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실을 사진을 USB에 담아와 함께 보는 시간이었다.
다른 샘들의 사진을 보면서
나만의 사진, 개성있는 사진이 뭘까 고민할 수 있었다.
"다른 사진을 보니까 저건 뺐으면 좋겠다 하는 게 생기고 나는 이걸 빼야겠다.. 판단이 생겼어요. 내 걸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떤 걸 빼라고 할까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100장 정도 실을 생각에, 이것저것 주워담다보니 빼는 작업을 못 했어요. 오늘 보니 사진을 뺄 수 있겠어요."
중복되는 사진. 비슷한 사진.
류OO: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가져왔어요. 남들 시선은 상관없죠. 이건 내 책이잖아요. 버려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좋은데...싶기도 해요.
조OO:내 글 옆에 이런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업했어요. 포토에세이를 보면 글하고 사진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도 많더라고요.
*
오후반 수업 끝나고 5시쯤 개코막걸리에서 뒤풀이.
저녁반 샘들이 조금 일찍와서 합류.
15명 정도가 모였다.
나도 막걸리 세 잔 정도 마시고 7시 5분 전에 사진방으로...
술 때문인지, 사진 감상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다들 흥분... 목소리도 커지고...ㅎㅎ
*
두 분 선생님에게 옛날 사진을 스캔해서 싣는 게 어떠냐고 말씀드렸다.
*
'감성사진'을 싣고 싶다는 샘에게 '내 감성'에 타인이 자극받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
흑백사진의 매력...
------
밴드에 올라온 글에 대한 내 생각. 혹은 덧붙임.
심OO
나는 사진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내가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면 물어본다. 사진이 왜 좋아? 사진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어? 라고 물어본다. 난 항상 그 질문에 똑같이 대답을 한다. 아빠가 멋있어서. 그러면 다시질문이 온다. 왜? 아빠가 사진관련직업에 있으셔? 아니다 나의 아빠는 사진을 좋아서 찍고 언니랑 나의 추억을 찍고 싶어서 찍은 거지 직업은 아니다. 그런 거는 다른 아빠들도 다하는 일인데 왜 멋있냐고 물어보면 우리아빠가 한거니까 더 좋고 더 관심이 갔다. 나는 예전에 아빠가 무엇을 하든 멋있어 보이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사진을 좋아하세 되고 진로를 선택한 거 같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빠가 하니까 나도 해야 지는 아니었던 거 같다. 나도 카메라에 관심이 많았고 기계를 수리하고 테스트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카메라가 좋았던 같았다. 아빠가 카메라를 매번 장롱에 두고는 사용할 때만 꺼내 쓰고 했는데 그것을 알고 아빠 몰래 카메라를 작동도 해보고 찍어보기도 해보고 하면서 FM2를 알아가기 시작했던 거 같았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로 박물관에 가서 사진을 찍어오는 숙제였는데 아빠랑 언니랑 같이 가서 아빠가 사진도 찍어주고 내가 아빠랑 언니를 찍어주었는데 사진을 인화하고 보니까 내가 찍은 사진이 엄청 잘 찍었고 초점이랑 구도도 잘 잡아서 너무 뿌듯하고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
1. '아빠가 무엇을 하든 멋있어 보였다'->구체적으로 어떤 것? 아빠가 요리를 하거나 심지어 청소를 할 때도 멋있어 보였어? 사진을 찍을 때 특히 멋있어 보였던 건 카메라 때문일까. 나를 바라봐주던 시선 때문일까. '치즈'라고 말하며 웃으라고 했던 어투 때문일까.
2. FM2는 어떤 카메라야?
3. 방학숙제로 박물관에 갔다->어떤 박물관. 네가 찍어준 아빠와 언니 사진이 어떻게 나왔길래 엄청 잘 찍었다는 거야? 초점이랑 구도를 잘 잡았다는 건 흔히 말하는 삼각형-대각선- 등등의 구도 중에 특히 어떤 것?
4. 아빠 이야기를 좀 더 해주면 좋겠다. 아빠가 사진 관련 직업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떤 분이신지. 일반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다른 취미가 있다면 그건 뭔지. 아빠는 다정한지, 막내딸인 유빈이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5. 이 글이 조금만 길었으면 좋겠어. 구체적인 문장을 집어넣으면 훨씬 더 좋은 글이 될 것 같은데!!!
이OO
#무언
이른 새벽 눈을 뜨면서 하루를 맞는다
그리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아닌 내 가슴 한켠에는
텅빈 자리에 풀도 자라지 않을 것처럼
나혼자만의 삭막함을 느꼈는데...
지금은 그 빈자리를 슬그머니 들어와
조금씩 내 맘의 밭을 갈고 있다
작고도 큰 상처로 일부 얼룩져 지워지거나 비어있는 한 켠이 메꿔지지는 않지만
가만히 되돌아온 인생의 나를 생각해본다..
마음을 주고싶지 않다고
더이상 상처받지 않겠노라고
진저리치게 돌아섰던 시간들...
그런데
그 마음밭에 조금씩 싹이 자라고 있다
삭막했던 어느 한 곳에 단비가 조금씩 내리고
미세먼지 공기속에 풀풀 날리며
메말라있던 움푹 패였던 작은 웅덩이 땅은
서서히 그 가랑비 같은 단비로
조금씩 조금씩 새살이 돋고
순수한 미소가 보이는것을 어느순간 난 느낀다
->
샘. 첫 문단만 말씀드리면, 둘째줄, "그리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아닌"을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어요. 왜 스스로를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어떤 경우에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예를 들어주세요. 독자가 아.. 이런 건 좀 그렇다, 혹은 이 정도로 마음이 좁다고 할 수 없겠는데? 판단할 수 있게요. 그런 식으로 구체적 글쓰기를 해나가셔야 합니다. 지금은 너무 모호해요.
'텅빈 자리에 풀도 자라지 않을 것처럼 나 혼자만의 삭막함을 느꼈는데...지금은 그 빈자리를 슬그머니 들어와 조금씩 내 맘의 밭을 갈고 있다'
이 글은 어떤 내용인가요. 누가 내 맘의 밭을 갈고 있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글은 글쓴이의 개성이 드러나야 해요. 글을 통해 그 사람을 좀 더 잘 알 수 있게요.^^;; 유찬 샘의 글은 독특한 분위기도 있고 감성도 살아있는데 구체어보다는 추상어가 많아서 '코팅'돼 있는 것처럼 자꾸 미끄러져요. 코팅을 걷어야 글쓴이에게 쑥 빨려들어갈 수 있고, 그래야 그 사람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과감하게 선생님만의 경험과 에피소드를 적어주세요.
강OO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에 대해 왜 글을 쓰는지 스스로 묻고, 또 누군가가 이에 대한 답을 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왜 갑자기 글을 쓰게 되었는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더불어 이재은 선생님과 이야기하기 위해 이 글을 적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했었던가?
아마도 글쓰기는 몰라도 책 읽는 것은 좋아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2학년쯤인가, 그 때는 학교에서 커다란 빵을 배급 주던 시절이었는데, 친구의 그림책이 탐나서 배급 받은 커다란 빵과 그림책을 바꾸어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심청전이나 흥부 놀부와 같은 그림책을 바꾸어 들고 집에 와서는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지금이야 책이 흔하고 흔하며 도서관에도 학교에도 얼마든지 있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버스도 아침 저녁으로 한 번씩만 다니던 시골에서 화려한 그림책은 정말 희귀했다.
그런데 ‘집행유예’라는 친구는 부모님이 서울에서 가게를 하면서 좋은 옷이며 좋은 그림책을 사 주어서 우리는 그를 부러워했다.(‘집행유예’는 그 친구가 현재 운영하는 술집 이름)
초등학교 때는 방학이 되면 외갓집에 가서 살았다.
외갓집은 형이며 동생이며 놀 사람이 많아서 좋기도 했지만 동화책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누군가가 보내왔다고 하는 동화책이 방안 가득해서 방학 내내 하루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피노키오, 집 없는 아이(엄마 찾아 삼만리), 장발장, 쿠오레, 북구 동화집 등등
그 때는 ‘쿠오레’, ‘북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은 열두어살 되는 소년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무한한 공상을 즐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중학교 때는 점심시간에만 책을 빌려 주는 도서실이 있었다.
책 하나를 빌리려면 줄을 길게 서야하고 기다리다 수업 종이 쳐서 교실로 돌아가곤 했다. 그 때는 주로 탐험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콜럼부스 여행기, 아문센의 남극 탐험 이야기,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한 슈바이처 박사 이야기 등등
그 중에 아라비안나이트라는 책을 읽고 싶었는데 너무 인기가 많아서 도대체 빌릴 수가 없었다. 언제나 누군가 빌려가서 대출 중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 수업 첫 날, 점심 도시락도 안 먹고 도서실 앞에서 1등으로 기다려 드디어 아라비안나이트를 빌렸던 기억도 있다.
친구들은 책을 안 읽어서 도서대출증이 깨끗했는데 나는 도서대출증 앞 뒤가 모두 꽉차서 친구 것을 빌리기도 했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걸리버 여행기’라는 책을 사다 밤을 새워 하루 만에 읽어 버리기도 했고, 친구 책을 빌려 오면 이틀을 넘기지 않고 읽은 다음 돌려주었다.
어느 날, 형이 한국단편문학이라는 두툼한 책을 두 권 사 왔다.
거기에는 메밀 꽃 필 무렵, 배따라기, 감자, 동백꽃,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단편소설이 모두 들어 있었고 작가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형이 책을 가져온지 3일만에 다 읽어 버렸다. 불 끄고 잠자라는 부모님 말씀을 어기고 휘영청 밝은 달빛에 의지하여 책을 읽기도 하였다.
책에 쓰인 표현이나 묘사도 재미있었지만 인물들의 심리적 상황이나 줄거리를 내 마음대로 머릿속에 상상하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그 때는 읽을 것이 없어서 읽었던 것인데, 고등학교에 가서 국문학사를 배울 때는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아는 소설 내용과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설명을 해 주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느라 책을 따로 읽을 기회가 없었다. 희원이 형이 가지고 있던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효석 전집, 같이 자취하던 친구가 가지고 있던 펄벅의 ‘대지’를 읽은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한 때 국문학과를 갈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있었지만 수학을 잘 한다는 장점과 주변의 권고와 삶에 대한 현실적인 생각에 공대로 진학을 하였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첫 번째 목표가 일 년 동안 100권의 책 읽기였다.
독서에 대한 목마름으로 시작하였지만 목표의 절반 정도 밖에 이루지 못했다. 지금은 대학 도서관이 번듯하게 서 있지만 그 때는 대학을 이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허허 벌판에 네모난 공대 건물 하나만 덜렁 들어서 있었고, 주머니 사정이 녹녹치 않았던 것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건 1학년 때 국어 수업이었다. 공대생들의 국어 교양 수업이라서 문법이나 표현이나 문학사가 아니고 일주일에 한 편의 현대 단편소설을 읽고 독후감 써 오는 것으로 대체 되었다. 나는 너무 재미있었는데 친구들은 투덜대면서 내 독후감을 베껴 쓰곤 했다. 2학기에는 현대 시를 읽고 느낌을 적어 내는 것이었는데, 나는 이것도 무지 재미있었지만 친구들이 반발 하여 모두 같이 리포트를 제출하지 않는 것으로 동맹을 맺었다. 아름답고 멋진 시도 읽고 내 느낌을 감상문으로 적어 제출하고 싶었지만 친구들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정말 아까웠다.
대학 다닐 때부터 신문을 읽었다.
자취하는 집에 홀로 들어갈 때, 편지나 신문이 있으면 나를 기다리는 것이 있다는 반가움에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니 방에 들어가면 적막과 마주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전부였고, 밥을 먹으면서 신문을 꼼꼼하게 읽는 것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오락이었다.
가격이 가장 싼 경향신문을 보았는데 이문열의 삼국지가 매일 연재되고 있었다.
그렇게 대학 때부터 시작하여 20여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신문을 보았고, ‘좋은생각’이라는 잡지도 20여 년째 여전히 보고 있는 중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는 책을 읽은 일이 별로 없었다. 소설 동의보감, 소설 토정비결, 소설 목민심서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그 외에는 컴퓨터와 관련된 책만 무지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글 읽는 것은 좋아 했지만 글 쓴 적은 없다.
기껏해야 계획서, 보고서 정도를 썼을 뿐이지 독백 같은 글도,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글도 쓴 적이 없다.
책을 내는 사람들은 내면이 깊고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안드로메다 별에서 오거나 페가수스 행성에서 온 우주선에서 하얀 빛을 받으면서 내려오는 외계인들일 것이다. 나같이 전문성도 없고 감동을 줄만한 식견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책을 내는 것은 황금 물고기가 하얀 날개를 달고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배다리에서 흑백사진과 글쓰기 강좌가 있다고 했을 때, 흑배사진에 대해 배워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사진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을 쓰는 것이라 생각해서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지, 글 쓰는 것이 주가 되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재미있다.
의외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만난 기분이랄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노다지를 캔 기분이랄까?
내가 살아 온 이야기,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 만났던 사람들, 여행했던 이야기들, 내 직업과 관련된 이야기들........
오히려 사진보다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내게 이런 면이 있다니......
내가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럽기도 하고, 비유나 묘사 등 표현하는 말들이 너무 진부하고 어법에도 안 맞는 듯 한 것들이 많다. 또한 나 스스로 벌겨 벗겨진 상태로 사람들에게 전시 되고 있는 듯 하여 부끄럽고 민망하기조차 하다.
이재은 선생님이 나를 보고 주제와 목차를 정하라 한다.
주제도 못 정했는데 목차를 정하는 건 더 어렵다. 책에 넣을 사진을 가리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 모르겠다.
누구는 기다림에 대해서 쓰고, 누구는 멀미에 대해서 쓴다고 한다.
나는 그냥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손길이 가는대로 그냥 닥치고 쓰고 있을 뿐이다.
나는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
선생님의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물음에 대한 대답을 제가 대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이 왜 글을 쓰는지 짐작도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지난 5월 초, 손바닥 사진책 강의 안내를 보고 샘은 콩닥콩닥 하셨죠? 아, 이 수업은 꼭 들어야겠다, 생각하셨죠? 책을 만들지 못해도, 글과 관련된 수업을 듣게 되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셨죠? 수업을 듣다가 실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꼭 한 번 듣고 싶으셨죠? 그게 바로 선생님 자신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저는 쓸 수밖에 없어서 썼어요.(과거형으로 적는 이유는 아마도 누구나 한 때 '할 수밖에 없었어'라는 대답이 전부인 질문을 해봤기 때문일 거예요. 그게 어떤 거든 말이죠)
글이 종교 같기도 했고 목숨 같기도 했고 유일한 사랑 같기도 했습니다. 저 유럽의 무수한 19-20세기 작가들을 떠올리며 '이 생에는 이것뿐'이라고 자만하기도 했습니다. 자만이라뇨, 그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어요. 1000원짜리 김밥을 먹으며, 친구들이 애를 키워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무렵에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필사를 하며. 제 생일날에도,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도서관에 갔어요.
교사라는 직업도 있고, 한 가정의 가장이고, 사진을 좋아하시고... 그러다가 글을 쓰는 것이 왜요? 왜 의문을 품으시는 거예요? 글쓰기가 선생님을 어디로 데려가기라도 할 것처럼.
하하. 이미 글쓰기는 선생님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버리고 만 것 같습니다. 푹 빠지신 것 같아요. 다른 취미-이를 테면 선생님이 '중독'되셨던 당구나 바둑, 사진, 혹은 못내 빠지지 못했던 낚시 같은 것과 글쓰기는 많이 다르죠? 내면 깊숙한 곳의 문제. 무수한 자기반성. 유행을 따라 책 몇 권 읽고 알 것 같다고 자랑하는 인문학이 아니라 몇 백 권을 읽어도 알 듯 말 듯 묘하고 알 것 같기는커녕 수없이 질문만 되풀이하는 철학 옆에 우리의 글쓰기가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논문이나 평론, 신문기사나 칼럼이 아닌 '우리의 글쓰기'가요. 나를 말하기.
우리는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왜 텔레비전을 보며 낄낄대는 식구들을 벗어나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을까요. 왜 돈과 정치 얘기에 열을 올리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지루할까요. 대체 저 사람은 나의 어린시절이 뭐가 궁금하다는 걸까요. 뭐가 재미있다는 걸까요. 나는 그냥 내 경험을 늘어놓았을 뿐인데 무슨 비법이라도 전수받은 양 타인은 왜 내게 감동하는 걸까요... 강 선생님이나 여기 계신 다른 샘들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쓰려는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읽고 쓰면서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처럼 자꾸 질문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
-윗 글은 이런 식으로 고쳐 책의 맨 처음에 넣으면 좋을 것 같아요. 꼭 그러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니고요 제 의견입니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했던가?
글쓰기는 몰라도 책 읽는 것은 좋아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때인가, 그때는 학교에서 커다란 빵을 배급받았는데 친구의 그림책이 탐나서 배급 받은 빵과 그림책을 바꾸어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심청전이나 흥부놀부 같은 책을 들고 집에 와서는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지금이야 책이 흔하디 흔하고, 도서관에도 학교에도 얼마든지 있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버스도 아침 저녁으로 한 번만 다니는 시골에는 그림책이 귀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집행유예’라는 친구는 부모님이 서울에서 가게를 하며 좋은 옷이며 화려한 그림책을 잔뜩 갖고 있어서 우리는 그를 부러워했다.(‘집행유예’는 그 친구가 현재 운영하는 술집 이름이다)
초등학교 때는 방학마다 외갓집에 갔다. 외갓집에는 형이며 동생이며 놀 사람이 많아서 좋기도 했지만 동화책이 많이 있어서 특히 좋았다. 서울에 사는 누군가가 보내왔다고 하는 동화책이 방안에 가득해서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피노키오, 집 없는 아이(엄마 찾아 삼만리), 장발장, 쿠오레, 북구 동화집 등등. 그때는 ‘쿠오레’, ‘북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상상의 나래를 펴고 무한한 공상을 펼칠 수 있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중학교 때는 점심시간에만 책을 빌려 주는 도서실이 있었다. 책 하나를 빌리려면 줄을 길게 서야 했고 기다리다 수업 종이 쳐서 교실로 돌아간 적도 많았다. 탐험에 빠져 콜럼부스 여행기, 아문센의 남극 탐험 이야기,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한 슈바이처 박사 이야기 등을 많이 읽었다.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책은 너무 인기가 많아서 도대체 빌릴 수가 없었는데 개학 첫 날, 도시락도 안 먹고 도서실 앞에서 1등으로 도착해 드디어 아라비안나이트를 손에 넣었던 기억도 있다. 친구들은 도서대출증이 깨끗했는데 나는 수기로 적는 대출증 앞 뒤가 빽빽해 나중에는 친구 것을 빌리기도 했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걸리버 여행기’를 샀던 기억이며,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효석 전집, 펄벅의 ‘대지’를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한때 국문학과를 갈까 생각해 본 적도 있었지만 수학을 잘 한다는 장점과 주변의 권고, 삶에 대한 현실적인 생각에 공대로 진학했다.
대학 입학 후 일 년 동안 100권 책 읽기를 목표로 잡았다. 독서에 대한 목마름으로 시작하였지만 목표의 절반 정도 밖에 이루지 못했다. 지금은 대학 도서관이 번듯하게 서 있지만 그때는 대학을 이전하는 과정이라 허허 벌판에 네모난 공대 건물 하나만 덜렁 들어서 있었다. 책을 사서 읽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녹녹치 않았다.
기억에 남는 건 1학년 때 국어 수업이었다. 공대생들을 위한 국어 교양 수업이라서 문법이나 표현이나 문학사 강의가 아닌 일주일에 한 편 현대 단편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 되었다. 나는 너무 재미있었는데 친구들은 투덜대면서 내 독후감을 베껴 쓰곤 했다. 2학기에는 현대 시를 읽고 느낌을 적어 내는 것이었는데, 나는 이것도 무지 재미있었지만 친구들이 반발 하여 모두 같이 리포트를 제출하지 않기로 동맹을 맺었다. 아름답고 멋진 시도 읽고 내 느낌을 감상문으로 적어 제출하고 싶었지만 친구들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정말 아쉬웠다.
대학 다닐 때부터 신문을 읽었다. 가격이 가장 싼 경향신문을 보았는데 이문열의 삼국지가 매일 연재되고 있었다. 대학 때부터 20여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신문을 보았고, ‘좋은생각’이라는 잡지도 20여 년째 여전히 보고 있다.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글을 쓴 적은 없다. 기껏해야 계획서, 보고서 정도를 썼을 뿐이지 독백 같은 글도,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글도 쓴 적이 없다. 책을 내는 사람들은 내면이 깊고 전문적인 식견을 가졌다고 여겼고, 안드로메다 별에서 오거나 페가수스 행성에서 온 우주선에서 하얀 빛을 받으면서 내려오는 외계인들일 거라고 상상했다.
나같이 전문성도 없고 감동을 줄만한 식견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책을 내는 것은 황금 물고기가 하얀 날개를 달고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글을 쓰게 되다니..
글쓰기를 하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했다.(여전히 발견하는 중이다) 재미있었다. 의외였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만난 기분이랄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노다지를 캔 기분이랄까? 내가 살아 온 이야기,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 만났던 사람들, 여행했던 이야기들, 내 직업과 관련된 이야기들...... 한동안 빠져있었던 사진보다 글쓰기가 더 재미있다.
내게 이런 면이 있다니......
내가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럽기도 하고, 비유나 묘사 등 표현이 너무 진부하고 어법에도 안 맞는 듯해 챙피하기도 하다. 또한 벌겨 벗겨진 상태로 사람들에게 전시되고 있는 듯 하여 부끄럽고 민망하기조차 하다. 그런데도 자꾸 끌린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 모르겠다.
글쓰기가 나를 잡아끌었다.
->
훨씬 좋네요. 대박 좋아요. 역시 프로는 달라요....감사합니다.
제 글은 좌충우돌, 이판사판으로 쓰고 있는 것이지 잘 쓴다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바라는건 누군가 제 글을 잘라내고 요약해주고 정리해 주기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은 느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잖아요. 고쳐주고 잘라주세요. 부탁입니다. 감사합니다.
'전자책,독립출판 > 독립출판(사진책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맘만 샘의 7주 강의일기 (0) | 2015.07.06 |
---|---|
맘만 샘의 5주 강의일기 (0) | 2015.07.06 |
맘만 샘의 4주 강의일기 (0) | 2015.06.13 |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