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콕
김주욱
불이 났던 대형 쇼핑몰은 전면적인 재단장에 들어갔다. 공사 전에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한 대형 쇼핑몰을 밀착 취재한 동영상이 떴다. 그 동영상은 엄청난 조회로 화제가 되었다. 상점이 철수한 자리엔 휘어진 철근, 깨진 유리 조각이 바닥에 가득하고 어지럽게 늘어진 전선들이 뒤엉켜 있었다. 텅 빈 쇼핑몰은 새로운 사업자를 찾지 못하고 몇 년간 버려졌다. 지붕이 무너져 내린 공간에 웅덩이가 생겼고 빗물이 고였다. 음산한 웅덩이에 해충이 들끓자 누군가 그곳에 물고기를 풀었다. 물고기가 번식하여 대형 수족관이 되었다. 그곳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햇빛을 보지 못해서인지 하나같이 진한 이끼 색이었다. 물고기들은 배고픈 괴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중 한 마리는 흰색과 낙타색 얼룩무늬였다. 그놈은 빠르게 헤엄쳐 카메라 앞을 맴돌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
불이 났던 그 날은 가만히 있어도 땀방울이 솟았다. 더위 때문이었는지 그와 나는 전철역 출입구에서 싸웠다. 그가 내 짧은 치마를 비웃었기 때문이었다. 날씬하지도 않은 다리를 자랑하고 다닌다는 말에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전철역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 있는 나를 잡아끌었다. 내가 손을 뿌리치자 그는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나를 위협했다. 그것은 마법의 콕,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처럼 마법의 콕은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콕을 당한 사람만 정지되는 것이다. 마법의 콕은 가운뎃손가락으로 목덜미를 세 번 누르면 마법에 걸리고 다시 가운뎃손가락으로 목덜미를 한 번 눌러주면 마법이 풀린다. 마법의 콕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게임이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라고 강요한 그는 마법의 콕에 걸린 나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곤 했다. 사람들은 시간이 멈추고 표정과 동작이 순간적으로 굳어버린 모습을 재미있어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거리는 순간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를 따라 전철역으로 내려갔다. 전철역을 지나자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있는 지하 대형 쇼핑이 나왔다. 그곳은 밤이면 낮으로, 낮에는 밤으로 변하는 세계였다. 그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두리번거리다 보니 그와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햇살만큼 눈 부신 조명과 상점마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흥겨웠다. 살짝 흥분하여 그의 뒷모습에 서려 있는 냉담을 느끼지 못했다. 액세서리 상점을 지날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머리핀이었다. 멀리 떨어진 그를 불러 세우고 상점 앞에 내놓은 매대로 갔다. 머리핀을 골라 머리에 대고 거울을 봤다. 거울에 비친 그는 천장에서 내려온 커다란 모빌 조형물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머리핀을 계산하고 나오는데 그가 뒤에서 다가와 마법의 콕을 걸었다. 순식간에 다가오는 통에 나는 마법의 콕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그는 마법의 콕을 더 재미있게 연출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에게 요구한 극한 장면은 왕복 4차선 도로의 중앙선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기였다. 나는 터질 것 같은 심장 박동을 느끼며 보행 신호로 바뀔 때까지 그를 기다렸다. 그는 주로 정지한 나의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촬영했다. 흔들린 화면, 역동적인 장면에는 항상 수십 개의 ‘좋아요’가 달렸다. 내가 아찔한 장면에 동원될수록 인기가 좋았다.
그가 마법의 콕을 걸고 사라진 것이 이상했다. 지금껏 마법의 콕을 걸어놓고 내 주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마법의 콕에 걸려 있을 때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숨어서 나를 지켜봤다. 처음엔 그가 나를 지켜보는 것이 좋아 시간을 멈춰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픈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
그가 먼저 나를 떠났으니 마법의 콕은 무효가 된 것이다. 가만히 서서 그를 기다리는데 유람선이 침몰하고 있을 때 승객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기다리다 수장당한 참사가 떠올랐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손가락으로 내 목덜미를 누르고 마법의 콕을 풀었다. 스스로 마법의 콕을 푼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의 약속을 깬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가 사라지자 그가 제대로 보였다. 그의 잔상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항상 깔끔하게 입고 다녔는데 오늘의 하얀 셔츠는 새로 꺼내 입은 것이 아니었고 낙타색 바지는 무릎이 튀어나와 있었다. 후줄근한 옷차림이 전날 밤 그의 스마트폰이 왜 꺼져있었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듯했다. 그는 사라졌고 그와 나를 연결하는 한 가닥의 선인 스마트폰마저 끊어져 있었다. 그가 일부러 전원을 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아파 분수대 앞 계단에 앉았다. 배신감에 그를 저주하고 나서 잘잘못을 따져보았다. 그와 관계를 계속 이어 갈 것인지 고민할수록 결론이 나지 않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길게 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갈 테면 가라지. 마음을 편하게 먹고 그에게서 벗어나려는데 그가 숨어서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액세서리 상점 앞으로 가서 그를 기다렸다. 나는 점점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대형 쇼핑몰이 수족관 같았다. 먹이를 찾아 유영하는 물고기들이 나를 툭툭 건드리고 지나갔다. 그를 찾아 나섰다. 사라진 것이 장난인지 내가 싫어서 떠난 것인지 만나서 확실히 하고 싶었다. 같은 길을 돌고 돌았다. 상점들이 발산하는 유혹의 손짓을 뿌리칠수록 방향감각이 떨어졌다. 상점마다 흘러나오던 흥겨운 음악은 불협화음이 되어 귀청을 때렸다. 나무뿌리 같은 길을 헤매다 다시 액세서리 상점 앞으로 왔다. 거울 속에서 하얀 셔츠에 낙타색 바지를 입은 사람을 발견했다. 뒤돌아 달려가서 보니 그가 아니었다. 다시 액세서리 상점으로 가려는데 세상이 흔들려서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실제로 땅이 흔들렸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흔들림이었다. 공포가 파편처럼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기고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세상이 흔들려 넘어지는 순간 단단하게 뭉친 수천 개의 뜨거운 공기덩어리가 나를 때리고 지나가면서 유리 파편이 내 어깨에 박혔다. 액세서리 상점 앞에 있던 사람들은 우박 같은 유리 파편을 맞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불타는 액세서리 상점을 바라보았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기구가 시계추처럼 움직였다. 나뒹구는 사람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보자 차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비명이 점점 커졌다. 아이 엄마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내가 액세서리 상점 앞에 서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순간 그가 액세서리 상점 안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크레타의 미궁을 연상시키는 대형쇼핑몰에서 죽었다. 미궁 같은 대형쇼핑몰의 미노타우로스는 나를 유혹했던 화려한 상품이었다.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미노타우로스를 만나러 갔다. 미궁에 가면 쇼핑 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가 천국으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1898년에 그린 '아리아드네'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프린트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천국으로 떠난 그가 테세우스 같았다. 그림에는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떠나가는 테세우스의 배가 그려져 있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로스도 잡고 영웅이 되었는데 목숨을 걸고 자신을 사랑한 여인을 왜 낙소스섬에다 버리고 떠났을까. 아리아드네가 자신에게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너무나 당당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누워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홀로 남겨진 아리아드네는 낙소스섬에 머물고 있던 디오니소스의 아내가 되었다. 아리아드네의 미모에 반한 디오니소스가 그녀를 아내로 맞아 올림포스로 데려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디오니소스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황금관을 아리아드네에게 결혼선물로 주었는데, 이 황금관은 나중에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니 나도 이제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쇼핑센터 실외 에어컨 압축기가 과부하에 걸려 화재가 발생한 것이 일차 원인이었고 불길이 인화물질에 옮겨붙어 폭발이 계속 이어졌다. 폭발 전에 스스로 마법의 콕을 풀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영혼은 작별의 순간에 허공을 떠다닌다는 사후 세계의 이야기가 떠올라 한동안 긴장하고 살았다. 갑자기 스파이더맨을 좋아했던 그가 건물 벽이나 천장에 매달려 나에게 인사할지도 몰라서였다. 그가 나타나 마법의 콕을 한다면 우리의 약속을 귀신에게도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약속은 이미 깨졌으니 개의치 않을 것인지 고민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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