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당선작] 사람은 나무가 아니야_임하영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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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
 그 단단한 뼈를 뚫고 뇌가 찌그러졌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 원체 온전하지 못하게 생긴 뇌, 조금 흠집 나 봐야 얼마나 달라진다고. 소녀의 어머니는 괜히 화를 내며 의사의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떨쳐내었다. 뇌의 사진을 찍는다고 그 많은 돈을 들이게 해 놓고서 아이를 고칠 수는 없다고 한다. 슬픔과 막막함이 공기를 짓누르는 듯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유리창 너머로는 푸른 숲의 정경이 보였다. 그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형체가 초점을 어지럽혀 놓았다. 소녀가 잔디밭 여기저기 흩어진 책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종알거리고 있었다. 일곱 살 남짓의 어린 아이인데도 어여쁜 외모와 갈색을 띠는 머리카락은 아이를 완벽해보이도록 했지만, 소녀가 가지고 태어난 특이한 사고방식은 이를 거스르는 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어떠한 병으로 칭했다.


- 책 -
 검정이 집안 구석까지 모조리 찾아가 덮어버린 시간, 소녀는 자신이 따뜻한 욕조라고 부르는 공간에서 일어나 방을 가로질러 책의 표지를 열었다. 그날따라 책 속은 유난히 아늑해보였다. 항상 눈이 부시거나 시끄러워 바로 덮어버리곤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조용한 벌레들의 말소리와 별들의 깜박거림 외에는, 없었다. 열린 표지 사이로 책을 읽어가던 소녀는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책 속으로 몸을 기울였고, 자신만의 세계에 뛰어드나 싶던 찰나 온전한 어둠 속에 빠지고 말았다.

 인적이 드문 산 밑 주택가의 야심한 새벽, 한 저택의 2층에서 정신 질환을 가진 예닐곱 살 여자아이가 추락했다. 머리에 큰 타박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채로 마당에 엎어져 있다가, 다음날 아침에서야 부모에 의해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어떻게 해선지 스스로 잠겨있던 창문을 열었다가, 실수로 뛰어내린 것 같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며칠을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소녀는 마치 동화 속 공주처럼 홀연히 눈을 떴다. 그것은 기적이었지만 불행히도 뇌에 생긴 상처는 인지 능력을 앗아갔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세상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소녀의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책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긴긴 잠에 빠져 있었는데, 깨어나 보니 하얀 드레스를 입은 남자가 글자가 많은 동화를 읽어주었다. 이제 소녀는 물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녀에게 책이면 그것은 책이었고, 엄마도 똑같이 엄마였다. 그들의 생김새가 전과 다르게 보이기도 했지만 소녀에게는 그 뿐이었다.


- 사람 -
"엄마, 큰 사람이 왜 가만히 서서 눈만 깜박거려요?"
"저건 큰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야."
"왜 눈을 깜박거려요?"
"자동차 깜박이를 켜고 잠깐 서 있는 거야."
"저 나무가 예뻐요."
"저건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라니까."
"..."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가 하는 말이 모두 아니라고 했다. 소녀가 무엇을 말하든 어머니에겐 '아닌 것'이었다. 참새는 작은 공이 아니었고, 모래가 가득한 놀이터는 바다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자동차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사람은 나무일 수 없었다. 부모님이 소녀를 이해하지 못하듯 소녀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들어도 소녀는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같은 말은 이제 그저 대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 응, 알았어' 처럼.



- 어린애 -
 어느 날 분리수거를 하러 마당을 나선 소녀의 어머니는 걸음을 멈추었다. 소녀가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차도에 등을 돌리고 앉은 모습이 퍽 위험해보였다. 어머니는 좌우로 차가 오는지 살피며 가까이 다가갔다.

"여기서 뭐 해? 마당에서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엄마, 어린애가 우는 소리를 내요."
"...그건 어린애가 아니라 소화전이야."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 해요."
"사람이 아니니까 말을 안 하지. 들어가자."
"그런데 비가 오면 어떡해요?"
"오늘은 비 예보 없는데."
"우는 소리는 비 올 때 나는 소리에요."
"비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는 거겠지! 얼른 들어와."
"아파서 그러는 거면 어떡해요?"
"엄마 화낸다."

 소녀는 말없이 엄마의 뒤를 따랐다. 엄마도 비가 온 적이 있으면서, 소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 괴물 -
 소녀의 부모는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도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았다. 천천히 달래 봐도, 화를 내봐도 아이는 놀라우리만큼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만 했다. 여전히 아이에게 구름은 무서운 괴물이었다.

 마당에서 꽃에 물을 주고, 책들과 대화하며 몇 시간을 보내던 소녀가 잠시 시선을 뗀 사이에 사라졌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소녀의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어머니는 집 밖을 애타게 돌아다녔다. 잠시 걸음을 멈춘 어머니는 고개를 숙였다. 아이를 찾지 않으면, 누군가 잡아간 것이라면 다시는 보지 못하겠지. 하루하루 눈을 뜨는 것이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돈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이를 볼 때마다 답답함에 치미는 화를 누르지 않아도 될 것이다–하지만 다시 걸음을 옮기며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휴지를 눈물로 적시던 어머니에게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그 집 애가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요."
"저희 아이 거기 있나요?"
"네. 가방에 있는 번호로 연락 드렸어요. 주소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급하게 달려간 곳은 소녀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가 사는 집이었다. 태연히 앉은 소녀의 뒷모습을 본 어머니는 주먹을 꼭 쥐었다. 저를 얼마나 애타게 찾아다녔는지, 얼마나 슬프고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 이름을 부르자 천연한 얼굴로 뒤를 돌아 인사하는 모습이 그렇게 공허할 수가 없었다. 소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채지 않고는 버틸 수도 없었다.

"너 왜 여기 있어!" 놀란 소녀의 동그란 눈은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괴물이 나를 쫓아왔어요." 애타는 질문에 말을 잃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무슨 괴물, 그게 무슨 말이야..."
"하얀 괴물이 나를 쫓아왔는데, 꽃이 막아줘서 같이 왔어요."

 소녀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 손끝에는 하얀 구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소녀에게 꽃은 어린 아이를 의미했다. 뒷발치에서 자신의 부모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 저 아이. 그 아이의 손에는 작은 양산이 들려있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무릎을 꿇었다. 소녀와 눈높이를 맞추고 양 팔을 굳게 잡았다. 볼을 타고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입술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저게 왜 괴물이야?"
"움직이지 않는 척 하면서 움직이잖아요. 나를 쫓아오는 것 같아요."
"잘 들어. 저건 구름이지 괴물이 아니야."
"그래도 이제는 안 무서워요. 저 꽃이..."
"꽃이 아니라 너랑 같은 사람이라고, 사람!"

 어머니는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녀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해가 지도록 그렇게 있었다. 그 동안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괴물로부터 엄마를 지켜줄 만큼 힘이 세기를 바라며, 그저 그렇게 있었다.


- 상자 -
 소녀가 낯선 아이를 따라가 사라졌던 그 날 이후 소녀의 가방에는 추적기가 담겼다. 소녀는 그것이 뭐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정말로 무서운 괴물을 만났을 때 소녀를 찾으려 쓰는 물건이라고 했다. 소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괴물은 나를 따라와도 데려가지는 않아요. 상자를 찾아올 수 있어요."
"우리 집은 상자가 아니라 집이야. 그리고 세상엔 구름 말고 더 무서운 괴물이 많아."
"이게 나를 찾게 해줄 것 같지 않아요.“

 언제나 그랬듯 단조로운 말투에 어머니는 마음속의 커다란 방울이 터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래, 네가 자꾸 없어지니까 이러는 거야. 잠깐 한눈 팔면 사라지니까! 나는 너를 위해 살고 있어. 이제 내 인생은 없어. 근데 너는 계속 헛소리나 하고 속만 썩이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돼? 너한테 내가 필요하긴 해? 구름이 왜 구름으로 안 보이고 사람이 왜 사람으로 안 보이냐고! 왜 다른 사람이랑 같지 않은데. 뭐가 그렇게 특별해서 너만 다른 건데! 상자? 네 상자는 다른 데 가서 찾아. 가, 가버려 제발!!"

 엄마에게 비가 내렸다. 아파서 그런 것 같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엄마의 뿌리는 무너져 바닥과 닿았다. 소녀는 가만히 눈을 깜박이다가 뒷걸음질을 쳐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렇게 가슴 속이 답답한 것 같은 싫은 느낌은 처음인 듯싶었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 엄마 -
 혼자가 된 소녀는 진정으로 행복을 느꼈다.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그냥 알 수 있었다. 저 위, 쏟아지지 않는 물속에 박혀 괴물들에게 잡혀있는 눈부시고 커다란 얼굴이 사라질 때쯤엔 더욱 그랬다. 그 얼굴이 사라지면 괴물들도 보이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리로 소녀를 괴롭히는 것들도 없었다. 이따금 큰 사람이 빠르게 지나갈 때는, 귀 아픈 외침을 듣고 옆으로 비켜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걷던 소녀는 자신했던 것과 달리 상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엄마 생각이 났다. 이렇게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만나는 엄마의 얼굴은 항상 아픈 것 같이 찌그러져 있었다. 멋대로 사라지지 말라고 했던 큰 말소리도 떠올랐다. 쏟아지지 않는 물에는 동그란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세상이 검정일 때면 항상 그렇듯 더 하얗고 예쁜 모습이었다. 소녀는 걸음을 멈추고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엄마가 '그게 아니라' 말고 가장 많이 한 말이 무엇이었더라. 한참을 고민해 봐도 기억나지 않았다. 슬슬 몸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아이는 도로 옆 잔디밭에 앉았다. 이번엔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려야 할 것 같았다. 엄마는 상자를 다른 곳에서 찾으라고 했지만, 소녀에게 상자는 하나밖에 없었다.

 멀리서 큰 사람의 눈동자가 보였다. 너무 밝아 눈이 부셨지만 큰 사람이라면 자신을 상자로 데려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사람이 점점 커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엄마의 말이 기억났다. '엄마 옆에 있어.' 어디를 가건 엄마가 눈을 활짝 뜨고 힘주어 말하던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엄마랑 있어야 돼.' 소녀는 엄마가 그 말을 할 때 항상 그랬던 것처럼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엄마가 보였다. 큰 사람 안에 품어진 엄마는 어두운 허공을 눈으로 더듬으며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다. 세상이 검정이라 자신이 보이지 않는가보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큰 사람의 눈에 보인다면 엄마에게 알려줄 것 같았다. 여기서는 엄마의 곁에 있을 수가 없었다. 엄마와 있으려면 더 가까워져야 했다. 우두커니 서 있던 소녀는 큰 사람의 눈과 눈 사이로 걸음을 뗐다. 이 정도면 큰 사람도 충분히 볼 수 있겠지. 잠시 시간이 흘렀다.
 역시 엄마도 소녀를 보았다. 이제 곧, 아주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되었다. 작게 찌그러졌을 것이라고 생각한 엄마의 눈이 소녀를 발견하고 어느 때보다 크게 열리자, 소녀는 답답하던 기분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소녀가 스스로 엄마를 찾아갈 때 엄마는 웃곤 했다. 엄마와 만나면 분명 웃어줄 것이다. 소녀가 그 순간의 표정을 따라해 보이자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웃어주지 않았다. 드디어 큰 사람이 소녀에게 닿았을 때, 예상치 못한 큰 소리가 소녀의 눈을 억지로 감겨 다시 뜨지 못하게 만들었다. 왜 엄마는 웃지 않았을까? 눈을 뜨면 소녀를 향해 웃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엄마도 큰 사람의 눈동자도 없는, 다시 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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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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