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당선작] 오늘의 상담사_박우주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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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의 상담이 있는 날이면 최교수는 마음이 들뜬다. 교수실 한 편 책장에 꽂힌 두꺼운 전공 관련 서적들, 또 반대쪽 진열장에 한가득 차있는 상패들. 이 숨 막히는 명석함의 상징들이 그녀 앞에서는 한낱 장식품이 된다. 앞선 학생들과의 진로지도 상담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학점 관리부터 대외활동, 대학원 진학 여부까지 클리셰 적으로 반복되는 이야기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그녀는 이토록 염증 나는 20년간의 교직 생활이 지쳐갈 때 만난 은인이다. 아직 그녀가 올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최교수는 자꾸 시계를 힐끗거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노크 소리가 들리고 나영은 재빨리 일어나 문을 열어 예은을 반갑게 맞이한다. 
 청춘의 싱그러움을 내뿜는 예은. 저런 매력은 오직 그 나이대만이 가지는 특권과도 같다. 미소가 서글서글하니 주변까지 밝아진다. 최교수도 한때는 저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미래를 촉망받는 청춘의 때가. 
 예은은 최교수가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아 상담을 준비한다. 들뜬 마음으로 다과를 준비하는 나영. 예은에게 말을 건넨다. 

 “오는데 막히지는 않았어요?”
 “오늘 다른 상담도 있어서 계속 학교에 있었어요. 취직, 진로... 그런 대학생 상담이요.”

 나영은 예은이 다른 상담도 잡았었다는 말에 애교 섞인 섭섭함을 드러낸다. 따뜻한 차가 다 우러나고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하려는데 예은이 먼저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을 꺼낸다.

 “교수님, 교수님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과거요?”
 “그러니까 뭐... 후회가 남는 순간이라든지, 가장 행복했던 때라든지요.”
 “그럼요. 물론이죠 누구나 그런 생각 하지 않나?”
 “제가 고등학교 때..., 고3 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거든요.”

 나영은 예은이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했지만 일단은 경청했다. 예은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누구나 그렇듯 하루하루가 힘들었으며 명확한 장래희망이나 비전을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당장 진학할 학과도 선택해야 하고 해야 할 것이 태산인 채로 시간은 흘러가는데 정작 본인만 멈춰있는 기분. 물론 성적도 점점 떨어졌다. 그녀는 어찌나 답답했던지 포털사이트에 ‘과거로 돌아가는 법 좀 알려주세요.’ 라는 유치하고 터무니없는 글을 남기기도 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당시로 돌아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일도 찾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기 위함이라나? 물론 달렸던 답변은 ‘그럴 시간에 영어 단어나 하나 더 외워라’ 였다. 나영은 당시의 예은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으나 그 마음만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 어떤 사람이 고등학교 3학년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딱 여기까지였다. 이후 예은이 이어나가는 이야기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며칠 후에, 메일이 한 통 왔어요. 제목은 안녕하세요 우트로입니다.”
 “우트로요?”

 그녀에 의하면 고등학교 3학년 당시 웹서핑이 한창인 가운데 낯선 메일 한 통이 도착한다. 메일의 제목은 ‘안녕하세요 우트로입니다.’ 였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우트로(WOTRO), World Time Reset Organization, 
세계 시간 초기화 협회입니다.
 고객님께서 지식 in에 올려주신 질문 잘 보았습니다. 저희 타임 리셋 협회는 고객님께 원하는 시간으로 돌아가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리셋은 고객님이 지나오신 시간 중 그 어느 때라도 가능하며,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니 신중하게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리셋하실 의사가 있으시면 일주일 안에 돌아가기를 원하시는 연도 및 시간대를 구체적으로 작성하시어 회신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근데 저도 그때 그 메일을 믿는 건 아니었는데, 기간이 일주일이라잖아요! 이게 진짜면 진짜 일생일대의 기회잖아요. 완전 고민이 되는 거죠! 미쳤죠? 근데 그땐 그런거예요. 만약에 교수님이 엄청 힘든 상황인데 그런 메일을 받으셨고? 이게 만약 다 진짜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최교수는 예은이 이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꽤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몰입되었다.

 “재미 삼아 한다고 할 것 같은데요?”
 “그렇죠? 미쳤다 해도 할 것 같죠? 밑져야 본전인데! 그래서 메일 답장을 보냈어요! 고등학교 1학년 입학식 날로 돌려보내 주세요, 타임 리셋을 원합니다. 라구요!”
 
 물론 예은이 받은 메일은 장난이었을 것이라고 최교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답장을 보낸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것은 없을 테니 철없는 고등학생이 절박함에 답장을 보냈다 한들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녀가 궁금한 것은 답장을 보낸 이후의 상황이었다.

 “그래서요? 답장을 보냈더니 어떻게 됐어요?”
 “승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시간이 돌아가 있을 것입니다. 라고 바로 회신이 왔어요”
 “그게 정말이에요?”
 나영은 점점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고등학교 입학식 날로 돌아갔을까? 왜 이런 이야기를 믿고 있는 건지, 사실 그런 게 진짜로 있다고 믿고 싶은 건 아닌지 의아했다. 예은의 이야기는 확실히 몰입도가 뛰어났다.

 “그래서. 눈을 떴더니? 돌아가 있었어요? 입학식 날로?”
 “아니요. 역시나 그대로였어요.”

 그러면 그렇지 예상한 대로였다. 애초에 그런 타임 리셋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당시의 예은도 혹시나가 역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예은은 누가 이런 장난을 쳤는지 조금 화가 나기도 할 찰나, 또 한 통의 메일이 왔다고 말했다. 
 
 “근데 거기서 또 메일이 한 통 왔어요.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우트로입니다. 고객님의 타임 리셋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메일을 드립니다.”
 “무슨 착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우트로입니다. 고객님의 타임 리셋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메일을 드립니다. 
 확인 결과 이미 고객님께서는 특정 시점의 미래에서 고객님 시점의 현재로 타임 리셋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현재로서 리셋의 기회는 일생 중 한 번으로 제한되어 있으므로 두 번은 어렵습니다. 이점을 미리 저희 측에서 인지하지 못한 점, 깊게 사과드립니다. 덧붙여 현재, 고객님의 시간은 미래 어느 날의 고객님이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시어 리셋된 시간이므로 행복을 누리시고, 소중히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당시의 예은은 어이가 없었다. 장난도 적당히 해야지 이렇게까지 하다니. 듣고 있는 나영도 같은 심정이었지만, 어딘가 모를 뭉클함을 느꼈다. 메일을 받은 날로부터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예은은 황당한 심정을 뒤로한 채 생각을 해봤다고 한다. 

 “왜 하필 지금일까? 미래의 내가 정말로 리셋을 한 거라면 왜 다른 때도 아니고 지금일까? 난 지금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인데 왜 하필 고3 때인 지금을 선택한 걸까?”

 그에 대한 대답은 예은이 대학교에 입학하고 갓 사회에 나온 지금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입시의 실패로 재수를 하게 된 후에야, 10년 넘게 키우던 강아지가 대학 입학 후 죽은 후에야, 20년 넘게 산 동네를 떠난 후에야,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고3 때인 그때도 절대 늦지 않으며 오히려 그녀를 둘러싼 행복들로 가득했다는 것을. 

 “이젠 이해가 되더라고요. 매 순간 생각해요. 고3으로 리셋을 했던 건 어제였을 것이다. 오늘일 것이다. 내일일 것이다. 난 그때 너무 어리고 가능성이 많았는데, 주변에 나를 사랑해 주는 모든 것들로 넘쳤는데......, 당시에 제가 보지 못했던 행복들이 있더라고요. 이젠 고3 때가 너무 그리워요.”

 이야기를 들은 나영에게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물론 다소 황당한 스토리에 머릿속이 적지 않게 복잡했지만 예은이 얻은 교훈은 최교수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그래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고 좋을 때지.

“근데 제가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바로 어제 메일이 한 통 왔거든요.”

설마 하는 느낌이 나영의 마음을 긴장시켰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우트로입니다. 지금까지의 시간 여행은 어떠셨나요. 고객님은 이미 타임 리셋을 이미 사용하신 바 있으시죠?
 저희 우트로는 심사숙고 끝에 대한민국 고령화 사회 복지서비스 차원에서 만 70세 이상의 노인 인구에게 타임 리셋의 기회를 한 번 더 제공하는 서비스를 마련하였습니다. 따라서 어제 자로 고객님의 선택에 따라 서기 2070년에서 2022년으로 타임 리셋을 완료하였으니 현재의 삶을 잘 누리고 사시 길 바랍니다.


 예은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메일을 받은 이후 사회에 나온 지금까지 19살 그때만을 그리워하며 지냈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지금 예은의 시간도 미래 어느 시점에서는 굉장히 그리워하고 소중히 생각한 시간이라는 것을.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녀이다.

 “우트로가 진짜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영은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저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 같은 감정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더욱이 지금 본인이 인생에서 느끼는 회의감과 대조시켜보면 더욱 그랬다. 역시 오늘도 김예은 상담사를 부른 것은 잘한 일이다. 말하지 않아도 나영의 고민이 무엇인지, 오늘도 그녀는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큰 도움이 됐어요. 상담사님.”
 “상담사가 실망을 시켜 드릴 수는 없죠. 교수님.”

 이후 예은은 다음 상담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최교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다.
 “이제는 다 괜찮아졌어요. 오늘 우리 오랜만에 외식이라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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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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