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당선작] 우물 안 심해(深海)_정수진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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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름방학이 되면 할아버지의 집에 아르바이트를 간다.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조금 우쭐해진다. 왜냐면 7살 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애들은 아무도 없으니까. 나는 아주 바쁘다. 할아버지한테 수박도 가져다주어야 하고, 가끔 문 앞을 기웃거리는 경찰 아저씨들에게 빨대를 꽂은 요구르트를 주고 쫓아내야 한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아주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사람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고. 엄마는 옆에서 그런 소리 말라고 핀잔을 줬다. 하기야 내가 생각해도 좀 요상한 일이다. 할아버지는 우물에 사람을 빠트리니까.
  나도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건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작년 여름 할아버지가 우물에 사람을 쑥 넣고, 놀란 나에게 숫자 60까지 열 번 세라고 해서 열심히 세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다해도 숫자 세기에 벅차서 나는 자꾸 어디까지 셌는지 까먹었다. 어찌어찌 열 손가락이 얼얼해질 때까지 접었을 때 할아버지가 우물에서 줄을 힘차게 잡아 올렸다. 할아버지가 길어 올린 건 두레박이었는데 그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어떤 형이 큰 물안경을 끼고 크고 기다란 통을 등에 메고 있었다. 형이 물안경을 빼니까 그 안에서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형의 눈은 닭장 옆의 흰토끼 눈처럼 빨갰다. 형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고맙다며 인사를 하더니 눈을 비비면서 대문 밖으로 나갔다. 할아버지는 웃지도 않고 태양 아래서 땀을 흘리며 손과 팔을 주물렀다. 

  “할아버지, 어른들은 왜 우물에 들어가?”
  “저 우물은 신비한 우물이거든.” 

  할아버지는 어른들은 한 번씩 축축하게 젖어있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마음은 어두운 물속깊이 빠져있는데, 몸은 환한 밖에 나와 있으니까, 마음이 있는 곳이랑 몸이 있는 곳이 달라서 어른들이 자꾸 병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몸도 한 번쯤 마음이 있는 곳에 똑같이 있어 봐야 균형이 유지된다고 했다. 

  “우물 안에서 뭘 하는데?”
  “사람마다 다르지.”
  “아이, 그러지 말고 알려줘.”
  “우는 사람도 있고, 물건을 두고 오는 사람도 있고.”
  “물건을 왜 두고 와?”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그닥 친절하지 않아서 나는 우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우물은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오늘은 날이 점점 뜨거워지는 초여름이다. 달력에는 ‘소만’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 누워서 강아지처럼 헥헥대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내 입에 손가락을 넣었다 빼더니 그러다 입에 벌레 들어간다고 놀렸다. 
  어떤 누나가 왔다. 누나는 더워서 기운이 없는지 겨우겨우 우물 쪽으로 걸어왔다. 할아버지는 평상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누나에게 종이를 건넸다. 나는 그 계약서를 본 적이 있다. 우물에서는 10분~20분만 있기. 선불. 본인의 의지로 나오지 않아 사망 시 사업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기. 우물 안에 지나친 쓰레기는 투하 불가. 너무 많이 울지 않기(물안경에 물이 차니까) 그리고 깝치지 말고 산소호흡기 착용하기. 가끔 잠수 잘한다고 자기는 맨몸으로 들어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내가 할아버지 말 안듣고 우길 때 혼내는 것처럼 그 사람들의 등짝을 때리며 산소호흡기를 차게 했다. 안에 들어가서 나오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멋대로 시간 연장하면 1분당 100만 원을 내게 할 거라며 으름장을 놨다. 또, 할아버지만의 규칙이 있었는데, 우물에 들어가려는 손님들에게 항상 같은 질문을 했다. 

  “왜 우물에 들어가려고 합니까?”
  “······그냥.”
  “그냥은 안됩니다.”
  할아버지가 호랑이처럼 무섭게 눈을 뜨며 말하자 누나는 움찔하더니 손가락을 비비 꼬았다.
  “잊고 싶은 기억이 있어서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두 번 끄덕이더니 누나에게 산소 호흡기를 건네고 두레박줄이 튼튼한지 손으로 당겨 확인했다. 
  “잘 두고 오세요. 여행한다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가지시고요. 너무 긴장하면 사고 납니다.”
  
  누나는 조용히 두레박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이 자리를 찾아 조심히 앉는 병아리 같았다. 누나가 천천히 좁고 깊은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까만 우물에 모습이 사라지는 누나를 지켜보았다. 할아버지가 우물은 바닥쯤에만 물이 내 키만큼 차 있다고 했다. 엄마가 나는 내 친구들보다 키가 크다고 했으니까 우물은 꽤 깊을 것이다. 어른들은 이상하다. 왜 바다에서 잠수를 안하고 이 시골까지 와서 돈을 내고 우물에 들어가 잠수를 할까. 
  원래는 손님들에게 말을 걸면 안되지만 할아버지가 오늘은 특별히, 손님이 별로 없으니 말을 걸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나는 신이 나서 우물 앞에 앉은 할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렀다. 할아버지는 햇볕을 많이 쫴서 피부가 단단하고 구릿빛이다.
  해가 뉘엿뉘엿 졌다. 밥 짓고 국 끓이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몽롱하게 앉아 있다가 할아버지가 두레박을 끌어올리려 일어설 때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누나는 몸이 가벼워서 줄을 당기는 할아버지의 팔뚝에는 핏줄이 평소보다 적게 서 있었다. 누나는 두레박에 들어갈 때처럼 얌전히 산소호흡기를 벗어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할아버지는 편안한 한숨을 쉬었다. 누나는 온통 축축이 젖어 있었다. 누나가 입은 흰색 원피스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처녀 귀신이 생각나서 나는 뒷걸음질 쳤다. 그래도 누나는 산소호흡기를 쓸 때보다는 후련한 얼굴이었다. 누나가 벗은 물안경은 내가 받았다. 물안경 안에는 물이 조금 찰랑거리고 있었다. 누나는 마당 구석에 있는 탈의실에 들어가서 빳빳하게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탈의실 옆에서 쪼그려 앉아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문질러 닦았다. 

  “누나, 우물 안에서 뭐 했어?”
  “눈 감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
  누나가 눈을 한번 깜빡였다. 나도 눈을 한번 깜빡였다. 그리고 누나 앞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무슨 생각?”
  “예전에 힘들었던 생각.”
  “우물 안에는 뭐가 있어?”
  “보물들.”
  “무슨 보물?”
  “사람들이 하나씩 두고 갔나 봐. 머리핀도 있고, 편지 봉투도 있고, 반지도 있고... 이것저것 잡동사니들.”
  누나의 얼굴이 약간 환해졌다.
  “에이, 그게 무슨 보물이야?”
  누나가 머리카락 물기를 닦다가 웃었다. 
  “그 사람들한테는 한때 보물이었을 거야.”
  “누나도 뭐 두고 왔어?”
  “응. 나는 예쁜 펜을 두고 왔어. 예전에 어떤 남자가 선물해 줬었거든.”
  “예쁜데 왜 두고 왔어?”
  “너무 예뻐서. 계속 그것만 보고 있을까 봐.”
  “진짜 이상하네. 예쁘면 계속 가지고 있으면 되잖아.”
  “······.”
  “누나 바보 같아.”
  “그치?”
  “우물은 좁고 캄캄하잖아. 누나는 무섭지 않았어? 저번에 어떤 형은 들어가자마자 무섭다고 막 울어서 할아버지가 금방 꺼내줬어.”
  누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우물 넓어. 무지 넓은데? 내가 앉아있던 두레박보다 훨씬 큰 원이었어. 눈 감고 있으면 아주 깊은 바닷속에 앉아있는 거 같더라고. 조금 무섭긴 한데, 편안해. 그리고 나를 다시 끌어올려 줄 네 할아버지도 있잖니.”
  누나는 머리 물기를 다 닦고 일어났다. 대문 밖에 누나의 애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는 햇볕에 잘 마른 바삭바삭한 잔디를 밟고 애인의 손을 잡고 돌아갔다. 

  “할아버지, 저기 들어갔다 나오면 행복해져?”
  “모르지.”
  “아까 그 누나는 행복해 보이던데.”
  “그래?”
  “응. 뒷모습이.”
  “······.”
  오렌지색 노을이 할아버지 얼굴에 비치자 구릿빛 얼굴에 주황빛이 조금 더해졌다.
  “할아버지 나도 들어가면 안돼?”
  “안돼.”
  “왜? 궁금하단 말이야.”
  “너는 저기 들어가면 무섭다고 오줌 쌀 게 뻔해. 안돼.”
  “나 이제 오줌싸개 아니야!” 
  “······저 누나처럼, 너무 예쁜데 버리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
  “그러니까, 할아버지. 예쁜데 왜 버리냐고.”
  “그때가 되면 생각해보마. 대신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약속했어, 할아버지! 나 안 잊어.”
  “그런 건 안 생기는 편이 훨씬 좋다.”
  “빨리 어른 되고 싶다. 우물 들어가 보게.”

  할아버지가 두레박 끈을 정리했다. 나는 물안경을 두 손으로 잡고 탈탈 털었다. 잘못 털어서 물기가 얼굴에 다 튀었다. 입으로 들어간 물맛이 조금 짰다. 누나 말대로 우물 안에 정말 바다가 있나, 왜 물이 짜지. 할아버지가 저벅저벅 집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나도 평상 위에 물안경을 두고 따라 들어갔다. 해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 곧 우물 안만큼 하늘이 까매질 거다. 어른들은 왜 우물에 들어갈까. 거긴 어두워져도 별도 뜨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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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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