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당선작] 기억을 깎는 미용실_박건우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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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가게들은 새벽에도 불이 켜져 있는 가게와 꺼져 있는 가게로 나뉘었다. 한창 택배원 일을 할 땐 새벽 댓바람에 나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들어왔고, 일을 그만둔 요즘은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낡은 거리의 새벽은 어두움의 정점이었지만 내 눈은 어두울 때 열린다. 머리카락이 반갑다고 눈과 손을 마주쳐 눈물이 흐르면 내 하루가 시작된다.
하루의 첫 번째 시선은 늘 휴대폰으로 향한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늘 두 개의 문자가 휴대폰에 온다. 첫 번째는 이름도 모르는 납골당에서 온, 자리가 비었다며 어서 고인을 모시라는 문자. TV 옆에 있는 도자기에게 눈길이 향했으나 금방 눈길을 돌렸다. 두 번째로 온 장례지도사의 문자는 그리 열어보고 싶지 않았다. 휴대폰을 닫으며 오늘도 TV 쪽으로 시선을 보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집 앞 거리를 낯선 조명이 밝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리모델링하는 소리도, 모습도 보지 못했지만,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기억을 깎는 미용실’이라는 가게. 그러고 보니, 머리를 만져본 게 언제더라. 신경 쓰지 못한 사이 앞머리는 눈을 넘어 다크서클까지 내려와 있었고, 뒷머리는 언제나 뻗쳐 제비추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정말, 머리를 깎긴 해야겠어. 대충 옷을 주워입고 미용실 문을 열자, 경쾌한 문종 소리와 함께 붉은 머리의 미용사가 날 반겼다.
“안녕하세요, 기억을 깎는 미용실입니다!”
편하신 자리에 앉으세요, 붉은 머리 미용사는 접대용에 가까운 웃음을 지었다. 새벽 2시 30분. 나 말고 다른 손님은 없었다. 입구에서 두 번째 자리에 가서 앉자, 미용사는 능숙하지만은 않은 손놀림으로 내 목에 수건을 매고 얇은 바람막이 같은 긴 천을 덧씌웠다.
“새로 생긴 미용실인가 봐요.”
“저희 미용실은 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손님. 머리가 많이 기신 것 같은데 혹시 머리 꾸미러 오셨나요? 그 머리가 없어지는 건 좀 아까워 보이네요.”
“맨날 없어지는 게 일상인데, 뭐. 그냥 깔끔해 보이게요.”

“그거 아세요? 머리카락은 기억을 담고 있대요.”
“그래요? 그럼 아가씨는 기억하고 싶은 게 제법 많은가 보네.”
미용사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뿌리까지 새빨갛게 염색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그 긴 머리카락은 이상하리만치 죽은 딸과 닮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용을 배우던 것, 접대용 웃음과 목소리, 설화나 미신을 즐기는 것까지도 딸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설마, 하는 마음에 그녀와 딸의 모습을 하나하나 대조하던 중, 머리 뒤에서 마치 딸이 향수를 뿌리는 듯한 분무기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작은 물방울들이 두피에 점점 스며들자, 영혼을 세탁한 것처럼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저씨도 다른 동년배분들에 비해 머리가 많이 기시네요. 아직 정리하지 못한 기억이 많으신가 봐요. 제가 정리를 도와드릴 텐데, 조금 손이 많이 갈 것 같거든요. 시간 괜찮으시죠?”
예, 뭐. 대충 얼버무리고 철제 가위가 맞닿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눈을 감았다. 앞머리 잘려 나가는 소리가 마치 눈밭을 달리는 소리 같았다.

“휴, 제가 처음 일해보다 보니까 좀 체력이 달리네요. 조금만 쉬었다가 할게요.”
가위 소리와 바리깡 소리가 두 귀를 틀어막은 지 십 분쯤 지났을까, 미용사는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일을 하지 않으니 남는 게 시간인지라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았다. 미용사의 몸은 쉬었겠지만, 입은 쉬지 않았다. 이 동네엔 언제부터 계셨어요, 제가 예전에 살던 동네였는데. 라든가, 머리 색깔 이쁘죠? 아빠한테는 못 보여줬어요, 라든가.
“무슨 일 하세요?”
“택배 나르는 일 합니다.”
이 나이 먹고 일을 안 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내 마지막 직업이었고, 내 평생직장이라고 여겼던 택배 일. 그리고 사고 이후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택배 일을 이상하리만치 딸과 닮은 미용사에게는 털어놓게 되었다. 하지만 미용사는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쾌활하게 웃으며 내 말을 맞받아쳤다.
“에이, 안 하고 계시면서.”
너무 당연하게 거짓말을 골라내는 그녀에게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다급히 바리깡 스위치를 끄고 그것을 쥔 손을 뒤로 당기며 고개 돌리시면 머리 모양 잘 안 나온다고 경고했다. 내가 다시 거울을 바라보자, 그녀는 다시 바리깡의 스위치를 켰다. 바리깡이 내 머리카락을 긁어내는 소리는 눈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때의 타이어 소리 같았다.

앞머리 잘려 나가는 철제 가위 소리, 머리카락을 긁는 바리깡 소리. 모두 눈 오는 날 내 택배 트럭에 내 딸이 치이던 그 날의 소리였다.
아이가 미용사 필기시험에 붙던 날, 기념으로 머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미용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고등학생 때부터 필기시험에 붙은 날까지 단 한 마디도 자르지 않고 기르던 긴 생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싶다고 했다. 날이 날이니만큼 그러라고 했고, 미용실에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냈을 때부터 염색이 끝났다고 문자를 보냈을 때까지는 장장 여덟 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미용실에서 나온다고 했던 시간은 내가 근처로 배송을 가던 시간과 겹쳤다.
‘얼른 퇴근하구 십다.우리 딸.머리 얼매나 이쁘게 햇는지.보게.’
운전하느라 마침표고 띄어쓰기고 구분 없이 눌렸지만 그냥 거기서 발송해 버리고 바로 차 앞을 봤어야 하는 건데. 오타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침표랑 띄어쓰기는 구분해서 보내려고 휴대폰 키패드를 잡는 순간, 차량 앞범퍼에 무언가가 부딪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은 눈이 쌓인 날이었다. 나는 그날, 아이에게 보낼 문자를 고치려다가 아이를 보냈고, 흰 눈을 붉게 염색시켰다.

“이 가게가 왜 기억을 깎는 미용실인지 알아요?”
“아까 미용사님이 그랬잖아요, 머리카락에 기억이 담겨 있다고…. 그래서 그런 거 아닌가.”
내 흰 눈이 붉게 염색되는 것이 보이자, 붉은 머리 미용사가 내게 물었다. 눈앞 거울을 보자 깔끔해진 머리카락이 보였다. 눈에 띄게 적어진 숱 때문에 완전히 닮아 보이진 않았지만, 아이가 미용을 배우기 시작할 때 내 머리로 한 첫 실습 때의 헤어스타일이었다. 정말, 내 아이인가, 미용사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덩달아 붉어진 붉은 머리 미용사의 눈이 보였다.
“네, 맞아요. 그러니까, 내 기억 이제 좀 깎아내라고 아빠. 아까 없어지는 게 일상이라면서. 나는 왜 아빠 기억에서 못 없어지는데? 아빠가 날 계속 붙잡고 있어서 나도 못 가겠잖아.”
‘붙잡고 있다’. 그래, 난 아직 딸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 제사조차 지내지 않았고 유골함도 아직 집에 두고 있었다. 네 침대 위에 가만히 이불을 씌워 두면 금방이라도 기지개를 켜며 뛰쳐나올 것 같았다. 미용사는 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말했다.
“오늘 잘라낸 머리카락만큼, 나쁜 기억을 깎아 줘. 알았지? 난 아빠랑 같이 있었던 좋은 기억만 해도 이렇게, 한 다발인데, 좋은 기억으로만 남고 싶단 말야.”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고개만을 끄덕였다. 붉은 머리 미용사는 아까 보여줬던 접대용 웃음 대신 평소에도 자주 짓던, 보조개가 움푹 파인 짙은 웃음을 보여주며 사라졌다.

긴 잠에서 깨어나자 아침이었고, 더벅머리에 제비추리는 그대로였다. 전부 꿈이었을까, 싶어 카페가 있던 자리로, 기억 깎는 미용실이 있던 그 자리로 향했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이 ‘임대’ 현수막만이 펄럭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의 유골함 옆엔 붉은 머리를 가지기 전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과 아이가 아끼던 미용 가위가 남아 있었다.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다, 결국 딸의 사고 후 수습을 앞장서 도와주었던 장례지도사에게 연락했다. 저, 이젠 딸을 놓아줘야 할 것 같아서요.
장례지도사 덕에 납골당에 한 자리를 얻었다. 유골함 옆에는 사진을 넣으셔도 되고요, 아니면 살아생전 고인이 좋아하셨던 거 넣어 두셔도 돼요. 납골당 직원의 말을 듣자마자 딸의 영정과 미용 가위를 옆에 두었다. 단장을 마치고 애도하던 중에도 딸의 사진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딸은 좋은 기억을 많이 지녀서인지 머리가 긺에도 아름다웠다. 다만 유리에 비친, 머리가 긴 내 모습은 나쁜 기억만 덕지덕지 묻어서인지 볼품없었다.
오늘 잘라낸 머리카락만큼 나쁜 기억을 깎아 줘. 부탁하는 딸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마지막으로 할 일은 나쁘고 쓸데없는 기억들을 지우는 것. 딸을 애도하는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던 길, 미용실의 문을 열자 경쾌한 문종 소리와 함께 미용사가 날 반겼다.
“안녕하세요 손님! 어떻게 깎아 드릴까요?”
“그냥, 깔끔해 보이게 깎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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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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