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듯 천천히>를 읽고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영희 옮김, 문학동네

 

1.

영화 <자전거 도둑> 보고 또 보면서 느낀 이야기.

처음에는 실업 중이던 아버지가 겨우 일을 구했지만, 장사 도구인 자전거를 도둑맞고, 생면부지인 사람의 자전거를 훔치다가 아들이 보는 앞에서 잡혀, 슬픈 이야기로 읽었다고 했다.

대학 시절 영화관에서 다시 봤을 때는, 아이의 존재를 알아챈 상대 남자가 "용서해주겠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 전과는 달리 휴머니즘을 그린 작품으로 여겼단다.

"세 번째로 봤을 때는 또 인상이 달라졌다. 용서받은 아버지가 어깨를 떨으뜨리고 터벅터벅 걸어나가는데, 불안하게 기대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손을 잡는 것이다. 두 사람의 이러한 연결 방식은, 자식이 아버지의 손을 잡는 것을 넘어서서 아버지에 대한 구원으로 확장되게끔 그려져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보면 다른 게 보이고, 다른 걸 느끼게 된다... 책도 그렇고, 나도 수업할 때 이전과 지금의 느낌을 비교해서 말하는 걸 좋아한다. 이 작품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요? 라고 단선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수강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면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의도랄까.

 

 

2.

고레에다 집안은 밖에서 사진 찍을 때 남의 차 앞에서 찍는 게 그 집의 가풍처럼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전통 복장을 입고 주차장에 세워진 (남의 차) 보닛 위에 당당히 앉아있기도 하고, 뒷범퍼에 올라가 아버지와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도 있다고 한다. 고레에다 집에는 차가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책에는 '그 예'가 한 장 실려있다. 다섯 살의 히로카즈. 귀엽다.

 

3.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 출연했던 배우 기키 기린.

"감독도 알겠지만...... 어른 장면이 조금 많은 것 같아. 이 이야기, 어른은 배경이니까. 다들 배경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이니까, 클로즈업 촬영 같은 건 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 에피소드를 실은 글의 제목도 <배경>

->배경을 연기하는 배우와 작품을 위해 배경이 되고 싶다고 고백하는 배우.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세상에서.

 

4.

 "왠지는 모르지만 기차 안만큼 펜이 술술 나가는 장소도 없다. 2위인 '심야 패밀리 레스토랑'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지난 수십 년간 1위 자리를 지켜왔다. <걸어도 걸어도>라는 영화를 만들 때도 그랬다. 각본 아이디어는 도쿄에서 교토로 향하는 신칸센 안에서 생각해냈고, 네번째 왕복 때 도쿄행 열차에서 초고를 완성했다. 

->목적 없이 뉴욕<->도쿄 왕복 항공권을 끊어 기내에서 작품 하나를 완성한다는 작가도 있는 걸 보면 '글을 쓸 수 있는 이동수단'은 뇌에 어떤 자극이라도 주는 걸까...

 

5.

<아무도 모른다> 칸 상영 후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 "당신은 영화의 등장인물을 도덕적으로 심판하지 않는다. 아이를 버린 어머니도 단죄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히로카즈의 생각. "영화는 남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감독은 신도 판사도 아니다. 악인을 설정하는 것으로 이야기(세계)는 알기 쉬워질지 모르지만,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이 이 영화를 자신의 문제로서 일상에까지 끌고 들어가도록 할 수 있지 않다 싶다."

 

그해 <화씨 9/11>가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그는 충격을 받는다.

"순수하게 작품으로서 뛰어난가? 과연 다큐멘터리인가? 무엇보다 거기에 표명된 그의 분노의 절실함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불안해진다. 만드는 이가 원칙에 매달리는 바람에 우리 사회는, 건전한 형태로 '분노'를 표명하는 그릇으로서의 다큐멘터리는, 세계와 마주하기를 멈추고 장르에 스스로 갇혀버렸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나도 히로카즈 쪽. 소설에 꼭 악인이 등장하지 않아도 괜찮다.

 

6.

"지금 취재중인 가수 코코는, 토크를 마칠 때 "그래서 부릅니다"라고 객석을 향해 말합니다. 자신의 나약함이나 어쩔 수 없는 현실, 소중한 친구의 죽음 등을 마주했을 때...... 그럼에도 자신은 노래를 부르는 것밖에 할 수 없기에 고개를 들고 "그래서 부릅니다"라고. 저는 이 말이 "그럼에도, 부릅니다"가 아닌 것이 그녀의 강인함이자 대단함이라고 느낍니다."

->자기긍정이라고 단순화시키면 실례가 될 것 같다. 생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7.

<아무도 모른다>의 스틸 사진을 찍은 사진가 가와우치.

13년간 자신의 가족을 기록한 사진집 <큐이큐이>

"중반을 넘겼을 무렵, 느닷없이 이야기의 중심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 남편의 죽음에 당황해, 망연히 서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할머니는 혼자가 되지만, 얼마 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또 집안에 빛이 차오른다. 그때, 지금까지의 시간축을 부수고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중략) 어쨌든 기록은 기억으로 한순간 변모했다."(209쪽)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실패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문화로 성숙된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게 동물이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230쪽-마지막 페이지)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늘 고개를 숙이고, 움츠리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불 속에 있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일까. 그 시절을 참을 수 없을 만큼 힘겨워했기 때문일까. 어린시절도 중고등학교 시절도...기억나는 게 없다. 이십 대, 삼십 대... 잊으려고 애쓴 적도, 기억하려고 애쓴 적도 없는 시간들. 되찾고 싶다. 그래서 하루 지나고 하루, 나는 매일 일어난다.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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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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