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필사(4) 엄마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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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물려받은 재능.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엄마는 책읽기를 좋아했다고 해요.
너무 ‘시골’에 살았고, 교육부의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한 종교인의 가건물에서 공부한 탓에 학교라고 할 수 없는 곳을 다녔지만 그곳의 작은 도서관에 있던 책을 열심히, 날마다 읽었노라고 엄마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생은 교육이나 책에 관심둘 수 없을만큼 고달팠고 평생 노동자로 살았어요.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한 책을 읽어야지 했으나 늙어 일을 그만두고나니 눈도 늙어버려서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어느 날 엄마는 아쉬운 어조로, 축 처진 눈으로 토로했죠.

그런 엄마의 큰딸인 내가 느즈막이 등단해, 일반적인 세상 기준에서의 나이는 많지만 작가 경력은 짧고, 아직까지는 그닥 주목받지 못하고, 외사랑과 서툰 집착,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강의며 기획이며 인터뷰며를 닥치는 대로 하며 버티고 있는 걸 엄마는 알고 있어요(그동안 내가 펴낸 두 권의 책을 엄마가 가슴으로 읽어줬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2021년 겨울, 문학필사를 기획하고 3월 첫 개강을 앞둔 뒤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어요. 신청자가 적을 걸 걱정해 엄마에게 참여를 독려했죠.
엄마는 딱 한 마디 했어요. “좋아.”

엄마는 당신의 글씨체가 부끄럽다고 했다가, 그래서 두 번 베껴쓰고 나중 걸 사진 찍어 올린다고 했다가, 맞춤법 띄어쓰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가, 자꾸 내맘대로 엉뚱하게 쓰게 된다고 했다가, 그래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인증하고,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사람들의 사연에 댓글을 달고, 어느 날은 참여자들의 면면을 궁금해하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몇 기수를 함께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1기부터 6기까지 같이 하고 있어요.

1월에 불쑥 1박2일 여행을 떠났을 때는 “노트 안 가지고 왔네. 뭐 옮겨 적을 종이 있어?” 묻기도 했는데 나는 “오늘은 쉬어. 다음 날 올려도 돼.” 했어요.

“그래도 돼?”
“응. 돌아가서 이틀 치 올리면 되지.”

지난해에는 기수로 4기까지 했는데 진행 회차는 여섯 번이었거든요. 1기 어게인, 2기 어게인을 추가한 탓에요. 마지막 프로그램이 2기 어게인이었는데 개강 전날에도 신청자가 5명뿐인 거예요. 엄마는 2기를 이미 했는데 5명으로 개강하기엔 제가 너무 부끄러워서 (?) 엄마에게SOS를 쳤어요.

“한 번 더 쓰면 안 돼?”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니까) “그래.”
그랬어요.
6명으로 출발했는데 1일차에 한 명 늘어서 2기 어게인은 7명으로 마쳤네요.

조카가 태어난 뒤부터 엄마는 블로그를 쓰고 있습니다. 올해로… 10년째네요. 처음에는 제가 몰래(?) 블로그에 접속해 문장도 고치고 맞춤법도 수정하고 했는데 요새는 안 해요. 필사 덕분에 나아진 것도 같고, 진짜로 정말 좋아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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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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