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당선작] 찾는 방법_정정안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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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은 좁고 험했다. 내비게이션에서 도착이라는 안내음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왔지만 주변엔 숲뿐이었다. 나는 차창을 내려 하늘 위로 쭉 뻗은 나무들을 살펴보았다. 서로 엇갈려 서 있는 나무들의 행렬이 끝나는 지점에도 집은 없었다. 결국 헤매게 되는구나. 한숨이 나왔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도, 약속시간보다 두 시간 일찍 도착하게 스케줄을 짜고 출발해도. 이렇게 헤매게 되는 거다.
인터뷰 장소가 산속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편집장에게 털어놔야 했다. 산은 정말이지 싫다고. 그랬다면 편집장은 오히려 반겼을 거다. 다른 부서 동료들이 다 알 정도로 그는 내 글을 싫어하니까. 편집장은 “둔한 사람이 둔한 글만 쓴다”, “날카로운 시선이 한 군데도 없다”라며 늘 나를 타박했다. 이러한 연유로 스페셜 코너에 들어갈 이번 인터뷰를 내가 미룬다면 편집장 입장에선 다른 사람을 보낼 명분을 얻는 것이다. 
물론 권 선생을 속일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아무리 권 선생이 나를 인터뷰어로 지정했어도 빠져나갈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인터뷰를 하기로 결심한 건 편집장이 무심하게 덧붙인 한마디 때문이었다. “별일이지, 유 대리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니.”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정말 별일이 내게 생긴 것 같았다. 그동안 그토록 바라왔던 별일. 그래서 나는 결국 이렇게 후회할 짓을 하게 됐다.
힘이 빠지던 차에 산바람이 불어왔다. 계절에 맞지 않는 서늘한 바람이었다. 에어컨을 끄고 차창을 모두 내렸다. 산바람을 맞으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가방에서 수첩을 찾아 그 사이에 끼워둔 종이 한 장을 펼쳤다. 혹시 몰라 권 선생이 보내준 메일 내용을 그대로 프린트해왔는데, 메일 제목은 <집을 찾는 방법>이었다. 

1. 내비게이션은 믿지 마세요. 근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2. 무지갯빛 인공새집이 보이는 쪽으로 자동차를 모세요. 이런 곳에도 길이 있는 게 맞을까 라는 의심이 들어도, 길이 있을 거라고 믿고 계속 직진하세요. 믿어야 찾을 수 있어요.  
3. 더 이상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을 만큼 길이 좁아지면 그때부터는 걸으십시오. 10분 정도 걸으면 이층주택이 보입니다.

메일 속 내용만 믿고 움직여야 했다. 휴대폰 번호를 알면 전화해서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권 선생의 전화번호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사는 집은 알려주면서 전화번호는 알려주지 않다니. 내가 나쁜 맘을 먹는다면 뭐가 더 위험할까. 매체에 알려진 바와 달리 고약한 심보를 가졌을 권 선생에게 되묻고 싶었지만 일단 차를 몰았다. 그리고 더 이상 길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는 걸었다. 사람이 자주 지나지 않는지 발을 디딜 때마다 무릎까지 오는 잡풀을 갈라야 했다. 구두를 신어서 발이 아팠고, 구두에 묻은 진흙 때문에 속이 상했다. 얼굴과 등은 이미 땀범벅이었다. 깔끔한 인상을 주기는 글렀구나. 10분 정도 걸었을 때 나는 차 안에 휴대폰과 가방을 두고 온 걸 깨달았다. 스마트해 보이지도 않겠어. 머리 위로 다가온 태양을 피해 중간중간 숨을 고르며 땀을 식혔으나 부족했다. 사우나 안에 있을 때보다 나는 더 많은 땀을 쏟았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 마침내 이층주택이 나타났다. 지붕의 끝에 달린 풍경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제야 한 잡지에 소개되었던 권 선생의 집이 떠올랐다. 권 선생이 아낀다던 거북이 모양의 풍경(風磬)도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당도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약속시간 전이었다. 시침과 분침이 12를 가리켰다. 권 선생을 불러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초인종이 안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소리쳤다. 계세요? 계십니까? 저기요? 몇 번을 크게 불렀지만 목재 울타리 안에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내가 걸어왔던 곳의 어느 경사면에서 한 남자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권 선생이었다.

“유 작가님이세요?”
권 선생이 가볍게 목례를 하며 내게 다가왔다. 벌써 7년 차이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어쩐지 어색하고 부끄럽다. 내가 하는 일은 작가와는 거리가 먼데, 기사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종종 나를 작가라고 불렀다. 
“유 대리입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땀 때문에 악수를 청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권 선생도 내 행색에 놀란 듯했다. 
“고생이 많으셨나 보네요.”
뒤늦게 매무새를 가다듬어보았으나 달라진 건 없었을 것이다. 나와는 달리 권 선생은 단정했다. 기사에서 봤던 사진보다도 훨씬 젊어 보였다. 생활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고아한 분위기가 있었다. 맞다. 별난 사람들은 범인(凡人)과는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다 들었다. 그 아우라에 탓하던 마음이 저절로 사라졌다. 도착하기 전의 고생도 지워졌다. 권 선생은 울타리 문을 열어 나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마루에 앉아서 식히세요.”
권 선생이 건네는 손수건을 받아 들고 나는 고개를 꾸벅했다. 그가 집에 들어갔다가 나올 동안 마루 가장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정원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식물에 관해선 문외한이지만 꽃과 나무가 잘 다듬어진 정원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네의자 옆으로 자주 보던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휴대폰 녹음기도 없이 인터뷰를 진행하려니 긴장됐다. 의지할 거라곤 수첩과 펜밖에 없었다. 기억을 떠올려 수첩에다 질문할 거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권 선생이 소반을 들고 나왔다. 음료와 다과가 있었다. 내가 받으려고 했는데 권 선생이 마다했다. 
“점심 때네요. 배고프시죠?”
나는 두 손을 저었다. 긴장을 해서인지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소반을 가운데 두고 그는 따뜻한 홍차를, 나는 얼음을 넣은 홍차를 마셨다.      
“보내주신 질문서는 잘 봤습니다.” 
“아, 네. 그대로 여쭤보겠습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펜을 들었다. 첫 질문을 하려는데 권 선생이 곤란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저… 까다롭게 굴고 싶진 않지만.” 
“네.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무슨 문제라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권 선생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말을 이었다.  
“보내준 질문들이 전부 흔하더군요.” 
“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질문 수준을 꼬집는 인터뷰이는 처음이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올 거예요. 그런 질문은 수없이 받았으니까.”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의 말이 맞다. 포털사이트에 권 선생의 이름만 검색해도 기사가 끝없이 나온다. 그 기자들도 비슷한 질문을 한 건지 답도 다 비슷비슷하지만. 
권 선생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나는 계속 우물쭈물했다. 정적을 깬 건 권 선생 쪽이었다. 
“그런데 유 작가님은 궁금하지 않으세요?”
“네? 뭐가요?”
“제가 유 작가님을 부른 이유요.”
“그거라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유는 궁금하지 않다는 건가요?”
여전히 당황스러웠던 터라, 답할 말을 고르지 못하고 고개만 저었다. 권 선생은 잠시 기다리라는 눈짓을 주더니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늘 아래에 있는데도 햇볕이 뚫고 들어오는지 얼굴이 뜨거워졌다.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작년에 발행했던 『사람과 사람』 겨울호가 들려 있었다. 겨울호에 내가 쓴 글이라곤 하나밖에 없다. “유 대리, 문제의식을 가져야지, 자기 소원을 쓰면 어떡하나.” 그때도 편집장은 내 글을 보고 한숨을 푹푹 쉬었더랬다.
권 선생은 내가 쓴 기사를 찾아 책장(冊張)을 넘겼다. 이내 그의 손이 멈추었고, <천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제목을 다시 보니 편집장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기사가 전문적이지 않더군요. 요지도 약하고요.” 
나는 또 내 귀를 의심했다. 면전에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아까보다 더 얼굴에 열이 올랐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이런 비난을 들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이게 나를 부른 이유인가. 불쾌해지려던 찰나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비난하고 싶다기에는 그의 눈빛은 너무 선량하고 순수했다. 감정적으로 구는 내가 오히려 아마추어처럼 느껴질 만큼. 권 선생은 말릴 새도 없이 대뜸 마지막 문단을 소리 내어 읽었다.
“나는 5개월 동안 방치됐던 어머니의 마지막이 더 궁금했다. 아들의 증언에 따라 경찰과 사회복지사들이 그 집을 방문하여, 이불을 덮고 있는 시신을 확인했다. 방치된 집 안은 퀴퀴하고 암울했지만, 생전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을 창가에는 해바라기 조화(造花)가 샛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다행히 동네사람들과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장례는 잘 치러졌다. 어머니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던 아들도 작별을 고했다. 사랑하는 아들과의 작별인사를 끝내고 어머니는 자신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땅이든, 하늘이든, 우주든. 빛이 잘 드는 따뜻하고, 안락한 집에서 살 것이다. 그녀가 생전에 꿈꾸던 집일 것이다. 그곳에선 아침마다 늦잠을 잘 수 있다. 고된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이웃이 살고 있으며, 낮밤 안전하다. 원한다면 아들을 지켜볼 수도 있다. 나는 아들의 어머니가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대로 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듣는 내내 거북했지만 그를 막을 순 없었다.  
“유 작가님은 종교가 있으세요?”
“무교입니다.”
나는 빈정이 상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왜 천국에 대해서 쓰신 거죠?”
“천국이 아니라 이(異)세계에 대해 쓴 겁니다.”
다시 또 무뚝뚝. 
“어쨌든 믿는 거군요. 그런 세계를.”
“그게, 그러니까 믿고 싶은 겁니다.”
내 말을 듣던 권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퍼져나갔다. 그가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겁이 났다. 바람이 불면서 풍경이 흔들렸고, 더위 때문인지 현기증이 일었다.  
“그래서 유 작가님을 부른 겁니다. 믿을 것 같아서.”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데도 권 선생은 말을 이어나갔다. 
“코마상태에서 겪은 일을 물으셨죠?”
내가 저런 질문을 했던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실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빼려고 했던 질문인데. 술김에 질문서를 보내버린 그날 밤이 떠올랐다. 그 질문이 마음에 들었다니. 나는 수첩과 펜을 들어, 인터뷰어의 자세를 취했다. 
“길진 않아요. 아주 아주 짧습니다.” 
그렇게 권 선생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1978년, 스물두 살 청년 권수창은 홍익한의 제자로 들어가면서 목수의 길로 들어섰다. 다른 제자들보다 실력이 출중해 비교적 일찍 건축공사를 총괄하는 책임자까지 올랐다. 목수로서는 꽤 괜찮은 경력을 쌓았지만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그는 어른들이 말하는 혼기를 놓쳤다. 주변에서 더 애가 탔는지, 선 자리를 많이 만들었는데 권수창은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홍익한의 딸, 홍이서 때문이었다. 
권수창과 홍이서는 동갑으로, 권수창이 홍익한의 제자로 있으면서 친구로 지냈다. 홍이서가 먼저 시집을 갔지만 2년 살다가 사별했다. 권수창은 친정으로 돌아온 홍이서를 남몰래 짝사랑했다. 홍이서의 슬픔이 잦아들면 고백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서른네 살 되던 해에 마침내 홍이서를 아내로 맞았다.  
천국 같은 나날이었다. 홍이서의 마음이 사랑보다는 우정에 가까운 걸 알면서도, 권수창은 행복했다. 때문에 그녀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홍이서가 바라는 건 하나였다. 그녀는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권수창은 큰 도시, 그곳에서도 가장 좋은 집을 홍이서에게 선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자금이 조금 부족했고, 그래서 사업을 벌였다. 권수창은 사업수완이 좋지 않았다. 아니, 동업자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권수창이 쌓아온 경력을 이용하기만 했다. 다행히 권수창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고 더 나빠지기 전에 사업에서 발을 뺐다. 
수중에 남은 돈이 별로 없었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곤 도심 외곽의 작은 아파트였다. 홍이서에게 묻자 그녀는 그것도 좋다고 했다. 살던 곳의 반도 안 되는 공간이었는데, 홍이서는 즐거워 보였다. 그녀는 하루 종일 집 안을 쓸고 닦았다. 홍이서의 손길이 닿으면 새 집처럼 빛났다. 그러다 일이 생겼다. 베란다 창문의 바깥 면을 닦던 홍이서가 추락했다. 권수창이 고건축 보수 계약을 맺은 날이었다. 
홍이서를 잃은 뒤, 권수창은 일만 했다. 잠도 덜 자고 먹는 것도 덜 먹었다. 현장에서 잠깐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산 중턱이었다. 수령이 제법 오래된, 그의 몸을 다 덮고도 남을 나무그늘 아래였다. 그는 끝없이 이어진 나뭇가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 끝에 폐가가 있었다. 끌리듯 폐가로 들어갔고, 정원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홍이서’라는 명패를 발견했다.      

권 선생이 건조한 얼굴로 다시 차를 마셨다. 
“코마상태에 빠지신 거죠?”
“남들은 그렇게 말하더군요. 코마라고요.” 
나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수첩에 꾹꾹 눌러 담았다. 내게 정리할 시간을 주려는 듯 그는 한참을 뜸 들이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권수창은 폐가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시 짓는 거나 다름없었다.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자재를 챙겼다. 그는 언젠가 스승 홍익한을 따라갔다가 본 적 있는 홍이서의 신혼집을 떠올렸다. 그리곤 그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권수창은 홍이서가 누군가와 함께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전남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자신은 아닐 거라고. 
시간과 힘은 평소보다 배로 들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꼬박 1년이 걸렸다. 아직 손볼 데가 많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권수창은 홍이서 라고 적힌 명패를 대문에 걸었다. 홍이서가 좋아할 만한 거북이 모양의 풍경도 처마 끝에 달았다. 어울리지 않게 미신을 믿던 홍이서가 이곳에서만큼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풍경을 단 그날 밤, 권수창은 오랜만에 잠자리에 들었다. 잠들려던 찰나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지만 눈을 감았다. 그런데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요란해졌다. 시끄러워 잠들 수가 없었다. 설마 홍이서인가. 권수창은 뛰어 나갔다. 기대 반으로 대문을 열었고 눈앞이 환해졌다. 

그날 권 선생은 깨어났다. 모두 기적이라며 그를 반겼다.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권 선생은 큰 문제없이 일상생활에 적응했다. 
“결국 만나시지는 못한 건가요?” 
권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다른 세계에 다녀왔다고 믿으시는 거죠?”
내가 다시 물었다. 
“작가님 말대로 믿고 싶은 거겠죠. 집을 정말 지어주고 싶었으니까.” 
쨍쨍하던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20년도 더 된 이야기예요. 써도 되고,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멋쩍어 미소를 지었다. 권 선생이 마루에서 일어나며 소반을 들었다. 해진 소매가 눈에 들어왔다. 첫인상과는 달리,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외로운 노인처럼 보였다. 
권 선생이 식사를 권했지만 사양했다. 그러자 내려가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다며 나를 따라나섰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그늘이 짙었고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혼자 내려왔다면 또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언덕을 내려오며 경치가 좋다고 말했다. 권 선생은 여름보단 가을단풍이 더 볼만하다고 했다. 반대로 걸어 내려가면 철쭉군락이 있는데 봄에 장관이라고 덧붙였다. 눈 덮인 산도 나쁘지 않다고 하니, 권 선생의 말대로라면 그곳은 사계절이 다 좋은 곳이었다. 
“그런데 찾기가 너무 어려워서요.”
나는 어릴 때 산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말았다. 왜 혼자서 산에 갔는지 묻는다면 답하기 곤란하니까. 숨어 있었다고 하면 그 이유도 묻겠지. 잠시 딴생각에 잠긴 나를 권 선생이 잡아끌었다.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진흙 구덩이였다. 
“사방이 다 길이에요.” 
그의 목소리가 밝았다. 
“아니던데요.” 
내가 대꾸했다. 
“그래도 찾는 방법은 다 있어요.”
“진짜 있어요?”
내가 묻자 그가 웃어 보였다. 나는 그 방법이 궁금해졌다.

* 방배동 모자를 기억합니다. 소설 속『사람과 사람』에 실린 기사에는 그 어머니를 애도하는 마음과 저의 바람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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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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