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록한다, 고로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지난주 어느 아침,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온 뉴스레터를 열었다가 ‘기록된 기억의 쓸모’라는 타이틀을 보았다. 관심 있는 주제였던 터라 바로 클릭했다.(최근에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로즈 조지, 2019)를 읽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글을 쓰려고 얼마나 많은 나라(지역)에 다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까. 정말 대단하고, 멋졌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기록의 힘도 한 몫 했다고 생각했다. 녹음 따로 기억 따로, 그걸 글로 옮기고 정리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을까!) 늘 기록하는 자로 살았지만 딱히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못했더랬다. 소설이 쓰고 싶지만 도저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끙끙 앓다가 지난 일기를 읽으며 소설의 소재를 떠올리고, 그때 ‘기록’의 고마움을 느낀 적은 있다. 우울증을 낫게 하는(?) 일기쓰기를 넘어 내가 하는 일을 좀 자세히 기록하자고 진지하게 마음먹은 게 몇 년 전. 아, 그러고보니 작년에는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강의나 집필 의뢰를 요청한 분도 계셨네. 나는 다이어리 끄트머리에 “기록은 돈이 된다”고 적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지만 대개 ‘강좌 소개’나 ‘강의 후기’ 혹은 ‘나 이런 거 했어요’하는 보여주기식 포스팅이다. 특정 프로그램을 자세히 기록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수강생들의 말과 행동, 사연 공개 여부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괴롭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소설 수업할 때 찍은 사진을 내 맘대로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리곤 했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작년 봄, “제 사진은 가려주시거나 알 듯 말듯한 뒷모습 나온 것만 올려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받고 더욱 주저하게 됐다. 내가 진행하는 대부분의 수업이 온라인 강좌로 전환하면서 ‘줌 바둑판’을 캡처해서 수강생 얼굴에 이모티콘 박고 올리는 것도 식상해서 요즘에는 그런 이미지를 공개하는 일이 거의 없다.

 

아무튼 진흥원에 올라온 글은 이것이었고...

 

<기록된 기억의 쓸모-예술교육과 기록>

 

기록된 기억의 쓸모 | arte365

arte365

arte365.kr

 

이분의 다른 기사를 검색하다가 아래 글을 찾았다.

 

[미니북] 기록하는 인간, 호모 아키비스트

 

[미니북] 기록하는 인간, 호모 아키비스트

오롯이 사적인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온전한 내 생각도 다른 사람과 사회, 역사로부터 영향을 받아 생성된 ‘공유된 기억과 경험’에서 비롯된다. 개..

biz.chosun.com

 

 

 

위 기사에서 아주 인상적인 글을 봤는데 어쩜 내 마음과 그리 똑같은지...

 

-사적인 내용도 블로그에 공개합니까?

어느 정도는요.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블로그 타이틀을 바꾸곤 해요. 제 블로그는 그 정도로 유명 블로그는 아니지만. 알려졌다 싶으면 블로그 이름을 바꿔요.

 

-그러면 굳이 왜 남들이 볼 수 있는 블로그에 올리지요?

개인적인 글을 쓸 때에도 자신을 견인할 만큼의 제 3의 공적인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순전히 나 혼자서만 쓰고 보는 일기장에 글을 쓰면 지속적으로 쓰기가 어렵거든요. 완전 독백도 아니고 완전 공개도 아닌, 중간쯤에 있는 곳에 나를 두는 게 적절한 긴장도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자신과 적당한 거리를 두되 완전히 나를 내어 놓는 방식은 아닌, 그런 공간을 확보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흥미로운 말씀이군요. 소셜미디어를 보면 익명성 뒤에 숨어서 온갖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기과시나 자아도취의 공간이 됐다는 말도 합니다. 상처를 입고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강의해보면 그런 질문이 많아요. 왜 사생활을 그렇게 드러내려고 할까 하구요. 단순히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글쓰기가 자신을 견인해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를 새로 발견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부분이 의외로 커요.

그래서 온라인 공간에서도 적절한 시간과 공간의 간격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무슨 글이든지 곧바로 ‘좋아요’를 누르거나 반박성 댓글을 다는 식의 즉자적 반응은 좋은 사용법이 못 된다고 생각해요.(안정희/㈔한국국가기록연구원 책임연구원, 아키비스트)

 

 

나는 티스토리와 네이버 블로그 두 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방문자 수가 많지 않다. 일일 100명도 안 된다. 갑자기 2-300명으로 늘었을 때는 매년 여름에 진행하는 ‘짧은소설 공모전’이 홍보 중일 때밖에 없다. 나는 100명 미만 방문자 수에 안도하고, 오후 4시인데도 겨우 스무 명밖에 안 들어왔을 때는 조금 실망하지만(?), 다른 때는 음, 괜찮군, 하면서 안심한다. 나라는 프리랜서를 알리기 위한 용도로 블로그를 활용하지만 ‘강의일기’ 같은 포스팅에는 사적인 감상도 많이 올리니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끄럽다.

 

블로그에 의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익명성’이다.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페북을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 포스팅에 습관적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요즘에는 페북을 잘 안 해서 그런 분도 안 계시지만) 그런 연유로 나는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는 일도 별로 없다. 전에는 블로그에 올리는 것만큼 페북에도 소식을 전했는데 이제 그쪽은 가끔 살아있다는 걸 알리는 정도로 방문하고 있다. 나는 좋아요도 그 어떤 반응도 없는 티스토리 블로그가 무척 편하다. 네이버 블로그는 또 그만큼 편하진 않아서 티스토리에 올린 걸 네이버에는 일부러 올리지 않기도 한다.(나란 사람은 대체 뭐지?)

 

예전에 아는 언니가 기록전문대학원(?)에 들어가 볼까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고 대학원 홍보 기간에 강의실에 찾아가 재학생들의 학과소개를 함께 들은 적도 있다. 그 일을 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까, 나로서는 엄두도 안 났다.(언니도 그해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매해 어떻게 살지? 어떻게 먹고 살지? 걱정을 많이 하는 프리랜서로서 2021년의 목표를 ‘새로운 공부’로 잡았다. 이것저것 관심 있는 게 생기면 주저 않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기록대학원이 인천에도 있는지 찾아보다가 검색 물결이 이리저리 파도쳐 ‘북큐레이션’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걸 공부해볼까 싶었다. (사)한국북큐레이터협회에 가입, 온라인 강좌 개강을 기다린 지 일주일도 안 돼 모집공고가 떴다. 와우! 바로 신청했다. 내가 하고 있는 ‘키워드로 소설 읽기’의 소설큐레이션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얻어 배우는 게 있겠지.

 

아무튼 안정희 님 책은 다 읽었고 ‘기록의 쓸모’라는 책은 예약도서로 신청해두었다.

 

 

 

"오롯이 사적인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온전한 내 생각도 다른 사람과 사회, 역사로부터 영향을 받아 생성된 ‘공유된 기억과 경험’에서 비롯된다. 개인의 기록물이 지닌 공공성에 주목하는 까닭은 기록이야말로 우리의 ‘공유 기억’을 만드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공유의 틀을 만들어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와 인류의 삶을 꿈꾸도록 돕는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돌아보기, 보통 사람들의 느린 아카이브를 제안한다… 아카이브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경쟁을 멈추고 함께 돌아보게 한다… 부분적인 쓰기 행위와 그로 인한 결과물들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가, 무엇을 추구하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 저절로 구해진다. 아카이브는 나의 성장과 시대적 흐름을 한 타래로 엮는 일이다."/안정희,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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