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당선작] 2200_신문경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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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는 학원 매점에서 핫바와 컵라면을 사 먹었다. 빠르게 끼니를 때우는 데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매점의 테이블이 꽉 차 있었다. 빠르게 해결하고 빠르게 들어가는 것이 모두의 목표였다. 누구는 식사 시간까지 줄여가며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지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글러 먹은 것일지도 모른다. ‘삼당사락’이라는 문구를 책상에 붙여놓는 사람도 있었다. 지수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다들 그렇게까지 했다. 컵라면 국물을 마시면서 뉴스를 보았다. 이번 연도 등록예술인 인원을 발표하고 있었다. 고작 25명.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문턱이 낮아졌다. 지수는 다시 컵라면에 시선을 돌렸다. 수업 시작이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쪽지 시험을 본다고 하였으니 빨리 해치우고 자료를 봐야 했다. 지수는 핫바를 씹었다.

선생님이 선발 인원을 강조했다. 스물다섯 명. 거의 오천 명에 육박하는 사람 중에서 고작 스물다섯 명. 학생들은 머리를 싸맸다. 예슬은 지수에게 쪽지를 건넸다. 

너 시험 준비했어? 
그냥 대충 봤어. 
망했다. 
왜? 
난 오늘 있는지도 몰랐어. 
빨리 공부나 해. 

지수는 피식 웃었다. 선생님은 시계를 앞에 가져다 놓고 타이머를 설치했다. 고작 모의시험인데도 다들 긴장한 눈빛이 역력했다. 문제지와 답안지가 돌았다. 선생님이 타이머를 누르자 일제히 고개를 박았다. 어려웠다. 지수는 1900년대 중반의 예술사에 특히 약했다.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 논하시오. 아는 것을 다 말하되 일관성 있게 서술해야 한다. 학원에서는 각자 희망 분야에 알맞게 서술하는 요령을 가르쳤다. 지수는 우선 연필로 초안을 작성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이거 분명 엄마한테 연락 갈 텐데. 지수가 다니는 학원은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차 없이 잘라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돈만 밝히는 다른 학원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가. 아니면 정말 예술인을 키워내려 노력하는 것인가. 무엇이 되었든 지수는 지금 닥친 이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였다. 거의 200년 전의 사람들을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지금과는 사상 자체가 다를 텐데. 하지만 알아야지만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지수는 예술사를 한 번 더 복습해야겠다는 다짐만 했다. 엄마 미안. 이번에도 조금 글렀어. 지수는 줄을 그어 문장을 지우며 생각했다.

2035년 즈음부터 예술이 위신을 잃었다. 대체로 예술은 무용했다. 무용하기에 아름다웠다. 그러나 고령화, 성차별, 핵, 원전, 지구온난화, 자원 고갈 등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예술가들의 취직이나, 점점 저렴해지는 노동력, 그들 나름의 고통은 늘 뒤로 밀려났다.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조각도 마찬가지였다. 클래식은 연주하는 사람조차 없어졌다. 사람들은 문학을 읽지 않았다. 그러나 쓰는 사람의 수는 그대로였다. 예술로 먹고 살 만큼 돈을 버는 예술가들은 손에 꼽았다. 모든 분야가 비슷했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는 가차 없이 조기 종영을 했다. 연극과 영화는 극을 만들어 올렸다. 대부분 대형 제작사에서 스타 배우를 캐스팅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그마저도 일 년에 두어 편만 성공했다. 성공하지 못한 감독과 연출들은 갈려 나갔다. 연기자들이 배역을 따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독립영화나 작은 연극에서부터 크던 신인들이 사라졌다. 예술영화와 연극제의 수가 줄었다. 가난한 예술가만이 진정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쓰였다. 하지만 가난한 자가 가난을 쥐어짜 내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낸다 한들 팔리지 않았다. 
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점점 고위층의 특권이 되어갔다. 고위층의 자제가 예술을 하고, 그들끼리 구매와 판매를 하고, 그들끼리만 누렸다. 예술은 돈이 되지 않으니 돈이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부잣집 자제들만이 예술을 했다. 평범한 자들은 예술을 선뜻 선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예술을 해야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돈을 벌지 못함에도, 작품을 세상에 알릴 기회는 없다시피 함에도 예술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예술을 하다가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실용적이지 않은 예술, 돈이 되지 않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바야흐로 완전한 실용주의 사회였다. 예술가들의 몰락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예술은 무용했다. 무용함으로써 가치 있었지만, 무용은 실용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무 용 은 실 용 앞 에 서 무 릎 을 꿇 었 다

지수는 책에 사족을 달았다. 정말 예술은 무용하기에 가치가 있는가?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것만이 예술의 목적인가? 지수는 알 수 없었다. 조소를 배우지만 조각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은 없다. 어떻게든 취업하는 것이 일 순위 목표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죄다 등록예술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좋지. 돈도 나오고. 지수는 순수한 예술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예술인 할당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예술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자본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작품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등록예술인이 공무원과 비슷한 혜택을 누린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완벽하게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작품활동을 하고, 그 작품의 성과를 생각한다면, 창작자가 온전하게 개인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가? 지수는 선생님의 설명을 흘려들었다. 사실 이 정도는 학창 시절에 어느 정도 배우고 가는 내용이었다. 

예술인들이 시위를 벌였다. 예술인 지원 사업을 해 달라는 시위. 많지 않아도 좋으니 작품활동을 하는 동안 생계유지가 가능하게 해 달라는 청원. 그러나 많은 사람이 외면했다. 예술은 돈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란 것이 이유였다. 어떻게 예술을 하면서 돈을 바랄 수 있냐고. 돈은 예술을 해치는 가장 큰 요소라고. 예술가들은 아연했다. 예술가 지원사업을 할 돈으로 대체 에너지나 더 개발하라는 대다수의 의견에 휩쓸리게 되었다. 정말 정부에게 예술인 지원금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되었나? 흥행한 작품을 만든 감독도, 베스트셀러 책을 낸 작가도 작품활동을 하는 동안은 수입이 거의 없었다. 예전에는 강연을 해서 돈을 벌었지만, 예술 강연을 들으려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유명한 화가가 말했다. 예술은 자본이 걸려있는 한 예술이 아니다. 예술가들은 분노했다. 화가는 부유한 고위층의 자제였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술은 무엇인가? 후원자에게 돈을 받고 그림을 그린 다빈치는 예술가가 아닌가? 교과서에 수록된 그 모든 예술작품은 대가를 받았으니 예술이 아닌 것인가? 

예술가들은 분노했지만, 그 분노를 끝까지 가져갈 수는 없었다. 삶은 계속되었고, 생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작품 활동을 하든지 그만두든지 하는 것이었다. 예술가들은 살길을 모색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분쟁이 벌어졌다. 원전이 망가졌고, 지진이 일어났다. 대체 에너지를 개발했다. 난자로만 아이를 수정했다. 한국의 이름 유행은 돌고 돌아 다시 영수, 경수, 미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유행이 바뀌어 예원, 수연, 준혁 등이 유행했다. 
2095년쯤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대체 에너지가 완벽하게 상용화되어 환경오염 문제가 해결되었다. 꾸준한 인식 변화로 쓰레기 불법 투기와 무분별한 가축 도축에 관한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예술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숨어있던 예술가들이 한 번에 나타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2115년경 예술가들이 줄줄이 아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경위가 묘했다. 단체 자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입을 모아 그럴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제야 정부 차원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예술가들을 위한 정책이 마련되었다. 대부분 동의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또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돈을 밝힌다니, 하며 작품의 가치를 깎아내리려 했다.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들이 많았다. 정말 ‘예술’만 해서는 밥을 벌어먹기 힘들었다. 

지수는 이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무용하기만 한 예술이 과연 환영받을 수 있을까? 순수하게 예술을 위한 예술을 원한다고 잴 필요도 없고, 돈을 원한다고 비난할 이유도 없다. 일단 머리로만 이해했다. 지수는 입시 면접 당시 조각에 몸을 담겠다고 외쳤다. 그리고 교수님께 마음속으로 사죄드리며 1학년 2학기부터 취업용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교수님, 저는 유학까지 갈 돈은 없어요. 우리 엄마도 그건 원하지 않을 거예요. 지수는 강의실을 꽉 채운 머리들을 훑어보았다. 맨 앞에 쟤는 맨날 논술 만점 받던데. 차라리 쟤한테 과외를 받을까. 볼펜을 휘휘 돌리다가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딴짓하는 예슬을 툭툭 쳤다. 선생님은 곧 지수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래서 정부는 예술인 할당제를 만들었다. 지수는 직관적인 작명 센스라고 생각했다. 정부의 심사를 거쳐 등록된 등록예술인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작품활동에만 매진해도 생활에 문제가 없었다. 2년에 한 번씩은 무조건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20년이 지나면 은퇴를 해야 했지만, 은퇴 이후로도 어느 정도의 생활비가 지급되었다. 처음에는 열 명이었다. 기존에 활동하던 예술인 네 명이 포함되어 있었고 여섯 명은 신인이었다. 화가도 있고, 감독도 있고, 작가도 있었다. 생활비를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작품에만 매달린 결과는 좋았다. 5년 후, 화가는 전시회를 열 수 있었고 작가는 세 권의 책을 냈다. 감독은 두 편의 실험 영화를 만들었고,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는 평을 받아냈다. 
그 뒤로 꾸준히 나쁘지 않은 결과들이었다. 전시회에 사람이 모이자 전시기획 분야가 발달했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자 일자리가 늘어났다. 사람들은 문학을 읽기 시작했다. 도서 시장은 예술의 암흑기였던 2035년부터 2120년까지 발견되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펴내기 시작했다. 출판 시장이 호황이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열렸다. 작곡가는 교향곡을 써냈다. 예술대학을 통폐합하던 대학들은 다시 과를 증설했다. 

다시 예술이 무용한 채로 있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지수는 암흑기를 달달 외워야만 했다. 다음 주에는 2020년부터 2120년까지 쪽지 시험이다. 그나마 근현대사라서 다행이었다.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역사와 예술사를 잘 녹여내는 것이 중요했다. 딱딱한 어조의 책을 지수만의 언어로 다시 정리했다. 암흑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책의 저자마다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저 모든 것이 명확한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가장 많은 학자가 주장하는 것을 외우는 것이었다. 당연히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었다. 2120년이면, 거의 할아버지 세대니까. 그동안 또 많은 것이 변했고, 변하지 않았다. 지수는 연필 꽁무니를 물었다. 연필은 과거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종이 필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통화는 홀로그램으로 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20분 만에 통하는 열차가 상용화 된 지 70년이 넘었어도 학원과 학원가, 교육열, 그리고 식단은 바뀌지 않았다. 
예술인 할당제는 일종의 공무원 같은 느낌이었다. 예술을 하는 공무원. 생활비도 모두 지원해 준다니,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엘리트 같은 인상도 주었다. 결정적으로, 등록예술인이 된다는 것은 돈과 명예와 노후까지 보장되는 길이었다. 등록예술인이 되기 위한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예술학교를 졸업했거나, 예술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아니면 예술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한 번씩 예술인 할당제에 지원했다. 
등록예술인 두 명이 동시에 은퇴했다. 그리고 학원을 차렸다. 수도의 중심지에 위치한 학원은 처음에는 2층 구석에서 시작했지만, 몇 년 후 건물 통째로 사용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돈에 미쳐서 학원까지 차린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등록예술인 양성 학원은 승승장구했다. 등록예술인 중에서 이른 은퇴를 하고 학원을 차리는 사람이 늘어났다. 분야별 학원이 생겼다. 조각, 서양화, 동양화, 시, 소설, 작곡······. 종합학원도 생겼다. 장단점이 있었다. 단과 학원은 포트폴리오에 더 집중하는 시스템이었고, 종합학원은 1차 시험인 예술사와 논술 대비에 강했다. 지수는 예술대학에 다니는 중이었기에 포트폴리오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논술은 약해 종합학원을 선택했다. 지수는 사실 등록예술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크게 없었다. 먹고 살길은 많다고 생각했다. 소품디자인도 좋을 것 같았다. 조각을 배웠다고 꼭 조각의 길로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도전이라도 한번 해보라고 말했다. 늦지 않았으니 학교에 다니면서 준비를 해 보라고. 지수는 엄마의 말에 따랐다. 인생에서 한 번쯤 엄마 말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지수는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학원에서 하는 포트폴리오 수업은 지루했다. 전공생과 비전공생이 나누어지기 때문에 전공생들은 이미 배운 것들을 활용해서 알아서 진도를 나가는 편이었다. 학원은 전자기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노래 듣는 것도 금지였다. 지수는 원래 노래를 많이 듣지 않아서 괜찮았지만 예슬은 내적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데에 도가 텄다. 예슬이 쪽지를 보냈다.

쟤가 너 본다.
누가?
저기 내 왼쪽에서 세 번째.
아 영조였나.
이름이 그래?
응.
쟤 너한테 관심 있나?

학원에서는 연애도 금지였다. 지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쪽지를 툭 넘겼다. 예슬은 더 이어지지 않는 쪽지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스 케 치 나 해

지수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지수는 작품을 어떤 재료로 만들지 고민했다. 등록예술인 1차 시험이 6개월이 남았고, 기말작품전시는 2달이 남았다. 공부 핑계로 작품에 소홀히 했더니 당장 다음 주에 교수님한테 가져다 낼 가안마저 급했다. 지수는 팔을 쭉 뻗어 스트레칭을 했다. 어쨌든 이번 연도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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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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