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남는 것
김자세
적병의 정수리를 내려치고 검을 올리는 순간 맹영孟迎의 가슴이 화살에 꿰뚫렸다. 튀어나온 활촉을 내려다보며 이게 뭐야, 하고 뇌까렸지만 다음 순간 머리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새까만 밤이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맹영은 가슴께를 더듬었다. 손에 걸리는 게 없는 걸 보니 화살이 뽑혀 나간 게 분명했다. 출혈은 멎은 듯했고 아픔은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하늘이 도왔다. 화살이 살만 찢고 나간 것이다.
“이제야 깨어났군요.....”
옆에서 나는 소리에 맹영은 움찔했다.
“누구냐?”
“좌익 창병 진삼陳三이라고 합니다만.....”
꽤나 앳된 목소리였다. 좌익의 병졸이 왜 우익에 있는가, 중얼거리며 일어나는데 흙에서 올라온 냉기 때문인지 몸이 무겁고 뻣뻣해 바닥에서 사지를 겨우 떼어내야 했다. 일어나 앉아 봐도 사방이 먹물 속 같고 바로 옆에 있는 진삼이라는 병졸만이 어렴풋이 느껴질 뿐. 이리 어두워서야 뭐가 뭔지, 하다가 맹영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싸움에 진 것이다. 다친 장령(장교)을 전장에 버려두고 퇴각한 것만 봐도 전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짐작이 갔다. 아, 이런, 주군께서는 어찌 되셨는지, 어서 본진을 찾아 합류해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간 적군에게 발각되어 도륙당할 것이다.
“넌 어디를 다쳤나? 걸을 수는 있어?”
“.....전 이제 아무렇지 않아요.”
창병의 목소리는 허기진 기색이 역력했다. 맹영은 주변을 더듬으며 칼을 찾았지만 곧 포기해야 했다. 적군이 시체들을 뒤져 날붙이란 날붙이는 모조리 거둬 간 것이다. 몸에 박혀 있던 화살까지 빼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무관이 칼을 잃다니! 그 검은 삼대를 내려온 가보였다. 치욕스러움에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서 본진을 따라잡아야 한다. 맹영은 사방을 둘러봤지만 도무지 방향을 어림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보름이 아닌가, 구름이 얼마나 끼었으면 달빛을 이리도 철저하게 막아내는가.
“어디가 서쪽인지 알겠어?”
진삼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일어나 앞쪽을 가리켰다. 맹영은 상처가 벌어질까 봐 가슴을 꾹 누르고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처음엔 어지러운 기분도 들었으나 걷기 시작하자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좀 전의 막막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난 빨리 걸을 수 있다. 아니 뛸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러니 내 걱정은 말고 빨리 좀 가자. 본진이 철수라도 했으면 어쩔 거야.”
재촉을 해봤지만 진삼은 마지못해 따라오면서 중얼거렸다.
“......아주 오래 기다렸습니다. 혼자서 얼마나 끔찍했는지 몰라요. 이젠 정말 기운이 없어요. 어차피 어디로 가나 똑같아..... 쳇, 아무렴 어때.”
“뭐라?”
아무리 패잔병 신세라지만 병졸이 장령에게 말대꾸를 하다니. 평소였다면 사납게 꾸짖었을 테지만 웬일인지 금세 노여움이 식었다. 어린 병졸 중엔 몇 끼 굶으면 눈이 뒤집혀 막무가내로 투정을 놓는 애들이 가끔 있다. 지금은 그런 걸 나무랄 겨를이 없었다.
“근데 이 길로 가는 게 맞아? 너무 깜깜해서 난 도무지.”
말을 하면서 둘러봐도 역시나 마찬가지였고 어둠이 먹어버린 듯 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발이 가벼운데도 자꾸 허방다리를 짚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맨땅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적들이 억새를 깔아 만들어둔 염탐로? 맹영은 진삼의 어깨를 잡아챘다.
“너 조나라 군이 아니지?”
어두워서 상대의 군장을 확인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 자기를 꾀어내 적의 군영으로 끌고 가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그래, 난 연나라 사람이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의 목을 낚아챘지만 다음 순간, 헉! 맹영은 코앞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진삼과 마주해야 했다.
“당신이 나를 죽였어.”
훅하고 스미는 음산한 귀기에 맹영은 뒷걸음쳤다. 그러나 곧 상대의 눈에 아른거리는 푸른빛이 꽤 파리하다는 걸 알아챘다. 사람을 해할 힘 따위는 없는 귀신으로 보였다. 구슬려 제압해야 한다. 승부를 가르는 것은 누구의 기가 더 센지에 달렸다. 상대가 귀신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너 같은 잡귀에게 휘둘릴 마음은 절대 없다고 결기를 세우며 맹영은 어깨를 폈다.
“미안하네. 전쟁 중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잖나. 나는 싸우기 위해 태어난 무가의 사내야. 그렇다 해도 미안하다. 내 고향에 돌아가면 작은 사당이라도 지어 해마다 기일에 향을 사르고 명복을 빌겠다. 부족하나마 그걸로 용서해 주길 바라네. 전쟁에서 원한이 무슨 소용 있나. 우리가 원한이 있어 서로 죽이는 게 아니잖나. 다 내려놓고 명복을 누리시게. 그래 다 내려놓는 거야. 떠날 때는 누구나 빈손이지. 남는 게 뭐가 있겠어. 명예도 지위도 재물도 다 두고 가는 게야. 증오나 원한마저도 그래. 망자에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연나라 출신이든 조나라 출신이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시간이 가면 다 한 품에 안길 운명인 것을. 다 부질없는 거야. 부질없어.”
자신의 귀에도 그럴듯하게 들리는 그 말들에 맹영은 묘한 서글픔마저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말은 귀신에게도 통했는지 진삼은 잠시 맹영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당신에게 원한 같은 건 없어. 다 피장파장이지..... 단지 난 궁금할 뿐이야. 왜지? 당신은 왜 이제야 깨어난 거지? 처음엔 뺨이라도 한 대 갈겨주려고 기다렸어. 곧 깨어날 줄 알고 말이야. 설마 설마 하면서 한해 두 해가 지났지. 그렇게 삼십 년이라고, 장장 삼십 년.”
삼십년? 그게 무슨..... 하다가 맹영은 그제야 자신에게 호흡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뭔가 툭 하고 끊어지더니 밖으로 새어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라고 하는 부댓자루가 한순간에 낡고 헤지는 서늘한 느낌.
고약하군. 이런 걸 귀신의 장난이라고 하는 거지. 부상 탓이다. 지금 자신은 정기가 허해져 잡귀의 농간에 휘둘리는 것이다. 대부 맹씨 가문의 무사가 한낱 적의 병졸 따위에게. 전장에서 별별 끔찍한 걸 다 보며 뼈가 굵은 게 누군데, 맹영은 피식 웃어보았다. 그러다 철렁했다. 뭔가 이상했다. 육신에서 전해지는 생생한 감각이..... 들숨도 날숨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래서 그래서 만져보려고 손을 올렸는데, 헉! 있어야 할 자리에 입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손이어야 할 것이 없었다. 있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왜? 좀 전까지 있던 자신의 몸뚱이는 어딜 가고. 아니야 이건, 이건 그냥 귀신한테 홀려서 그런 거야. 봐봐, 내 이지가 이토록 명징한데? 그러나 뭔가 점점..... 어어, 이럴 순 없다.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 돼. 이게 뭐야, 이게. 정신 차려야 해. 허, 정말 생사람 잡는군. 내 이러다 실성이라도 하겠어. 이게 무슨 해괴한 노릇이야. 이런 게 귀신들린다는 건가. 허 참.....
그때 누군가, 자신 안 한쪽 구석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누군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맹영에게 말했다. 사실 다 알고 있지 않았냐고, 오래 전에 다 받아들인 일이 아니냐고, 지금 너는 생전의 너를 흉내 내는 것뿐이라고, 네가 잡고 있는 건 한낱 기억의 부스러기라고, 깨어나라고, 소용없다고, 부질없다고.
아니야, 아니야. 맹영은 고개를 저어보았다. 그러나 그 어떤 동작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그 자신은 이미 알고 있고 이미 알고 있다는 그 사실을 포함한 이 모든 상황에 그는 경악했다.
“우리 둘 말고는 다 떠났어. 난 점점 오기가 났지. 기필코 깨어나는 꼴을 보고 말리라. 하지만 당신은 백골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날리도록 깨어나지 않았어. 우리가 죽어 누운 벌판은 오래전에 밀밭이 되었는데.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혼백은 그렇게 오랜 시간 잠들어 있지 못해. 내가 버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무엇 때문이지? 당신 무엇 때문에 이제야 깨어난 거야? 난 알아야겠어. 그 이유를 말이야. 뭐지? 난 꼭 알아야겠다구. 난 궁금한 건 못 참아!”
불현듯 칼을 내리칠 때 얼핏 보았던 적병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끌려 나온 앳된 얼굴. 세상을 내려놓기엔 알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나이. 아무것도 아닌 짧은 생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접지 못한 소년의 마음. 아아..... 그러나 이제 진삼의 혼백 또한 흐트러지고 있었다. 맹영은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이봐 어서 대답해. 어서! 난 이제 얼마 못 버텨. 난 그것만이라도 알아야겠어. 뭔가 있는 거야, 그렇지? 고집을 피운 이유가 있는 거야, 그렇지?”
맹영은 대답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외로웠을 어린 병졸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전할 수 없었다.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그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물에 풀어지듯 바람에 날리듯 그의 기억은 옅어져 갔다. 이토록 부질없는 것이었나?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내게는, 내게는! 안간힘을 써봤지만 맹영은 자연의 섭리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자신이라고 불리던 것들이 먼지처럼 변해 날리다가 어둠에 먹히듯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안 돼, 안 돼! 제발! 맹영은 외쳐라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점점 굴속처럼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그도 진삼도 이젠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쪼롱 쪼롱 쪼쪼쪼.....”
깜짝 놀란 진삼이 털썩 주저앉았다. 작은 새가 날개를 반짝이며 날아가자 툭툭 메뚜기가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사방이 환해지더니 그들 앞으로 드넓은 밀밭이 펼쳐졌다. 지평선 위로 흰 구름은 한껏 부풀고 한번 쓸고 갔는지 바람은 잠잠한데 밀들이 사락사락 끝없이 마른 소리를 냈다.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사락사락.....
그 소리를 따라 밀밭 한가운데가 갈라지듯 길이 나고 메뚜기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새들은 이편에서 저편으로 포르르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맹영은 두 손을 들어보았다. 무기를 잡느라 굳은살이 박인 어엿한 자신의 두 손.
봐! 나야, 내가 맞아, 나는 있었어. 내가 있는 거야, 여기에 내가 있어, 여기에 있어, 난 있어, 하는데
“저기 좀 봐!”
하고 진삼이 소리쳤다. 맹영은 진삼 쪽을 돌아보았다. 그의 옆에는 밝은 빛에 드러난 진삼이, 연나라식 짧은 소맷단 옷을 입은 진삼이 서 있었다. 과연 똘망한 눈에 눈썹이 흐린 연나라 사내의 얼굴. 솜털이 여전한 덜 자란 얼굴. 햇볕에 탄 콧잔등 위로 한숨같이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아아, 아이야 너구나, 너. 이제야 너를 보는구나. 그래 이 얼굴이었어. 이 얼굴. 맹영은 그 얼굴이 세상의 전부인 양 바라보고 또 보았다.
“저기 좀 보라니까!”
진삼이 다시 소리쳤다. 저 멀리 밀밭 가운데 길로 누군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노파인데 한눈에도 행색이 몹시 초라했다. 등은 굽었고 머리는 재처럼 흐린데 그러나 걸음걸이만은, 그 도도하고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만은 옛날 그대로. 아아, 맹영의 가슴은 화살에 맞은 것처럼 아프고 불에 지진 것처럼 아픈데도 아픈 속에서도 뻐근하도록 벅차올랐다.
“.......나를, 나를 찾아오고 있어.”
“에에? 뭐야, 그럼 그러니까 당신 저이를 만나기 위해?”
“조금 전에 이승을 떠난 거야. 나와 함께.”
말을 마친 맹영은 삼십 년을 기다린 아내를 맞으러 밀밭 위를 구르는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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