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 소설 읽기 #펜트하우스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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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에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읽어도(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이 거의 그렇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 가득한 소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는 다분히 계급적인데 건물 관리인인 모건은 지하에 살고, 꼭대기인 펜트하우스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는 점에서 영화 <기생충>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꼭대기층인 펜트하우스. 주인 부부는 외출하고 그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와 관리인 모건, 그 건물에 사는 예순 살 즈음의 윈턴(그리고 그녀의 개)가 주요 행위자이다. 거칠게 말해 펜트하우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낮은 계급 사람들이랄까.

아일랜드 출신이라고 밝힌 모건은 가장부인 비앙카카 대접한 커피에 술을 타고("아일랜드에서는 이렇게 마셔요")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주인이 아끼는 카펫에 물을 엎지르거나 난로를 쓰러트리는 식으로 사고를 친다. 그러고는 윈턴의 강아지가 한 짓이라고 거짓말한다.

예상과 달리 사고 치는 인물이 강아지가 아니라는 점(아니나 다를까 강아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시도도 있다),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인물을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독자를 긴장하게 하는 점,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면서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는 점,
주객전도의 아이러니를 장소의 상징성에 더해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점 등이 좋았다.

개를 키우며 혼자 사는 중년 여자 윈턴은 경제적 여유가 있지만 부주류이며 소수자인(미혼/비혼이라는 점에서) 인물로 그려지는데 모든 걸 내려다보는 중재자 역할이다(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시선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을 듯) 그녀는 현실에서 신이 되지 못했지만 소설의 모든 인물을 안아주는 관용을 보여준다. 
모든 소설은 실패를 다룬다고 할 때, 이 소설의 초점은 역시 윈턴에게 맞춰져 있다. 실수인 줄 알았던 모건의 행동이 사실은 의도적이었으며, 나쁜 의도를(가진 자를 질투하는 근본적인 감정부터) 다른 죄없는 이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작정한 것까지 이 작품의 이야기 전개는 빠르고 현란하다. 단순히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탐구하는 게 문학의 할 일. <기생충>을 언급했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 더 계급과 차별에 대해 파헤치며 인간의 본성을 들춰낸다. 

앞선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윌리엄 트레버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에 대한 단편을 많이 남겼는데 이 작품에서도 '아무 잘못 없는' 윈턴이 홀로 고충을 겪는 듯한 느낌이다. 다행히 그녀는 예순넷의 나이에도 현명하고 사려깊다. 트레버의 소설은 서사와 더불어 사유도 풍부한데 사건이 종결된 뒤에도 마무리 짓지 않고 인물들의 사유를 이어가는 것에 매번 감탄하게 된다. '스토리'보다 더 중요한 게 있고, 그게 바로 '문학'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겠지. 별 다섯 개.

""우리 모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윈턴이 당황한 나머지 화끈거리는 얼굴로 외쳤다. "모건 씨 같은 남자나 댁들 같은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독신으로 사는 나이 많은 여자 모두 가릴 것 없이요. 우리 모두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모건 씨는 날마다 그의 거처인 지하에서 올라와요. 세입자들은 모건 씨한테 돈을 쥐여 주죠. 모건 씨는 세입자들을 그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바라봐요. 그렇게 할 권리가 있죠. 모건 씨한테는 까다롭게 굴 권리가 있어요......""

""나는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윈턴이 소리쳤다. 그녀는 이제 당혹감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개하고 앉아 있거나 가게에 가죠.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요. 나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무언가를 해 보려는 거예요. 이해를 도우려고 노력 중이죠.""

"'나는 실패했어.' 윈턴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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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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