사가 어린이와 관련된 일을 해요. 그분들은 진심으로 애정을 표현해요. 옆에 있는 사람을 대단하게 만들어줘요.” 

다정한 존재를 언급하자면 이안 선생님도 빼놓을 수 없다. 동시의 첫 발걸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좋은 시에 대해, 좋은 시인에 대해, 좋은 사람에 대해 알려주신 분이다.

“훌륭한 스승, 멋진 선배 시인으로서 자기를 최대한 펼쳐서 그늘을 내주고 있다고 느껴요. 한 사람이지만 한 사람이 아니에요. 저 같은 사람 백이 모여도 선생님 한 명이 하는 일 한 가지도 이룰 수 없을 거예요. 행동하는 힘과 영향력이 있어요.
계속 쓰면서 살고 싶어요. 쓸 수 있으려면 지면도 필요하고, 사람들이 작가인 저를 궁금해해야 하잖아요. 저는 좀 소극적인 편인데, 작가로서 다른 나로 살아보려고 해요.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쓰면서 사는 게 삶이고 읽으면서 나누는 게 저의 삶이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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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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