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당선작] 날으는 현관 매트_이미경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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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짜증이 치밀었다. 현관 매트가 또 저만치 날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발장 등의 현관이 있는 고국에서는 현관 매트를 출입구 안쪽에 놓아두지만 출입구에서 현관 없이 곧바로 실내로 연결되는 아열대 나라인 이곳에서 현관 매트는 출입구 바깥, 즉 실외에 그대로 놓아두곤 한다. 그래서 바람이 세거나 스콜이 퍼붓는 날, 가끔 현관 매트가 제자리에서 벗어나 있을 때도 있지만 한 달 전 구매한 이번 현관 매트는 여자가 문을 열 때마다 번번이 제자리에서 벗어나 있곤 했다. 그것도 한두 발자국 정도가 아니라 아주 멀리.

싼 게 그렇지 모.

처음에 여자는 월등히 싼 가격에 혹한 자신을 탓했다. 회색 바탕에 그보다 짙은 가로 줄무늬가 있는, 언뜻 보면 여느 매트와 비슷한 크기에 멀끔한 모습이지만 자세히 살피면 두께가 여타 매트에 비해 현저히 얇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여자가 구입을 감행한 건 설마 길이가 1미터에 가까운 매트가 바람에 휩쓸려 여기저기 날아다니리라곤 예상치 못한 까닭이다.

테이프로 고정해 놓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매트 자체가 테이프에 잘 붙지 않는 재질이었고 본드로 땅에 아예 접착을 해 놓을까 생각도 했지만 나중에 혹 집주인이 알게 된다면 분명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터였다.

처음부터 그것이 멀리 날아갔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제자리에서 아주 약간, 그 다음엔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대여섯 발자국 정도로 점점 멀어지다가 이제는 한눈에 발견 못 할 정도로 시야에서 벗어나 저만치 날아가 있곤 했다. 마치 걸음마를 처음 익혀 엄마 품에서 점점 멀리 걷기를 시도하는 아기처럼. 급기야 층 가장자리를 둘러싼 울타리 바로 밑까지 날아가더니 사람의 허리춤보다 높은 울타리까지는 차마 넘지 못했는지 그 아래 번번이 놓여 있곤 했다. 그러면 여자는 다시 한번 싼 가격에 혹했던 스스로를 탓하며 매트를 제자리로 질질 끌고 왔다.

처음엔 당연히 이곳의 스콜 때마다 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어떤 날은 바람 한 점 없이 땀만 죽죽 흐르는 날에도 예외 없이 자리를 벗어나 있어 대체 왜 그런 것인지, 혹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닌지 여자는 궁금증과 더불어 짜증이 커져갔다. 여자는 그것이 무엇이든, 혹은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라 하는 심정이 되어 자신도 모르는 어떤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어 평소보다 일찍 출근길에 나선 날, 처음 그것을 목격한 여자는 자신이 기다리던 그 순간이라고 대번에 떠올리지는 못했다. 그저 여느 때처럼 현관 매트가 제자리에서 날아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달랐다. 그것은 날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여자가 문을 열면 현관 매트는 늘 제자리에서 벗어나 어딘가 이미 내려앉은 모습일 뿐이었지 한창 날아가고 있는 와중, 의 모습을 목격한 것은. 더욱 놀라운 것은 날아가다가 여자가 쳐다보자 무려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딱 걸렸어! 에 소스라치게 놀란 것처럼.

현관 매트는 막 가장자리 울타리를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 여자에게 걸리자 차마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멈춘 채 여자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 그 자리에서―허공이었다― 멈춘 채 여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계속 날아, 말아.

여자의 시선을 무시하고 그대로 울타리 밖으로 날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매트는 망설였다. 그러더니 잠시 후 마음을 정한 듯 여자 쪽으로 되돌아 날아와 발밑에 엎드렸다. 엎드렸다고 여자는 느꼈다. 마치 자신을 올라타라고 말하는 듯이.

“타라고?”

무심코 말을 뱉은 여자는 저 자신에 실소했다. 대체 내가 지금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황당했다.

여자는 자신의 실언을 부정하듯 발밑에 엎드린(?) 매트를 밟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여자의 두 발이 모두 매트 위에 올라선 순간, 매트가 바닥에서 살짝 떠올랐다.

“어, 어!”

여자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매트는 이번엔 한 번에 높이 솟아올랐다. 1미터쯤 확.

여자는 더 이상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엉거주춤 허리를 숙이며 두 손으로 매트를 짚었다. 그래도 매트는 땅으로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려가기는커녕 더 높이 솟아올랐다. 곧이어 울타리를 향해 정확히 몸을 돌렸다. 순간, 여자는 늘 울타리 바로 밑까지 날아가 떨어져―라는 것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있었던 평소의 그것이 생각났다. 설마.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길 리 없다는 불확실한 믿음과 자신이니까 그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울타리 정도는 이미 넘어서고도 남을 높이로 떠 있던 매트는 숨고르기라도 하듯 조금 뒤로 몸을 뺐다. 숨 막힐 만큼의 정적. 곧이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매트가 곧장 울타리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여자는 더 이상 불확실한 믿음과 불길한 예감 사이에서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무릎을 바닥에 대고 납작하게 몸을 움츠린 채 손에 잡히는 대로 매트를 꽉 움켜쥐었다. 저가의 얇은 재질이 늘 불만이었는데 이럴 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한 손 안에 쥐어졌다. 여자는 매트 바닥을 꽉 움켜쥔 채 앞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그대로 고개를 처박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더 큰 일이 자신에게 닥칠 것 같았다. 직시. 그것은 인생에만 필요한 것이 아님을 여자는 이 순간 느꼈다. 눈으로는 매트가 날아가는 방향을 직시한 채 나머지 몸은 가급적 낮추어 매트에 바싹 붙이려고 애썼다. 울타리를 넘기 위해선―매트가 앞으로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그 와중에도 여자는 생각했다. 과연 매트는 여자의 직감대로 울타리를 향해 직진했다. 떨어져 있을 때는 충분히 넘을 수 있다 생각했던 울타리의 높이가 막상 다가가니 아슬아슬했다. 이대로 가다간 부딪힐지 모른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움켜쥐고 있던 매트 바닥을 높이 쳐들었다. 울타리까지 30미터, 10미터, 1미터....... 여자에 의해 앞이 높이 들린 매트는 앞쪽부터 차례로 울타리를 넘는 데 성공했다.

 

비로소 눈을 떴다. 허공이 눈앞에 있었다. 여자는 아래로 눈을 돌렸다. 자신의 아파트 동 주차장이 저 아래 보였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빈자리 없이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조금 큰 장난감처럼 보였다.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되는 아열대 식물의 거대한 이파리들도 고국의 그것처럼 적당해 보였다. 11층인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볼 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때는 베란다에서였지만 지금은 공중에 뜬 현관 매트 위에서란 게 다르긴 했지만.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자신이 걷지 못하는 장애인 정도는 되어야 그럴 듯한 일 아닌가 하던 생각도 차츰 바뀌었다. 이것은 자신이 아니라 매트에게 벌어진 아니, 매트가 벌인 일이다. 일은 매트가 벌였고 자신은 숟가락....... 아니, 자신의 몸뚱어리 하나 얹었을 뿐이다. 그럼 매트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현관 매트는 여자의 본의 아닌 도움으로 어떻게 밖으로 나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진 모르는 것 같았다. 허공에 뜬 채 한참 주춤거렸다.

“가고 싶은 데 없어?”

여자는 이제 자연스럽게 매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는 자신이 더 이상 우습지도 않았다. 여자의 질문이 맞는지 매트는 계속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기를 쓰고 밖으로 나오려 할 때는 언제고. 하긴 바깥은 처음일 테니 아는 곳이 있을 리 없겠지. 혹 가고 싶은 곳이 있다 해도 가는 길을 모를 테고.

여자는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매트도 자신이 가자고 하면 왠지 그대로 따라와 줄 것 같았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서둘러 회사에 가면 프레젠테이션 시간에 늦지 않을 것이다. 현관 매트가 자신을 태우고 날았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여자는 움켜쥐고 있던 매트 바닥의 방향을 핸들을 돌리듯이 아파트 출입문 쪽으로 틀었다. 매트도 여자의 의도를 알았는지 정말 별 저항 없이 따라와 주었다. 다음에 여자는 움켜쥔 매트 바닥을 앞으로 쭉 밀었다. 손으로 가속 페달을 밟듯이. 매트는 이번에도 여자의 의도대로 앞으로 쭉 날아갔다. 됐다! 이제 평소 출근길대로 걸어가는 대신, 날아가면 된다. 그뿐이다.

여자는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을 곧장 직선으로 이으며 예상보다 훨씬 일찍 목적지에 다다르자 문제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여자가 어디로 가려는지 눈치를 챈 현관 매트가 더 이상 여자의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바닥의 방향을 틀거나 손으로 바닥을 아무리 밀어보아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거부의 의사가 분명했다. 가고 싶은 곳은 없지만 가기 싫은 곳은 확실하단 말이지. 하긴 자기가 회사에만 도착하면 현관 매트 따위 뒤도 돌아보지 않을 테니.

할 수 없이 여자는 크로스로 매고 있던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지도 어플을 켜고 가장 가까운 바다를 검색했다. 자동차로 2시간 38분. 구불구불 우회하는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경로를 직선으로 연결해보았다. 한 시간, 아니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는 매트 바닥을 회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여자의 의도를 알았는지 그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던 매트가 드디어 따라서 방향을 돌렸다. 이번엔 튼 방향으로 쭉 밀어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쭉 날아가기 시작했다. 지하철역까지 날아올 때보다 훨씬 속도가 빨랐다.

여자는 자신도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심해서 한 손을 바닥에서 뗀 후 일어서기 위해 나머지 다른 한 손도 떼어보았다. 두 손을 바닥에서 떼고 똑바로 서기 위해선 고도의 집중이 필요했다. 마침내 설 수 있게 되자 두 발을 단단히 매트 바닥에 고정한 후 균형을 잡기 위해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두 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서핑 보드를 탈 때 이렇지 않을까 여자는 잠시 생각했다. 다른 점이라면 파도가 아니라 바람을 탄다는 것 정도? 모양 빠지게 바닥을 꽉 움켜쥐고 방향을 조절했던 손 대신 이제는 손끝만 이용했다. 벌린 팔의 손끝으로 가려는 방향을 가리키면 매트가 알아서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제야 온몸으로 스쳐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느끼고 보니 바람을 타는 것이 아니라 바람 속에 길을 내어 그 사이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조금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평일 오전의 바다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했다. 여자는 모래밭에 착지를 하려다 그만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착지자세는 아직 연구가 더 필요했다. 아무려나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여자는 조금 지친 듯 보이는 매트와 모래밭에 나란히 앉아 수평선을 바라봤다. 파도는 껴안을 듯 우르르 밀려왔다 작별을 고하듯 우수수 물러났다. 새벽부터 서둘렀던 탓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졸음이 살금살금 몰려왔다. 그건 매트도 마찬가지 같았다. 여자는 매트 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다리 쪽이 모래 바닥으로 나오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매트도 그러리라 생각하며 여자는 눈을 감았다. 귓전을 때리는 파도 소리가 점점 아득해졌다.

 

눈을 뜨고 시계부터 살핀 여자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수와 화장까지 채 20분도 걸리지 않아 끝낸 후 문을 열자 현관 매트가 울타리 밑까지 날아가 있었다. 여자는 총총히 그쪽으로 걸어가 매트를 끌고 오며 투덜거렸다.

“어딜 혼자 가려고!”

 

*날으는 현관 매트

원래 ‘나는’이 맞지만 추억과 어감 상 ‘날으는’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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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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